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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nJ 2020. 4. 16. 17:38

KOLOFO 칼럼 제 479호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회장의 글입니다.

 

   

 

독일 통일과 더불어 삶

 


김영윤((사)남북물류포럼 회장)

 

 

 금년 2019년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장벽이 붕괴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동서독은 통일했다. 그 형태는 동독이 서독의 체제로 쏙 들어가는 것이었다. 독일이 통일하면서 서독이 지켰던 통합의 대원칙이 있다. 그것은 “동독주민도 독일국민,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동독이 비록 못살고, 생각도 다르고, 체제도 달랐지만, 동독 주민도 모두 독일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통일된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독일통일이었다.

 

동독주민도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할 존재

 

동서독의 통일로 동독은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 편입된다.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는 시장경제의 바탕인 자유경쟁을 따르지만, 자유경쟁에 따라 나타나는 폐단을 국가가 개입하여 바로잡는 경제체제다. 시장경제체제하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의 발생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필요하다. 자유경쟁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을 인간으로서 유지해야 하는 존엄과 조화할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이 사회적 시장경제다. 그 조화를 이루어내는 주체는 다름 아닌 국가다. 국가가 왜 그런 일을 해야 할까. 그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태어난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책임을 누군가 져야 한다.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책임. 그 책임을 결국은 국가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독국민들도 독일국민. 그들도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할 존재라는 것이 동서독 통합의 원칙이다. 동서독이 통일을 하면서 동독 노동자들은 1:1의 화폐교환으로 동독 당시 받았던 급여와 임금의 액수만큼을 서독의 마르크로 받을 수 있었다. 동독 사회주의 체제로부터 억압받았던 사람에게는 국가가 나서 보상을 해 주었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몰수당했던 토지와 건물들은 원소유자가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보다 서독 사람들이 받는 사회보장을 동독사람들도 똑같이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독일통일의 결과였다.

 

 사회적 시장경제를 현실 속에 구현시켜 오늘의 독일이 있게 한 장본인이 있다. 바로 에하르트(Gehard Erhard)다. 그는 라인 강의 기적을 이끌어 내었으며, 독일 정치에서 최초로 연정을 성공시킨 주역이다. 콘라드 아데나워 내각 하에서 경제장관을 지냈으며, 아데나워 총리의 뒤를 이어 제2대 총리가 되었다. 전후 독일의 피폐한 현실 앞에서 에하르트는 “잿더미에서 불사조는 날아오른다(Aus der Asche fliegt ein Phoenix auf)는 말로 독일 국민들에게 신념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가 내걸은 ”모두를 위한 번영(Wohlstand fuer Alle)“은 경제성장과 함께하는 복지체제를 말한다. 1948년 그는 화폐개혁을 단행한다. 나치의 제국 마르크를 도이취 마르크로 전환하면서 전 국민에게 일정금액을 나누어주었다. 그 후 공장굴뚝에서는 놀랍게도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전 국민이 시장경제에 대한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늘 에하르트 총리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우는 그의 모습에서 힘차게 돌아가는 공장의 굴뚝을 연상했다. 뚱뚱했던 에하르트 총리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전후 풍요로움의 상징처럼 인식되었다. 족발을 즐겨먹고, 축구를 사랑해 스포츠 잡지를 열심히 구독하는 모습은 그의 인기를 상승시키는데 한 몫을 했다. 이 같은 모습은 지도자가 서민과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과 함께 지도자에 대한 인간적 동경과 이해심을 유발하는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독일, 정당 연합이 일상화된 국가

 

독일은 내각제하에서 정당간의 연합이 일상화된 국가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정당이 정책이나 의안별로 협력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의회 선거에서 하나의 정당이 과반을 차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선택의 결과가 연정이다. 독일 연방정부 수립이후 현재까지 독일은 1개 정당이 권력을 독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항상 2개 이상의 정당이 연합하여 국정을 담당해 왔다. 독자적으로 권력을 잡기 어려운 소 정당들은 연합의 형태로 국정에 참여하는 역할을 해 왔다. 연정은 다수 정파가 참여하기 때문에 특정 정파의 독선적 정부운영을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정파 간의 갈등으로 국정이 중단될 수도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연정을 위해서는 연정에 참여하는 정당들 간의 신뢰와 소통, 양보와 합의 도출의 의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국민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독일이라는 나라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신뢰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신뢰는 사회통합과 국가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억제할 수 있으며,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용이하게 한다. 정치인이나 관료에 대한 신뢰감은 정책의 실패를 줄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우리 사회의 더불어 삶의 수준은 어디쯤 와 있을까? 경쟁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형평성을 유지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의 핵심이다. 원하는 만큼 공부를 하지 못해도 당당하게 살 수 있어야 하며,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어서도 안 되지만, 열심히 일한 사람이 노후를 걱정하는 사회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복지국가의 모델은 사회적 연대에서 출발한다.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는데 있다. 독일 통일은 더불어 사는 사회와의 연결이자 더 큰 공동체의 삶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출처: KOLOFO 칼럼 ] 원문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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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nJ 2020. 4. 16. 16:32

2019.10.14 농민신문에 실린 이정환 GSnJ 이사장의 글입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GS&J인스티튜트 이사장 이정환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 여부는 ‘자기선언’ 방식에 따라 각국이 스스로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이 규정을 통해 개도국 지위를 적용받아왔다. 그렇지만 미국이 올 2월 개도국 지위를 결정하는 4가지 기준을 제시했고, 뒤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기준에 해당하는 나라는 10월23일까지 개도국 지위포기를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이 느닷없는 소식에 우리 농업계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러나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옛말이 있듯이 정확히 상황을 파악하고 현명하게 이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우선 1995년 발효된 WTO 농업협정에 따라 모든 회원국은 관세·보조금 감축 등을 이행한 후 현재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지금 개도국 졸업을 선언하더라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농업협상이 타결되고 우리나라가 선진국 규정을 적용한 협정에 서명해야 비로소 개도국 졸업선언의 효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운 농업협상이 시작되려면 개도국 규정개편을 포함한 WTO 개혁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렇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미국은 18년이나 끌어온 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개도국문제에 막혀 폐기된 상황이므로 중국 등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야 WTO 협상에 돌아오겠다는 입장이지만, 해당 국가들이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때문이다. WTO 개혁에 실패하면 새로운 농업협상이 없으므로 이번 선언에도 불구하고 개도국 지위를 졸업할 기회 자체가 없을 것이다.

 

‘미·중이 전격적으로 WTO 개혁에 합의하고 농업협상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도 있지 않은가’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이미 개도국 중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우리나라가 새롭게 합의될 기준에 따라 현재와 같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건 무리다. 물론 개도국 규정개혁 없이 새로운 농업협상이 타결되는 예상 밖의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그 경우에는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수도 있을 텐데 이번 선언으로 졸업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10년 이상 후 미래의 일이 될 가능성이 크고, 그땐 52개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에 의해 이미 대부분의 농산물 관세가 철폐된 상태일 것이므로 개도국 지위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결국 개도국 졸업선언의 실질적 비용은 없거나 적고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차기 농업협상에서는 식량안보에 필수적인 소수 품목을 제외하고 개도국 지위를 적용하지 않을 것’을 적절한 시점에 선언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단,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어떤 식으로든 개도국 졸업이 이뤄질 경우 우리나라 농업에 충격을 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이에 대한 농가의 두려움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따라서 개도국 졸업 때 생길지도 모르는 충격에 대비한 보험장치가 필요하다. 미국의 가격손실보상제도(PLC)와 같이 농업의 가격리스크를 완충하는 가격변동대응직불제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농업계도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이 개도국 졸업약속에 반대하는 것보다 훨씬 실익이 있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판단된다. 지금이 1930년대 이래 미국 농정의 중심을 이뤄온 가격리스크 완충장치를 우리 농업에도 도입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처: 농민신문] 원문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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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nJ 2020. 4. 16. 16:30

2019.10. 01 내일신문에 실린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회장의 글입니다.

 

   

 

독일 통일과 남북관계에서의 자주권

 


김영윤((사)남북물류포럼 회장)

 

 

 오는 10월 3일은 독일통일의 날이다. 햇수로 30년째다. 독일통일에는 고르바초프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페레스토로이카(perestroika, 개혁), 글라스노스트(Glasnost, 개방)가 있었기 때문에 동서독이 통일할 수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자신을 불태워 세계를 바꾼 촛불 같은 사람이다. 구소련을 무너뜨려 인류를 구했지만, 자신은 몰락한 사람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 국가에서는 끊임없는 민주화 투쟁이 일어났다. 스탈린을 비롯한 구소련에 의한 동유럽 지배, 즉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항거였다. 1953년 6월 구소련 점령지구인 동독의 수도 동베를린에서 일어난 시위를 비롯하여, 1956년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봄’과 1968년 8월 미완의 ‘체코프라하의 봄’ 등이 그것이었다. 1980년 폴란드 연대노조의 총파업도 마찬가지였다.

 

 동유럽 국가의 민주화를 억누르고 있었던 힘이 노골적으로 표출된 것은 1968년 11월 폴란드 제5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의 “브레즈네프 선언(Brezhnev Doctrine)”이었다. 브레즈네프 선언은 동유럽 국가에 대한 제한 주권론이다. 사회주의 진영 전체 이익을 위해 개별 국가의 주권은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만약 이에 대항 하는 국가가 있다면 전차를 몰고 가서 머리통을 날려도 좋다는 것이 브레즈네프 선언이다. 동유럽 국가의 친소정권을 통한 소비에트 체제의 무자비한 탄압을 말한다.

 

 동유럽의 변화가 가시화 된 것은 고르바초프의 브레즈네프 선언의 폐기가 현실화되면서부터다. 1988년 3월에 일명 '신사고(新思考) 외교'를 펼치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를 방문하여 소련의 새로운 외교방침인 이른바 '신 베오그라드 선언'을 한다. “완벽한 공산주의 모델은 없다. 그 누구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 한 나라의 장래와 체제는 그 나라 국민들만이 정할 수 있다. 어느 나라도 타국의 국내 상황에 간섭하거나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후 동유럽권 국가는 소위 벨벳혁명에 휩싸인다. 아무도 피 흘리지 않았던 부드러운 벨벳혁명은 브레즈네프 선언의 폐기가 원동력이었다. 동유럽 국가들의 구소련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소비에트 체제로부터의 이탈이었다. 자주권의 회복이었다. 구동독이 서독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자주권을 회복한 시민혁명 덕분이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로 동독 주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시민혁명이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여행의 자유를 원했던 동독주민들은 마침내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게 된다. 이어 두 체제는 전광석화같이 단일화했다. 구동독 주민이 이를 철저히 원했다. 구소련이 동유럽 국가들을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고르바초프가 없었더라면 독일통일은 불가능했거나 훨씬 늦추어졌을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미국이 한국을 좀 놓아 주면 좋겠다. 우리의 의지대로 남북관계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은 남북관계에서 과연 우리에게 자주권이 있는지 자문하고 있다. 독감치료제인 타미플루를 보내는 것도 미국에 먼저 물어봐야 했다. 긍정적인 답을 얻어 보내려고 해도 그 다음엔 운송수단이 문제였다. 대북 제재 하에서는 수송수단이 넘어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운송수단까지 허락을 받았으나, 이번엔 북한이 안 받겠단다. 왜 안 받으려고 할까? 인도지원은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는 상대의 처지와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인 '메아리(2019.7.15)'는 "민족의 이익보다 미국의 눈치부터 살피는 비굴한 사대근성 때문에 북과 남이 민족 앞에 한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고 북남관계는 또다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자존심 상한다는 것이다. 아홉 차례나 기계장치 점검을 위해 개성공단을 방북하겠다는 개성공단사업자들의 신청을 미국과의 관계를 들어 주저했던 정부가 지난 5월 처음으로 승인했지만, 이제는 북한이 관련 협의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도 다 마찬가지 맥락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고르바초프가 될 수는 없을까? 적어도 남북관계에서만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미국의 자세 변화도 중요하지만, 미국에 대한 우리의 자세도 중요하다. 미국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이제부터라도 미국에 할 말은 좀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