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그랬어

고래 2018. 2. 2. 17:43





아무도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글_남찬숙

그림_이고은 



“야, 딴 길로 돌아가자!”

갑자기 민정이가 내 팔을 확 잡아당기더니 계단 쪽으로 나를 끌고 갔다.

“왜?”

나는 영문도 모른 체 민정이에게 끌려 계단으로 내려갔다.

“에이! 아침부터 재수 없어!”

민정이는 계단을 내려가며 기분 나쁜 투로 말했다.

“뭐가?”

“교장 말이야. 재수 없다고!”

“교장?”

“맞은편에서 오고 있었잖아. 못 봤어?”

“아…….”

“그 영감탱이한테 걸리면 안 돼. 아이, 소름 끼쳐!”

민정이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리는 바로 가면 되는 복도를 놔두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건물을 빙빙 돌아 교실로 들어갔다. 민정이가 그러는 건 나도 이해가 된다. 민정이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게도 민정이랑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나는 지금도 내 등을 훑던 그 기분 나쁜 손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공부 열심히 해라.”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말하던 교장 선생님의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그리고 내 등을 훑어 내려가던 그 손의 느낌, 잠깐 멈춰 더듬는 것 같았던 그 기분 나쁜 느낌. 그리고 내 귓불을 만지작거리던 손.

“아이고, 우리 사춘기 딸! 어디 가서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교장 선생님이 손녀 같은 애들이니까 귀여워서 그런 걸 갖고. 넌 아빠가 안는 것도 질색하잖아. 아빠가 그거 때문에 얼마나 섭섭해 하는지 알아? 네가 너무 예민해져서 그런 거야. 교장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데.”

엄마는 내 말에 이렇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빠가 나를 안았던 거랑은 느낌이 달랐는데…… 분명히 달랐는데…… 내가 질색을 했어도 아빠가 나를 안을 때는 그런 기분 나쁜 느낌은 분명히 아니었다. 아니야, 그래도 엄마 말이 맞을 거야. 교장 선생님은 우리가 귀여워서 그런 거겠지. 그래서 등도 쓰다듬고, 귓불도 만지작거리고, 어쩌다 손이 가슴 쪽으로 온 것 같은 건……. 그래, 그건 그냥 내가 너무 예민해져서 그렇게 느낀 걸 거야. 우리는 이제 막 사춘기로 접어든 예민한 아이들이니까! 민정이도 예민하게 구는 거고 나도 예민하게 구는 거고. 그래, 그냥 그런 거겠지.

나는 애써 엄마 말대로 생각하며 기분 나빴던 그 느낌을 잊으려 했다. 그래도 그 뒤로는 민정이처럼 멀리서라도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길을 빙 돌아가게 된다. 우리 모두 그랬다.


“야, 너희 이야기 들었어?”

소은이가 뛰어들어오며 우리를 향해 큰 소리로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무슨 이야기?”

아이들 모두 눈이 동그래져 소은이를 보았다. 소은이는 우리 반 소식통이다. 늘 새로운 소식을, 그게 좋은 소식이든 안 좋은 소식이든, 가장 먼저 알고 달려와 알려주는 아이다.

“교장 얘기 말이야.”

“교장이 왜?”

“성추행으로 신고 당했대.”

“성추행 신고?”

“그래. 어제 신고 당해서 지금 조사하는 사람들이 왔대.”

“누가 신고했어?”

“그건 나도 아직 몰라.”

“그럼, 그게 진짜였어?”

“진짜라니까! 나도 당했다니까. 얼마나 기분 나빴는지 알아?”

“이번에는 누가 당한 거야? 누가 신고한 거야?”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우리 반의 또 다른 소식통인 은진이가 다른 교실에 다녀오면서였다.


“누군지 알았어. 이번에 여자 부회장 된 육 학년 언니 친구래.”

“그 언니가 왜?”

“교장이 새로 뽑힌 여자 전교부회장 언니를 교장실로 불렀대.”

“왜?”

“격려한다고.”

“격려? 근데 여자 부회장만? 회장이랑 남자 부회장은?”

“뻔하지. 왜 그 언니만 불렀겠냐.”

“그래서 혼자 간 거야?”

“아니야. 그 언니네 담임 선생님이 친구랑 같이 가라고 했대.”

“그러니까 그 선생님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거다, 그치?”

“맞아. 그런데 거기서 앞에 앉혀 놓고, 또 여기저기 만지고……. 아무튼 그랬나 봐.”

“정말 미친 거 아냐? 그래서?”

“여자 부회장 언니가 교실에 와서 친구들한테 이야기했는데, 듣고 있던 다른 언니가 바로 스마트폰으로 원스톱인가 뭔가 하는데 신고했대.”

“정말? 진짜 잘했다.”

“그러게. 그럼 이제 교장은 어떻게 되는 거야?”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오며 소리를 질렀다.

“다들 뭐 하고 있어? 제자리에 가서 앉아!”

우리는 후다닥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선생님이 무슨 설명이든 해 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시작했다.

“다들 뭐 하고 있어. 수학책 펴.”

우리는 수학책을 펴고 다시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책을 펴고 수업을 시작하려다 말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지금, 학교에…….”

선생님의 얼굴은 무거웠다. 우리는 모두 귀를 열고 선생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금, 학교에…… 일이 좀 생겼다. 하지만 다들 신경 쓰지 말고 각자 할 일을 하도록 해라. 괜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쓸데없는 소리하고 다니지 말고. 알았나?”

“교장 선생님이 신고 당한 일이요?”

평소에는 눈치 없게 구는 행동 때문에 여자애들에게 핀잔을 받는 지웅이가 선생님께 물었다. 교실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건 뭔가 오해가 있어서 그런 걸 거다. 너희와 상관없는 쓸데없는 일에 관심 두지 말고, 어서 책들 펴.”

선생님은 지웅이 말은 무시한 채 수업을 시작해 버렸다. 선생님은 그렇게 애써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얼버무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쉬는 시간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부회장 언니랑 그 언니 친구랑 가서 상담실에서 조사받았대.”

“신고한 언니도 따로 가서 또 조사받았대!”

“육 학년 언니들이 여럿 불려 갔대.”

온종일 학교 안은 뒤숭숭했고, 우리는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니 엄마도 다른 엄마들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정말이야? 설마…… 아니, 우리 애도 얼마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난 그냥 별거 아닐 거라고 했지. 그런데 그게 정말일까? 설마…… 퇴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래? 선생님들 회식 자리에서도? 젊은 여자 선생님들한테? 세상에, 정말 여자애들 가진 부모들은 마음 놓고 학교도 보내지 못하겠네.”

엄마는 전화를 끊고 한동안 화가 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엄마, 교장 선생님 이야기야?”

“응.”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이상하다고 했잖아.”

“설마 설마 했는데…….”

“그럼 이제 교장 선생님은 어떻게 되는 거야?”

“선생은 무슨. 그딴 사람이 무슨 선생이야!”

엄마는 내 말에 버럭 화를 냈다. 

“아무튼, 이제는 신고도 됐고, 경찰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넌 괜한 거에 신경 쓰지 마. 그리고 공부만 열심히 해. 너도 내년이면 육 학년이잖아.”

“…….”

나는 엄마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 무슨 공부가 대수라고…… 학교에 그렇게 야단이 났는데…….


학원에 다녀오는 길에 아파트 상가 미장원에 들렀다. 앞머리가 너무 자라서 눈을 찔렀기 때문이다. 파마를 하는 아줌마가 있어서 좀 기다려야 했다.

“설마, 그게 사실이겠어요? 내가 보기에는 괜히 교장 선생님이 억울한 누명을 쓴 게 분명해요.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데. 학교 도서관도 그렇고, 지금 그 교장 선생님 오고 난 다음부터 얼마나 달라졌어요.”

“그건 그렇지만, 그 애들만 그런 게 아니고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증언을 한다잖아요. 작년에 졸업한 애들도 그런 이야기한 애들이 많았대. 엄마들이 다들 자기 애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라고 그냥 넘어갔다던대…….”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학교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요즘 여자애들이 얼마나 되바라지고 못돼먹었는지 아세요? 우리 애들도 여자애들한테 얼마나 시달리는데. 아무튼 내가 보기에는 교장 선생님이 못된 여자애들한테…….”

미장원 원장 아줌마는 나를 보더니 흠칫 말을 멈췄다. 

나는 기분이 나빠 그 자리에 더는 있을 수 없었다. 미장원 원장 아줌마는 아들만 둘이다. 둘 다 우리 학교에 다니는데, 장난이 심해서 여자애들하고 자주 싸우는 걸로 유명하다. 그 바람에 미장원 원장 아줌마가 학교에도 자주 불려다닌다. 그래서 그런지 아줌마는 무조건 여자애들 탓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뭐가 그렇게 되바라지고 못된 애들이라고 저 난리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난 기분이 나빠 미장원을 나섰다.

“왜 그냥 가려고?”미장원 원장 아줌마가 문을 나서는 내 등 뒤에 대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나와 버렸다. 다시는 이 미장원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니 교문 앞에서 엄마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이들도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나도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가까이 가 보았다. 학교 정문 옆 벽에 붙여져 있는 커다란 현수막이 보였다.

‘성추행 교장은 당장 물러나라!’

“아니, 이런 걸 학교 앞에 붙이면 어떡해요? 아이들 보기에도 그렇고, 우리 학교 망신이잖아요. 그리고 아직 뭐가 진실인지도 모르는데.”

“뭐가 진실이지 모르다니요?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그렇게 증언을 하는데 아직도 그런 소리가 나와요?"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이런 걸 굳이 뭐 하러 붙여요? 학교 망신스럽게.“

“망신이오? 망신은 이 현수막이 아니라 아이들을 성추행한 교장이 아직도 버젓이 학교에 나온다는 게 망신이지요.”

엄마들은 서로 편이 나뉘어 있는 것 같았다. 교장을 당장 쫓아내야 한다는 엄마들과,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엄마들로 말이다.

“어서 들어가! 이 녀석들이 무슨 구경이 났다고 여기 몰려있어!”

도덕 선생님과 육 학년 부장 선생님이 나타나 구경하던 우리를 보며 호통을 쳤다. 우리는 후다닥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가니 교실에 있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창가에 매달려 교문 쪽을 구경하고 있었다.

“야야, 저기 봐. 엄마들끼리 싸운다!”

아이들이 한참 소란을 떨며 구경을 하는 사이,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뭐하고들 있어! 어디 불이라도 났어? 다들 제자리에 앉지 못해!”

우리는 또다시 후다닥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학교 앞에서는 또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기자들이 취재를 나온 거였다. 기자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며 학교에서 나오는 여자애들을 붙잡고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나는 혹시라도 기자들에게 걸릴까 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날 저녁 뉴스에 우리 학교가 나왔다. 우리 학교 아이들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인터뷰하는 것이 나온 것이다. 그 뉴스가 끝나자마자 이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맞아, 수민이네 학교야. 그래, 그렇다니까. 글쎄 그 교장이 오늘도 버젓이 학교에 나왔다니까. 학부모회 엄마들을 불러서 아이들이 뭔가 오해가 있었다고 한다나 뭐라나. 오해는 무슨, 당한 애들이 한둘이 아닌데. 그래, 너도 조심해. 혹시라도 애가 이상한 이야기 하면 무심코 넘기지 말고, 글쎄 나도 전에 수민이가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에…… 그래…….”

엄마는 이모와 한참 동안 통화를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전화는 엄마에게만 온 게 아니었다. 내게는 전학 간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방송에 나온 거 너희 학교 맞지?’

‘응.’

‘어떡하니. 너 너무 쪽팔리겠다.’

‘…….’

나는 그 애 문자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왜? 내가 왜 창피해야 하는데? 교장이 그런 건데 왜 내가 창피해야 해? 그러나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애 말대로 우리 학교에 다니는 게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 교장 학교 안 나왔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냐? 방송에 나오니까 이제야 안 나오다니.”

“선생님들도 조사를 받았대.”

“선생님들도?”

“처음 신고한 언니는 학교에 안 온대. 전학 간다고 했대.”

“왜?”

“그 언니 때문에 학교가 난리가 난 거잖아.”

“그게 무슨 그 언니 잘못이야?”

“아무튼 그 언니도 학교 오기 싫다고 하고, 그 언니네 엄마도 전학시킨다고 했대.”

며칠 동안 확인되지 않는 소문들이 학교 안을 마구 헤집고 돌아다녔다. 나중에는 더는 아무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을 만큼 머리가 멍해졌다. 며칠 뒤, 저녁 뉴스에 교장 선생님이 구속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설마 했는데…….”

엄마는 그 뉴스를 보고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자주 열려있던 일 층 교장실 문은 굳게 닫혀 버렸다. 교장 선생님 대신 교감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 대행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모든 일이 다 끝나는 것 같았다. 선생님들은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수업을 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던 소문들도 잠잠해졌다. 교문 옆 담벼락에도 새로운 현수막이 붙었다.

 ‘성폭력 없는 밝은 학교, 우리 힘으로 만들자!’

현수막 밑에는 신고 전화가 아주 크고 진한 글씨로 박혀 있었다. 전에는 걸려있지 않던 그 현수막만 빼면, 우리 학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다시 전과 같아진 것 같았다. 

수학 수업을 해야 하는 시간인데 느닷없이 도덕 선생님이 들어왔다. 도덕 선생님은 아주 나이가 많은 남자 선생님이다. 늘 교문 앞에 서서 아이들 복장도 단속하고, 걸리면 벌을 세우고, 우리에게 막말도 서슴지 않는 선생님이라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선생님이다.

“내가 지금 들어온 건…… 다른 문제가 아니라 바로 교장 선생님 때문이다.”


우리는 눈이 동그래져 도덕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교장 선생님 때문이라니? 드디어 도덕 선생님이 모든 사건의 전말을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온 걸까? 사실 그동안 선생님들은 학교 안에 그렇게 소란이 났는데도 아무도 속 시원히 사건이 이렇게 해서 저렇게 되었다는 설명을 해주지 않았었다. 

“지금 교장 선생님이 아주 곤란한 지경에 처하셨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리 교장 선생님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아이들을 위해 교직에서 열심히 일하셨던 분이다. 훌륭한 업적도 많아서 나라에서 표창도 여러 번 받으셨다는 건 너희도 잘 알 것이다. 그리고 퇴임을 앞두고 우리 학교에 오셔서 우리 학교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도서관을 새로 공사해서, 너희들이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멋진 공간으로 만들어주신 것도 다 교장 선생님께서 나서서 해주신 일이라는 걸 너희들도 잘 알 거다.”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도덕 선생님은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걸까?

“교장 선생님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가 있는 걸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너희들도 알다시피 교장 선생님은 아주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시다. 원래 할아버지들은 손자 손녀들이 예쁘면 안아주시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시고…… 너희 할아버지들이 그런 것처럼 그러신 건데…… 요즘은 그게 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아무튼 너희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그런 분이 아니라는 건 내가 장담한다. 그래서 오늘 내가 들어온 이유는 교장 선생님을 위한 탄원서에 너희들의 서명을 받기 위한 거다. 뭐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다. 그냥 내가 나눠주는 종이에 각자 반하고 자기 이름을 쓰면 된다. 다들 알아들었지?”


도덕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뭐하자는 거야?”

민정이가 어이없는 얼굴로 날 보며 속삭였다. 나 역시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담임 선생님을 쳐다봤다. 이런 상황이면 담임 선생님이 나서서 뭐라고 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러나 담임 선생님은 창가에 서서 우리가 아닌, 창밖의 어딘가를 보며 서 있었다.

“다들 웅성거리지 말고 어서 서명해라. 그래야 얼른 수업을 하지. 학교 선생님들도 교장 선생님을 위해 발 벗고 나서서 탄원서를 다 쓰셨다.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선생님들도 발 벗고 나서서 다 서명을 해주셨다. 제자인 너희들도 당연히 해야 하지 않겠나?”

도덕 선생님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서명 용지를 돌렸다.

학교 선생님들이 탄원서를 썼다고? 나는 이 말에 또 한 번 어이가 없어져 담임 선생님을 보았다. 순간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내 눈과 마주친 순간, 선생님은 슬며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서명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옳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도덕 선생님은 우리 곁으로 다가와 서명을 하는지 안 하는지 지켜보았다. 나는 마지못해 내 이름을 쓰고 말았다. 우리 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도덕 선생님은 사 학년과 오 학년 교실을 돌며 서명을 다 받아냈다고 했다.


엄마들이 다시 학교로 몰려온 건 그날 오후의 일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래?”

“긴급 학부모 총회가 열린대.”

“왜?”

“왜는, 우리가 서명한 것 때문이지. 애들이 엄마한테 전화했나 보더라고. 나도 아까 화장실에 가서 엄마한테 전화했는걸. 야, 우리 구경하고 가자. 급식실에서 열리니까 창문으로 보면 돼.”

“어…… 난 안 돼. 학원 시간 늦어.”

“그럼, 먼저 가. 내가 구경하고 알려줄게.”

같이 학교를 나오던 민정이는 급식실 쪽으로 달려갔다.


  난리가 났어.

  엄마들이 선생님들한테 당신들이 그러고도 선생이냐고 하면서 난리가 났어.

  아빠들도 몇 명 왔어.

  교감 선생님이 그 서명 용지 다 폐기한다고 약속했어. 다행이지?


학원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민정이한테 계속 문자가 날아왔다.


  응. 다행이야... 

  그런데 선생님들이 서명한 건 그대로 법원에 낸대.

  그럼 교장이 그냥 풀려난대?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아마 참작은 돼서 형이 가볍게 내려질 거래.

  그럼 안 되는 거잖아.

  내 말이!


집에 돌아가니 엄마도 이미 그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엄마, 선생님들이 왜 그러는 거야? 정말 교장 선생님이 아무 잘못도 없는데 오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야. 선생님들도 자기 밥그릇이 걸려 있으니까 그런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선생님 사회가 원래 그래. 윗사람한테 잘 못 보이면 승진이고 뭐고 다 없으니까. 다 자기 살려고 그러는 거지. 원래 다 그런 거야.”

“그렇다고 잘못된 건데도 따라 한다고?”

“뭐 선생님들도 어쩔 수 없었겠지.”

엄마는 이상하게도 선생님들이 서명한 걸 이해하겠다는 투로 말을 했다.

“어떻게 그래? 잘못된 거잖아.”

“나도 답답하기는 하지만 현실이 그런 걸 뭘 어쩌겠어.”

“하지만 엄마”

“이제 그만!”

엄마는 짜증을 내며 내 말을 막았다.

“제발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자. 너희들 서명한 거는 교감 선생님이 다 없앤다고 했어. 그러니까 이제 그 문제는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앞으로는 남자 선생님 곁에는 절대 가지 마. 알았어? 학교 선생님이고 학원 선생님이고, 일단 남자 선생님은 무조건 조심하라고. 밤늦게 다닐 생각도 절대 하지 말고, 옷도 짧은 거 입고 다니지 말고. 넌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하면 되는 거야. 알았어?”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더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교장 선생님도 새로 왔고, 학교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아이들은 지금도 우리 학교에 다니는 게 창피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가끔 가슴이 답답하다. 우리는 잘못하면 야단도 맞고, 반성문도 쓰고, 상대방에게 미안하다고 말도 하는데. 그렇게 큰 소란 뒤에, 왜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까? 난 잘 모르겠다. 엄마 말대로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건지…… 정말 그러면 되는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윤리과목을 맡았습니다. 제일 재미없는 수업이었죠. 교과서를 줄줄 읽다가, 가끔 멈춰서 "'이 정도는 알아야' <월간 조선>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월간 조선>이 대단한 줄 알았습니다.
서점에서도 처음엔 <월간조선>을 감히 펼쳐 볼 엄두도 나지 않았지요. 그러다 결국 서가에서 꺼내봤는데, 헐~~~~
그 '교장 선생님'의 압박이 우리에겐 '낙인'으로 남아있네요!
지금도 이 게시글처럼 되는 교육현장이 많겠지만, 이젠 덜하겠지요?
교사들이 탄원서 쓰는 것도 줄어들 것이고, 학생들 서명지도 '교감'이 없애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