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환이 생각

GSnJ 2006. 7. 11. 14:35
2006.07.12 농민신문 '이정환 칼럼'에 기고한 글입니다.

 

 

역사의 비판이 두렵다

 

이정환(GS&J인스티튜트 이사장)

 


  지금 서울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2차 협상을 하고 있지만 이 협정이 커다란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며 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 목소리가 우리 협상팀을 독려하고 상대방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정부는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개방과 무역을 통해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고, 그래서 미국이란 거대시장을 잘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에도 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아마 정부도 그런 생각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이 문제의 출발점에 대해서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반대냐 찬성이냐를 말하기 전에 우리나라 각 산업분야별로 과연 얼마나 큰 이득과 손실을 보게 될 것인가를 논해야 한다.


  그런데 각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협정내용, 국내외 경제여건 변화, 협정 후의 국내적 노력과 대책 등에 따라 달라지므로 어느 누구도 단정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하물며 그 모든 분야의 영향을 종합적으로 통찰하여 국가적 이불리를 혼자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대부분 비농업계 인사가 복잡한 국내외 농업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듯 농업계는 반도체 산업과 서비스시장에 대하여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단계에서 단정적으로 반대를 말하거나, 조건 없이 찬성을 말하는 것은 오만이며 또 다른 졸속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놀부의 박’인지 ‘흥부의 박’인지를 알려면 정부, 각 분야 전문가, 모든 이해 당사자 등이 모두 모여 같이 살펴보고 두드려 보아야 한다. 물론 아무리 두드려 보고 살펴보아도 확실히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피해 발생시에 대비한 보상 및 안정대책을 같이 논의해야한다. 그런 논의를 통해 각 산업분야가 이득을 볼 수 있는, 손해를 보더라도 보상을 받아 그 손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판단되는 조건을 찾아내야 한다.


  반대냐 찬성이냐는 그 다음이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그런 논의와 판단 없이 졸속으로 협상을 시작했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만사에는 시(時)가 있다. 따라서 우선 기회를 잡고 난 후 그 이불리를 분석하여 최종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개인이나 기업경영에도 흔히 있는 일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서 가능한 가장 치밀한 분석과 논의를 통해 각 분야가 수용 가능한 조건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조건을 앞으로의 협상과 국내대책에서 실현할 수 있다면 협정은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협상은 깨지는 것이다.


  최대의 이해당사자인 농업계는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이 작업에 매진해야 한다. 그러나 농업전체의 영향과 조건을 혼자서 혜량하고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섣불리 ‘독약이다 보약이다’, ‘종말이다 기회이다’를 말하기보다 각 품목별로 정부, 전문가, 생산농민이 모여, 밤을 새워 가며 그 품목의 문제를 분석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런 작업은 외면하고, 한쪽에서는 반대에만 매몰하고 정부는 이를 빌미로, 정해놓은 협상일정에 맞춰 일방적으로 협상을 추진한다면, 협상이 타결되던 결렬되던 이 시대를 책임졌던 우리 모두가 훗날 무책임하고 솔직하지 못했다고 냉혹하게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두렵다

 
 
 

정환이 생각

GSnJ 2006. 7. 10. 13:01

2006.05.22 한겨례 이코노미 21에 기고한 글입니다.

 

 

한국 농업· 농촌에 미래가 있는가?

 

GSnJ 이사장 이정환

 

 

  GATT, WTO 그리고 FTA로 이어지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 농산물 무역의 자유화 역시 보편적 원칙으로 굳어졌고, ‘선진통상국가’ 비전이 우리나라의 국가적 발전전략이 된 이상 한국농업도 무역자유화의 대열에서 예외일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과연 세계화와 한국농업이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다. 


  일부에서는 한국농업도 기업화 되어 경쟁력 있는 신상품을 개발하면 자동차, 전자산업 제품과 같이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다는 장밋빛 꿈을 꾸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외국 농산물이 물 밀 듯이 들어와 한국농업은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게 되는 비극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 두 가지 허상에서 벗어나려면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해야 한다.


  먼저 경쟁력 있는 농산물과 사람을 선택적으로 지원하면 빠른 시간에 신상품과 새로운 인력 중심으로 한국농업이 재편되리라는 생각은 꿈일 뿐이다. 왜냐하면 가령, 현재 수출 경쟁력이 있다는 파프리카같은 신상품은 부가가치나 고용규모가 한국농업의 0.1-0.2% 수준을 넘지 못하므로 연간 10% 이상의 고속 성장을 한다 해도 10년 후 한국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를 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대다수 농업인은 중고령 인력이므로 농사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고 그래서 강인하게 농업에 천착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설사 한국 농업이 새로운 인력과 신상품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지금 안고 있는 농업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농업문제는 ‘시간과의 싸움’이고 ‘고용의 문제’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화에 대한 두려움에는 상당한 거품이 있다. 첫째, WTO는 물론 세계 모든 FTA는 각국의 민감 농산물에 대해 상당한 예외 혹은 유예 등의 신축성을 부여하고 있으므로 그 가능성을 활용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과 노력에 달렸다. 둘째, 우리나라 대부분 농축산물의 관세는 20-40%수준이므로 관세감축에 의한 수입농산물의 가격하락률은 30%를 넘지 못할 것이다. 같은 국내산 농산물도 그 품질에 따라 가격이 5-6배나 차이가 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가격 하락은 소비자 선호와 신뢰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관세가 100%를 넘는 농산물이 30여개나 되지만 그 중 고추, 마늘, 양파 등 몇 개 품목과 관세화가 안 된 쌀을 제외하면 나머지 품목의 부가가치 규모는 농업 총부가가치의 5%를 넘지 못하므로 관세감축의 영향은 우려하는 만큼 크지 않을 것이다. 셋째, 우리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이 낮은 것은 농업의 생산성이 낮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영규모가 영세한 농가의 소득을 유지시키기 위해 높은 관세로 국내 농업을 보호한 결과 국내 시장가격이 높아진 것이므로 앞으로 가격경쟁력이 향상될 가능성은 충분히 크다. 이상의 사실을 고려하면 DDA가 타결되고 FTA가 확대되더라도 우리의 노력에 따라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적절한 수준에서 조정하면서 세계농업과 경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경쟁력 확보 노력만으로 농업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선진국은 경쟁력 향상과 더불어  매우 두터운 농가소득안정 제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농가의 소득안정을 도모하는데 정부의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세계화의의 필연과 농업의 현실을 조화시키려면 ‘구조조정을 파는 농정’에서 ‘농가소득안정을 파는 농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편, 이제 농업과 농촌은 ‘건강을 파는 산업’, ‘시간을 파는 산업’으로 탈바꿈해 나가야 한다. 앞으로 건강을 지키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 건강과 시간을 파는 산업이 첨단산업 못지않은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농업이 건강한 식생활을 보장하는 산업으로 소비자의 확실한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 수입농산물은 물론 의료・건강용품 산업과 경쟁하는 산업이 될 수도 모른다. 또한. 우리 농촌이, 도시민이 즐겁게 찾아오는 공간이 된다면 수입농산물은 물론 도시의 레저・스포츠산업과 경쟁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정책은 국내 농산물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농촌을 아름답고 쾌적하게 가꾸는데 초점을 맞추도록 개혁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