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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놀이공원으로 바꾼 일제 (2부)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놀이공원으로 바꾼 일제 (2부) 장충단의 훼손은 조선인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4/01/18 [15:50] 국립현충원인 장충단의 건립 ▲ 황성신문 1900년 11월 12일자에 장충단이 건립되었고 갑오 이후 죽은 전망자와 대소 각 부원, 무관, 학도를 위해 제사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1900년 5월 고종 황제의 지시로 동년 11월 10일 남산 남소영(南小營) 터에 장충단(奬忠壇)이 완공되기에 이른다. 장충단은 1894년 갑오전쟁(동학농민혁명)과 1895년 을미참변(명성황후시해사건) 당시 왕실 수호를 위해 희생당한 군인들의 충절을 기려 봄, 가을로 제사를 지내던 제사시설이었다. 현재 장충단의 원형을 보여주는 사진이 남아있지 않지만 ··관보·황성신문·만세보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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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일제가 훼손한 장충단의 슬픈 사연 (1부)

일제가 훼손한 장충단의 슬픈 사연 (1부) 장충단은 명성황후를 지키다 산화한 분들을 제사지내던 원조 현충원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4/01/09 [10:04] 60년대 불멸의 가수 배호의 히트곡 '안개 낀 장충단공원“의 가사는 참으로 애절하다. (1절)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 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 번 어루만지며 돌아서는 장충단공원 (2절)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기슭에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쥐고 울고만 있을까 가버린 그 사람이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 있는데 외로움을 달래 가면서 돌아서는 장충단공원 위의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과 뚜렷이 남은 이 글씨’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가슴을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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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명성황후 장례식 기록까지 빼앗은 일제 (8부)

명성황후 장례식 기록까지 빼앗은 일제 (8부) 명성황후를 2번 죽인 일제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12/28 [11:38] 명성황후의 장례식은 대한제국의 위상에 맞게 장엄하고 화려하게 치루어졌다. 일제는 명성황후를 인류사에 그 유래가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치욕적으로 시해한 것도 모자라, 2년 2개월 후인 1897년 11월 22일에 시신도 없이 치러진 장례식 기록까지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간다. 그 장례절차를 기록한 문서가 바로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明成皇后國葬都監儀軌)이다. 그 장례기록까지 빼앗아갔으니 명성황후를 두번 죽인 것이다. 일본으로 보내는 절차는 조선총독부가 일본 왕실도서관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보내버린다. 물론 는 일본이 빼앗아간 의 일부이다. 이렇게 일본 궁내청에 보관되어 있던 우리의 문화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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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폐서인/빈으로 강등 후 복위되는 명성황후 (7부)

폐서인/빈으로 강등 후 복위되는 명성황후 (7부) 왕후 --> 폐서인 --> 빈 -->왕후 -->명성황후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12/16 [10:02] 명성황후는 너무도 처참하고 치욕스럽게 일본인에게 시해 당했다. 고종은 일제의 강압에 굴복해 8월 22일(음) 왕후를 폐서인한다는 조서를 내렸다가, 다음날 바로 빈으로 승격시키고, 10월 10일(음) 왕후로 다시 복위시킨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고종 32년 (1895 을미) 8월 22일(경인) 왕후 민씨를 서인으로 강등시키다 조령을 내리기를, “짐이 보위에 오른 지 32년에 정사와 교화가 널리 펴지지 못하고 있는 중에 왕후 민씨가 자기의 가까운 무리들을 끌어들여, 짐의 주위에 배치하고 짐의 총명을 가리며 백성을 착취하고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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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일제는 살아있는 명성황후를 불태워 죽였다 (5부)

일제는 살아있는 명성황후를 불태워 죽였다 (5부) 칼에 찔린 후 발가벗겨지고 능욕당하고 산 채로 불태워진 명성황후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11/20 [10:37]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은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들이 휘두른 칼에 맞아 죽었고 시신은 불태워졌다.”고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소설이나 영화/드라마/뮤지컬을 통하여 묘사된 명성황후의 최후만을 알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은 모두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드라마/뮤지컬의 장면은 너무도 처참하고 치욕스러웠던 명성황후의 최후를 적나나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대중매체의 제한성 때문이던가, 아니면 아예 제작자들이 명성황후의 최후에 대해 모르고 표현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필자의 눈엔 후자로 보인다. ▲ 뮤지컬 명성황후에서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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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명성황후를 죽임은 시해인가? 살해인가? (4부)

명성황후를 죽임은 시해인가? 살해인가? (4부) 살해라 함은 일본의 입장에서 본 용어로 일반인을 죽임에 쓰는 말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11/05 [12:42] 최근 명성황후 죽음에 대한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는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사건을 을미사변(을미사변)이라는 역사용어로 쓰고 있는데, 이는 매우 부적절한 용어이다. 또한 항간에는 명성황후의 죽음에 대하여 시해라는 용어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먼저 아래 신문기사를 보기로 한다. (신문기사 인용) 명성황후 암살 사건을 우리는 왜 시해(弑害)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시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일본인에 의해 조선의 국모가 살해된 사건이므로 시해라고 정의할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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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한 범인은 일본정부 (3부)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한 범인은 일본정부 (3부) 명성황후 시해범들에게 노고를 치하하는 일왕과 이또오 히로부미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10/21 [11:30] 명성황후를 처참하고 치욕적으로 시해한 범인은 조선에 있던 미우라공사와 일본 깡패들이 아니다. 그들은 단순 행동대원일 뿐이고, 진짜 범인은 당시 이또오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총리대신으로 있던 일본정부이다. 상식적으로 이런 어마어마한 사건은 국가가 정부차원에서 개입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시행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왕비를 죽이는 일을 일본 외무성의 국장급인 주한공사 정도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당시 총리대신인 이또오 히로부미가 결정하고, 외무대신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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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반일본인(?)이 쓴 백과사전의 명성황후 시해 설명 (2부)

반일본인(?)이 쓴 백과사전의 명성황후 시해 설명 (2부) 우리의 관점이 아닌 일본인의 관점으로 기술한 명성황후 시해 설명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09/25 [10:45] 오는 10월 8일은 118년 전인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놈들에게 처참하게 치욕적으로 시해당한 날로 역사는 이 날을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대단히 잘못된 역사용어로, 을미사변이 아니라 을미참변(乙未慘變) 또는 을미치욕(乙未恥辱) 또는 을미국치(乙未國恥)으로 변경되어야 마땅하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인터넷 백과사전의 상세한 설명을 보기로 하겠다. 아래 백과사전의 내용은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잡종(?)인 사학자가 쓴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참고로 적색으로 표시한 용어는 우리에게 맞게 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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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명성황후를 일제처럼 '민비'라 부르는 우리나라 (1부)

명성황후를 일제처럼 '민비'라 부르는 우리나라 (1부) 민비는 일제가 조선의 왕후를 낮추어 부르던 호칭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3/09/18 [17:14] 오는 10월 8일은 118년 전인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놈들에게 처참하게 치욕적으로 시해당한 날로 역사는 이 날을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대단히 잘못된 역사용어로, 을미사변이 아니라 을미참변(乙未慘變) 또는 을미치욕(乙未恥辱) 또는 을미국치(乙未國恥)으로 변경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그동안 뮤지컬이나 드라마 또는 영화를 통해 명성황후의 최후장면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대부분 국민들은 명성황후가 일제에 당당하게 맞서다 일본놈들이 휘두른 칼에 맞아 젊잖게 죽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명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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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대한민국이 일제식민사학에 중독된 이유

대한민국이 일제식민사학에 중독된 이유 단군신화, 위만조선과 한사군, 반도사관으로 집약되는 일제식민사학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09/02 [14:55] 개국 후 억불숭유정책을 펼치며 유교를 국시로 삼자 공자의 나라를 동경하는 사대모화주의가 만연해져 소중화가 되어버린 500년 조선왕조는 중화를 위해 스스로 조상들의 역사를 축소·왜곡했다. 이천년 단군조선의 반을 잘라내 가공의 기자조선으로 대체했으며, 각종 를 편찬해 반도사관을 확고하게 굳히게 된다. 또한 명나라 멸망 후 겉으로는 청나라의 속국임을 표방했으나, 사대부들은 ‘유명조선(有明朝鮮)’이라는 문구를 묘비에 쓰면서까지 정신적으로는 오랑캐(?)인 청나라에 대항했다. 19세기 중엽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제국주의는 대륙진출의 야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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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애국가 작사자, 독립운동가일까? 친일파일까? (2부)

애국가 작사자, 독립운동가일까? 친일파일까? (2부) 후렴 '무궁화 삼천리'는 생물학적/역사적으로 맞지 않다.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8/27 [17:39] 애국가 작사자가 누구인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아래는 애국가 작사가에 대해 밀착취재를 하고 있는 뉴시스의 보도 내용이다. (서울=뉴시스】 신동립의 ‘잡기노트’ 애국가의 재발견④ ‘이 땅이 해방이 되자 1945년 8월16일 오후 5시부터 중앙방송국 마이크를 통해 우렁찬 합창소리가 울린 후 나온 것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는 애국가였다. 우리들은 오랜 동안 듣지 못하였던, 또는 일찍이 들어본 기억도 없는 이 노래의 구절구절 맺힌 심정에 눈물은 빗발쳐서 참지 못하였고 감정은 압도적이었다.’ 월북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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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애국가 가사 '무궁화 삼천리' 바꿔야! (1부)

애국가 가사 '무궁화 삼천리' 바꿔야! (1부) 작사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조작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2/08/23 [16:53] 최근 대한민국의 국가인 '애국가'를 누가 작사했느냐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아래는 8월 22일자 뉴스시의 보도 내용이다. 【서울=뉴시스】 애국가의 작사가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연구 자료들이 공개됐다. 흥사단은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애국가 작사자 규명발표회'를 열어 '안창호 작사설'을 뒷받침할 자료를 제시하고 "앞으로는 애국가 작사자가 명확히 표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흥사단은 "안창호 선생이 1907년 3월 평안남도 선천예배당에서 '백두산과 두만강물이' 찬미가를 스코틀랜드 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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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일왕의 특명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라" (4/4부)

일왕의 특명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라" (4/4부) 아직도 말살된 역사를 못찾아. 일제 마지막 총독 아베는 돌아올까?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8/02 [16:12] (4) 4대 총독 야마나시 한조(山梨半造: 1864~1944) 가나가와(神奈川)현 출신의 육군 군인으로 육군 대장, 육군 대신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육상 재임 시절 군비축소 정책인 ‘야마나시 군축’을 단행한 인물로 당시 정치부패가 심각했던 일본 정계에서 다양한 부정 의혹 사건에 연루되었던 인물이었다. 1927년 조선총독 재임 중에도 부정 의혹 사건으로 측근들이 구속되는 등의 물의가 일어나자 불과 2년이 채 못 되어 총독을 사임하였다. 하지만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고, 육군내의 번벌 계통과는 상관이 없는 비주류라는 이유로 불필요한 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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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일왕의 특명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라" (3/4부)

일왕의 특명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라" (3/4부) 조선을 영원히 식민지배하기 위해 역사말살에 혈안이 된 조선총독들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8/02 [13:40] 조선총독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1) 무단 통치의 初代 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 (寺內正毅: 1852~1919) 군인, 정치가, 元帥 육군대장,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 테라우치의 이력에 붙는 수식어이다. 이력 그대로 테라우치는 군인으로서 또 정치가로서 최고의 지위에 올랐던 인물이었다. 테라우치는 조슈번(長州藩)의 하급무사 우다(宇田) 집안의 3남으로 지금의 야마구치(山口)시에서 태어났고 나중에 외가인 테라우치 집안의 양자가 되었다. 1865년에 조슈번의 제대(諸隊)에 들어갔으며, 메이지유신 직후 내전인 보신(戊辰)전쟁에 종군하였고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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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일왕의 특명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라" (2/4부)

일왕의 특명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라" (2/4부) 조선의 영원한 식민지배를 위해 조선의 역사말살에 나선 일제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7/19 [13:06]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찬 작업을 더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위원회를 중심으로 1925년 조선사편수회관제를 공포하여 새로운 독립관청인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했다. 회장은 정무총감이 겸임했으며, 고문에 이완용·박영효·권중현·쿠로이타·핫도리[服部宇之吉]·나이토[內藤虎次郞], 위원에 이마니시[今西龍]·이능화·어윤적·오다[小田省吾] 등, 간사에 이나바 등 3명, 수사관에 이나바·홍희(洪熹)·후지타[藤田亮策] 등 3명이 임명되었다. 이후 이병도·신석호 등이 수사관으로 참여했으며, 최남선도 1928년 12월 촉탁위원으로 참여했다. 조선사편수회에서의 〈조선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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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일왕의 특명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라" (1/4부)

일왕의 특명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라" (1/4부) 조선을 영원히 식민지배하기 위해 고대사 말살에 나선 일제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7/19 [12:54] 조선사편수회 [朝鮮史編修會]는 일제가 한국 침략과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식민주의적 한국사상(韓國史像)을 구축하기 위해 1925년 6월 칙령 제218호로 공포한 '조선사편수회관제'(朝鮮史編修會官制)에 따라 만들어진 관청이다. 조선사편수회는 조선사편찬위원회규정(1921. 12. 4, 조선총독부 훈령 제64호)에 따라 발족한 조선사편찬위원회를 확대·강화하여 발족시킨 기구로서 사업의 종류와 원칙은 이때 정해졌다. 조선사편찬위원회의 위원장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겸임했으며, 고문에는 이완용·박영효·권중현 등이 임명되었다. 실제업무는 도쿄제국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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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만리장성까지 한반도로 끌어들인 일제식민사학 (8/8부)

만리장성까지 한반도로 끌어들인 일제식민사학 (8/8부)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5/24 [17:05] 중국은 중국의 상징이며 자부심인 현 만리장성을 진시황(秦始皇) 때 쌓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 현재의 만리장성은 동쪽 하북성 산해관에서 시작하여 서쪽 감숙성 자위관에 이르는 총 길이 6,352km라 했다가, 최근 중국 정부는 단동의 호산산성 유적을 만리장성의 동쪽 끝으로 재해석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학생들의 역사지리부도 상에는 한반도 청천강까지 만리장성이 그려져 있다. 중국은 1949년 하북성 동쪽 끝으로 요녕성과의 경계에 있는 산해관 근방을 진황도(秦皇島)시로 명명하면서 이 도시가 진시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러 떠난 곳이 진황도항이라 하며 역사유적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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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잘못된 역사소설 내용을 교과서로 만든 일본(7/8부)

잘못된 역사소설 내용을 교과서로 만든 일본(7/8부)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5/24 [17:02] 메이지 천황(明治天皇, 1852년~1912년)은 일본의 제122대 천황(재위:1867년~1912년)이다. 휘는 무쓰히토(睦仁)이며 유소년기의 궁호는 사치노미야(祐宮)이다. 일본의 황권을 강화시켜 일본 제국으로 발전하는 발판을 마련하였으며, 1894년 청일 전쟁,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연달아 승리한 이후 1910년 대한제국을 병합하였다. 1889년(메이지 22년) 이토 히로부미 등에게 명하여 일본 최초의 근대적 헌법인 《대일본제국 헌법》을 제정하였다. 그의 개혁정책을 연호를 따 메이지 유신이라 부르며 일본의 근대화를 확립하고 부국강병을 달성한 군주로 평가된다. 1868년 9월 연호를 메이지(明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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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고대 일본 왕들은 모두 백제왕족 (6/8부)

고대 일본 왕들은 모두 백제왕족 (6/8부)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5/24 [17:00] 우리에게 의자왕의 누이로 알려져 있는 제명여왕은 2번이나 왜왕위에 오른 인물로 이름은 보황녀(寶皇女)라고 에 기록이 되어있다. 남편인 서명(舒明)왕의 뒤를 이어 여왕에 올라 황극(皇極 642~645)왕이 되었다가, 시동생인 효덕(孝德)왕에게 양위했다가, 효덕의 사후 다시 37대 제명(齊明 655~661)왕에 오른다. 백제를 구원할 전쟁 준비를 하던 중 661년 68세의 나이로 죽자 아들인 천지(天智)왕이 그 뒤를 잇는다. 에서 제명여왕을 보황녀(寶皇女)라 한 것은 황제의 딸로 이름이 보(寶)란 말이다. 백제황가는 대대로 외자 이름을 쓴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제명여왕의 이름은 부여보(夫餘寶)이다. 여하튼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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