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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서울 - 오장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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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문학/시와 수필

2020. 3. 31.


 

​병든 서울

 

- 오장환(吳章煥)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蕩兒)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를 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 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나온다

 

포장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에 차려 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 구융같이 늘어선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아,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

 

을……

 

그리고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월 15일, 9월 15일,

 

아니, 삼백예순 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가

 

시골 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 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여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아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서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 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 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 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상아탑] 창간호(1945. 12) -

 

* 구루마 : 짐수레. 달구지.

 

* 구융 : '구유'의 사투리로 마소의 먹이를 담아 주는 나무 그릇.



 

【감상】

 

오장환이 지은 시. 9연 72행의 자유시이다. 이 작품은 오장환이 해방 전에 여러 편 시도한 장시의 형식을 계승하고 있다. 형식상 장시에 속하는 이 시는 1945년 12월 [상아탑] 창간호에 발표되었다가, 이듬해인 1946년 7월에 간행된 <병든 서울>이라는 시집에 표제작으로 실렸다. 상아탑 에 발표된 작품 마지막에 ‘1945. 9. 28’이라는 창작 날짜가 적혀 있는데, 병든 서울 의 ‘작품 목록’에는 ‘45. 9. 27’로 달리 표기되어 있다.

 

이 작품은 장시의 형식으로 해방의 기쁨과 혼란 속에서 느끼는 분노와 좌절,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해방을 맞은 지 한 달 정도 뒤인 1945년 9월 27일에 쓰인 것으로,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그 즈음에 느낀 감정을 서술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시인과 동일시되는 시적 화자는 해방을 병실에서 맞이하고 울었다.

 

이때 그의 울음은 병실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해서 터트린 개인적인 울음이다. 그리고 그 울음은 다음날 해방된 서울 거리를 돌아보면서 울분과 한탄으로 바뀐다. 그것은 자신이 기대하였던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나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의 비전 대신 장사치와 기회주의적인 정치꾼들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의 제목 ‘병든 서울’은 바로 이런 부정적인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는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맑게 개인 하늘”을 기대하며 미래 지향적인 자세로 이 시련을 극복해나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격한 감정 속에서도 현실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해방된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을 적절하게 형상화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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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첫 행만을 본다면 이 시는 광복의 기쁨과 관련하여 읽혀지리라 예상된다. 그런데 이러한 독자의 예상은 둘째 행에서 배반당한다. 광복의 날 밤에 시적 화자는 자신이 '병든 탕아'임을 부끄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광복의 기쁨보다 더 중요한, 예사롭지 않은 감정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광복의 기쁨과 소문을 되새기고 있을 때, 시적 화자는 병들어 죽어가는 외로운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큰 거리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병든 서울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만세와 가벼운 흥분으로 반전된다. 그 까닭은 무슨 당 무슨 본부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적 화자는 광복의 감격을 위하여 사회주의 운동이 그동안 애써 일해 왔던 사실을 상기하고 기뻐하는 것이며,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라의 광복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자신과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여 일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병든 서울이라 하여 질책하는 것이다. 심각한 비판적 어조가 동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중의 의미에서 아름답고 더러운 서울이며 또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인 것이다. 시적 화자가 드높은 목소리로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를 찬양하고, 서울의 희망을 위하여 노래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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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광복 직후의 혼란스런 사회를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현실 인식과 새 나라 건설의 의지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광복기 시단의 몇 안 되는 수작 중의 한 편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 작품은 총 9연 72행으로서 비교적 그 길이가 긴 서정시다.

 

1∼2연은 병상에서 광복을 맞은 시적 자아의 감격을 표현하고 있으나, 뒤로 갈수록 광복 정국의 현실이 감격적인 것이 아니라 부패와 분열뿐이라는 현실 인식에 이르고 있다. 6연에서는 이런 현실을 ‘병든 서울’로 진단하고, 그러나 그 속에서도 새로운 조국을 세우려 힘쓰는 젊은이들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7∼9연은 나라를 빼앗겼던 그리고 고향마저도 없었던 시절에는, 병든 ‘나’와 같았던 우리 민족이 비굴과 절망만을 느끼고 살았으나, 이제는 모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서울을 위하여 떨치고 일어나 새로운 자세로 살 것을 강력하게 권유하고 있다. 광복기 우리 시단에 발표된 작품들 대부분이 흥분과 감격만을 노래함으로써, 정확한 현실 인식의 형상화에 실패했음에 비길 때, 이 작품에서 광복을 맞은 시적 자아가 보여주는 냉정한 현실 인식은 사뭇 돋보이는 것이다.

 

광복이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서울은 아름답고, 정답고, 사랑스런 서울이 아니라 ‘병든 서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적 자아가 맑게 갠 하늘을 위해 싸우는 젊은이를 노래하고, 자신도 그 일에 나설 것임을 토로했을 때, 그 결심이 한낱 빈말로 그치지는 않으리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오장환의 이 같은 민족 현실의 시적 형상화는 광복 후 진보적 시 운동의 한 전범으로 간주되어, 당대의 많은 신진 시인들이 이 작품의 시 정신을 그대로 실천해 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이 작품은, 이태준의 소설 <해방 전후>, 이용악의 시 <오월에의 노래>와 더불어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서 선정한 ‘해방문학상’의 후보작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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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은 해방 직후의 서울의 모습을 병들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환희에 차있어야 할, 우리가 그토록 염원했던 민족 독립의 영광을 맞이한 기쁨의 시기의 서울을 왜 병들었다고 표현했을까. 그는 왜 기쁘다는 말은 소용없다며 가슴을 치며 도로로 뛰쳐나간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뒤에 이어진다.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그는 오랜 억압을 이겨낸 서울의 복판에는 곧 도래할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 젊은이들이 희망찬 함성을 지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 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였다.

 

결국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극복한 대한민국에 만발한 것은 자주독립과 자유의 기치가 아닌 또 다른 체제와 정치적 선동의 아수라장이라는 것이다. 그의 실망은 곧 염세적 세계관이나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양상을 띄우기도 한다. 그러나 오장환의 좌절은 단순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나라’를 건설하자는 민중을 계몽하는 주장을 한다,

 

병든 서울은 위의 두 시보다 역사적 의미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때문인지 강점기나 한국전쟁을 겪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독재 또한 태어나기 전 일인 내게도 절절한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고취시킨다. 특히나 인상적인 부분은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이다. 이 구절은 조지훈의 <동물원의 오후> 중 ‘여기 나라 없는 시인이 있다’를 떠올리게 하며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을 담은, 목을 콱 막히게 하는,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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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은 일제 말기에 붓을 꺾지 않으면서도 친일의 길을 걷지 않은 몇 안 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초기시에서 보여 주었던 유교적 인습에 대한 부정과 반항의 세계가, 해방 이후에는 이 시에서 보듯, 새 시대에 대한 전망과 기대의 이미지로 발전되어 나타나게 된다.

 

신장병으로 인해 8ㆍ15 해방을 병상에서 맞은 오장환은, 광복의 감격과 어수선한 해방 정국에서의 울분과 좌절을 이 시를 통해 '병든 서울'이라는 상징어로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인 '나'로 대치된 시인이 8월 15일 병원에서 운 것은 단순히 기쁨 때문이 아니라, '탕아로 /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해서였다고 믿었지만, 하루가 지난 뒤 정신이 들고 보니 이는 실로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날마다 병원을 뛰쳐나간다. 그러나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던 네거리의 '병든 서울'은 단지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무슨 본부, 무슨 본부 /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만 가득할 뿐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렇다. 병든 서울아 /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 아 다정한 서울아 /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라며 울부짖는다. 식민지 치하에서 '나'가 반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그저 술 먹고 돌아치는 것이었고, 여기에는 너도 나도 잡놈일 뿐이어서 서울은 오히려 다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친일파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어제까지 황군(皇軍) 위문 공연을 다니던 문학인들이 오늘은 너도 나도 민족문학을 부르짖고,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정당을 구성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버린 해방 정국은 이미 그가 꿈에 그리던 그러한 마음 속 고향이 아니었다.

 

그의 이상은 '아, 인민의 이름으로 되는 새 나라'의 건설이건만,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병원에서 뛰쳐나와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과 함께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노력하지만, 어느새 서울엔 다시금 '술취한 망종'이 다시 들끓고 있을 뿐이다. 잠시 동안 해방의 감격에 취해 있었던 그는 이제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과 '젊은이의 씩씩한 꿈들'을 보고 싶어서, '길거리에 자빠져 죽는 날'까지 다시금 반항할 것을 마음먹는다. 그리하여 그는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눈을 뽑아 버리고,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쓸개를 내팽개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해방 정국의 감격과 울분을 노래하는 이 시는 이러한 격정이 호흡을 적절히 가다듬게 하는 선동적인 리듬감과 조화를 이루어, 거칠면서도 절제된 시인의 내면의 심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다음과 같은 부분이 그 좋은 예가 된다.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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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병든 서울’>

 

오장환(吳章煥)의 시집. B6판. 58면. 1946년 7월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되었다. 오장환이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 입원했을 때에 쓴 서문인 <머리에>와 함께 19편의 시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시집의 간행순으로 본다면, <나 사는 곳>(1947)에 앞서 간행된 세 번째 시집이다. 그러나 수록시편들이 모두 8ㆍ15광복 이후에 쓰여진 작품들로 편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제4시집이 되는 셈이다.

 

일기(日記)처럼 제작일자를 명시하고 수록시편을 제작순에 따라 배열하고 있는데, <8ㆍ15의 노래> <연합군입성(聯合軍入城) 환영의 노래> <이름도 모르는 누이에게> <원씨(媛氏)에게> <병(病)든 서울> <어둔 밤의 노래> <지도자(指導者)> <입원실(入院室)에서> <깽> <가거라 벗이어!> <연안(延安)에서 오는 동무 심(沈)에게> <이 세월(歲月)도 헛되이> <공청(共靑)으로 가는 길> <너는 보았느냐> <강도(强盜)에게 주는 시(詩)>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 <나의 길>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등과 같다.

 

이들 수록시편 가운데서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시집에 실리기 전에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되고 있다. 여기에 실린 시작들은 8·15 직후 격변하는 혼란된 상황의식을 토로하고 있는가 하면, 그의 좌경적 이념과 혁명사상을 바탕으로 투쟁의 구호를 외치듯이 쓴 작품도 있다.

 

한마디로 오장환의 후기 시작의 주제는 민족 공동체 의식과 좌경적 이념과 사회주의 사상의 형상화로 요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