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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현 중국역사는 5%만 진실, 나머지는 완전한 허구 (1부)

현 중국역사는 5%만 진실, 나머지는 완전한 허구 (1부) 한국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 중국이 한국의 동네북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7/04/25 [18:00] 최근 한중간에 역사전쟁이 치열하고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발단은 지난 4월초 중국 시진핑 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말을 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터뷰 기사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리면서부터이다. W.S.J는 "실제로 트럼프가 시진핑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인지 시진핑의 말을 오해했는지 분명치는 않지만, 중국 국수주의자들의 의견을 여과 없이 옮긴 트럼프의 처사는 경솔했다'고 지적했다. W.S.J이 보도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시진핑)는 중국과 한국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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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삼국연의의 명장 관우는 원래 고구리 출신 (6부)

삼국연의의 명장 관우는 원래 고구리 출신 (6부) 산서성 남부 하동에서 한나라로 망명한 관우의 당시 국적은?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8/29 [10:59] 이민족의 계속된 지배로 인해 침체된 한족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대륙의 주인이었던 우리 민족의 역사강역을 대륙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명나라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든 소설 삼국연의에는 정사 에 없거나 각색된 명장면들이 많이 있는데, 그 대부분이 촉한의 장수들 특히 관우의 무공을 다음과 같이 부풀리고 있다. 1. 술이 채 식기도 전에 동탁의 부장 화웅을 단 칼에 베는 장면 (화웅은 손견에게 죽음) 2. 원소의 맹장 문추의 목을 베는 장면 (문추는 조조군의 화살에 죽음) 3. 조조에게서 떠나 유비를 찾아가면서 오관의 장수들을 참하는 장면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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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삼국지 적벽대전에 백만대군과 동남풍은 없었다 (5부)

삼국지 적벽대전에 백만대군과 동남풍은 없었다 (5부) 제갈공명은 신출귀몰한 군사전략가가 아닌 보급 행정가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8/18 [10:02] 이민족의 계속된 지배로 인해 침체된 한족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대륙의 주인이었던 우리 민족의 역사를 대륙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명나라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든 소설 삼국연의에는 정사 에 없거나 각색된 명장면들이 많이 있는데, 그 백미가 바로 허구와 과장으로 가득한 적벽대전이다. 소설 속에 묘사된 적벽대전의 내용은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바 있다.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9604 참조) 조조의 백만 대군은 그야말로 허구 소설 삼국연의에 묘사된 당시의 상황은 208년 겨울 조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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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허구와 과장으로 가득찬 삼국연의의 적벽대전 (4부)

허구와 과장으로 가득찬 삼국연의의 적벽대전 (4부) 작은 전투를 백만대군이 동원된 전쟁으로 과장한 소설 삼국연의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8/05 [10:05] 이민족의 계속된 지배로 인해 침체된 한족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대륙의 주인이었던 동이족의 역사강역을 대륙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명나라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든 소설 삼국연의에는 정사 에 없거나 각색된 명장면들이 많이 있는데, 대부분이 촉한의 장수들 특히 관우의 무공을 부풀리고 있다. 그 크라이막스가 바로 허구와 과장으로 가득찬 적벽대전이다. 나관중의 황당무계한 역사소설인 삼국연의의 내용으로 만들어진 영화와 드라마가 최근 한국에서 계속 상영되고 있다. 중국 CCTV에서 만든 대하드라마 ‘삼국연의’와 ‘삼국’은 한국 공영방송에서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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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관우의 무공을 엄청나게 부풀린 소설 삼국연의 (3부)

관우의 무공을 엄청나게 부풀린 소설 삼국연의 (3부) 정사 에는 없는 관우의 오관참장과 삼고초려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7/24 [18:40] 이민족의 계속된 지배로 인해 침체된 한족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대륙의 주인이었던 동이족의 역사 강역을 대륙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명나라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지어낸 소설 삼국연의에는 정사 에 없거나 각색된 명장면들이 많이 있는데, 그 대부분이 촉한의 장수들 특히 관우의 무공을 부풀리고 있다. 과연 어떠한 내용들이 있는지 계속 알아보도록 하겠다. 6) 원소의 맹장 안량이 관우에게 어이없이 당하자, 이번에는 안량의 의형제격인 문추가 원수를 갚기 위해 출전한다. 소설 삼국연의에 따르면, 문추가 공격해오자 조조 휘하의 장료와 서황이 출전한다. 문추는 두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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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정사 <삼국지>와 다른 소설 삼국연의의 내용 (2부)

정사 와 다른 소설 삼국연의의 내용 (2부) 도원결의, 청룡언월도, 초선, 적토마, 관우가 화웅을 죽인 것은 허구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7/13 [14:16] 이민족의 계속된 지배로 인해 침체된 한족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대륙의 주인이었던 동이족의 역사를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명나라 때 정치적인 목적으로 쓰여진 소설 삼국연의에는 정사 에 없거나 각색된 명장면들이 많이 있는데, 그 대부분이 촉한의 장수들 특히 관우의 무공을 부풀리고 있다. 과연 어떠한 내용들인지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1) 소설 삼국연의에서는 탁군에서 돗자리 장사를 하던 유비와 푸줏간을 하던 장비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관우가 만나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하며 나이순으로 의형제를 맺어 유비가 첫째 관우가 둘째 장비가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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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정사 <삼국지>로 둔갑한 소설 삼국연의 (1부)

정사 로 둔갑한 소설 삼국연의 (1부) 중국을 과대포장한 나관중의 소설을 역사로 알고있는 한국인들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4/07/07 [11:16] 213년 고구리 산상태왕은 주통촌의 소후에게서 얻은 아들 교체(동천태왕)를 태자로 책봉한다. 그리고는 얼마 후 고구리 주변의 국제정세는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된다. 한나라에서는 헌제를 옹립했던 조조가 216년에 위왕(魏王)이 되어 제위까지 넘볼 수 있는 최고 권력을 쥐게 되었으나, 마지막까지 ‘후한의 충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황제로 즉위하지는 않는다. 그러던 조조가 220년에 죽고 9개월 후 아들 조비는 헌제로부터 왕위를 찬탈해 황제가 되어 위(魏)나라라 칭했다. 중국의 상징 한나라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이듬해 한 왕실의 후예였던 유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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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대진 중원에서 출토된 고구리 유물

중원에서 출토된 고구리 유물 고려박물관 황희면 관장 “유물과 대화하는 생이 아주 기쁘다” 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ㅣ 기사입력 2016/08/16 [15:14] 중국 대련(大連, 다롄)에서만 25년간 살면서 우리 민족의 유물을 수집해 현지에서 어엿이 박물관을 낸 한국인이 있다. 대련에서 해운업과 한국어학원을 운영하다 고려박물관을 건립한 황희면(黃熙冕, 67) 관장. 유물에 문외한이었던 그가 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동기는 호기심에서 시작해 사명감으로 수집한 3천여 점의 유물을 살리기 위한 일념 때문이었다. 박물관을 건립한 그는 후반생 인생을 우리 유물과 함께 지내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그는 자신이 박물관 건립이라는 문을 열었으니 이제 젊은 사람들이 우리 문화유물 경영에 함께 참여하기를 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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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중국이 숨긴 패수(浿水)는 북부 하남성 격수/추수(湨水/溴水) (8부)

중국이 숨긴 패수(浿水)는 북부 하남성 격수/추수(湨水/溴水) (8부) 패수위치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산해경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12/25 [17:08] 명•청나라 때 학자들의 편집에 의해 권14에 언급된 포구(鲍丘)수와 습여(濕餘)수는 고(沽)하와 관련 있는 물길들이라 청장(淸漳)수•탁장(濁漳)수가 언급된 권10에 들어가야 마땅하며, 요서군에 속하는 유(濡)水는 하수의 본류를 설명한 권4의 지류에 언급되어야 하며, 요동군•현토군과 관련 있는 대요(大遼)수•소요(小遼)수는 권6 분수의 지류에 언급되었어야 한다. 그리고 패수(浿水)는 하내(河內)군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분명 권7~8 제수에 언급되어야 마땅하다. 권7~8 제수에 패수의 흔적이라도 남아있는지 아니면 아예 삭제되어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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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역사왜곡을 위해 ‘수경주’까지 편집한 중국 (7부)

역사왜곡을 위해 ‘수경주’까지 편집한 중국 (7부) 하북성 남부에서 산서성 북부로 옮겨진 대군(代郡)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12/10 [13:44] 는 10세기 무렵 일부 내용이 유실되었고 내용도 본문과 주석이 뒤죽박죽되었기에 원상회복을 위해 명·청 때 유명한 학자들이 노력한 결과 여러 종류의 복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상세한 고증본이 명나라 주모위가 1615년에 복원한 이다. 그런데 는 명·청나라 학자들에 의해 원상회복을 위한 복원과정을 거치면서 역사왜곡을 위한 편집과정도 거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대 한·중간의 경계였던 유주(幽州)를 흐르는 강들이 언급된 권14의 편집이다. 참고로 유주에 속하는 군들은 요동군과 요서군, 낙랑군과 현토군, 상곡군과 어양군, 대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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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재야사학의 패수설도 오류 (5부)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재야사학의 패수설도 오류 (5부) 패수는 청천강도 난하도 아닌 북부하남성에 있는 강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10/06 [10:42] 고대 중국과 우리 민족과의 경계이며 연(燕)나라 사람 위만이 상투를 틀고 호복차림으로 망명하면서 건넌 패수(浿水)의 위치를 한반도 서북부(평안도)로 보는 견해는 스스로 소중화(小中華)를 자청했던 조선왕조의 모화사대주의 유학자들과 현재 강단사학계의 대부인 이병도 박사를 위시한 조선사편수회의 일제식민사학자들이다. 일제식민사학을 그대로 계승한 주류 강단사학계의 잘못된 반도사관을 비판하고 있는 학파가 있는데, 강단사학계에서는 ‘재야사학’이란 호칭으로 폄하하고 있는데 반해 스스로는 민족사학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공서·학교 점유율이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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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엉터리학설은 사학계의 바이블 (4부)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엉터리학설은 사학계의 바이블 (4부) 황해도 수안 갈석산서과 청천강 패수설은 엉터리 학설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9/14 [08:34] 일제 조선총독부가 설치한 조선사편수회가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조작한 단군신화와 한반도북부 한사군설은 광복 72년이 지난 지금까지 강단사학계의 정론임은 물론 미래의 한국을 짊어지고 나갈 학생들의 교과서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일제식민사학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그대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으며, 현재의 적폐청산 정부에서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렇듯 국가와 민족의 미래의 희망을 좀먹고 있는 식민사학을 이 땅에 확실하게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이 바로 친일사학자 이병도 박사였다. 그의 황해도 수안 갈석산설과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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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식민사학자 이병도는 동북공정의 일등공신 (3부)

식민사학자 이병도는 동북공정의 일등공신 (3부) 만리장성을 황해도까지 끌어들인 식민사학자 이병도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8/15 [13:22] 강단사학계의 대부 이병도 박사는 고대 한중간의 경계인 갈석산을 황해도 수안으로 비정했다. 조선총독부의 지침에 의해 조선사편수회의 일제식민사학자들이 확정지은 평양 낙랑군설에 맞추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수안 갈석산설은 중국의 장성이 황해도 수안까지였다는 의미로 한반도북부는 중국 땅이었다는 말과도 같은 뜻이다. 왜냐하면 에 “낙랑군 수성(遂成)현에 갈석이 있는데 장성이 시작되는 곳이다.”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병도 박사의 황해도 수안 갈석산설은 애초에는 조선총독부를 위한 충정이었겠지만, 최근에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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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민족혼을 말살한 식민사학을 장려한 대한민국 (2부)

민족혼을 말살한 식민사학을 장려한 대한민국 (2부) 친일사학자 이병도의 엉터리 황해도 갈석산설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7/10 [12:39]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겠다고 야심차게 출범한 반민특위가 이승만 대통령이 비호한 친일경찰에 의해 해체됨으로써 대한민국의 국가정의는 완전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침략지배자 일제의 견마(犬馬)가 되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고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동족을 짓밟고 약탈하던 친일매국노들은 주인이었던 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갔음에도 그대로 기득권을 누리게 되었으며, 그 후손들은 조상이 남긴 막대한 부와 권력을 세습 받아 대대로 호강하며 잘 살게 되었다. 정상적이라면 해방된 나라에서 처형되거나 수감되었어야 할 친일부역자들이 그렇게 되기는커녕 오히려 이승만과 박정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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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6월 6일 현충일은 민족정기가 죽은 날 (1부)

6월 6일 현충일은 민족정기가 죽은 날 (1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국립현충원의 원조 장충단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8/06/06 [13:21] ㅣ 6월은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고, 특히 6월 6일은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범국가적으로 조기를 게양하는 현충일이다. 정부는 1956년부터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이라 하여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행사를 해왔으며, 1975년 12월에 현충일로 개칭되었다. 또한 민간에서는 음주가무가 없어야하는 날이기에 전국의 유흥업소가 1년에 딱 하루 쉬는 날이기도 하다. 6월 6월이 매년 돌아올 때마다 잊혀져가는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이 떠오르곤 한다. 하나는 정부와 국민들이 현충(顯忠)에 대해서만 알지, 그 원조가 되는 장충(獎忠)에 대해서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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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장충단에 박문사와 신라호텔을 지은 일본건설회사 (5부)

장충단에 박문사와 신라호텔을 지은 일본건설회사 (5부) 박문사를 지은 오쿠라쿠미는 신라호텔을 지은 대성건설(주)의 전신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4/03/17 [10:11] 장충단 부지의 일부는 영빈관을 짓기 위해 1960년대 후반 박대통령의 지시로 약 28,000평(92,000m2) 가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주)임페리얼에 헐값인 28억 4,420만원에 불하되기에 이른다. 삼성그룹은 그곳에 외국인 접대를 위한 위락시설인 신라호텔을 지으면서 설계와 시공을 일본기업인 다이세이건설(주)에 맡긴다. 1973년 11월 1일 (주)호텔신라 기공식이 열렸고, 5년간의 공사 끝에 1979년 3월 8일 지하 3층 지상 22층 연면적 6만6,525m2 규모의 대형호텔로 탄생하게 된다. 또한 1975년 5월 31일 건설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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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장충단 파괴범은 3共과 삼성의 정경유착 (4부)

장충단 파괴범은 3共과 삼성의 정경유착 (4부) 신라호텔은 장충단 복원에 앞장서야 한다.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4/02/17 [15:57] 본 글은 아래 장충단 시리즈에 이어지는 (4부)입니다. (1부) 일제가 훼손한 장충단의 슬픈 사연 (2부)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놀이공원으로 바꾼 일제 (3부)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짓밟은 이등박문의 망령 일제는 조선인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대한제국의 현충원인 장충단을 공원으로 바꾸고 이등박문을 위한 박문사(博文寺)를 지는 등 철저히 파괴했다. 해방 후 박문사 건물은 동국대학교 기숙사로 잠시 쓰이다가 1945년 화재로 전소되었고(경성일보 1945년 11월 26일자), 이후 장충단은 원래의 설립취지대로 국립묘지가 된다. 1946년 군이 창설되어 북한군과의 국지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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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짓밟은 이등박문의 망령 (3부)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짓밟은 이등박문의 망령 (3부) 박문사 건립에 경복궁 선원전, 경희궁 흥화문, 원구단 석고전 옮겨 사용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4/02/05 [09:49]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와 재한 일본인들 사이에서 이토오 히로부미의 공적을 기리고 널리 알리려는 현창(顯彰) 움직임이 있었고, 이토오의 동상을 건립하자는 안이 여러 번 나왔다. 그러나 공공장소에 이토오의 동상을 세울 경우 조선인의 반감을 사 언제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 대신 이토오 사망 20주년이던 1929년 말 동상보다는 이토오의 명복을 기원하는 불교 사찰을 건립하자는 움직임이 구체화됐다. 해군대장 출신의 사이토가 두 번째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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