그림이야기/명화속 이야기

금동이 2020. 3. 28. 09:00



에드바르 뭉크, 〈절규〉, 패널에 파스텔화 / 79×59cm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내 기분이 우울해졌다. 갑자기 하늘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나는 멈춰 서서 난간에 기댔다. 죽을 것처럼 피로가 몰려왔다.
핏덩이처럼 걸려 있는 구름, 검푸른 협만과
마을 위에 칼처럼 걸려 있는 구름 너머를 멍하니 쳐다봤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지만 나는 공포에 떨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가늠할 수 없이 엄청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절규’가
자연 속을 헤집고 지나는 것이 느껴졌다.”
-에드바르 뭉크


이 세상에는 ‘글로벌 아이콘’이라 부를 수 있는 그림이 있다. 미술에 관심이 있든 없든 누구의 눈에나 익숙하고, 누구나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그 그림을 좋아하든 아니든 그 그림의 느낌에 대체로 공감을 하는 그런 그림 말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밀레의 〈만종〉,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등이 그렇다. 그런데 지금 예로 든 작품들은 다 세계 유명 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니, 돈을 아무리 많이 쓴다 해도 일반 개인이 손에 넣을 수 없는 작품이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는 논란의 여지없이 이런 글로벌 아이콘에 들어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이름을 들으면 〈모나리자〉가 생각나고, 조각가 로댕의 이름을 들으면 〈생각하는 사람〉이 떠오르듯 화가 뭉크의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절규〉일 것이다. 이 그림 속에 있는 절규하는 사람의 해골 같은 얼굴 이미지는 영화, 만화, 장난감, 아트 상품 등 곳곳에서 수도 없이 패러디 되었다. 게다가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과 뭉크 미술관에 있는 〈절규〉의 다른 버전 두 점이 각각 도난당했다가 되돌아온 사건도 있어서 사람들은 〈절규〉 하면 애틋하고 극적인 느낌을 갖는다.

뭉크는 〈절규〉를 네 점 그렸는데, 그의 고국인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국립 미술관에 한 점, 뭉크 미술관에 두 점이 소장돼 있다. 소더비에서 팔린 이 그림은 유일하게 개인 컬렉터 손에 있던 작품이다. 다시 말해, 이 그림은 뭉크의 대표적인 이미지이고 글로벌 아이콘의 상당히 높은 순위에 들어가면서도 개인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그림이다. 게다가 다른 〈절규〉들이 모두 미술관에 있으니, 이 그림을 손에 넣으면 자신의 컬렉션이 세계적 미술관과 동급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그림이 시장에 나오면 갑부 컬렉터들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물불 안 가리고 경쟁을 한다. 그 결과 이 그림은 1억 1992만 달러(1258억 2000만 원)에 낙찰되면서 2012년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비싸게 팔릴 수 있던 이유는 무엇보다 이 그림이 대표적인 ‘글로벌 아이콘’이면서도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개인 컬렉터 소장품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 그림이 출품됐을 때 전문가들은 당시까지 사상 최고가 작품이던 피카소의 〈누드와 푸른 잎사귀와 흉상〉의 1억 650만 달러(1117억 2000만 원) 기록을 깰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이렇게 크게 앞지를 줄은 몰랐다. 게다가 더 놀라운 점은 이 그림이 유화가 아니라 세로 79센티미터, 가로 59센티미터의 파스텔화라는 사실이다. 파스텔화나 수채화는 일반적으로 유화만큼 비싸지 않은데, 이런 고정 관념도 이 그림을 계기로 완전히 깨져 버렸다.

사실 뭉크는 유화보다 크레용이나 파스텔 같은 건조한 느낌의 재료를 즐겨 사용하며 일부러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는 텁텁한 느낌을 추구했다. 그러니 연필이나 파스텔, 수채화로 그렸더라도 이렇게 작가가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그린 것이라면 유화보다 비싸지 못할 이유가 없다. 뭉크의 〈절규〉가 팔리기 하루 전날 크리스티에서는 세잔이 수채화로 그린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 1700만 달러(178억 원)에 팔리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에서 69위를 차지한 라파엘로의 드로잉 〈뮤즈〉 두상은 2916만 파운드(493억 4000만 원)에 낙찰됐다.

컬렉터들이 유화에 집착하는 경향은 서서히 바뀌고 있다. 국제 미술 시장 분석 회사인 ‘아트프라이스닷컴(www.artprice.com)’의 통계에 따르면 2002년 1월에서 2012년 1월까지 10년 동안 경매에서 낙찰된 유화의 평균 가격이 161퍼센트 올랐고, 드로잉 가격은 197퍼센트로 올라 상승폭이 더 컸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드로잉 작품의 가격 상승이 높은 것은 중국 컬렉터들의 영향이 크다. 중국 본토에서 컬렉터들이 수묵화를 사는 데 많은 돈을 쓰기 때문이다. 수묵 드로잉도 미술 시장에서는 파스텔이나 수채화와 함께 ‘드로잉’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런 중국 시장의 영향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드로잉에 대한 컬렉터들의 생각은 예전과 많이 바뀌었다. 게다가 이 그림은 리언 블랙이라는 뉴욕의 컬렉터가 산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는 반 고흐, 라파엘로 등의 유명한 드로잉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유명한 드로잉 컬렉터다. 그러니 그가 특히 이 그림에 매료된 것은 이해할 만하다.

〈절규〉는 뭉크 개인의 경험이 응축된 그림이라고 볼 수 있다. 뭉크는 20세기 초반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가 표현한 것은 현대인의 숨은 내면이다. 이 그림에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자신을 포함한 현대인들 마음속에 있는 공포와 불안을 시각화했다.

뭉크의 집안은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다. 뭉크가 다섯 살 때 결핵으로 어머니가 죽었고, 열네 살 때는 누나가 죽었다. 남동생도 젊을 때 죽었고, 여동생은 정신 질환으로 정신 병원에 갇혀 있었다. 여동생이 있는 정신 병원 근처에는 도살장이 있었다고 한다. 미술사학자 수 프리도는 〈절규〉의 경매를 앞두고 소더비가 발간한 뭉크 특집 도록에 ‘뭉크는 아마도 여동생을 만나러 수용소에 갈 때마다 정신병자들이 지르는 고통의 절규와 도살장에서 나는 짐승들이 죽어 가는 소리를 함께 들어야 했을 것이다’라고 썼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다. 뭉크가 어린 시절부터 겪고 들어야 했던 죽음과 고통의 소리가 이 그림 속에 응축돼 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주제가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고 있다. 뭉크는 이 그림을 그릴 무렵에 한창 삶, 죽음, 사랑 같은 주제에 매달려 있었다. 이런 주제로 음산하게 그려진 그림들은 ‘삶의 프리즈(Frieze of Life)’ 시리즈로 불린다(프리즈는 건물의 내부나 외부 벽 등을 꾸밀 때 쓰는 띠 모양의 장식물을 의미한다).

이 시리즈 그림을 처음 전시한 것은 1893년 베를린에서였다. 뭉크의 대표적인 그림인 〈달빛〉, 〈폭풍〉, 〈음성〉, 〈뱀파이어〉, 〈마돈나〉 등이 모두 1893년에 나왔다. 그러니까 소더비에서 팔린 〈절규〉는 뭉크가 이런 주제에 집중적으로 매달리던 1895년에 그려진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유명 작가의 그림이 시장에 나오면 몇 년도에 그려진 작품이냐는 질문이 꼭 나온다. 그 그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려면 그려진 시기를 꼭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아이콘이 되는 그림을 보면 대개 주제에 보편성이 있다. 특히 그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 뭉크는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표현했지만, 그 경험이 꼭 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현대인들도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낯섦, 외로움, 소외감, 공포를 형상화했다. 문명사회에 살고 있지만 이따금씩 그 사회에서 탈출하고 싶고 ‘악’ 소리치며 도망가고 싶은 공포감을 표현해 준 그림인 것이다. 그런 주제가 뭉크 개인의 경험과 직접 연결돼 있어서 더 잘 표현되었을 것이다.

뭉크가 살아 있을 당시 독일의 문화 평론가이던 프란츠 세르바에스는 뭉크를 고갱과 비교하며, 고갱은 인간의 원시적인 면모를 찾아 도시를 버리고 타히티 섬으로 갔지만, 뭉크는 그 자신의 내면에 타히티 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갱처럼 도망갈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고갱이 타히티 섬의 순수한 모습에서 원시성을 찾았다면, 뭉크는 현대인들의 내면에서 원시성을 찾았다고 했다. 뭉크는 고갱과 마찬가지로 발달된 문명사회가 인간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면을 싫어했다. 일부러 매끈한 유화의 완성도보다 파스텔처럼 덜 그려진 듯한 거친 느낌을 추구한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이 그림은 뉴욕의 메이저 경매 주간인 2012년 5월에 팔렸다. 세계 양대 경매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매년 5월과 11월에 뉴욕에서 2주에 걸쳐 대대적인 경매를 진행한다. 이를 뉴욕 메이저 경매 주간이라고 하는데, 초고가 경매 기록은 대부분 이때 나온다. 이 기간에 거래되는 작품들은 현재 시장에 나올 수 있는 그림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들이기 때문이다. 첫째 주에는 인상파 미술과 20세기 초 근대 미술, 둘째 주에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현대 미술을 경매한다. 그런데 뭉크의 〈절규〉가 출품된 2012년 5월은 미국을 비롯해 세계 경기가 별로 좋지 않을 때였다. 하지만 이런 불황에도 팔리는 그림은 팔린다는 것을 이 파스텔화를 통해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작품이 비싸게 팔리는 것은 작가의 이름값, 작품의 중요성, 원래 소장하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경로를 통해 어디에서 언제 팔리는지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은 여러 조건에 들어맞았다.

뭉크의 〈절규〉는 소장 기록이 매우 훌륭하다. 원래 소장하고 있던 사람은 노르웨이의 갑부이자 뭉크의 친구이던 토마스 올센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뭉크 같은 모던 화가들의 그림을 훼손한 나치의 눈을 피해 이 그림을 비롯해 뭉크의 그림 여러 점을 숨겨 주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아들이자 노르웨이의 갑부인 페테르 올센이 아버지에게서 이 그림을 물려받아 가지고 있다가 “뭉크 미술관을 짓는 데 쓰겠다”며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뭉크 미술관을 짓는 데 쓰겠다면서 뭉크의 대표작을 내놓은 게 이상하지만, 미술관 건립과 운영에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에 이 정도 가격이 나가는 작품을 희생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림을 팔 때는 시기, 즉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이 그림을 판 2012년 봄은 세계 경기는 불황이었을지언정 뭉크 그림을 팔기에는 아주 좋은 시기였다. 런던 올림픽을 맞아 런던 테이트 미술관의 뭉크 특별전을 앞두고 있었고, 바로 전해인 2011년에는 파리의 대표적 현대 미술관인 퐁피두 미술관에서 뭉크 특별전을 열어 크게 성공했다. 게다가 2013년은 뭉크 탄생 150주년이라 노르웨이 미술관들이 합동으로 대규모 전시를 계획 중이라는 사실이 경매 당시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림이 비싸게 팔리려면 이런 시기적 요인까지 잘 들어맞아야 한다. 이 그림은 이런 요인들이 골고루 잘 맞았다.









코로나 19의 공포를 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