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해문 칼럼

고래 2009. 3. 5. 13:15

 

 

편해문, 삼촌은 놀이로 세상을 만나고 있어.

 

 

인도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길에서, 골목에서, 마당에서, 논에서, 밭에서, 바닷가에서……. 그때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대한민국 아이들은 온갖 학원에 가고 온갖 학원에 가고 온갖 컴퓨터 게임을 하며 보내고 있을 시간이었다. 이렇게 조금씩 인도 아이들과 만나면서 나는 몸으로 하는 놀이에 대한 소중한 믿음을 얻었고, 놀이를 다시 볼 수 있는 눈도 새롭게 마련할 수 있었다.

 
인도에 머물던 어느 날 아침, 큰길에 나갔더니 아이들이 자치기를 하고 있었다. 일곱 시도 안 됐는데 말이다. 노는 모습을 지켜 보다가 나이를 물었더니 다섯 살이라고 했다. 다섯 살 아이의 그 날렵함이라니! 바로 어릴 때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맞아, 우리도 저 나이 때 저렇게 놀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날은 신도 없이 맨발로 소똥이 뒹구는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 같으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또는 초등학교에 가야 할 아이들이 오전이고 오후고 저녁이고 길에서 골목에서 공터에서 무더기로 모여 놀고 있었다. 인도 아이들을 눈여겨본 사람들은 안다. 아이들의 바짝 마른 정강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까맣게 반들거리는 힘찬 기운을……. 우리도 어려서 그런 생기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한테서 도무지 이런 생기를 마주하기 어려운 것은 왜일까. 공부하고 남는 시간을 게임에 다 쓰고 밖에서 뛰놀지 않는데, 어떻게 땅과 자연이 주는 생기를 몸에 담을 수 있겠는가.

 

 

고래가그랬어 52호

 

 

 

 

 

편해문님 책 아이들은 놀기위해 세상에 온다... 에서 접했던 그 아이들 이야기네요.
그 책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점점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놀면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작은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뭘 해줘야 할지...
엄마의 한 사람으로 참 부끄럽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편해문 칼럼

고래 2009. 2. 23. 13:27

 

편해문(놀이로 세상과 만나는 사람) 

 


놀이와 게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 우리가 아이들과 하는 놀이에 전래놀이, 민속놀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나 레크리에이션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 같다. 좀 더 나아간다면 우리나라의 유치원, 어린이집, 초등학교에서 하고 있는 놀이는 놀이가 아니라 모두 게임이라고 해야 옳다. 놀이와 게임은 한참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곳에서 하는 놀이는 아이들이 놀이에 진지하게 몰입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우리가 어려서 했던 자치기나 비석치기를 한번 생각해 보자. 둘 다 아무리 못 걸려도 두 시간은 걸리는 놀이인데 비석 하나 쓰러뜨리고 “오늘은 비석치기 놀이를 했어요. 재미있었나요?” 하는 꼴의 놀이를 어떻게 놀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여기서 뭐는 놀이이니 꼭 해야 하고 뭐는 놀이가 아니니 하지 말아야 한다고 편 가르려는 것이 아니다.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이런 곳에서 놀이에 대한 생각을 새긴다는 데 있다. '몸을 움직여 노는 놀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참 시시하고 재미없네…….'


이런 거짓 놀이로 아이들을 속이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다시 한번 놀이와 게임이 어떻게 다른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놀이와 게임은 무엇이 다른가. 이런 저런 시간에 잠깐 하는 놀이를 아이들이 돌아가서 동무들과 할까? 하지 않는다. 이것이 놀이가 아니고 게임과 레크리에이션이라는 증거이다. 아이들을 대상화시키고 누군가 미친 듯이 이끌어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 그것을 놀이라 부르지 말자.
글 편해문, 삼촌은 놀이로 세상을 만나고 있어요.

 

 

고래가그랬어 51호

 

 

 

 

 
 
 

편해문 칼럼

고래 2009. 2. 16. 10:30

 

편해문(놀이로 세상과 만나는 사람)

일러스트레이션 최호철

 

 

어렸을 때 나는, 곧 철거될 산동네에 살았다. 물이 안 나와 지게를 지고 아랫동네까지 내려가 길어다 먹었고, 한 번 불이 났다 하면 어느새 옆집 뒷집으로 불이 옮겨 붙어 한 동네가 홀라당 다 타버리는 허름한 집이 다닥다닥 붙은 그런 곳이었다. 연탄가스를 마셔 학교에 못 오는 동무들도 가끔 있었다. 아버지는 채석장에 돌 깨러 가시고 어머니는 남의 집 일을 가셨다. 학교 갔다 집에 오면 동생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우리는 놀았다. 우리끼리 놀았다. 잘 놀았다. 하루 종일 놀았다. 더워도 추워도 놀았다. 꼭 밖에서 놀았다. 온 산동네가 우리들의 놀이터였고 멀리 야산에 가서도 놀았고 까마득히 높은 축대에서 뛰어내리는 위험한 놀이도 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오래 앓는 아이는 없었고, 요즘처럼 놀이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아이는 더더욱 없었다. 그때도 부모님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부모들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이웃을 둘러보면

아줌마 아저씨들이 사니 못 사니 싸움도 많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은 자기 엄마 아빠의 고통과 아픔에 요즘 아이들처럼 사로잡힐 여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틈만 나면 마당과 골목에 쏟아져 나오는 동무들과 누나 형들과 놀기에도 시간이 너무 모자랐기 때문이다. 집에 오면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 놓고 바로 밖으로 뛰어나가 놀다가, 해가 빠지면 어머니 손에 잡혀와 밥 먹고 또 몰래 나가 캄캄해지도록 놀다가 돌아오면 코 골며 잠자기 바빴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 거의 그랬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의 세계는 우리에게는 잘 모르는 세계였고, 무척 작은 세계였다. 그러나 우리들 세계는 너무나 컸다. 그 큰 세계는 바로 놀이의 세계였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어떤가. 마당과 골목과 동무를 잃어버려 자신들의 세계는 손톱만큼 작아졌고, 어려서부터 어머니 아버지 세계에 깊이 발을 들여놓고 자란다. 또래 세계와 놀이터는 온통 위험과 컴퓨터와 텔레비전이 차지해 버렸다. 부모에게 너무 의지하며 자라고 조금 더 자라면 컴퓨터에 빠져버린다. 이 모든 것이 놀이가 없기 때문이라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할까.

 

그러던 어느 날 산동네는 철거됐고, 우리 가족은 쫓겨났고,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살던 산언덕은 불도저가 밀어버려 평지가 되고 그곳에 덩그러니 아파트가 세워졌다. 놀이가 넘쳐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했던 내 어린 시절의 흔적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뜬금없지만 그래서 나는 아이들 놀이와 노래와 이야기 공부를 악착같이 한다. 어려서 즐겁게 놀았던 짧은 행복의 기억이 지금 어른이 된 나를 밀어가는 결코 바닥나지 않는 하나의 힘이기 때문이다. 어려서 놀았던 놀이는 이런 힘이 있다.

 

 

고래가그랬어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