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어린이 인문학교

고래 2010. 10. 5. 09:00

고래가그랬어 82호  고래 어린이 인문학교




진짜 만화가 뭐야?


고래와 벼레별씨가 함께 어린이 인문 학교를 열었어요. 경제, 디자인, 생태, 노동, 역사, 만화를 주제로 3월부터 6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강의를 열어요. 인문학교 여섯 번째 시간에는 만화가 김대중 삼촌이 동무들과 함께 진짜 만화에 대해 이야기 나눴어요.


강사 | 김대중 삼촌은 출판사 ‘새만화책’에서 만화책을 만들면서 만화를 그려요. 어린이 인문학교 ‘만화’ 강의의 강사로 동무들과 재미난 이야기 나눴어요.

진행 | 고래가그랬어

사진 | 안기혁 삼촌 (바라 스튜디오)



만화가 뭘까?


난 만화가 좋아!

안녕하세요. 삼촌 이름은 김대중이고요. 나이는 37살, 새만화책이라는 출판사에서 만화책을 만들고 만화도 그리고 있어요. 새만화책은 고래에 실리는 김은성 작가님이 그린 <내 어머니 이야기>, 동무들이 좋아하는 <을식이는 재수없어>를 책으로 만든 출판사예요.

오늘 삼촌이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만화에 대한 이야기인데, 먼저 삼촌이 어떻게 만화책을 만들고 만화를 그리게 되었는지 말해 줄게요. 저도 여러분 나이 정도에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를 많이 보고 만화를 그리기도 했어요. 그리고 커서 ‘나는 뭐 하고 살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사는 게 좋겠더라고요. 곰곰이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했더니, 만화였어요. 삼촌은 만화가 참 좋아요. 그래서 지금 만화로 책도 만들고 만화 그리는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삼촌이 잘 아는 건 만화예요. 그런데 사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나이가 들어갈수록 도대체 만화가 뭘까 다시 고민하게 돼요. 나는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를 하고 싶기도 하고 책도 만들고 싶고 남한테 보여주고 싶고 그런데 막상 만화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혹시 여러분은 잘 아나요? 만화는 뭘까요? ‘만화는 이런 거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잘 모르겠어요.) 그래요.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쉽지 않지요.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만화가 되려면 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칸막이) 칸막이, 칸. (그림, 말풍선)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꼭 그림이 있어야 만화일까요? 말이 있어야만 만화일까요? 말이 없고 그림이 없으면 만화가 아닌 걸까요? 알쏭달쏭하지요.(^^)



글씨가 없어도 만화야!

같이 그림 하나 봐요. 여기엔 글씨가 하나도 없어요. 글씨가 없으니 읽을 수 없는 걸까요? 시간을 드릴 테니까 여러분도 한 번 읽어 보세요. 





(어려워!) 자, 이제 삼촌이 설명해볼게요. 남자하고 여자하고 만나면 아이를 낳을 수가 있지요. 남자 몸에서 씨앗이 나오고 여자 몸에서 씨앗이 나와서 아기가 만들어져요. 이건 아기가 커 나가는 과정일 거예요. 엄마 아빠는 백인이고 아이는 흑인이에요. 아이에게 몸을 준 부모는 흑인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아기는 백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건 아니에요. 입양한 거예요. 이 사람이 입양한 엄마예요. 여기에 입양 서류가 있지요. 의사가 들고 와서 누워있는 사람 아이 엄마에게 사인을 받은 거예요. 이 과정은 아이 엄마가 아이를 낳는 과정일 거예요. 이 여자가 아이 엄마일 텐데 학생인 거 같아요. 남자 친구가 있었나 봐요.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를 사귀어 버렸어요. 그런 내용이에요. 글씨가 없어도 읽을 수 있지요? (복잡해요.) 복잡하지만 복잡해서 읽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글씨가 꼭 없어도 된다는 거예요.



캐릭터가 없어도, 그림이 없어도 만화야!


이 그림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만화인 ‘도널드 덕’같은 캐릭터가 나오지 않아요. 네모와 동그라미가 대화를 나누는 그림인데, 대화하고 있지만 글씨가 없어요. 대신 말풍선을 사용했어요. 그런데 보세요. 말풍선 안에 또 만화가 들어 있지요? 이 만화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네모와 동그라미가 만났어요. 네모와 동그라미가 동그라미와 네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네요. 천천히 읽으면 어떤 의미는 있을 텐데 그게 우리가 평소에 알던 모험이 있고 기승전결 이야기가 있는 그런 방식은 아니에요. 하지만 읽을 수 있어요.















만화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림이 꼭 있지 않아도 되는 때도 있어요. 아까 캐릭터가 없는 만화도 있었지만 더 모호한 만화도 있는데요. 이것도 만화예요. 이거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어떤 덩어리에 점이 두 개가 있어요. 어, 점 두 개가 밖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나가서 없어져 버렸나 봐요. 하나의 별이 이 덩어리에 들어왔어요. 잠깐 섞였다가 내뱉었어요. 아, 별이 또 들어왔네요. 음, 별이 잠깐 있다가 또 나갔어요.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지 않아요? 과학(생물) 교과서에서 말이에요. 하지만 이거는 생물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은 아니에요. 이 만화가 담긴 책 제목은 <파란색>, 블루예요. ‘뭐 이런 만화가 다 있나?’ 싶지만 이걸 만화가 아니라고 할 수 없어요.






우리 생활 속 많은 것이 만화로 되어 있어!


내가 지금 보는 것도 만화가 될 수 있어!

‘글씨가 없어도 그림이 없어도 만화라고 한다면 나도 만화를 그리겠네!’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그래요, 모두가 이렇게 쉬운 방식의 만화를 그려 볼 수 있어요.


이거는 사람 염색체에요. 생물 교과서 같은데 보면 아이가 자라는 모습, 닭이 커가는 모습, 씨앗이 자라는 모습 같은 게 나오잖아요. 그런 것도 사실은 만화예요. 삼촌은 그렇게 보고 있어요.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사실 우리가 그런 걸 만화라고 부르지는 않아요. 실제로는 만화인데 사람들은 거기까지 만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삼촌은 그런 것도 만화라고 생각해요. 우리 일상생활 속 많은 것이 만화로 이루어졌다고 보거든요. 만약 제가 차를 운전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면, 길에서 표지판을 봤을 거예요. 그 표지판을 제가 본 순서에 따라서 쭉 모아보면, 그것도 만화가 돼요.





그림책이랑 만화책은 다른 걸까?


이거는 삼촌이 낸 <놀라운 아버지>라는 책인데 옛날에 선생님을 하셨던 70살 되신 할아버지가 학교를 그만두시고 집에서 쉬면서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쭉 그린 거예요. 저희가 책으로 엮어냈어요. 이건 만화처럼 보이나요? 왜 이게 만화처럼 보일까요? (글씨가 있으니까, 칸도 있고요.) 처음에 이 할아버지는 이렇게 안 그렸어요. 할아버지는 A4 크기만 한 종이에 한 장씩 한 장씩 그렸어요. 이걸 제가 책을 만들 때 약간 줄여서 두 개씩 놨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건 만화다!’ 그러더라고요. 두 개씩 두면 만화라고 하고 하나씩 놓으면 그림이라고 하고 좀 이상하지요?


 여러분 이 책 아세요? 거의 다 봤을 것 같아요. 모리스 샌닥이 그린 <괴물들이 사는 나라>예요. 얼마 전에 영화도 나왔지요. 어느 소년의 하룻밤 괴물 나라 여행기예요. 한 쪽에 글씨가 있고 한 쪽에는 그림이 있어요. 이건 동화책인가요, 만화책인가요. 모양은 동화책 같아요. (합성된 거예요.) 뭐가 합성된 거지요? (만화랑 동화랑.) 하하, 그럼 만화와 동화의 차이가 뭘까요? (만화에는 ‘만’자가 들어가고 동화에는 ‘동’자가 들어가요.)

사람들은 한 쪽에 한 칸만 있으면 동화라고 부르고 한 쪽에 두 개씩 있으면 만화라고 불러요. <놀라운 아버지> 책의 그림은 원래 한 장씩 그려졌고, 제가 그냥 한 쪽에 두 개를 놓은 것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만화로 봐요. 사람들은 만화와 그림책 사이에 선을 그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삼촌 생각에는 그림 동화책도 다 만화라고 생각해요. 한 쪽에 칸이 여러 개 있느냐 없느냐가 만화냐 그림이냐를 가르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만화로 생각하기


안다는 것은 나눠서 생각하는 것!

약간 어려운 이야기를 하자면 일본말에 ‘이해하다, 알다’라는 뜻의 말이 있어요. ‘와까루’ (わか·る [分(か)る·判る·解る])라는 말인데요. 한자로 나눌 ‘분’. ‘나누다’라는 말이에요. 일본 사람들에게 안다는 건 그것을 다른 것에서 분리해낸다는 말이에요. 우리가 여기에 있는 유중이와 재원이를 동시에 알기는 어려워요. 유중이와 재원이를 알려면 따로따로 나눠야 해요. 우리말에도 ‘이해’(理解)라는 말이 있어요. 이해는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이라는 뜻이에요. 이 말에도 ‘나누다’라는 뜻이 담겨있지요? 결국 뭔가를 안다는 것은 무언가를 다른 것에서 분리해낸다는 말이에요.


내가 본 게 뭐였더라?

머릿속으로 생각해 봐요. 이것과 저것을 나눈다면 벌써 두 개의 칸이 머릿속에 생긴다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오늘 여기까지 왔던 길을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다 눈을 뜨고 왔을 텐데, 내가 봤던 모든 게 다 기억나나요? (아니요.) 우리는 과연 거기에 있는 모든 걸 다 봤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어떤 사람은 보이는 건 다 봤다고 할 수도 있는데 막상 내가 무엇을 본 건지 머릿속에 떠올려보면 기억나는 건 많지 않아요. 결국 내가 본 것 중에 내가 기억하는 것만 남게 돼요. 또 어떤 사람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 봐요. 앞모습이 보여요.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옆모습도 있고 뒷모습도 있어요. 우리는 그 사람을 보고 있다고 말하지만 모든 것을 보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본다고 할 때,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보는 건 아니에요.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봤다고 하면 너무나 많은 것을 봐서 기억이 하나도 안날 거예요. 지금 기억하는 걸 떠올려보면 우리가 본다는 것은 결국 내 눈이 관심이 있는 것만 봤다고 할 수 있어요. 눈을 뜨고 돌아다녀서 눈에 들어온 모든 것을 봤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관심을 기울였던 무엇인가만 봤다고 할 수가 있는 거예요.


꼬불꼬불 생각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와~ 만화다!’

만화가 가능한 건 우리가 그런 식으로 세상에 있는 것들을 분리해서 보기 때문이에요. 눈으로 보는 것만 분리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생각도 그런 식으로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여러분 머릿속으로 잠깐 생각해 보세요. 어떤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게 계속 연달아서 쭉 벌어지나요? 눈을 감고 내 생각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살펴봐요. 시작! 생각이 쭉 이어져서 가나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연결돼 있나요? 생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 뭘 먹었지? 오늘 고래 인문학교 와야지. 어떻게 가지? 지하철 탈까? 버스 탈까? 차비가 있나? 엄마가 어디 계시지? 엄마가 파마하러 가셨는데 동생이랑 같이 가야 할까? 그러고 보니 방학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숙제는 다했나?’ 이렇게 점점 생각이 복잡해지고 있어요. 무슨 생각 무슨 생각 연달아서 가긴 하는데 이유 없이 다른 생각이 끼어들기도 하고, 어떤 생각이 빠지기도 하고 좌충우돌 생각들이 막 흘러가고 있어요. 지금도 그럴 텐데, 그런 생각의 경로를 가다 보면 덩어리진 생각이 있을 거예요. 그걸 빼내서 쭉 모으면 바로 만화가 됩니다. 우리 마음 속에 만화가 들어 있다고 볼 수가 있어요.


우리는 주변에 만화가 널려 있는데 사람들은 만화를 꼭 만화책, 인터넷에 만화가가 그려서 올려 있는 것만 만화라고 해요. 만화를 넓게 보면 만화는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고 내가 보는 방식이고 내가 말하는 방식이에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보다 만화를 조금 넓게 보면 만화를 쉽게 만날 수 있고, 쉽게 해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함께 생각해 봐요!

 

우리 같이 만화를 그려볼까요? 삼촌이 먼저 그려 볼게요.



 ‘사과, 맛있다’ 두 칸짜리 만화예요. 썰렁한가요? 한 번 더 해볼게요. 



이거는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의 작품이에요.

만화가 특별한 게 뭐냐 하면 말풍선을 붙이면 모든 걸 생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말풍선은 별거 아닌 거처럼 보이지만, 뭐든 살아 있는 것처럼 만들 수 있어요. 사실 말은 보이지 않는 거잖아요. 하지만 만화에서는 말이 보여요. 말은 소리인데 말이 보이게 되는 거예요. 그게 만화의 힘이에요. 그러면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할 수가 있게 되지요. 여기 그린 사과는 ‘사과’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냥 사과예요. 우리는 말을 소리로 하는데 여기서는 말을 그림으로 한 거예요. 이처럼 만화는 평소에 우리가 할 수 없는 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어요. 오늘 삼촌이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그중에 여러분한테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은, 만화가 우리가 보는 거 이상으로 가능성이 많고 할 게 많다는 거예요. 만화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발전할 거예요. 여러분 중에 만화를 좋아하거나 만화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가능성을 갖고 신 나게 만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끝)



<진짜 만화가 뭐야?> 전문은 고래가그랬어 82호 에서 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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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어린이 인문학교

고래 2010. 9. 26. 09:00

고래가그랬어 81호  어린이 인문학교

 

 

 

진짜 역사가 뭐야?

고래와 벼레별씨가 함께 어린이 인문 학교를 열었어요. 경제, 디자인, 생태, 노동, 역사, 공부를 주제로 3월부터 6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강의를 열어요. 인문학교 다섯 번째 시간에는 역사학자 한홍구 삼촌이 동무들과 함께 진짜 역사에 대해 이야기 나눴어요.

 

강사 | 한홍구 삼촌은 역사를 공부하는 학자이고 성공회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님이에요. 어린이 인문학교 ‘역사’ 강의의 강사로 동무들과 재미난 이야기 나눴어요.

진행 | 고래가그랬어

사진 | 홍철기 삼촌 (바라 스튜디오)

 

 

역사란 뭘까?

반갑습니다. 오늘 동무들과 역사에 대해 이야기 나눌 한홍구입니다. 여러분, 역사 좋아해요? 재미있나요? (네, 그냥 그래요.) 역사란 뭘까요? (해골! 옛날에 있었던 일들이요.) 네,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과정을 모아 놓은 걸 역사라고 할 수 있어요. 또 사람들이 걸어온 길, 여러분이 걸어온 길은 아직 짧지만, 여러분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온 과정은 훌륭한 역사가 될 수 있지요. 그리고 삼촌처럼 역사를 전문적으로 직업으로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사람들이 쓴 책을 역사라고도 해요. 이들이 연구하는 학문, 영어로는 히스토리(history)를 역사학이라고도 하고요. 또 한국에서는 시험 과목 중 하나지요? 여러분은 아마 사회라는 과목에서 배울 거예요. 어때요? (시험만 치면 기억이 안 나요!) 하하하. 그렇지요. 뭐든 시험을 본다고 하면 재미가 있다가도 없어지곤 하지요. 여러분은 역사를 좋아해요? (네! 그냥 그래요. 전 진짜 좋아해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역사에 정답이 있을까?

역사에 정답이 있을까요? (없을 것 같아요.) 어쩌면 초등학생인 여러분에게는 좀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겠어요. 요즘 학교에서 시험을 참 많이 보지요? 그래서, 초등학생 여러분은 좀 덜한 편인데,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모든 질문에 무조건 정답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요. 그러면 역사에 대해 재미있는 상상을 하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요즘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책 내용이 너무 어려워요. 6학년부터 역사를 배우지요? (네.) 30년 동안 역사를 공부한 삼촌이 보기에도 ‘초등학생들이 너무 많이 배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면 너무 외울 것이 많더라고요. <선덕여왕>이나 <동이> 같은 역사 드라마를 보면서는, 만약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할지 한 번쯤 상상해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역사책을 보면서는 거기에 너무 딱딱하고 어려운 말만 잔뜩 있어서 그런 식의 상상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또, 역사책을 보면 대부분 한 가지 입장의 이야기만 나와 있잖아요? 삼촌은 여러분이 역사책에 나왔다고 해서 모든 걸 그대로 믿지 말고 여러분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읽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똑같은 사건도 입장에 따라 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거든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난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 선생님이나 아빠는 나를 막 혼낸단 말이에요. 또 난 진짜 뭔가 잘한 거 같은데 형이나 오빠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요.

 

 

그래도 역사는 진보한다.

 

백 년 전에는 여성이 투표하려고 하면 감옥에 갔다고?

삼촌은 역사는 진보한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요? 백 년 전보다 우리 삶은 좀 나아졌을까요? 만약 백 년 전이라고 하면 우리 중에 열 명이 넘는 사람은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없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노비이기 때문이에요. 백 년 전에는 우리나라 사람의 30% 정도가 노비였거든요. 노비는 양반들이랑 같이 앉아서 공부할 수 없었어요. 남자 여자가 같은 방에서 함께 공부할 수도 없었지요. 백 년이 너무 멀게 느껴지나요? 그럼 삼십 년 전은 어때요? 여러분 엄마 아빠가 어릴 적, 그때는 세상이 어땠을까요? 그때하고 지금을 비교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앞으로 삼십 년 후는 어떨까요? 여러분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그때는 세상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예요.

삼촌은 여러분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백 년 전에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거예요. 쉬운 예를 들어보면 여러분 지금 반에서 반장 뽑을 때 여학생들도 투표할 수 있지요? (네.) 그런데 만약 ‘여자가 무슨 투표를 해. 투표는 남자들만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여학생들은 투표하지 못하게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싫어요. 기분 나빠요. 화나요.) 그래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옛날엔 반대로 여성이 투표하는 것을 말도 안 되는 거로 여겼어요.

 

 

심지어 투표하겠다는 여성이 있으면 감옥에 보냈어요. 정신병원에도 보냈어요. 그런데도 자꾸 투표하겠다고 하면 죽였어요. 백오십 년 전에는 여성이 투표하겠다고 하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어요. 많은 사람이 그걸 당연하게 여겼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여성이 투표하는 걸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잖아요.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은 이런 거 같아요. 전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당연한 것으로 바뀌는 과정, 이것을 진보라고 해요.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예전에는...

 

이 수염 난 사람은 누구지요? (단군이요.) 네, 옛날엔 단군 할아버지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모두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라고 하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요?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인가요? (맞아요. 아니에요.)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친구,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볼래요? (외국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이민 온 사람이잖아요.) 다른 곳에서 이민 온 사람이긴 한데 이 사람들도 한국 땅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고 있어요.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거고요. 그럼 이 아이들은 단군의 자손일까요? (아니에요.) 우리는 왜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인지 아닌지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따지게 되었을까요? 과연 언제부터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정말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일까요? 삼촌은 우리가 모두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확인해 볼게요. 김씨 성을 가진 친구 손들어 볼까요? 김씨는 크게 김해 김씨와 경주 김씨가 있지요. 여러분 혹시 경주 김씨의 시조가 누구인지 알아요? 김알지예요. 이름에 ‘알’이 들어가 있어요.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도, 박혁거세도 주몽도 알에서 나왔어요. 설화에 보면 나라의 시조들은 모두 알에서 나왔어요. 이상하지요? 단군 할아버지가 알을 깠을까요?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라는 것과 알에서 나온 시조 설화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지요? 뭔가 이상한 거예요.

만약 조선 시대에 ‘우리는 전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국법을 어긴 사람이 되었을 거예요. 조선 사회는 신분제 사회에요. 신분제 사회라는 말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따로 있다고 여기는 사회에요. 양반과 상놈은 종자가 다르다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하면 똑같은 조상을 가졌다는 건데 이게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소리예요.

우리는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어요. 왜냐면 일제강점기 때, 그전까지는

우리 민족이 신분제로 갈라져 있었잖아요. 그걸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다, 우리는 일본 사람들과는 다르다' 이렇게 구분을 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민족 구성이 달라졌어요. 외국 여성들이 와서 한국 사람들과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가정을 이루고 생활해요. 그들의 자녀가 자라서 여러분 또래가 된 친구들도 있어요. 여러분은 그들과 사이좋은 친구가 되어야 해요. 그 친구들에게 ‘너희는 이상한 나라에서 왔고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야!’ 이렇게 말하면 매우 나뿐 말이 되는 거예요. 만약 우리가 이런 걸 자꾸 따지면 그 친구들은 아마도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될 거예요.

1900년대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것이 굉장히 앞선 진보적인 주장이었어요. 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굉장히 시대에 뒤떨어진 시대착오적인 이야기가 되었어요. 똑같은 이야기인 거 같지만 역사가, 시대적인 환경이 그만큼 변했기 때문이에요.

 

 

역사 속의 다양한 사람들

역사에는 많은 사람이 나와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어요. 그리고 자기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많은 걸 가지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남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도 있어요. 여러분 위인전을 자주 읽지요?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은 어때요? 엄청 훌륭해요. 나랑은 정말 다른 사람들이에요. 나는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는데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뭐든 다 잘해요. 태몽부터 남다르잖아요. 오색구름이 찬란하게 있고 새들이 울고 용이 하늘을 난다잖아요. 뭔가 이상하죠? 어떻게 하나같이 그럴 수가 있지요? 여러분, 기죽을 필요 없어요. 역사 속 위인을 따라 하기보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천천히 생각해 보면 되는 거예요.

 

이 사람은 누굴까요? (전태일이요.) 고래가그랬어를 보는 어린이들은 다 알 거예요. 맞아요. 전태일이에요. 동무들 여기가 어디인지 알죠? 청계천 평화시장이에요. 청계천이 지금은 물이 흐르지만 그때는 강을 시멘트로 덮고 그 위에 고가도로가 있었지요. 평화시장 안 작은 공장에는 지금 여러분보다 한두 살 더 많은 언니 누나들이 온 종일 볕도 못 보고 허리도 못 펴고 엄청난 먼지를 마시며 일했어요. 전태일은 이런 노동자들을 위해서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하면서 자기 몸에 불을 질렀어요. 전태일은 밥도 못 먹고 일하는 어린 여공들을 위해서 자기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두 시간씩 걸어서 집에 간 사람이에요.

역사에는 박정희처럼 자기가 꼭 대통령을 해야겠다고 욕심을 부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태일처럼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사람도 있어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꼭 이름 있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고 평범하지만 역사를 만들어간 수많은 사람이 있어요.

 

역사를 아는 어린이는!

진짜 역사를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면 좋은 게 참 많아요. 몇 가지 삼촌이 이야기해 볼게요. 역사를 알면 오늘 보다는 내일이 좋아진다는 걸 알게 되니까 낙관적이 될 거예요. 다양한 사건을 만나게 되니까 이해심도 많아질 거고요. 역사엔 좋은 사람만 기록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일은 하지 않을 거예요. 즉 부끄러움과 염치를 알게 된다는 거지요. 그리고 내가 피해를 본 건 아니지만 내가 사는 공동체 또는 옆에 있는 친구가 피해를 당하였다면 그것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또, 역사를 좋아하면 다른 사람의 주장을 비교해 보고 문제점을 찾아 질문할 줄 아는, 합리적인 의문을 가질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래야 문제를 풀고 해결하고 좀 더 깊이 있게 여러분 자신의 의견을 만들어갈 수 있어요. 역사를 너무 딱딱하고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재미있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함께 생각해 봐요.

삼촌은 여러분이 역사에 흥미를 가지고 여러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삼촌이 경험해 보니까 상상력은 어른이 된 다음에는 잘 느는 거 같지 않거든요. 여러분 나이에 신 나게 잘 놀고 또 책도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상상력이 쑥쑥 늘어날 거예요.

그리고 역사책을 읽을 때 이 점을 꼭 생각해 주세요. 삼촌은 여러분이 역사책을 보면서 단편적인 지식에만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 이름도 잘 모르고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 순서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이순신 장군이 어떤 마음으로 싸웠는지, 난중일기에 어떤 고민을 적어 놨는지. 난중일기를 읽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은 지식을 달달 암기하는 게 아니라 역사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거예요. 동무들은 어떻게 생각해요? (끝)

 

 

<진짜 역사가 뭐야?> 전문은 고래가그랬어 81호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 바로가기

 

   

 
 
 

고래 어린이 인문학교

고래 2010. 7. 21. 09:00

고래가그랬어 80호  어린이 인문학교



고래와 벼레별씨가 함께 어린이 인문 학교를 열었어요. 경제, 디자인, 생태, 노동, 역사, 공부를 주제로 3월부터 6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강의를 열어요. 인문학교 네 번째 시간에는 노동 운동가 이갑용 삼촌이 동무들과 함께 진짜 노동에 대해 이야기 나눴어요.


강사 | 이갑용 삼촌은 노동 운동가예요. 어린이 인문학교 ‘노동’ 강의의 강사로 동무들과 재미난 이야기 나눴어요.

진행 | 고래가그랬어

사진 | 홍철기(바라 스튜디오) 삼촌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이야기

노동자란?

노동자는 뭘까요? 사전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노동력을 판매하여 얻은 임금을 가지고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어요. 여러분, 노동자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지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요!) 사람들은 노동자 하면 가장 먼저 공장이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떠올려요. 삼촌은 노동자예요. 저한테 ‘직업이 뭐냐?’라고 물어보면 노동자라고 대답해요. 그런데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요. 왜 그럴까요?


이 사람은 노동자일까?



이 사람들은 노동자일까요? (노동자!)


노동자라는 말의 뜻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한다고 했어요. ‘불문하고’라는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어떤 직업을 갖고 일하느냐에 상관없이 일하고 그 대가로 받은 임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노동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부모님도 그리고 저도 노동자이지요. (의사는 노동자가 아니잖아요?) 의사도 자기의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고 생활을 하기 때문에 노동자예요. 여러분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도 버스 운전기사님도 지하철 운전기사님도 어민도 모두 노동자이지요.


자,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노동자일까요?



(아니요! 노동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해요! 노동자예요!)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오네요. 판사 ‧ 변호사 ‧ 검사 ‧ 군인 ‧ 경찰 ‧ 교도관 같은 공무원들도 열심히 일하고 임금을 받아요. 그러니까 노동력을 팔고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노동자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아이돌 그룹, 걸 그룹 여러분이 많이 알고 좋아하는 연예인들도 노동자예요. 김연아 박지성같은 스포츠 선수들도요. (스포츠 선수는 자기 돈으로 살아가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노동자가 아니지 않나요?) 스포츠 선수들도 소속된 구단에서 연봉을 받아요. 박지성같이 유명한 스포츠 선수는 어마어마하게 연봉을 받아서 노동자가 아닐 거로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얼마를 받느냐는 상관없이 스포츠 선수들도 노동자예요.

여러분이랑 이야기하다 보니까 우리 주변에 노동자 아닌 사람이 없는 거 같아요. 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이 노동자예요. 그렇지요? (노동자 아닌 사람 있어요!) 누구지요? (우리요. 어린이들은 노동자가 아니잖아요!) 맞아요. 정답! 어린이들은 노동자가 아니지요. 하지만 여러분도 곧 노동자가 된 답니다.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들

이 건물을 보세요. 남산타워와 63빌딩 두바이에 있는 버즈라는 건물이에요. 이게 160층 높이래요. 여러분은 이 건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와 높다! 크다. 무섭다.) 이건 인천대교와 설악산에 있는 케이블카 그리고 산과 산을 이어주는 구름다리에요. 이건 어떤 느낌인가요? (극한 지역! 무서워요! 타고 싶어요!) 그래요, 여러분은 이것들을 보고 멋지게 느끼기도 하고 타고 싶어 하기도 해요. 그런데 삼촌은 여러분과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보면서 “이건 누가 만들었을까? 만드느라고 정말 힘들었겠다. 만들다가 다치거나 사고로 죽은 사람들도 있겠지?”라는 생각이 났어요. 우리가 멋지다고 느끼고 편하게 즐기고 재미있게 누리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졌어요. 세상의 많은 것이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 - 이갑용 삼촌의 ‘노동’이야기

삼촌 별명은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에요. 별명이 참 특이하지요? 왜 이런 별명이 붙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이야기해 줄게요.

삼촌은 현대 중공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였어요. 착하고 성실하게 일하던 삼촌이 어느 날 머리띠를 하고 저항하기 시작했어요. 왜냐면 같이 일하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모습을 봤기 때문이에요. 삼촌이랑 같이 일하던 동료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모습을 무척 부끄럽게 생각했어요. ‘내가 못나서 힘든 일을 하고 있다’라고 ‘나는 지지리 궁상으로 살고 있다’라고 여기면서 세상을 살아갔지요. 그때는 회사가 군대랑 다를 바가 없었어요.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그때는 회사에 들어가면 머리를 ‘바리깡’으로 빡빡 밀었어요. 회사 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들이 머리가 긴 노동자를 붙잡아서 강제로 자르기도 했어요. 동무들 ‘조인트 깐다’라는 말 알아요? 안전화라는 신발이 있어요. 공장이나 공사 현장에서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는 작업용 신발인데 엄청 단단해요. 그걸로 정강이를 차는 거예요. 삼촌 동료 노동자들은 수도 없이 조인트를 까였어요. 그뿐만 아니라 노동자에게 심한 욕, 험한 말도 함부로 하고 식칼을 들고 위협하기도 했어요. 삼촌 동료 노동자들은 그때를 이렇게 표현해요. “우리는 짐승처럼 살았다!”라고.


삼촌 동료는 자기 아이들에게 ‘너희는 커서 절대로 나처럼 살지 마라’라고 말했어요. 공부 열심히 해서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했어요. 절대로 내 자식만큼은 노동자로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지요. “우리 아이들이 나를,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게 참 비참하고 싫었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 우리는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짐승이 아니라 사람답게, 일하는 만큼 정당하게 대우해 달라고요.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동무들 노동조합 알아요? (노동자들이 단체로 모인 거요!) 네, 맞아요. 노동자 한 사람이 뭘 하기는 참 어렵거든요. 그래서 단체로 주장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함께 뭉치고 힘을 모아서 조합을 만드는 거예요.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는 법으로 보장되어 있어요. 그리고 노동조합만 만드는 게 아니라 뭉쳐서 힘을 발휘하는 걸 파업이라고 해요. 파업은 일하지 않는 거예요. 그럼 회사가 굴러가지 않겠지요?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서 노동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회사에 자기 의견을 주장하고 시위도 해요. 파업도 역시 법으로 보장된 권리에요.


자, 삼촌이 재미있는 사진 몇 개 보여줄게요. 어쩌면 여러분이 아는 얼굴이 나올 수 있으니까 잘 보세요. 이 사람은 현대중공업에서 가장 돈이 많은 정몽준이에요. 지금은 정치하는 국회의원이지요. 그때 정몽준 의원은 반대편에 서서 삼촌에게 농성을 멈추라고 했고, 삼촌은 정몽준 의원에게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니까 들어달라고 주장했어요. 그렇게 파업을 하는 중에 경찰, 공권력이 들어와서 노동자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시위를 진압했어요. 회사도 경찰도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들은 채도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골리앗이라고 부르는 82미터나 되는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가서 저항했어요. 저항이 뭐지요? 그래요. 싸우는 거예요. 밑에는 경찰이 있고, 삼촌과 몇몇 동료는 높은 곳에서 무척 외롭게 싸워야 했어요. 사진을 하나 더 보여 줄게요. 이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에요. 1990년 골리앗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에요. 그렇게 싸우다가 결국 내려왔는데 그때 삼촌에게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그때 삼촌이 요구한 것은 '머리 모양, 옷 모양 자유롭게 하고 싶다. 법으로 보장하는 권리인데 왜 노동조합을 인정해 주지 않느냐.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니까 차별하지 마라. 일한 만큼 정당한 임금을 달라.'였어요. 이런 요구가 잘못된 건가요? 삼촌은 정당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정당한 요구를 하는 노동자들을 경찰은 강제로 해산시키고 감옥에 가뒀어요. 삼촌도 노동조합 활동하다가 3번이나 감옥에 갔어요. 도둑질한 적도 없고 강도질한 적도 없는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노동조합을 인정하라고 주장했다고 감옥에 간 거예요.

이런 걸 겪으면서 삼촌과 삼촌 동료 노동자들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우리를 지켜준 건 경찰도 회사도 아니고 노동조합이었어요. 노동조합은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들의 권리이고 파업은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가장 힘 있는 행동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깡패가 단체로 모여 조직을 만들면 불법이지만 노동자는 조직을 만들 수 있고 단체로 행동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린 우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노동자는 세상의 주인이고, 노동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신이 났어요. 사회의 많은 사람이 다 노동자고 우리가 없으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아요. 여기 있는 탁자를 만든 것도 노동자이고 학교 선생님도 노동자예요. 우리가 먹는 음식, 사는 집도 타는 차도 모두 노동자가 만들었어요. 한 회사의 노동조합 힘은 약하기 때문에 모든 회사의 노동조합이 힘을 모아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라는 단체도 만들었어요. 그리고 삼촌은 민주노총 두 번째 위원장으로도 활동했어요.

예전에는 정치는 만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대표만 하는 거로 알았는데 이제는 노동자들이 직접 노동자 대표를 뽑아서 선거에 내보내기도 했어요. 삼촌도 노동자 대표로 울산 동구 구청장 선거에 나가서 당선되었고, 4년 동안 일했어요. 노동자들의 삶이 참 많이 바뀌었어요. 이제 노동자들은 노동자라는 이름을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노동자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데 내가 노동자라는 게 뭐가 부끄럽겠어요!


함께 생각해 봐요!

동무들,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삼촌은 어떤 노동을 하든지 차별하지 않고 노동자를 귀하게 여겨야 올바른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결국 노동자가 사회의 주인이 되는 세상이 진짜로 행복한 세상일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삼촌은 첫 번째로 자기가 바로 노동자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노동자임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해요. 노동자는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에요. 어깨 펴고 당당하게! 자부심을 품어야 해요. 또 노동자끼리 차별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판사로 노동하던, 군인으로 노동하던, 청소 노동을 하던 세상 일부분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차별해선 안 돼요. 그리고 노동자들의 아픔이 담긴 물건을 사거나 쓰지 않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앞에서 봤던 애니콜, 콜트콜텍 기타처럼 노동자의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않는 회사에서 만들어진 것은 되도록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건 여러분 마음대로 하긴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그런 마음만은 꼭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이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거니까요.

여러분 꼭 기억해 주세요. 여러분 대부분이 나중에 노동자가 될 거예요.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사람이 노동자예요. 우리는 우리가 노동자임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돼요. 노동자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진짜 노동이 뭐야?> 전문은 고래가그랬어 80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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