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문학/작가이야기

금동이 2020. 6. 30. 22:37

 

 

법률가인 아버지 봉덕의 1남7녀 중 맏딸로 태어나 경기여자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3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해 다니다가 3학년 때 독일로 가서 1959년 뮌헨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59년 귀국하여 서울대 법대와 이화여자대학교 강사로 있다가 1964년 성균관대학교 조교수가 되었다.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번역분과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31세에 자살했다. 독일 유학 때부터 번역을 시작했으며 문장이 정확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번역집으로 〈생의 한가운데〉(1961)·〈데미안〉(1964) 등이 있고, 특히 재독문학가인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1959)를 번역해서 유명하다.

유고수필집으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가 있으며, 1976년 대문출판사에서 일기를 간추려서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1976)를 펴냈다.

생애
1934년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전봉덕의 1남 7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1952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55년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로 전과하고 독일로 유학하였다. 1959년 독일 뮌헨대학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이 학교 조교로 근무하였다. 유학 중이던 1955년 가톨릭에 귀의하여 막달레나(Magdalena)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이듬해 법학도인 김철수[1]와 혼인하여 딸 김정화[2]를 낳았다.

1959년 5월 귀국하여 경기여자고등학교, 공주대학교 독어교육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이화여자대학교의 교사와 강사를 거쳤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강사를 지낼 때는 서울대학교 독문학 동아리인 독우회를 지도하였다.[3] 1964년 이혼하였고, 성균관대학교 조교수가 되었다.

1965년 1월 11일, 서울 중구 자택에서 31세로 자살하였다.

독일 유학시절부터 헤르만 헤세 등 독일작가들의 작품을 수 권 번역한 바 있으며(데미안, 생의 한가운데 등. 자신과 동일한 성향을 가진 등장 인물에 흥미를 갖고, 자신과의 유사점을 찾아내며 안정을 얻고 자아를 찾으려 노력했다), 사망 이후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발간되었다.

2004년에 방영한 EBS 드라마 과 에서 전혜린의 일생을 간략히 다룬다. 배우 이재은이 전혜린 역을 맡아 연기하였다.

평가

요절한 천재의 사례 중 하나이며 지금도 한국 문학사를 거론할 때 자주 거론되는 대표적인 여성작가이다. 전혜린에 대한 평가는 상반되는 편이다.

이 사람이 "천재로 유명세를 탔던 사람"임은 틀림없으나, 앞으로도 한국의 천재로 인정하고 계속 기억해갈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전혜린은 일찍 세상을 떴기에 이렇다 할 성과물이 없고, 심지어 그녀가 죽었던 31세까지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훨씬 많은 업적과 성과를 남긴 문인들이 있다. 아니, 솔직히 전혜린의 업적이 뭔지 잘 모르겠다."라는 것이 그녀를 향한 대표적인 비판. 소싯적 전혜린의 글을 탐미하던 여성들이, 나이가 들어서는 '유치하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안다' 는 둥의 말들로 그녀를 깎아 내리기도 했었다.

게다가 전혜린의 아버지인 전봉덕은 일제강점기 시절 경찰부의 고위 공무원으로 재직했고, 해방 이후에도 처벌 없이 헌병대 장교로 근무하며 백범 김구 암살사건을 은폐하는데 앞장섰다. 이러한 뒷배경이 있었기에 모두가 가난하던 1950년대에 독일 유학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혹자는 독일 유학 및 귀국 과정에서 느낀 정의감과 현실의 괴리감이 그녀를 자기파괴적인 성향으로 내몰았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반면 이런 비판은 전혜린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절절한 고독이 드러나는 그녀의 글 중, 일부 구절들만을 가지고 과소 평가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에 관해서는 2017년에 출간된 김용언의 《문학소녀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라는 책을 참조. 전혜린과 문학소녀들의 잔혹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