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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칠지도에 새겨진 ‘泰□四年’는 백제연호 (4부)

칠지도에 새겨진 ‘泰□四年’는 백제연호 (4부) 고구리와 신라, 마진과 고려까지 사용했던 자체연호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11/06 [20 신공왕후 55년(375) 기록에 백제 초고(肖古)왕이 죽고, 56년 백제 왕자 귀수(貴須)가 왕이 되었고, 64년(384)에 “백제국 귀수왕이 죽고 왕자 침류(枕流)왕이 왕으로 섰다.(百濟國貴須王薨 王子枕流王立爲王)”의 초고왕과 구수왕은 근초고(近肖古)왕과 근구수(近仇首)왕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65년(385)에 “백제 침류왕이 죽고, 왕자 아화(阿花)가 나이가 어려 숙부 진사(辰斯)가 빼앗아 왕이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의 아화는 침류왕의 아들 아신(阿莘)왕자이다. 침류왕이 즉위 이듬해 죽었는데 태자 아신이 어려서 침류왕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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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정한론의 근거인 신공왕후 삼한정벌은 허구 (3부)

정한론의 근거인 신공왕후 삼한정벌은 허구 (3부) 일본서기 신공왕후의 삼한정벌은 근거 없는 위사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10/20 [21:53] ㅣ 소위 정한론(征韓論)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임나일본부설의 모태는 왜의 신공왕후가 신라왕 波沙寐錦(파사매금)를 정벌한 후 고구려왕과 백제왕에게도 복속의 맹세를 받았다는 아래 의 섭정전조 기록이다. 그런데 에 기록된 신라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의 재위기간은 80년~112년이고 파사라는 글자도 약간 다르다. 그러나 신라왕의 명칭을 매금(寐錦)으로 표기한 것은 광개토호태왕비와 중원고구려비의 비문과 같다. “이에 신라왕 파사매금은 (중략) 가져간 금과 은과 채색 능라견 등을 80척의 배에 실어 관군을 따라가게 했는데, 이것이 신라왕이 항상 조공을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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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칠지도는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칼 (2부)

칠지도는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칼 (2부) 허구인 신공왕후의 삼한정벌론을 입증하는 도구로 쓰인 칠지도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10/05 [11:14] 고구리 고국원제와 적대적 라이벌 관계였던 백제 근초고왕(재위 346~375년)은 29년간 보위에 있으면서 출중한 자질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대영웅이었다. 즉위 직후 가장 강력한 호족인 진씨(眞氏) 가문에서 왕비를 맞아들여 지지세력을 확대해 왕권을 강화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부국강병을 이끌어내 사방으로 정복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그때까지 대륙의 최강자였던 고구리의 고국원제를 전사시키고, 백제의 시국처인 요서·진평 지역을 수복했으며 왜 땅에도 진출해 백제는 건국 이래 가장 넓은 강역을 확보하게 된다. 또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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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백제는 온조계와 비류계의 연합국가인가? (1부)

백제는 온조계와 비류계의 연합국가인가? (1부) 으로 비류계와 온조계의 암투 낭설로 밝혀져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09/15 [08:07] 고구리의 성군 고국원제가 춘추 61세에 백제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한 해가 서기 371년으로 그의 통치 41년째였고, 백제 근초고왕 26년이었다. 백제의 정복군주이며 대영웅인 근초고왕은 당시 고구리가 차지하고 있던 백제의 시국처인 요서와 진평을 수복했으며, 더 나아가 왜(倭)까지 진출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은 일본의 국보인 칠지도로 증명되었다. (백제 시국처 참조)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31655 (요서와 진평 참조) http://www.skyedaily.com/new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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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산서성 동남부에서 황해도로 옮겨진 대방군 (8부)

산서성 동남부에서 황해도로 옮겨진 대방군 (8부) 대방군은 한사군이 아닌 고구리 변방으로 백제 고지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04/07 [21:49] 지금부터 허구의 한사군으로 조작된 대방의 연혁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원래 대방고지는 백제의 시국처이기 때문에 당시 대방은 한사군의 땅이 아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일 식민사학의 학설대로 한사군이 대방과 낙랑 땅에 400년간 줄기차게 존속했더라면 어떻게 백제가 B.C 18년 그곳에 나라를 세울 수 있었겠는가! 백제의 시국처는 42년에 백제의 다루왕이 고구리 대무신제에게 바치고 남쪽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이후 고구리의 직할영토가 된다. 그래서 그런지 고구리 역사서에 아래와 같이 대방에 대한 연혁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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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백제 대방고지는 산서성 남부 문희현 동쪽 (7부)

백제 대방고지는 산서성 남부 문희현 동쪽 (7부) 유주의 낙랑군에 속한 대방현과 가까운 석문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03/22 [20:48] 백제·고구리를 멸망시킨 후 신라까지 차지하려는 당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672년에 신라가 당나라 군대와 명운을 걸고 최후결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에 “당나라 군대는 말갈과 함께 석문의 들(石門之野)에 진영을 치고, (문무)왕은 장군 의복과 춘장 등을 보내어 대방의 들(帶方之野)에 진영을 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즉 이 말은 대방은 석문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인 것이다. 에서 석문산(石门山)을 검색하면 아래와 같이 28개 지명이 나타나듯이 워낙 많다보니, 어느 석문이 당나라가 신라와 싸우기 위해 진영을 펼친 석문인지 알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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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백제의 시국처 대방고지는 어디인가? (6부)

백제의 시국처 대방고지는 어디인가? (6부) 대방현은 낙랑군의 서부인 산서성 남부에서 찾아야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03/10 [22:06] 에는 B.C 18년 온조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세웠으며, “온조왕 13년(B.C6) 7월 한산(漢山) 아래에 울짱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가를 옮겼다. 8월 사신을 마한에 보내 천도할 것을 알리고 드디어 경계를 정하되 동으로 주양(走壤), 서로 대해(大海), 남으로 웅천(熊川), 북으로 패하(浿河)를 한계로 했다.”라고 천도(遷都:도읍을 옮김)한 기록이 있다. 웅천과 주양은 현재 어디인지 알 수가 없으며, 북쪽 패하는 패수(浿水)를 말하고, 서쪽 대해는 황하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 지역을 100% 확실치는 않으나 황하북부 하남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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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온조와 비류는 고주몽의 친아들인가? (5부)

온조와 비류는 고주몽의 친아들인가? (5부) 소서노가 부자간인 주몽과 아들 유리명왕 두 남편을 섬겼을까?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02/28 [01:42] 에서는 온조를 백제 시조라 하면서도, 일설에는 비류를 시조로 보는 이견도 다음과 같이 소개해 놓았다. “시조 비류왕의 아버지는 우태(優台)로 북부여 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이었고, 어머니는 졸본 사람 연타발의 딸 소서노였다. 애초 우태에게 시집가 아들 둘을 낳았는데 큰 아들이 비류이고 둘째는 온조라 했다. 우태가 죽자 졸본에서 혼자 살았다. 뒤에 주몽이 부여에서 용납되지 못하자 전한 건소 2년(B.C37) 봄 2월에 남쪽으로 도망쳐 졸본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高句麗라 하고, 소서노를 왕비로 삼았다. 주몽은 그녀가 자신의 창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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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백제의 하남 위례성은 서울시 송파구에 없었다. (4부)

백제의 하남 위례성은 서울시 송파구에 없었다. (4부) 백제 한반도 서남부설은 사료적 근거 없는 반도사관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02/07 [19:07] 에 기록된 온조(백제)의 시국처인 하남 위례성은 동으로 높은 산(高岳)을 의거했으며, 서로는 대해(大海)가 막혀있고, 남으로 기름진 들(沃澤)을 바라보고, 북으로 한수(漢水)를 띠는 곳이다. 참고로 당시 한수는 기록으로는 찾을 수 없으나 아마 나중에 압록수라 불렸던 현 분하(汾河)이거나 그 남쪽에 있는 속수하(涑水河)로 추정되어 진다. 형 비류는 물이 짠 미추홀(彌鄒忽)로 갔다가 돌아와 후회하고는 죽는다. 필자는 이 미추홀을 현 사학계의 이론처럼 인천이 아니라 산서성 남부 운성염지 일대로 비정한다. 또한 운성염지는 광개토호태왕 비문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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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백제의 시국처 대방은 낙랑의 서쪽 (3부)

백제의 시국처 대방은 낙랑의 서쪽 (3부) 역사왜곡을 위해 산서성과 북부하남성에서 옮겨진 낙랑군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01/26 [11:45] 고구리의 직할령이 된 낙랑 미천대제 14년(313) 계유 10월, 낙랑의 왕 자술이 고구리의 태보 선방에게 살천원이라는 사냥터에서 사로잡힘으로써 그동안 제3세력으로 존재했던 낙랑은 고구리에 완전한 직할령으로 복속되고 만다. 그동안 낙랑은 통치자의 정치성향에 따라 고구리의 속국으로 행세하다가도 때로는 반란을 일삼았고, 심지어는 위나라 관구검의 침공을 돕기도 했던 세력이었다. 이때부터 낙랑 땅을 다스리는 통치자를 고구리 중앙정부에서 임명·파견하는 체제로 바뀐 것이다. 그 첫째 통치자가 바로 낙랑 왕 자술을 생포한 태보 선방(仙方)이었다. 선방은 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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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한반도에 있다는 동예·옥저는 황하 이북에 있었다 (7부)

한반도에 있다는 동예·옥저는 황하 이북에 있었다 (7부) 신라가 차지했던 옥저, 불내, 한, 예는 산서성 동남부 황하변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4/13 [16:59] 와 등 중국의 여러 사서에 “신라는 고구리의 동남쪽에 있으며, 한나라 낙랑 땅에 있었다. 옥저(沃沮)·불내(不耐)·한(韓)·예(濊)의 땅을 차지하였으며 백제에 부용(附庸)하였다.”라는 기록이 있고, 에 “예는 북쪽으로 고구리와 옥저에 접하고, 남쪽은 진한과 접하고, 동쪽으로 대해, 서로는 낙랑에 접한다.”는 기록이 있다. 위 기록들에서 신라가 차지한 낙랑과 옥저·불내·한·예는 서로 인접한 지명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중에서 불내는 고구리 동천태왕 때 위나라 관구검이 침략해 고구리의 도읍인 환도성(丸都城)을 불태우고 환도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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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신라의 초기도읍은 중국대륙 산서성 남부 (6부)

신라의 초기도읍은 중국대륙 산서성 남부 (6부) 산서남부 임분시의 금성은 김일제의 후손들이 피난온 곳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4/05 [10:43] 신라의 천년고도라는 금성(金城)이 지금의 경상도 경주라는 것은 그야말로 반도사관에 중독된 일제식민사학계의 이론일 뿐이다. 과연 신라가 천년 동안 경주(금성) 한 군데만을 도읍으로 했는지 여러 기록을 통해 상세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신라의 초기도읍지에 관한 기록들 ◆ 에 의하면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갑자년(B.C57)에 개국했는데, 왕도의 길이가 3,075보 너비가 3,018보이며 35리(里)에 6부가 있었다. 21년(B.C37) 경성을 쌓고 이름을 금성(金城)이라 하였고, 26년(B.C32)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 이어 남해차차웅 원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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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신라의 천년고도가 아닌 경상도 경주 (5부)

신라의 천년고도가 아닌 경상도 경주 (5부) 낙랑과 진장성 부근에 있어야 하는 신라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3/31 [11:09]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학교에서 식민사학의 잘못된 역사를 배워서 그런지 현재 경상북도에 있는 경주시가 신라의 천년고도(千年古都)인 것으로 알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그런지 경주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에 의하면 세종 때 총인구가 173,943호이고, 신라의 영토라고 하는 경상도는 48,993호에 인구 173,759명이다. 신라를 좀 더 넓게 보아 강원도 11,084호 인구 29,009명까지 포함해도 합계 60,077호에 인구 202,768 명이다. 그로부터 약 550년 후 경주의 인구는 1999년 29만 3천명을 정점으로 하여 매년 조금씩 줄어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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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왕망의 신(新)나라와 관련 있는 국호 ‘신라’ (4부)

왕망의 신(新)나라와 관련 있는 국호 ‘신라’ (4부) 신나라 왕망과 신라 김씨는 김일제의 후손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3/23 [14:21] 김일제의 증손자인 왕망이 세운 신(新)나라에서 핵심 정치실세였던 김씨들은 서기 23년 유씨의 나라인 후한(後漢)이 세워지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대탈출을 감행해 흉노 휴도왕의 활동무대였던 요동 땅으로 숨어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그 김씨들은 DNA가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당시 요동에 있던 서나벌(徐那伐)에 들어가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실세로 등장하게 된다. 신라에서도 정치실세가 되는 김씨 집안 서나벌의 탈해 이사금 9년(65년) 신라 김씨의 조상이라는 김알지가 태어난다. 도읍인 금성의 서쪽에 있는 시림(始林)의 숲속에서 새벽녘에 큰 닭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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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한나라에서 요동으로 피난 가는 김씨 집안 (3부)

한나라에서 요동으로 피난 가는 김씨 집안 (3부) 친족 왕망이 죽고 후한이 서자 김씨들이 피난간 곳은?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3/15 [12:33] 한(漢)나라를 무너뜨리고 신(新)나라를 세운 입지전적인 인물인 왕망(王莽)이 원래 김씨였다는 사실은 에서 김일제의 가계도에 대해 설명한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김당의 증조부 김일제는 아들 절후 김상으로 전해지고, 김흠의 조부 김안상은 아들 이후 김상으로 전해지고, 모두 아들이 죽어 나라가 끊기자 왕망이 김흠을 봉하고 김당이 그 임금을 받들었다. 김당의 모친 남씨는 곧 왕망의 어머니로 임금과 같은 배에서 생산된 동생이라는 공이 드러난다. 김당이 남대행을 태부인으로 올렸다. (当曾祖父日磾传子节侯赏,而钦祖父安上传子夷侯常,皆亡子,国绝,故莽封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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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한나라를 무너뜨린 왕망은 원래 김씨인가? (2부)

한나라를 무너뜨린 왕망은 원래 김씨인가? (2부) 신나라를 세운 왕망은 흉노 휴도왕의 고손자인가?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3/05 [14:21] 1954년 섬서성 서안에서 발굴된 ‘대당고김씨부인묘명’에는 아래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태상천자께서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고 집안을 여셨으니 소호씨금천이라 한다. 이 분이 곧 우리가 받은 성씨(金氏)의 세조(世祖)이시다. (중략) 먼 조상의 이름은 김일제로 흉노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에 투항하시어 무제(武帝) 아래에서 벼슬하시었다. 명예와 절개를 중히 여기니 (무제가) 그를 발탁해 시중과 상시에 임명하고 투정후에 봉하시니 이후 7대에 걸쳐 벼슬하였고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경조군(서안)에 정착하게 되니 이는 사책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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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신라 김씨의 조상 김일제는 흉노족인가? (1부)

신라 김씨의 조상 김일제는 흉노족인가? (1부) 우리와 동족인 흉노는 조선대연방의 일원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3/03 [09:28] 2008년 하반기에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에서는 흉노 휴도왕의 태자였던 김일제(金日磾, B.C134~B.C86년)가 신라 김씨의 조상이라고 소개된 적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하는 유물로는 1796년 경주에서 발견된 ‘문무대왕릉비’와 1954년 섬서성 서안에서 출토된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의 명문이 소개되었다. 문무왕비문에 따르면 “(문무왕의 조상은) 투후로 하늘에 제사지냄이 7대를 이어졌고 15대조인 성한왕이다.(秺侯祭天之胤傳七葉...15代祖星漢王)”라고 밝히고 있으며, 또한 ‘대당고김씨부인묘명’은 이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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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인물화상경은 백제가 왜왕에게 하사한 신임장 (3/4부)

인물화상경은 백제가 왜왕에게 하사한 신임장 (3/4부) 백제 황실로 부터 나온 일본왕가의 혈통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2/09/06 [11:34] 인물화상경(人物畵像鏡)이란 무엇인가? 일본 와가야마현 하시모토시에 있는 스다하찌만(隅田八幡)신사에 보관되다가, 1951년 일본정부로부터 국보 2호로 지정되어 현재 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인물화상경’이라는 유물이 있다. 이 거울에는 9인의 인물상과 48자의 명문이 뚜렷이 새겨져 있는데, 이 명문은 한일 고대사의 사실(史實)을 밝히는 중요한 금석문 자료의 하나이다. 명문의 내용에 대한 일본 학계의 통설인 후꾸야마(福山)교수의 판독은 다음과 같다. “癸未年 八月 日十, 大王年, 男弟王, 在意紫沙加宮時, 斯痲念長壽 遺開中費直 穢人今州利 二人等, 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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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칠지도는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신임장 (2/4부)

칠지도는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신임장 (2/4부) 왜는 백제의 제후국으로 왜왕은 백제 왕실의 일원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9/06 [10:52] 칠지도는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신임장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대왕을 꼽으라면 단연 13대 근초고대왕과 24대 동성대왕이다. 근초고왕은 당시 동북아의 강자인 고구리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국세를 확장하였다. 그리고 산서성 서남부인 요서와 진평 지역 뿐만 아니라 대륙 남부인 왜 땅까지 정벌하는 등 많은 담로(=식민지)를 건설한 것으로 보인다. 그 식민지 중의 하나가 바로 왜(倭)였다. 근초고왕은 계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르고는 계왕의 아들인 진정과 응신을 계속 추격한다. 최초 가야지방으로 들어간 진정과 응신 세력은 근구수태자의 공격을 받자 다시 왜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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