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명화감상

금동이 2020. 5.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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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인상파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 11. 14 프랑스 파리~ 1926. 12. 5 프랑스 지베르니. 프랑스의 화가.

프랑스 인상파의 창시자. 인상파라는 명칭이 그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서 비롯되었다. 빛은 곧 색이라는 인상파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켰다. 같은 주제를 시간과 날을 달리하여 반복해서 그리며 무수한 시리즈를 만들었다. 이런 그의 집요한 노력은 말년으로 갈수록 추상화의 형태와 비슷해졌다. 빛과 컬러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 특유의 작업 방식 등은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가족들과 함께 노르망디 부근의 해변 도시 르아브르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식료품 잡화상으로 그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어 했지만 그림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모네는 어렸을 때부터 화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르아브르 지역에서 미술을 배웠고 초상화를 그려 팔았다.

1856년 그 지역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진 풍경화가와 알게 되면서 야외에서 직접 풍경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앙플레네르(En Plein Air)’ 기법을 처음 경험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인상파 화풍을 완성한 이후부터는 거의 모든 작품을 야외에서 그렸다.

1859년 파리로 이주하여 카미유 피사로 등 비주류 화가들이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하던 ‘아카데미 쉬스’에 들어갔다. 그는 이곳에서 르누아르, 바지유, 쿠르베 등의 화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마네의 밝은 화풍에 끌려 빛의 묘사에 주력했다. 르누아르, 드가, 세잔 등과 함께 새로운 화풍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1865년 모네가 스튜디오에서 그린 풍경화 2점이 국가가 공인하는 전시회인 살롱 전시 심사를 통과했다. 그는 그 다음 살롱 전시 때에는 야외에서 작업한 풍경화를 출품하려 했으나 아카데믹한 화풍이 아니라는 이유로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1870년 7월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모네는 전쟁을 피해 영국 런던으로 갔다. 그곳에서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의 거장 존 컨스터블과 터너의 그림을 연구했다. 모네는 자연을 직접 관찰하며 빛의 변화, 공기의 흐름 등에 주목해 색을 사용한 그들의 작품에 큰 영감을 얻었다.

1871년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에 자리를 잡고 7년을 살았다. 작은 배를 한 척 구입해 수상 화실로 만드는 등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려 약 백쉰 점의 작품을 남겼다.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에두아르 마네는 이 배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를 그리기도 했다.

1874년 파리에서 르누아르, 드가, 피사로 등 살롱 전시회에서 거절당한 동료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독립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기존의 풍경화와는 다른 형체가 불분명하고 개성이 강한 그의 작품에 대한 평은 최악이었다.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 대해 “참으로 인상적이다. 벽지 장식이 이 그림보다 완성도가 높다니···”라고 혹평했다. 이 이후 전시회에 참여한 화가들에게 인상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1870년대에는 이름이 알려지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성공을 이뤘으나 씀씀이가 헤퍼 늘 빠듯하게 살았다. 1879년 아내의 죽음 이후 그의 그림에서 자기성찰적인 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880년대 중반 이후 모네는 인상파의 화풍을 고수했으나 인상파 운동은 점차 활기를 잃어갔다. 급진적인 신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등장하면서 그의 명성도 차츰 힘을 잃었다. 이후 10여 년 동안 런던과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며 다양한 풍경을 그렸다.

1883년 파리에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지베르니라는 시골 마을에 농장을 구입해 연못이 있는 정원을 꾸며 놓고 여생을 보냈다. 말년에는 백내장으로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죽는 날까지 시시각각 달라지는 연못과 연꽃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모네는 1926년 폐암으로 사망했으며 이때 그의 나이 여든여섯 살이었다. 사망 후 지베르니에 있는 성당에 묻혔다. 그의 아들은 집을 프랑스 예술 아카데미에 기증했고, 현재는 모네 기념관이 되어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는 “물체가 지닌 고유한 색은 없다. 색은 빛에 따라서 변화할 뿐이다”라는 인상파의 기본 원칙을 세우고 죽을 때까지 충실히 따랐다. 같은 주제를 시점과 시간을 달리하며 반복해서 그림으로써 빛과 색의 변화를 철저히 탐구했다.

말년에는 새로운 아방가르드 미술이 등장함에 따라 예전의 명성을 잃었다. 하지만 그가 죽은 지 30여년이 지난 1950년대에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등이 그가 말년에 그린 초대형 작품에 영향을 받으며 재평가 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세계 순회 회고전을 계기로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