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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중국의 천자제를 모방한 일본의 천황제 (5/8부)

중국의 천자제를 모방한 일본의 천황제 (5/8부)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5/24 [16:57] (편집자 주) 천황은 당지의 공식용어가 아니라 설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쓴 임시용어입니다. 원래 우리 민족이 천손(天孫)이었는데 중국과 일본에서 빼앗아 자기들이 쓰고 있습니다. 일본 천황(天皇 てんのう 덴노) 또는 일왕(日王), 일황(日皇)은 일본 황실의 대표로,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 일본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며, 일정 부분의 외교관계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다. 지위로서 천황의 기능에 대해서는 일본국 헌법 제1조부터 제7조에 명시되어 있다.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제1조)으로 규정되어,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의해 법률이나 조약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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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조선 정복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일본역사 (4/8부)

조선 정복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일본역사 (4/8부) 신공왕후의 삼한정벌과 풍신수길의 조선정벌에 근거한 정한론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5/24 [16:53] 정한론[征韓論] : 일본정부 내에서 메이지유신 초기에 대두된 조선침략론이다. 조선을 무력 침공한다는 침략적 팽창론으로 도쿠가와[德川] 시대에도 제기되었으나, 1868년의 메이지유신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들은 왕정복고와 존왕양이(尊王攘夷)를 주장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업을 계승하여 대륙을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1867년 3월초 규슈 출신의 일본인 야도가 홍콩에 체류하면서 중국 광동성에서 발간되는 〈중외신문〉에 "조선 국왕이 5년에 1번씩 에도에 가서 대군을 알현하고, 공물을 바치는 것이 예부터 예의이나 조선 국왕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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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기마민족 부여가 경상도 김해까지 왔다는 한.일사학계 (3/8부)

기마민족 부여가 경상도 김해까지 왔다는 한.일사학계 (3/8부)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5/24 [16:52] (백과사전) 부여[夫餘]는 만주 서북부에 있던 예맥족의 고대국가로 북부여라고도 한다. 부여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사슴을 뜻하는 만주어 'puhu'와 연결시키는 견해도 있으나, 평야를 의미하는 벌[伐·弗·火·夫里]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BC 1세기의 중국 문헌에 이미 명칭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BC 2세기 무렵에는 성립했음을 알 수 있다. 마여--> 의려--> 의라로 왕위가 이어진다는 중국사서의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태조대왕 69년(121) 고구리가 1만 군사로 현토성을 포위하니 부여 왕이 아들 위구태를 보내어 군사 2만을 거느리고 와서 한나라 군대와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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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호태왕비문을 조작해 임나일본부설을 날조한 일본 (2/8부)

호태왕비문을 조작해 임나일본부설을 날조한 일본 (2/8부)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5/24 [16:49] (백과사전의 설명)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란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간 일본이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두어 한반도 남부를 식민지로 경영했다는 학설이다. 이 학설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날조한 식민사관의 하나인 타율성이론의 대표적 산물로서 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과 궤를 같이한다.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태고부터 외세의 간섭과 영향을 받아 타율적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하면서 임나일본부설을 제기했는데, 쓰에마쓰[末松保和]가 이를 체계화한 바 있다. 그의 설에 의하면 3세기 중엽에 이미 왜인은 변진구야국(弁辰狗邪國) 즉 임나가야(任那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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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일본과의 역사전쟁 - 조작된 신공왕후의 삼한정벌 (1/8부)

일본과의 역사전쟁 - 조작된 신공왕후의 삼한정벌 (1/8부) 신공왕후의 조작된 삼한정벌에 근거한 정한론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5/24 [16:47] 신공왕후(神功皇后, 170~269)의 이름은 오키나가타라시노히메미코토(気長足姫尊, 息長足姬尊), 오오시타라노미코토(大帯比売命), 대족희명왕후(大足姫命王后)로 전한다. 아버지는 가이카(開化) 왕의 현손 오키나가노스쿠네노미코(息長宿禰王)로, 어머니는 신라 왕자 천일창(天日槍)의 후손 카츠라기노타카와카히메(葛城高顙媛). 오진(応神) 왕의 어머니로 기록되어 있고 201년 ~ 269년간 섭정을 하였다고 전한다. 연대에 대하여는 백제왕력을 기준으로 셈하여 120년을 더하면 321년 ~ 389년간 섭정하였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진구 왕후의 섭정 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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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요•금•원•청 5백년간 우리역사를 축소·왜곡한 조선왕조

5백년간 우리역사를 축소·왜곡한 조선왕조 단군조선이 아닌 기자조선에 온 국호 조선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08/26 [10:58] 대부분 사람들은 일제가 식민통치기간 중 우리역사를 전부 말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 와전된 것으로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제가 어떻게 겨우 35년의 세월 동안 그 방대한 작업을 모두 다 할 수 있었겠는가! 광활한 아시아대륙을 말 달리며 호령했던 우리의 위대하고 찬란했던 대륙지배의 역사가 축소·말살된 실상은 다음과 같다. 중국대륙에서는 우리와 동족인 원나라가 남경을 근거지로 해서 일어난 주원장에게 밀려 북쪽 몽골초원으로 쫓겨 가고, 1368년 남경에서는 한족 중심의 명나라가 건국된다. 원나라가 망함으로써 중원을 차지하게 된 명나라로 인해 그전 송나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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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요•금•원•청 민족반역자를 영웅으로 둔갑시킨 동북공정

민족반역자를 영웅으로 둔갑시킨 동북공정 남송의 재상 진회와 명나라 장수 오삼계를 재평가한 중국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08/19 [14:55] 중국 역사에는 2명의 유명한 민족반역 매국노가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남송의 재상 진회(秦檜)이다. 금나라가 송나라의 도읍 개봉을 함락시키고 휘종과 흠종 두 황제를 끌고 가자 흠종의 동생이 양자강 남쪽으로 내려와 남송을 세운다. 남송은 악비 장군의 선전으로 남하하려는 금나라를 한때 곤경에 빠트리기도 했으나 힘이 부친 남송은 계속되는 전쟁 대신 강화를 간절히 원했다. 금나라가 강화조건으로 “악비를 죽이지 않으면 강화에 응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압박하자 남송의 재상 진회가 악비에게 모반죄를 뒤집어씌워 죽여 버린다. 악비가 죽고 얼마 후 남송과 금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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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요•금•원•청 중원을 지배한 금·청나라는 우리와 동족

중원을 지배한 금·청나라는 우리와 동족 여진족 금·청나라의 황실은 신라에서 넘어간 김씨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08/12 [10:13] 중국의 통일왕국 송나라의 두 황제를 사로잡아 무릎 꿇린 여진족의 금나라는 당시 중국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여진족이 우리 민족과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한 시각은 고려 때 윤관 장군이 여진족을 토벌하고 9성을 쌓았으며, 조선왕조 때 김종서 장군이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4군과 6진을 개척했고 청나라가 조선에 쳐들어와서는 삼전도에서 인조임금의 항복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중원에 광대한 제국을 이룩한 여진족의 금나라와 청나라는 우리와 같은 엄연한 단군의 후예들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高句麗의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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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요•금•원•청 요(거란)와 금(여진)나라가 중국의 역사가 아닌 이유

요(거란)와 금(여진)나라가 중국의 역사가 아닌 이유 거란족과 여진족은 고구려와 같은 민족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3/08/05 [12:04] 5천년 중국 역사에서 한족(漢族)이 세운 통일국가는 한·송·명 세 나라로 이들의 존속기간을 다 합쳐도 겨우 천년이 조금 넘을 뿐이다. 즉 중국 역사의 대부분이 한족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혹자는 왜 수·당나라가 포함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비록 수·당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로 편입되었으나 한족의 역사에 포함될 수 없는 이유는 수·당의 왕실이 한족이 아닌 북방민족인 선비족(鮮卑族)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나라는 명실공히 한나라 이후 한족이 세운 중국의 통일국가였다고 역사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당시 송나라와 대치했던 북방민족인 요나라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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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요•금•원•청 세계를 정복한 칭기즈 칸은 고구려-발해인이다! (3부)

세계를 정복한 칭기즈 칸은 고구려-발해인이다! (3부) 고려 평주승 금행의 아들 함보가 금 태조 아골타의 조상 주몽예 북방민족사학자, 법학박사 ㅣ 기사입력 2015/07/20 [12:27] ‘아르카나 콘’은 어디인가? 몽골학자 빌렉트(L. Bilegt), 부랴트(몽골족 후예들이 세운 러시아의 공화국) 학자 조릭투예프(B. Zoriktuyev), 김호동 서울대 교수 등은 일반적으로 《집사》가 ‘아르카나 콘’으로 기록한 것을 ‘에르게네 쿤(Ergenekun)’으로 읽는다. 빌렉트는 그 땅을 ‘에르군 콘(Ergun Kun)’으로도 읽으면서, 러시아 측에 있는 ‘아무르강(흑룡강) 상류의 아르군(Argun’)’ 또는 ‘에르구네 물(Ergu’ne mo’ro’n)’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집사》가 말하는 ‘아르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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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요•금•원•청 해상왕 장보고로 본 '삼국사기'는 후대 조작 (2부)

해상왕 장보고로 본 '삼국사기'는 후대 조작 (2부) 를 인용한 '삼국사기'의 이상한 기록 '청해진=완도' 성훈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2/08/10 [16:04] 연산군은 실록에 130여 편의 시가 전하는 등 시문에 밝았고, 문화 예술을 장려한 임금이었다. 한국영화사상 역대 최다관중을 동원한 ‘왕의 남자’의 극중 인물로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연산군은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정사를 그르치고 죄 없는 사람을 많이 죽인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지라 정말 그랬는지는 필자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연산군은 결코 성군은 아니었던 것 같고, 조선의 왕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임금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왕권강화를 위해 육조직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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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요•금•원•청 '삼국사기'는 언제 변조되었을까? (1부)

'삼국사기'는 언제 변조되었을까? (1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조선왕조 때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편집부 ㅣ 기사입력 2012/06/04 [15:19] 위화도회군(쿠데타)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인 조선을 개국하나 대의명분이 약했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 부도덕하게 무력으로 정권을 잡다보니 내부의 인정보다는 강력한 외부의 힘이 필요해 명나라를 끌여들이고 스스로 속국임을 자청하고는 자신의 정치 뒷배경을 명나라로 하게 된다. 이는 해방 후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들이 제일 먼저 미국에게 승인을 받고 미국을 자신의 후원자로 섬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조선초기의 사대와 역사테러 명나라는 이런 이성계에게 국호를 '조선'이라 정해주고는, 예전에 지나족이 단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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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칠지도에 새겨진 ‘泰□四年’는 백제연호 (4부)

칠지도에 새겨진 ‘泰□四年’는 백제연호 (4부) 고구리와 신라, 마진과 고려까지 사용했던 자체연호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11/06 [20 신공왕후 55년(375) 기록에 백제 초고(肖古)왕이 죽고, 56년 백제 왕자 귀수(貴須)가 왕이 되었고, 64년(384)에 “백제국 귀수왕이 죽고 왕자 침류(枕流)왕이 왕으로 섰다.(百濟國貴須王薨 王子枕流王立爲王)”의 초고왕과 구수왕은 근초고(近肖古)왕과 근구수(近仇首)왕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65년(385)에 “백제 침류왕이 죽고, 왕자 아화(阿花)가 나이가 어려 숙부 진사(辰斯)가 빼앗아 왕이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의 아화는 침류왕의 아들 아신(阿莘)왕자이다. 침류왕이 즉위 이듬해 죽었는데 태자 아신이 어려서 침류왕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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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정한론의 근거인 신공왕후 삼한정벌은 허구 (3부)

정한론의 근거인 신공왕후 삼한정벌은 허구 (3부) 일본서기 신공왕후의 삼한정벌은 근거 없는 위사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10/20 [21:53] ㅣ 소위 정한론(征韓論)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임나일본부설의 모태는 왜의 신공왕후가 신라왕 波沙寐錦(파사매금)를 정벌한 후 고구려왕과 백제왕에게도 복속의 맹세를 받았다는 아래 의 섭정전조 기록이다. 그런데 에 기록된 신라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의 재위기간은 80년~112년이고 파사라는 글자도 약간 다르다. 그러나 신라왕의 명칭을 매금(寐錦)으로 표기한 것은 광개토호태왕비와 중원고구려비의 비문과 같다. “이에 신라왕 파사매금은 (중략) 가져간 금과 은과 채색 능라견 등을 80척의 배에 실어 관군을 따라가게 했는데, 이것이 신라왕이 항상 조공을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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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칠지도는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칼 (2부)

칠지도는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칼 (2부) 허구인 신공왕후의 삼한정벌론을 입증하는 도구로 쓰인 칠지도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10/05 [11:14] 고구리 고국원제와 적대적 라이벌 관계였던 백제 근초고왕(재위 346~375년)은 29년간 보위에 있으면서 출중한 자질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대영웅이었다. 즉위 직후 가장 강력한 호족인 진씨(眞氏) 가문에서 왕비를 맞아들여 지지세력을 확대해 왕권을 강화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부국강병을 이끌어내 사방으로 정복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그때까지 대륙의 최강자였던 고구리의 고국원제를 전사시키고, 백제의 시국처인 요서·진평 지역을 수복했으며 왜 땅에도 진출해 백제는 건국 이래 가장 넓은 강역을 확보하게 된다. 또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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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백제는 온조계와 비류계의 연합국가인가? (1부)

백제는 온조계와 비류계의 연합국가인가? (1부) 으로 비류계와 온조계의 암투 낭설로 밝혀져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09/15 [08:07] 고구리의 성군 고국원제가 춘추 61세에 백제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한 해가 서기 371년으로 그의 통치 41년째였고, 백제 근초고왕 26년이었다. 백제의 정복군주이며 대영웅인 근초고왕은 당시 고구리가 차지하고 있던 백제의 시국처인 요서와 진평을 수복했으며, 더 나아가 왜(倭)까지 진출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은 일본의 국보인 칠지도로 증명되었다. (백제 시국처 참조)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31655 (요서와 진평 참조) http://www.skyedaily.com/new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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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산서성 동남부에서 황해도로 옮겨진 대방군 (8부)

산서성 동남부에서 황해도로 옮겨진 대방군 (8부) 대방군은 한사군이 아닌 고구리 변방으로 백제 고지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04/07 [21:49] 지금부터 허구의 한사군으로 조작된 대방의 연혁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원래 대방고지는 백제의 시국처이기 때문에 당시 대방은 한사군의 땅이 아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일 식민사학의 학설대로 한사군이 대방과 낙랑 땅에 400년간 줄기차게 존속했더라면 어떻게 백제가 B.C 18년 그곳에 나라를 세울 수 있었겠는가! 백제의 시국처는 42년에 백제의 다루왕이 고구리 대무신제에게 바치고 남쪽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이후 고구리의 직할영토가 된다. 그래서 그런지 고구리 역사서에 아래와 같이 대방에 대한 연혁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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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백제 대방고지는 산서성 남부 문희현 동쪽 (7부)

백제 대방고지는 산서성 남부 문희현 동쪽 (7부) 유주의 낙랑군에 속한 대방현과 가까운 석문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03/22 [20:48] 백제·고구리를 멸망시킨 후 신라까지 차지하려는 당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672년에 신라가 당나라 군대와 명운을 걸고 최후결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에 “당나라 군대는 말갈과 함께 석문의 들(石門之野)에 진영을 치고, (문무)왕은 장군 의복과 춘장 등을 보내어 대방의 들(帶方之野)에 진영을 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즉 이 말은 대방은 석문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인 것이다. 에서 석문산(石门山)을 검색하면 아래와 같이 28개 지명이 나타나듯이 워낙 많다보니, 어느 석문이 당나라가 신라와 싸우기 위해 진영을 펼친 석문인지 알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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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백제의 시국처 대방고지는 어디인가? (6부)

백제의 시국처 대방고지는 어디인가? (6부) 대방현은 낙랑군의 서부인 산서성 남부에서 찾아야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03/10 [22:06] 에는 B.C 18년 온조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세웠으며, “온조왕 13년(B.C6) 7월 한산(漢山) 아래에 울짱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가를 옮겼다. 8월 사신을 마한에 보내 천도할 것을 알리고 드디어 경계를 정하되 동으로 주양(走壤), 서로 대해(大海), 남으로 웅천(熊川), 북으로 패하(浿河)를 한계로 했다.”라고 천도(遷都:도읍을 옮김)한 기록이 있다. 웅천과 주양은 현재 어디인지 알 수가 없으며, 북쪽 패하는 패수(浿水)를 말하고, 서쪽 대해는 황하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 지역을 100% 확실치는 않으나 황하북부 하남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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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신라·왜 온조와 비류는 고주몽의 친아들인가? (5부)

온조와 비류는 고주몽의 친아들인가? (5부) 소서노가 부자간인 주몽과 아들 유리명왕 두 남편을 섬겼을까? 성헌식 컬럼니스트 ㅣ 기사입력 2016/02/28 [01:42] 에서는 온조를 백제 시조라 하면서도, 일설에는 비류를 시조로 보는 이견도 다음과 같이 소개해 놓았다. “시조 비류왕의 아버지는 우태(優台)로 북부여 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이었고, 어머니는 졸본 사람 연타발의 딸 소서노였다. 애초 우태에게 시집가 아들 둘을 낳았는데 큰 아들이 비류이고 둘째는 온조라 했다. 우태가 죽자 졸본에서 혼자 살았다. 뒤에 주몽이 부여에서 용납되지 못하자 전한 건소 2년(B.C37) 봄 2월에 남쪽으로 도망쳐 졸본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高句麗라 하고, 소서노를 왕비로 삼았다. 주몽은 그녀가 자신의 창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