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생 묘비명과 정확히 일치한 태백일사의 기록 (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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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2020. 1. 5.

 

 

연남생 묘비명과 정확히 일치한 태백일사의 기록 (8부)
 
천남생이 아닌 연남생으로 연개소문의 아들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5/23 [09:46]
 
 
 

 

<태백일사 고구리국본기>는 연개소문에 대해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해 연개소문의 성은 연()씨이고 일명 개금(蓋金)이라고도 한다. 선조는 봉성(鳳城) 사람으로 아버지는 태조(太祚)라 하고, 할아버지는 자유(子游)라 하고, 증조부는 광()이라 했으니 나란히 막리지를 지냈다. 영양제의 홍무(弘武) 14(603) 510일 태어났고, 나이 9살에 조의선인에 뽑혔다.”고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개소문의 성을 천()씨라 하고, 조상들의 이름도 적혀있지 않다. 개소문의 원래 성씨가 씨였음에도 씨로 적힌 이유는 피휘(避諱) 즉 당나라 고조 이연(李淵)의 이름과 같은 글자사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야말로 <삼국사기>는 중화모화사대사상에 쩔은 사서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된 연개소문의 조상들 이름이 새겨진 유물이 1921년 낙양 북망산에서 발견되었으니 바로 연개소문의 맏아들 남생의 묘지명이었다.

 

거기에는 공의 성은 천()이며 휘는 남생(男生)이고 자는 원덕(元德)으로서, 요동군 평양성 사람이다. (중략) 증조부는 자유(子遊)이며, 조부는 태조(太祚)로서 다 막리지를 역임했고, 아버지 개금은 태대대로였는데, 조부와 아버지가 쇠를 잘 부리고 활을 잘 쏘아 군권을 아울러 쥐고 모두 나라의 권세를 오로지 하였다.”라는 문구가 있어 식민사학계에서 위서로 치부하던 <태백일사>의 기록이 옳다는 것이 유물로 입증되었다.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당나라에 투항하고는 선봉에 서서 조국고구려를 치러 가는 연남생 부자    

 

수나라를 세운 문왕 양견은 은밀하게 모반의 뜻을 품고 감히 복수의 군대를 내어 영주총관 위충을 요서(遼西)에 몰래 파견해 고구리의 관가를 부수고 읍락을 불 지르고 노략질했다. 이에 홍무 9(598)에 영양대제는 연개소문의 부친인 서부대인 연태조(淵太祚)를 보내 등주(登州)를 토벌하고 총관 위충을 잡아 죽이니 이에 산동지방이 다시 평정되고 해역은 조용해졌다.

 

이 해에 양견이 왕세적 등 30만 군사를 파견해 싸우도록 했으나 겨우 정주를 출발해 요택에도 미처 이르지 못했음에도 물난리를 만나 식량은 떨어져 배고픔은 심하고 전염병마저 크게 돌았다. 주라후의 수군은 동래(東萊)에서 바다를 건너 평양성으로 오다가 풍랑을 만나 선박 대부분이 깨지고 침몰되어 가을 9월에 수나라 군사들이 돌아갔는데 80~90%가 죽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연개소문의 부친은 바로 영주총관 위충을 죽인 그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삼국사기>는 중국사서처럼 연개소문을 아주 흉폭하고 잔인한 인물로 묘사했는데, <태백일사>에는 그 반대로 기록되어 있다. “의표웅위(儀表雄偉)하고 의기호일(意氣豪逸)하여 병사들과 함께 장작개비를 나란히 베고 잠자며 손수 표주박으로 물을 떠서 마시며, 무리 속에서 스스로의 힘을 다하였으니 혼란한 속에서도 작은 것을 다 구별해내고, 상을 베풀 때는 반드시 나누어 주고, 정성과 믿음으로 두루 보호하며 마음을 미루어 뱃속에 참아두는 아량이 있고, 땅을 위()로 삼고 하늘을 경()으로 삼는 재량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감동해 복종하니 한 사람도 딴 마음을 갖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법을 쓰는데 있어서는 엄명으로 귀천이 없이 똑같았으니 만약에 법을 어기는 자 있으면 하나같이 용서함이 없었다. 큰 난국을 만난다 해도 조금도 마음에 동요가 없었다. 당나라 사신과 말을 나눔에 있어서도 역시 뜻을 굽히는 일이 없었고, 항상 자기 겨레를 해치는 자를 소인이라 하고 능히 당나라 사람에게 적대하는 자를 영웅이라 하였다.

 

기쁘고 좋을 땐 낮고 천한 사람도 가까이 할 수 있으나 노하며 권세 있는 자나 귀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겁냈다. 참말로 일세의 쾌걸(快傑)이라 할 수 있으며, 스스로 물 가운데 살아서 능히 잠행할 수 있고 온종일 더욱 건장하게 피로할 줄 모른다고 말하였다. 무리들 모두 놀라 땅에 엎드려 절하며 가로대 '창해의 용신이 다시 몸을 나타내심이로다.’라고 했다. 이렇듯 모두 좋은 의미로만 적혀 있다. 그런데 왜 <삼국사기>와 중국사서에는 나쁘게만 적혀있을까 

 

 SBS 드라마 연개소문의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