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환이 생각

GSnJ 2016. 1. 14. 16:17

2016.1.4  농수축산신문에 실린 이정환 GS&J 이사장의 글입니다.

 

 

 

[시론] 한국농업의 불편한 진실

 

 

GS&J 이사장  이정환

 

 
 한국은 미국, 중국, EU 등 세계 최강·최대의 농산물 수출국들을 필두로 53개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했으며,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도 비록 이번 정부에서는 어렵겠지만 그 가입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제 소비자가 세계 모든 농산물 중에서 자기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가장 싼 값에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이것은 한국농업이 대외적으로 과거와 전혀 다른 세상에 직면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1인당 GDP가 3만 달러에 이르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것을 보고 들은 국민의 감각과 의식수준은 놀랄 만큼 높아져 식품, 환경, 농촌공간에 대한 소비자와 도시민의 눈높이는 매우 높고 다양화돼, 대내적으로도 한국 농업은 과거와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됐다.


   한국농업이 변화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제 ‘신농업’, ‘신농정’이라 할 만한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첫째, 1995년 UR 이후 지금까지도 농업의 가격조건이 악화돼 왔지만 완전 시장개방 시대를 맞아 앞으로 가격조건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고, 농업성장률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농업을 첨단 산업화하고 수출산업화해 농업성장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시장개방의 충격에 대응 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정부의 자금지원 사업으로 이룰 수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둘째, FTA가 중첩되고 대상국가가 확장됨에 따라 FTA별로 영향을 분리해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됐다. 또한 농산물은 어떤 품목의 수입이 증가하면 그 영향이 매우 엷지만 넓게 나타나므로 품목별로 영향을 예측하는 것이 우리의 지식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따라서 이제까지와 같이 FTA별 또는 품목별로 피해를 파악, 대책을 세우는 방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농민단체는 FTA별로, 품목별로 새로운 대책을 요구하고, 정부는 기존의 사업을 잘 엮고 한두 가지 새로운 자금지원사업을 양념으로 끼워 넣은 새로운 꾸러미를 만들어 ‘FTA별, 품목별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내놓는 게임을 그만해야 한다.


   셋째, 1995년 이후 수백 가지 자금지원 사업이 반복되었음에도 1990년대 중반 이후 농업투자는 감소하고 농업성장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또한 정부 자금지원 사업은 대상 선택의 부적정성, 지원자금의 유용 등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어 농업과 농정에 대한 비판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한다. 자금지원사업을 어떻게든 늘려야한다는 생각에 쫓겨 만든 도농상생기금으로 농업계가 집중 포화를 맞은 최근의 사건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넷째, 농업계는 다원적 기능을 농업보호와 지원의 근거로 주장하지만 이제까지 농가도 정부도 다원적 기능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생산되는 것으로 생각해 다원적 기능을 실현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생산성 만능 사고에 빠져왔다. 그 사이 농업은 다원적 기능은커녕 도리어 많은 역기능을 축적해 왔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새해에는 모두가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새기고 한국 농업의 존재이유, 농정의 존재이유를 생각해 보자. 그것이 신농업·신농정으로 가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정환이 생각

GSnJ 2015. 12. 14. 20:38

2015.12.9  서울경제신문에 실린 이정환 GS&J 이사장의 글입니다.

 

 

 

한국 농업, 구박받을 이유 없다

 

 

GS&J 이사장  이정환

 

 
 기업의 기부금으로 1조원 규모의 농어촌 상생기금을 조성해 농업을 지원하겠다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대책이 각 언론으로부터 난타를 당하고 있다. 물론 도무지 현실성이 없는 이른바 무역이득공유제를 주장한 농민단체와 정치권, 그리고 이런 주장을 제대로 돌파하지 못하고 상생기금이라는 편법으로 피해 가려 한 정부 모두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판의 봇물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수십 년간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농업은 '그저 그 타령' '밑 빠진 독' '돈 먹는 하마'라는 등등 농업에 대한 구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연 한국 농업이 그렇게 구박받을 만큼 정말 초라하고 형편없는가.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후 농업의 노동 생산성은 연평균 4.8% 증가해 비농업 부문의 증가율 3.4%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은 모르고 있다. 국민 1인당 농지면적이 세계에서 가장 좁지만 쌀을 자급하고 채소·과일·축산물의 상당 부분을 자급할 만큼 토지 생산성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는 사실도 간과되고 있다. 그리고 농업생산의 대농 집중도가 지난 1995년 이후 무려 4∼7배나 높아질 만큼 구조 변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는 사실도 대부분 모르고 있다.

 

 또 부가가치 1단위 생산에 투입되는 농자재는 13% 감소했고 농기계 등 고정자본과 고용노동 투입량도 40%나 줄어들 만큼 생산 효율성이 향상됐다. 그뿐 아니라 시장에서는 수입 농산물과의 가격 차이가 몇 배나 될 만큼 국내산 농산물을 차별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농산물 수입이 70% 이상 증가하고 이에 대응해 국내 생산도 24% 늘어난 결과 농업의 가격 조건이 급격히 악화해 그런 한국 농업의 성과는 농가의 손에서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1995년 이후 농산물 가격은 27% 상승하는 데 그쳤으나 농자재 가격은 무려 126%, 농기계 가격은 95%, 소비자물가는 72%나 상승한 것이다. 그 결과 소비자 후생은 증가했지만 실질 농업총소득이 39%, 무려 9조6,000억원이나 감소해 도농 간 소득 격차가 급격히 확대됐다. 사정이 이러한데 농산물이 물가 상승의 주범이고 농업이 '그저 그 타령'이라고 구박하다니 안타깝다.

 

 많은 사람이 농정은 나눠주기, 퍼주기에 안주해 농업을 망쳤다고 비판하고 구박한다. 과연 농정이 정말 경쟁력 향상을 등한시했을까. 도리어 지난 20년간 구조조정과 경쟁력 향상을 농정의 제일 목표로 설정했고 그런 비판이 있을 때마다 주눅 든 농정은 미래성장산업과 수출농업을 목표로 설정하고 더욱 구조조정과 경쟁력 향상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대부분 50세 이상으로 전직이 사실상 불가능해 농업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160만명의 농업취업자가 급격한 가격 조건 악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상황에서 국민 경제를 성장시키고 총수출을 늘리는 역할을 농업에 기대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국민들은 그보다는 수입 식품으로 도저히 대체될 수 없는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고 다른 것으로 해결될 수 없는 아름다운 농촌공간을 제공해주기를 간절히 원하리라 생각한다. 또한 혹독한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농업이 160만명에게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해주는 것이 국민경제적으로 더 필요하지 않은가.

 

 이러한 국민의 요구는 선진국일수록 강해 스위스 등 유럽 각국은 농업이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감시하는 데 농정 예산과 인력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도 연간 100조원이 넘는 예산을 농업에 쏟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난리를 통해 농민단체와 정치권은 정말 농가를 위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 무리한 요구를 자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비농업계도 농업 문제와 농정의 실상, 그리고 농업의 존재 이유를 정확히 헤아려 근거 없는 비판과 구박으로 농정이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가지 않게끔 해야 한다.

 

 
 
 

정환이 생각

GSnJ 2015. 12. 14. 20:16

2015.11.11 농민신문에 실린 이정환 GS&J 이사장의 글입니다.

 

 

 

쌀 문제, 이제 결단을 해야 할 때다

 

 

GS&J 이사장  이정환

 

 
 쌀 문제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상황은 농가를 위한 것도 소비자를 위한 것도 아니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은데, 그냥 모두 일단 눈을 질끈 감은 채 재정만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농가가 논을 유지하고 있으면 정부가 고정직불금이란 이름으로 무조건 1㏊당 100만원을 준다. 그리고 수확기 쌀값과 이 고정직불금을 합한 금액이 한가마에 18만8000원이 안 되면 정부가 그 차액을 변동직불금이란 이름으로 채워준다. 그러니 농가는 벼 한가마에 18만8000원 가까운 수입이 보장된다는 것을 알고 벼농사를 짓는다. 그 결과 지난해 쌀 생산량이 424만t으로 정상적 수요량을 24만t이나 초과했고 수확기 쌀값은 떨어졌다. 정부는 초과량을 전부 매입, 시장격리해 쌀값을 떠받치려 했고, 그 결과 정부 창고의 재고는 그만큼 늘어났다.  

 

 올해도 농가는 열심히 벼농사를 지었고 생산량은 정상적 수요량을 30여만t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쌀값은 지난해보다 더 떨어졌고, 정부는 올해도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20만t을 매입해서 시장격리하겠다고 한다. 시장격리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창고에 계속 늘어나는 재고는 어쩔 것인가? 매입하고 보관하는 데 비용이 들고, 보관할수록 품질 저하로 가치가 떨어지는데 창고에 쌓아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가공용으로 쓰자, 주정용으로 처분하자고 하지만 정작 관련 업체들이 별로 반기지 않는다. 의무수입물량(MMA)으로 수입된 쌀도 연간 40만t이나 돼 넘쳐나는데 더 사라고 하면 난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급하다 보니 사료용? 아니 멀쩡한 쌀을 돼지에게 먹인다고! 펄쩍 뛰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사료업체도 난색을 표하기는 마찬가지란다. 맙소사, 쌀이 사료용으로도 푸대접을 받다니! 그런데 설사 주정용이나 사료용으로 처분된다고 하더라도 사료용은 옥수수 가격, 주정용은 타피오카 가격 정도가 돼야 하기 때문에 10만t당 1500억원이 넘는 재정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2009년과 2010년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 홍역을 치렀지만 결국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마당 17만원이었던 쌀 목표가격을 2014년산부터 18만8000원으로 높였을 때 이런 상황은 이미 예견됐던 것이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재고만이 문제가 아니다. 올해는 수확기 평균가격이 정부가 공공비축미를 매입하며 지급한 우선지급금보다 낮아져 정부가 농가로부터 돈을 회수해야 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한편 미곡종합처리장(RPC)은 연이은 역계절진폭으로 도산한다고 아우성인데, 정말 도산이 속출한다면 산지 쌀시장은 큰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앞으로도 생산량이 390여만t을 넘으면 역계절진폭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그뿐인가. 쌀이 관세화됐지만 세계무역기구(WTO)의 검증이 남아 있어 밥쌀용을 수입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수입할 수도 없다. 더욱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은 시간 문제이고, 쌀시장의 추가 개방은 피할 수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제 쌀 문제를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 결단을 해야 한다. 변동직불금제도가 과잉생산을 유발하지 않도록 개혁할 것인가? 아니면 정말 생산조정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할 것인가? 변동직불제가 있는데도 농가는 수확기 쌀값 지탱을 요구하고 정부는 시장격리로 재고를 쌓는 조치를 지금처럼 계속할 것인가? 비용은 많이 쓰면서 당초의 식량안보 목적은 간 데 없이 시장을 도리어 교란한다고 비판을 받는 현재의 공공비축제도 운용방식을 이대로 가져갈 것인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정부·정치권·농업인단체 모두 결단을 해야 할 때가 됐고, 그것은 모두의 책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