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문학/시와 수필

금동이 2020. 3. 29. 04:00

 

 

 

고향 앞에서>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잣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

 

 

2.-모촌(暮村)-

 

초라한 지붕 썩어 가는 추녀 위엔 박 한 통이 쇠었다.

 

밤 서리 차게 내려앉는 밤,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라 붙던 밤,

지붕 밑 양주(兩主)는 밤새워 싸웠다.

 

박이 딴딴히 굳고 나뭇잎새 우수수 떨어지던 날,

양주는 새 바가지 뀌어 들고 초라한 지붕,

썩어 가는 추녀가 덮인 움막을 작별하였다.

 

 

3.<병든 서울>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蕩兒)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를 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 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나온다

포장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에 차려 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 구융같이 늘어선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아,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그리고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월 15일, 9월 15일,

아니, 삼백예순 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가

시골 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 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여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아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서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 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 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 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4.-성씨보(姓氏譜) -

 

오래인 관습, 그것은 전통을 말함이다

 

내 성은 오씨(吳氏).

어째서 오가인지 나는 모른다.

가급적으로 알리워 주는 것은

해주로 이사온 일청인(一淸人)이 조상이라는 가계보의 검은 먹글씨.

옛날은 대국 숭배(大國崇拜)를 유심히는 하고 싶어서,

우리 할아버니는 진실 이가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가계보룰 창작하였고 매매하였다.

나는 역사를, 내 성을 믿지 않어도 좋다.

해변 가으로 밀려온 소라 속처럼 나도 껍데기가 무척은 무거웁고나.

수퉁하구나.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애욕을 잊을랴면은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

 

 

5.-황혼(黃昏)-

 

직업소개에는 실업자들이 일터와 같이 출근하였다.

아모 일도 안하면 일할때보다는 야위워진다.

검푸른 황혼은 언덕알로 깔리어 오고

가로수와 절망과 같은 나의 기-ㄴ 그림자는 군집의 대하에 짓밟히었다.

 

바보와 같이 거물어지는 하늘을 보며

나는 나의 키보다 얕은 가로수에 기대어섰다.

병든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근육이 풀릴 때 향수는 실마리처럼 풀려나온다.

나는 젊음의 자랑과 희망을, 나의 무거운 절망의 그림자와 함께,

뭇사람의 웃음과 발길에 채우고 밟히며 스미어오는 황혼에 맡겨버린다.

 

제집을 향하는 많은 군중들은 시끄러히 떠들며,

부산히 어둠 속으로 흐터저버리고.

나는 공복의 가는 눈을 떠, 희미한 노등(路燈)을 본다.

띠엄띠엄 서있는 포도( 道)우에 잎새 없는 가로수도 나와 같이 공허하고나.

 

고향이여!

황혼의 저자에서 나는 아리따운 너의 기억을 찾어

나의 마음을 전서구(傳書鳩)와 같이 날려 보낸다.

정든 고삿. 썩은 울타리.

늙은 아베의 하-얀 상투에는 몇 나절의 때묻은 회상이 맺어 있는가.

우거진 송림 속으로 곱-게 보이는 고향이여!

병든 학(鶴)이었다. 너는 날마다 야위어가는……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일 잘하는 기계는 나날이 늘어나가고,

나는 병든 사나이.

야윈 손을 들어 오랫동안 타태(墮怠)와, 무기력을 극진히 어루만졌다.

어두워지는 황혼 속에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보이지 않는 황혼 속에서,

나는 힘없는 분노와 절망을 묻어버린다.

 

 

6. -나의 노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옛 흙이 향그러

 

단 한번

나는 울지도 않았다

 

새야 새 중에도 종다리야

화살같이 날라가거라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야

 

나의 과녁은

오직 님을 향하야

 

단 한번

기꺼운 적도 없었더란다

 

슬피바래는 마음만이

그를 좇아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느끼었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향수

 

 

어머니는 무슨 필요가 있기에 나를 맨든 것이냐! 나는 異港에 살고 어메는 고향에 있어 얕은 키를 더욱더 꼬부려가며 무수한 세월들을 흰머리칼처럼 날려보내며, 오 어메는 무슨, 죽을 때까지 윤락된 자식의 功名을 기두르는 것이냐. 충충한 세관의 창고를 기어달으며, 오늘도 나는 부두를 찾어나와 쑤왈쑤왈 지껄이는 이국 소년의 會話를 들으며, 한나절 나는 향수에 부다끼었다.

 

어메야! 온 세상 그 많은 물건 중에서 단지 하나밖에 없는 나의 어메! 지금의 내가 있는 곳은 광동인이 싣고 다니는 충충한 밀항선. 검고 비린 바다 우에 휘이한 角燈이 비치울 때면, 나는 함부로 술과 싸움과 도박을 하다가 어메가 그리워 어둑어둑한 부두로 나오기도 하였다. 어매여! 아는가 어두운 밤에 부두를 헤매이는 사람을, 암말도 않고 고향, 고향을 그리우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모다 깊은 상처를 숨겨가지고 ...... 띠엄, 띄엄이, 헤어져 있는 사람들.

 

암말도 않고 검은 그림자만 거니는 사람아! 서 있는 사람아! 늬가 예 땅을 그리워하는 것도, 내가 어메를 못 잊는 것도, 다 마찬가지 제 몸이 외로우니까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어메야! 오륙년이 넘두락 일자소식이 없는 이 불효한 자식의 편지를, 너는 무슨 손꼽아 기두르는 것이냐. 나는 틈틈이 생각해본다. 너의 눈물을 ...... 오 어메는 무엇이었느냐! 너의 눈물은 몇 차례나 나의 불평과 결심을 죽여버렸고, 우는 듯, 웃는 듯, 나타나는 너의 환상에 나는 지금까지도 설운 마음을 끊이지는 못하여왔다. 편지라는 서로이 서러움을 하소하는 풍습이려니, 어메는 행방도 모르는 자식의 安在를 믿음이 좋다.

 

 

 

 

할렐루야

 

곡성이 들려온다. 人家에 人家가 모이는 곳에.

 

날마다 떠오르는 달이 오늘도 다시 떠오고

 

누런 구름 쳐다보며

망또 입은 사람이 언덕에 올라 중얼거린다.

 

날개와 같이

불길한 四足獸의 날개와 같이

망또는 어둠을 뿌리고

 

모든 길이 일제히 저승으로 향하여 갈 제

암흑의 수풀이 성문을 열어

보이지 않는 곳에 술 빚는 내음새와 잠자는 꽃송이,

 

다만 한 길 빛나는 개울이 흘러 ......

 

망또 우의 모가지는 솟치며

그저 노래 부른다.

 

저기 한 줄기 외로운 강물이 흘러

깜깜한 속에서 차디찬 배암이 흘러 ...... 사탄이 흘러...... 눈이 따겁도록 빨간 장미가 흘러 ......

 

 

 

첫겨울

 

 

 

지금

감나무 상가지

하나 남은 연시를2

가마귀가

찍어 가더니

오늘은 된서리가 나렸네

후라딱딱 훠이

무서리가 나렸네

 

 

입원실에서

 

 

저마다 기쁜 마음, 싱싱한 얼굴로

오래나 있었던 병실에서

나가는 사람들.

그러는 동안에

해방을 기약하는 그날이 왔고,

그 뒤에도 잇대어 여러 가지 병든 사람이나

흥분된 감격에 다쳐 온 젊은이

새로이 새로이 왔다는

모두 다 씩씩한 얼굴로 나간다.

아 억압이 풀려진 세상은 어떠하련가,

나 역시 나가게 되리라 믿고

또 나가고 싶은 마음에

―그러면 하루 바삐 쾌차하시오. 우리도 손목 잡고 일합시다.

하고,

먼저 나가는 이들 당부를 뼈에 새긴다.

 

누워서도 피끓는 가슴

아, 눕지 않으면 사뭇 불타오르리니

젊음이여!

여기서만 성장이 앞서는 자랑스런 시기여,

다만 흰 벽과, 거기에 걸린 간소한 그림과

머리속에 아직도 응석하는 쓸쓸함이

온 하루 나의 벗이라 하나

 

병든 몸이여!

병든 마음이여!

이런 것이 무어냐

어둔 밤의 횃불과 같이, 나의 싸우려는

싸워서 이기려는 마음만이

지금도 나의 삶을 지킨다.

 

 

 

이름도 모르는 누이에게

 

움직임이 없는 樹林과 같이

내 마음 스사로 그늘을 지노라.

아 이곳에 나날이 찾어오는

작은 새여!

나는 그대의 이름과 노래를 모른다.

그러나 자연이여

당신은 위대합니다.

작은 새로 하여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내 마음으로 하여금 그를 평화로이 쉬이게 하여주소서.

 

 

여수(旅愁)

 

여수에 잠겼을 때, 나에게는 쬐그만 희망도 숨어버린다.

요령처럼 흔들리는 슬픈 마음이여!

요지경 속으로 나오는 좁은 세상에 이상스러운 세월들

나는 추억이 무성한 숲속에 섰다.

 

요지경을 메고 다니는 늙은 장돌뱅이의 고달픈 주막꿈처럼

누덕누덕이 기워진 때묻은 추억,

신뢰할 만한 현실은 어디에 있느냐!

나는 시정배와 같이 현실을 모르며 아는 것처럼 믿고 있었다.

 

괴로운 행려 속 외로이 쉬일 때이면

달팽이 깍질 틈에서 문밖을 내다보는 얄미운 노스타르자

너무나, 너무나, 뼈없는 마음으로

오 늬는 무슨 두 뿔따구를 휘저어보는 것이냐!

 

 

 

어포(漁浦)

 

어포의 등대는 鬼類의 불처럼 음습하였다. 어두운 밤이면 안개는 비처럼 나렸다. 불빛은 오히려 무서웁게 검은 등대를 튀겨놓는다. 구름에 지워지는 하현달도 한참 자옥한 안개에는 등대처럼 보였다. 돛폭이 충충한 박쥐의 나래처럼 펼쳐 있는 때, 돛폭이 어스름한 해적의 배처럼 어른거릴 때, 뜸 안에서는 고기를 많이 잡은 이나 적게 잡은 이나 함부로 튀전을 뽑았다.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탕아 돌아가는 게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 병든 자식을 찾어오시다.

 

- 아 네 병은 언제나 낫는 것이냐.

날마다 이처럼 쏘다니기만 하니 ......

어머니 눈에 눈물이 어릴 때

나는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

 

- 내 붙이, 내가 위해 받드는 어른

내가 사랑하는 자식

한평생을 나는 이들이 죽어갈 때마다

옆에서 미음을 끓이고, 약을 달인 게 나의 일이었다.

자, 너마저 시중을 받어라.

 

오로지 이 아들 위하야

서울에 왔건만

메칠 만에 한번씩 상을 대하면

밥숟갈이 오르기 전에 눈물은 앞서 흐른다.

어머니여, 어머니시여! 이 어인 일인가요

뼈를 깎는 당신의 자애보다도

날마다 애타는 가슴을

바로 생각에 내닫지 못하야 부산히 서두르는 몸짓뿐.

 

- 이것아, 어서 돌아가자

병든 것은 너뿐이 아니다. 온 서울이 병이 들었다.

생각만 하여도 무섭지 않으냐

대궐 안의 윤비는 어디로 가시라고

글쎄 그게 가로채었다는구나.

 

시골에서 땅이나 파는 어머니

이제는 자식까지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신다.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읍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 가슴에 넘치는 사랑이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이 가슴에 넘치는 바른 뜻이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모든 이의 가슴에 부을 길이 서툴러 사실은

그 때문에 병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탕아 돌아가는 게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 병든 자식을 찾어오시다.

 

 

 

어린 누이야

 

어찌 기쁨 속에만 열매가 지겠느냐.

아름다이 피었던 꽃이여! 지거라.

보드라운 꽃잎알이여!

흩날리거라.

 

무더운 여름의 우박이여!

오 젊음에 시련을 던지는

모든 것이여!

 

나무 그늘에 한철 매암이

슬피 울고

울다 허울을 벗더라도

나는 간직하리라.

 

소중한 것의 괴로움,

기다리는 마음은

절망의 어느 시절보다도

안타까워라.

 

오 나는 간직하리라.

 

 

 

The Last Train

 

오장환

 

저무는 역두(驛頭)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병든 역사(歷史)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굴 기다려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놓아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헌사』 , 오장환, 열린책들, 2004년, 21~22쪽

 

 

 

오장환(吳章煥.1918.5.15∼1951)

 

시인. 충북 보은군(報恩郡) 회북면 중앙리 출생. 안성보통학교(安城普通學校)를 거쳐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서 수학했으며(중퇴),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 동경 지산중학교 수료. 1938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문예과 중퇴.

 

시지(詩誌) [낭만] [시인부락(詩人部落)] [자오선(子午線)] 등의 동인으로 활약했다. 1933년 [조선문학(朝鮮文學)]에 <목욕간>을 발표하였다. 1936년 [낭만],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37년에는 [자오선] 동인이 되었다. 문단에 등단한 이래 1937∼47년 <성벽(城壁)> <헌사(獻詞)> <병든 서울> <나 사는 곳> 등 4권의 시집을 차례로 냈다.

 

8ㆍ15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 문학 대중화운동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다가 1946년 이태준, 임화 등과 함께 월북하였다.

 

【생애】

 

오장환은 1918년 충북 보은에서 비교적 부유한 가정의 삼남(서자)으로 태어났다. 이후 잠시 경기도 안성에 이주하였다가 학업을 위하여 상경한다. 그 후 일시적인 동경 유학시기를 제외하고는 주로 서울에서 외토리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였다. 그리고 1933년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여 등단한 후, 1936년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이후 일제 강점 말기의 폭압적 상황에서도 절필하지 않으면서, 친일적인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시인군의 한 사람이 된다. 특히 신장병으로 병상에서 해방을 맞은 그는, 좌익 쪽의 문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조선문학가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 2월경 월북한다. 그러나 이렇게 남한에서의 짧은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오장환은 시집 <성벽> <헌사> <나 사는 곳> <병든 서울>을 간행하는 등 비교적 왕성한 창작적 실천력을 보인다.

 

그리고 일제말에서 해방정국에 이르는 격동의 상황 속에서, 오장환의 삶과 시 창작은 밀접한 상관관계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즉 서자라는 신분적 제약과 도시에서의 타향살이, 이에 따른 사상적 지향이 그의 시작품에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 그의 시 창작들은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연대순으로 시집으로 묶여서 간행되었다.

 

즉 그가 남긴 기록에 의존하여 시세계의 변모를 살펴보면 1936∼1939년의 <성벽>과 <헌사>, 1939∼1945년의 <나 사는 곳>, 그리고 1945년 이후의 <병든 서울>로 시의 경향이 구별된다. 그러나 이런 속에서도 그의 시작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그 양상이 경우에 따라서는 유교적 전통과 관습을 부정하면서도 도시와 항구의 신문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비판적 정신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어떤 때에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 사상과 정신의 지향점에 바탕을 둔 새로운 조국 건설의 민중적 열망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작품세계】

 

그의 시들은 경향상, 1936∼1939년의 <성벽>과 <헌사>, 1939∼1945년의 <나 사는 곳>, 그리고 광복 이후의 <병든 서울>로 대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구별은 편의를 위한 것일 뿐 그의 시 이해에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시작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나타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오장환에게 있어 그리움은, 때로 유교적 전통과 관습을 부정하면서도 도시와 항구의 신문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비판 정신으로 변주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고향과 육친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그 자체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그것은, 광복 정국의 격동기에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조국 건설에 대한 지향으로 변모되기도 한다. 먼저 <성씨보>에서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고 하여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유교적 관습과 전통을 부정한다. 이런 부정을 바탕으로 <해항도> <선부의 노래> <온천지>와 같은 시에서는, 신문물이 들어오는 항구나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나, 그곳도 역시 ‘병든 시인 오장환’(<불길한 노래>)이 ‘병든 비애의 역사’(「The Last Train」)를 만나는, 고향 아닌 장소일 뿐이었다.

 

일제 말의 시들은 초기시의 경향과는 다른 시 세계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어머니나 애인, 또는 고향에 대한 직접적인 그리움의 노래로 나타난다. 그러나 <향수> <나 사는 곳> 등에서 나타난 바처럼, 강이 가까운 산골의 고향 마을과 그 고향에 혼자 살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은 “고향 가차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고향 앞에서>)라고 하는 미완의 귀향 노래에 머물러 있거니와, 이는 그 자신이 바라는 고향에 아직 가 닿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그가 바라는 귀향은 육체적 고향으로의 귀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광복까지를 염두에 둔 그것임을 알 수 있다. 광복 후 오장환의 그리움은, 현실의 새로운 상황에 대한 예찬과 부패한 무리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로 나타났다가, <병든 서울>이나 <승리의 날>과 같은 시들에서는 새로운 조국 건설이라는 민중의 간절한 열망으로 구체화되는 모습을 나타낸다. 광복된 조국의 현실적 과제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행사시와 이념시를 통하여 또 다른 고향 찾기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 권영민 : <한국현대문학대사전>(서울대출판부.2007) -

 

-------------------------------------------------------

 

오장환이 문단에 등장한 것은 1933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을 발표하면서부터이지만,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전개한 것은 1936년 [낭만],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이후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월북하기까지 4권의 시집을 상재한다. 첫 시집 <성벽>은 1937년 2월까지 쓴 작품들을 모은 것이고, 둘째 시집 <헌사>는 그 이후부터 1939년 8월까지의 작품들을, 세 번째 <병든 서울>은 해방 이후부터의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네 번째 시집 <나 사는 곳>은 몇 작품을 제외하면 해방 전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시기적으로는 <병든 서울>보다 앞선다.

 

그는 청각적 이미지와 서정의 양면을 두루 갖춘 시를 썼다. 그러나 회화에 경도되어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또 감상에 몰입하여 값싼 영탄에 머물지도 않으면서, 직접 현실 속에 들어가서 현대적인 심연을 형상화했다. 또한 그의 관심은 시적 사실주의를 탐구하는 데에도 미쳐 독특한 성취를 남겼다. 그의 시는 전통의 거부, 나그네 의식, 허무주의 등으로 나타났으나 광복 직후에는 현실문제에 관한 시를 썼다.

 

오장환의 시 세계는 대개 세 경향으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성벽> <헌사>에서 보여 주는 비애와 퇴폐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모더니즘 지향의 세계요, 둘째는 <나 사는 곳>의 향토적 삶을 배경으로 한 순수 서정시의 세계요, 셋째는 <병든 서울>이 보여 주는 계급의식이 드러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세계이다.

 

그의 문학은 과거의 관습과 전통의 계승을 부정하고 서구적 취향에 몰두하였다가 다시 고향을 발견하는 도정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오장환의 시 세계는 순수 모더니즘의 성격에 훨씬 가깝다.

 

【학력】

 

1930 안성공립보통학교 졸업

 

1935 휘문고등보통학교 중퇴

 

1938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문예과 중퇴

 

【경력】

 

1936 [시인부락(詩人部落)] [낭만] 동인

 

1937 [자오선(子午線)] 동인

 

1938 [남만서방(南蠻書房)] 경영

 

1946 조선문학가동맹 참여

 

1947 월북

 

1951 별세

 

【시】<목욕간>(1933.조선문학) <카메라, 룸>(1934.조선일보) <여수(旅愁)>(1936.조선일보) <역(易)>(1936.조선일보) <면사무소>(1936.조선일보) <가을>(1936.조선일보)> <성벽(城壁)>(시인부락 창간호.1936.11) <온천지(溫泉地)>(시인부락 창간호.1936.11) <우기(雨期)>(시인부락 창간호.1936.11) <모촌(暮村)>(시인부락 창간호.1936.11) <경(鯨)>(시인부락 창간호.1936.11) <어육(魚肉)>(시인부락 창간호.1936.11) <정문(旌門)>(시인부락 창간호.1936.11) <해항도(海港圖))>(시인부락 2호.1936.12) <어포(漁浦)>(시인부락 2호.1936.12) <매음부(賣淫婦)>(시인부락 2호.1936.12) <야가(夜街)>(시인부락 2호.1936.12) <성씨보(姓氏譜)>(조선일보.1936.10.10.) <체온표(體溫表)>(1937) <싸늘한 화단(花壇)>(1937) <고전(古典)>(1937) <화원(花園)>(1937) <The Last Train>(1938) <소야(小夜)의 노래>(사해공론.1938.10) <무인도>(1938) <나의 노래>(1938) <애서취미(愛書趣味)>(1938) <북방의 길>(1938) <불길한 노래>(1938) <푸른 열매>(1938) <마리아>(1940) <구름과 눈물의 노래>(1940) <강을 건너>(1940) <첫서리>(1940) <고향 앞에서>(인문평론.1940.4) <귀향(歸鄕)의 노래>(1941) <비둘기 내 어깨에 앉으라>(1942.춘추) <병상일기(病床日記)>(1942.춘추) <깽>(1945) <지도자>(1945) <병든 서울>(1945) <일흠도 모르는 누이에게>(1945) <노래>(1945) <붉은 산>(1945) <일홈도 모르는 누이에게>(신문예.1945.12) <산골>(우리공론.1946.3) <내 나라 오 내 사랑하는 내 나라야>(1946) <너는 보았느냐>(1946) <삼일기념의 날을 맞으며>(1946) <입원실에서>(1946) <어둔 밤의 노래>(1946) <가거라 벗이여>(1946)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신문학.1946.6) <어린 누이야>(1946) <밤의 노래>(1946) <NMH>(문학 1.1946.7) <큰물이 갈 때에>(신천지.1946.8) <어린 동생에게>(백제.1947.1) <한술의 밥을 위하여: 국치기념일(國恥記念日)을 당하여>(우리문학 3.1947.3) <첫겨울>(1947) <초봄의 노래>(1947) <봄노래>(1947) <이월의 노래>(1948) <탑>(1949) <남포병원>(1949) <김유천거리>(1949) <설중도시>(1949) <변강당의 하룻밤>(1949) <레닌 묘에서>(1949)

 

【평론】<자아(自我)의 형벌> <문단의 파괴와 참다운 신문학>(조선일보.1937) <조선시에 있어서의 상징: 소월시의 ‘초혼(招魂)’을 중심으로>(신천지.1947.1) <새 인간의 탄생: 조선미술동맹 제1회 국전을 보고>(백제.1947.1) <자아형벌(自我刑罰): 소월연구(素月硏究)>(신천지.1948.1) <농촌문화에 대한 당면과제>(개벽 81.1949.3)

 

【시집】<오장환시집>(풍림사.1937) <헌사(獻詞)>(남만서관.1939) <병든 서울>(정음사.1946) <나 사는 곳>(헌문사.1947) <성벽(城壁)>(아문각.1947)

 

【전집】<오장환전집>(실천문학사.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