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재즈 명반

금동이 2020. 8. 23. 09:39





재즈 위대한 혁명가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1926년-1991년))

재즈 트럼펫 연주자들이 트럼펫이라는 악기 특성상 장수할 수 없는데, 그 나마 장수한 연주자로 65세에 사망한 마일스 데이비스는 그 자체로 모던 재즈의 역사이다. 쿨재즈 탄생에서부터 재즈록퓨전시대를 열었던 혁명가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뛰어난 천재 트럼펫터는 아니다. 당대에 천재 트럼펫터로 칭송받았던 클리포드 브라운을 굉장히 부러워했다. 데이비스가 비밥 재즈의 창시자라고 불리웠던 색소폰 연주자 챨리 파커의 연주를 듣고, 줄리어드 음악원을 중퇴하고 비밥의 리더였던 챨리 파커와 맥스 로치의 사이드맨으로 활동하면서 비밥시대에 재즈 연주자로서 활동한다. 사실 챨리 파커는 클리포드 브라운의 재능을 아꼈지만 자유분방하고 괘팍한 성격의 챨리 파커와는 성격이 맞지 않았고, 재즈 드러머 맥스 로치와 함께 클리포드 브라운 콰르텟을 결성하여 활동한다. 반면 마일스 데이비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 당시 챨리 파커의 재능은 추종을 했지만 그의 더러운 사생활을 극도로 협오하였다.

챨리 파커를 통해서 모던 재즈 시대를 시작한 마일스 데이비스는 1948년 편곡자이자 오케스트레이션 지휘자였던 길 엘반스의 도움과 당시 쿨 재즈의 명인들이었던 리 코니츠, 제리 멀리건과 함께 1950년 CAPITOL레이블에서 음반으로 진정한 쿨재즈의 전성기를 알렸다.

1953년부터 1956년까지 PRESTIGE레이블에서 하드밥의 리더로서 존 콜트레인, 폴 챔버스, 레드 갈란드, 필리 조 존스의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으로 소위 마라톤 세션이라고 하는 , , , 의 4부작을 완성한다.

이 앨범들은 국내 재즈 매니아들에게 이지리스닝 하드밥 명반으로 PRESTIGE레이블 시절의 대표적인 명반으로 인기가 많다. 반면 컴필레이션 성격의 음반으로 진정한 하드밥의 전형을 보여주는 , 음반도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1956년 마일스 데이비스는 PRESTIGE레이블과 계약을 끝내고 COLUMBIA레이블로 이적한다.
이 레이블에서 초기 마일스 데이비스는 하드밥과 쿨 재즈, 그리고 하드밥에 일렉트릭 악기를 도입하는 시도, 관현악적 기법을 도입한 협주곡 스타일의 재즈를 시도하였다. 마일스 데이비스 콜롬비아 시절 남긴 레코딩중에서 국내에서 인기 많은 음반들은 콜롬비아 레이블 데뷔음반 , , 의 하드밥과 쿨재즈의 영향력을 반영한 음반들이고, 은 길 에반스 악단과 협연한 레코딩으로 유명한 로드리고 아랑훼즈 협주곡을 편곡한 음반이다. 음반은 일렉트릭 사운드를 도입한 재즈록 퓨전 음반들로서 엘렉트릭 기타에 존 맥클라플린과 키보드에 조 자비눌과 칙 코리아등이 참여하였다.

1970년대 마일스 데이비스는 록밴드 형태가 브라스 세션가 결합된 일렉트릭 밴드로서 허비 헨콕과 칙 코리아와 함께 재즈록 퓨전의 시대를 만들어간다. 1972년 음반과 앨범은 1970년대 마일스 데이비스의 실험적인 정신이 깃든 음반으로 재즈 록 퓨전에 펑크, 아프로 아프리간 리듬, 인도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적 색채가 많이 덧칠된 음반들이다. 그러나 국내 재즈 애호가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1980년대 뉴웨이브 팝 음악 시대에 마일스 데이비스는 음악적 침체기와 약물 중독등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기를 꿈꾼다. 이러한 팝음악의 풍조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레코딩도 영향을 주는데 소위 합주반주 레코딩위에 자신의 트럼펫 솔로 연주만을 덧붙이는 방식을 도입하지만 진정한 재즈의 음악적 정신을 상실했다고 혹평을 받는다. 더구나 신디 로퍼의 힛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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