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환의 시베리아여행

GSnJ 2006. 10. 19. 15:37

시베리아횡단열차는 태양을 향해 달린다

(18부)

 

 GSnJ 이사장 이 정 환 

 

 

 

 28.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는 DNA가 있다.

 

  아무렴 조종사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기야 하랴마는 믿지 못하다보니 별의 별 걱정을 다하게까지 되었다. 아마도 일단 더 북쪽으로 날아가 남하하는 것이 근거리가 되고 비행시간도 단축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뉴욕으로 갈 때도 일단 거의 알라스카까지 간 후 남하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기억이 나며 나의 공연한 근심에 스스로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겁에 질린 끝에 지쳐선지 잠이 든듯하다.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나야 나의 선택이었으니 그렇다 치지만 아내야 비지니스석에 태워 준다기에 그런 줄만 알고 따라 왔는데 죽음의 공포 앞에 떨어야 하다니 억울하지 않은가. 그래도 나의 실수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 아내의 장점이다. 이런 저런 잡념에 휩싸여 얼마나 흘렀을까 비행기가 바다 위를 날기 시작했다. 나도 조금 안심이 되어 잠이 들어 몇 시간이나 됐을지, 안내 방송이 들리고 비행기 창문으로 험준한 연봉이 보였다. 아, 한국이다! 이제 이 비행기가 추락하지 않고 조금만 더 날아가면 서울이다. 조금만 더 날아라! 조금만!


  인천공항에 착륙한 순간, 오랫동안 꿈꾸었던 시베리아 횡단을 무사히 마친 기쁨과 비행가가 무사히 서울에 착륙한 기쁨이 겹쳐 나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감격에 휩싸였다. 아내는 정말 무서웠다고 몇 번이나 말했고, 나는 무슨 걱정을 그렇게 했느냐고 짐짓 폼을 잡았으나 겁을 먹기는 내가 더 했는지 모른다. 심리학자가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이 같은 생각, 남성콤플렉스가 남자를 괴롭히고 단명하게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남자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나는 앞장서서 당당히 공항을 빠져 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논과 밭이 펼쳐지고 두렁에는 잡풀이 무성하여 아름답다. 비행기 추락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자연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일까. 초여름의 빛나는 태양 아래 낮은 구릉이 이어지고 나지막한 산등성이가 겹쳐진 그림 같은 풍경은 더욱 아름답다. 어디 시베리아만 아름다우랴. 주말농장인 듯한 밭에는 화사한 태양 아래서 여러 사람들이 어우러져 열심히 무언가 심고 있는 듯 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얼마 전 아파트 옆 공터의 조그만 텃밭에 젊은 아주머니가 저녁나절 서너 살이나 되었을 아이를 데리고 나와 열심히 호미질을 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사람은 자연을 접하고 싶어 하고 농사일을 하고 싶어 하는 DNA가 있는 것인지 모른다. 사실 우리는 긴 농경시대를 거쳐 진화해 왔으므로 그런 DNA가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는가. 러시아 사람들만 다차에서 자연과 농사일을 즐기려는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여유가 생길수록 자연을 사랑하게 되고 스스로 무언가 심고 가꾸려는 잠재된 욕망이 살아나고 그것이 문화화 된다. 시간을 보내는 일이 문화로 발전했다는 시베리아에서의 발견이 나에게 새로운 것을 터득하게 하는 것 같다.

 

 29. 맙소사! 시베리아에서 찍은 사진이 날라 가버렸다니.

 

 나는 시베리아에서 그 긴 시간을 무엇을 했나? 책을 수십 권 읽고 큰 깨우침을 얻었나? 긴 명상을 통해 무언가 깨달았나? 아내와 진지한 대화로 새로운 부부관계를 구축했나? 생각해 보니 그저 그 긴 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러나 그 긴 시간 늘 무언가 하고 있었다. 일상의 삶도 마찬가지다. 1년 365일 무엇을 하며 일년을 보냈을까? 지난 10년 무엇을 하며 그긴 세월을 보냈나? 생각해 보면 그저 긴 시간을 보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그야말로 유수와 같이 흐르니까.    


 그런데 이렇게 한가한 상념에 젖어있을 수 없게 되었다. 디카로 찍어 노트북에 저장한 사진을 보기 위해 컴퓨터를 켰으나 예의 알 수 없는 메시지가 뜨며 먹통이지 않는가? 이 노트북이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런데 괴롭히는 정도를 넘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노트북을 샀던 회사에 연락하여 기술자가 왔으나 그의 능력으로 고칠 수 없다며 파일이 전부 훼손되었을지도 모른다지 않는가! 아무튼 그는 노트북을 가지고 갔다. 그리고 다음 날 컴퓨터는 고쳤으나 사진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내문서’에 저장되었다고 하자 그는 ‘내문서’ 파일은 복구할 수 없단다. 맙소사! 시베리아에서 찍은 사진이 다 날라 가버렸단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쉽게 물러날 수는 없었다. 나는 마구 고함을 쳤다.


“이 사진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다. 여행기를 쓰려고 준비한 사진인데 복구할 수 없다면 회사가 책임을 져야한다. 소송도 불사한다. 무조건 복구해내라.”

  그는 그럼 일본 본사(내가 산 노트북은 아주 소형의 도시바 제품이었다)에 보내 복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아무튼 복구해 내야 한다.”

나는 다시 힘주어 말했다. 수일 후 그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복구된 것 같다며 사무실로  오겠단다. 아! 이런 일도 있구나. 너무  반가웠다. 나는 가슴을 조이며 기다렸고 그가 가지고 온 노트북엔 정말 대부분 사진이 순서는 뒤죽박죽이지만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정말 수고 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지난번에 그렇게 몰아쳤던 직원의 손을 잡고 반복해서 말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시베리아 여행기는 가능해 졌고 많은 사람들과 이 글을 통해 즐겁게 대화할 수 있었다.

 

  나는 사진을 하나하나 아내와 같이 보며 18일간을 복기했다. 우리를 그렇게 불안하게 했던 러시아에 대한 오해와 과장이 결국 우리 여행을 사실 이상으로 더 스릴 있게 만들었고, 러시아 항공기를 탄 것이 죽음을 걱정하는 시간을 갖는 행운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축복이 아닌가!

 

  이번 성공에 자신감이 붙어 다음엔 다시 모스크바로 날아가, 이번엔 러시아 비행기는 절대 안타겠지만, 다시 기차를 타고 폴란드, 체코, 항가리를 거쳐 불가리아, 옛 유고를 지나 그리스, 그리고 이스탄불까지 가리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 다음엔 꿈의 페르시아를 지나, 위험해서 과연 갈 수 있을까 모르겠으나, 실크로드를 횡단하리라. 그리고 서장을 거쳐 서울로 오리라. 이 꿈이 과연 이루어질까?

 

(이제까지 여행기를 읽어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시베리아횡단열차에 몸을 싣고 태양을 향해 달려 보시기 바랍니다.)

 
 
 

정환의 시베리아여행

GSnJ 2006. 10. 19. 15:36

시베리아횡단열차는 태양을 향해 달린다

(17부)

 

 GSnJ 이사장 이 정 환

 

 26. 긴 여행의 끝

 

  아침에 조금 늦게 눈을 뜬데다 침대 위에서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9시가 되서야 일어났다. 창밖으로는 소련이 세계 최초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내려다 보였다. 1957년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는 초등학생이던 나에게도 기억이 생생한 사건이었다. 아버지가 우주 경쟁에서 미국이 뒤졌다며 소련을 따라 잡으려면 한참 걸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희미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치열하게 전개된 긴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은 1969년 내가 육군 병장이던 시절 아폴로호를 달나라에 착륙시킴으로써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암스트롱이 달 표면을 거니는 모습을 TV를 통해 바라보며 흥분하던 기억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느지막하게 아침을 마친 우리는 모스크바 시내를 감싸고 흐르는 모스크바 강의 유람선을 타러갔다. 유람선은 브르지노 다리에서 러시아 호텔까지 약 30분 정도 운행하는데, 강변의 크렘린궁, 성당, 호텔 등이 숲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시선을 끈 것은 강가 숲 곳곳에 벤치가 놓여있고 어김없이 남여 연인 한 쌍이 앉아 진한 애정표시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지쳐 시선을 배안으로 돌리자 젊은 여자들이 하나같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길거리를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던 터라 이제 놀라지는 않지만 저 여자들은 무슨 사연이 있어 담배를 피워댈까? 라고 잠시 생각해 본다. 물론 패선이겠지. 그러나 정치사회적 격변과 경제적 곤경, 술에 취해 있는 남자들에 대한 실망(민정이의 이야기를 믿는다면), 그런 것들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아무튼 중학교 정도부터 여자 아이들이 공공연히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는 재윤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러는 사이 유람선의 오른편 강기슭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조형물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제정 러시아의 위대함을 대변한다는 표토르 대제의 위풍당당한 동상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저 조형물은 필경 러시아의 위대함을 외치고 있음이리라. 열심히 카메라에 동상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강 위의 다리에 차량행렬이 길게 늘어선 것이 보였다. 재윤이는 주말이 되어 다차로 향하는 사람들이라며,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다차로 가느라고 도로는 자동차로 붐비고 기차도 만원이 된다고 덧붙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았던 다차의 모습과 맵시를 내고 카메라 앞에 서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아마 오늘 그 할머니 다차에도 딸과 손주가 찾아와 온 가족이 같이 활기찬 주말을 보내겠지.

 

  마지막 행선지 크렘린성에 이르자 우선 입구에 있는 바실리 성당의 붉은색, 청색 등 화려한 색깔의 양파 모양 지붕이 시선을 붙잡는다. 이 건축물에 대한 재윤이의 설명을 흘려들으며 관광객들과 어울려 넓은 크렘린 광장을 둘러보다 거대한 레닌의 무덤 앞에 이르렀다. 무덤 앞의 초병이 편안한 자세로 서 있는 모습에서 레닌이 더 이상 ‘위대한 소비에트의 영웅’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재윤이는 레닌에 대한 러시아 사람들의 존경심은 아직도 매우 강하다며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대포지만 한 번도 발사된 적은 없다는 ‘황제의 대포’와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지만 한 번도 울려 본적이 없다는 ‘황제의 종 ’은 심심치 않은 구경거리였다. 이 종은 주조 중에 불이나 물을 뿌리자 종의 한 쪽이 깨져 떨어져 나갔단다. 그 후 깨진 모습 그대로 울리지 못하는 종이 되어 도리어 사람들을 더 즐겁게 해주는 명물이 되었단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기다리던 재윤이는 보석박물관이 제일 볼만하다고 서둘러 앞장섰다. 그러나 오후 개관 시간까지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으므로 우리는 간단히 포기하고 크렘린성과 연결되어 있는 알렉산드로프 공원으로 나왔다. 공원 벤치마다 사람들이 한가로이 앉아 화창한 6월의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멀리 기마경찰이 머리를 박박 깎고 가죽잠바를 입은 청년들을 검문하는 모습이 보였다. 재윤이는 스킨헤드일 것이라고 했다. 스킨헤드족은 유색인종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결사체로 길거리에서 유색인종을 만나면 느닷없이 공격을 하기도 하므로 미리 잘 살펴 피해야 한다고 겁을 준다. 재윤이 말로는 스킨헤드족은 5월에 기승을 부리는데 올해는 종전 60주년을 맞아 세계 정상들이 모이기 때문에 단속이 아주 엄격하여 큰 사고가 없었다고 한다.

 

  드디어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는 볼쇼이 극장으로 향했다. 모스크바에 가면 꼭 발레를 보되 볼쇼이 극장에서 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 서울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왔던 것이다. 우리는 서울을 떠난 후 줄곧 청바지 하나로 견디어 왔지만, 오늘을 위해 아내는 그럴듯한 옷 한 벌을 따로 가지고 왔고 나도 노타이셔츠 위에 걸칠 자켓을 한 벌 준비해 왔으므로, 16일간의 여행으로 꾀죄죄할 터이지만 나름대로 멋을 내고 당당히 극장에 들어섰다. 극장 안은 원형이었고 불빛이 화려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아내는 사진을 찍자고 소근댔으나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몰라 망설이는데 몇 사람이 용기 있게 카메라를 쳐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에라, 모르겠다! 다소 촌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도 카메라를 지켜들고 얼른 셔터를 눌렀다(물론 공연시작 전!). 이 극장이 곧 대 수리에 들어가 3년간은 아무도 여기서의 공연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를 더 즐겁게 했다. 오늘 밤의 공연은 ‘돈키호테’였다. 발레리나의 춤은 환상적이라고 하기에 충분했고 오케스트라의 음악도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는 정말 만족했고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호텔에 돌아와서도 공연의 잔영이 남아 즐거운데다, 또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지 않느냐고 의기투합하여 우리는 호텔 바로 갔다. 나도 술을 즐겨 마시지만 아내도 지지 않고  잘 마신다. 다툴 때면 아내는 ‘나니까 당신 같은 사람과 산다.’고 하고 나는 ‘그럼 그만두자.’라고 험한 말을 주고받지만 같이 술을 마실 수 있어 그나마 같이 사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같이 동의한다.

 

  아침에 체크아웃 하러 내려가자 재윤이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 기차역에 늦게 나와 나에게 혼이 났지만 재윤이는 아주 착하고 순수한 청년이었다. 안내를 해 본 경험이 적어 능숙하지는 못했지만 자기가 알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안내하는 모습이 귀여워 가끔 큰아들아이 생각이 나곤했다. ‘운호(큰아들아이)가 이런 일을 한다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하니 부족한 것도 이해가 되어 탓할 수가 없었다. 재윤이는 자기 어머니에게 우리 이야기를 했더니 집에 모시고 오면 좋을 텐데 라고 하시며 이곳에서 생산된 꿀을 한 병 주셨다고 내 밀었다. 뜻밖의 상황에 놀랐지만 재윤이와 어머니의 마음씀이 너무 고마워 몇 번이나 어머니께 고맙다고 전하라며 받았다.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러시아어도 능통하게 구사하도록 하라고 당부하며 손을 잡자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이렇게 해서 또 한번 아쉬운 작별을 했다.

 

 27. 비행기 추락의 공포

 

 서울로 돌아가는 것은 시베리아의 중심도시 노보시비리스크를 경유하는 러시아 비행기를 이용하게 되어 있다. 서울에서 일정을 짤 때 우리나라 비행기의 이코노미석 요금이면 러시아 비행기의 비즈니스 좌석을 타고도 남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 망설여지긴 했으나 러시아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시베리아 항공으로 정한 후 아내에게는 ‘올 때는 비지니스석으로 했으니까 널찍한 의자에 기대 늘씬한 러시아 아가씨의 서비스를 받으며 돌아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색을 냈었다. 역시 비즈니스 승객을 위한 대기실은 고급스러웠고 음료와 간식거리도 준비되어 있었으므로 아내는 만족해했고 나의 선택은 옳았다고 믿었다. 그리고 노보시리비스크에 도착하자 금발의 미인이 트랩 아래서 ‘서울 503’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아주 반갑게 ‘세울?’이라고 묻을 때까지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미인이 서툴지만 또박또박한 영어로 자기를 따라 오라며 우리만을 별도로 안내할 때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우리가 안내된 비즈니스 대기실은 실망스러웠다. 덜렁하니 크기만 하고 아무런 시설도 없고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여기서 두 시간 반을 기다려야한다.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으나 우리는 아들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쉽게 연결되었고 아들아이는 시험공부로 이번 주말 집에 못 온다며 양해를 구했다. ‘시험이라면 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며 딸 아이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를 않는다. 금방 ‘무슨 일일까?’ 조금 걱정이 되면서 '나는 정환이 등만 보고 산다'고 하셨다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창에는 석양이 아름답게 가득 찼다. ‘시베리아의 마지막 석양이구나!’라고 생각하며 하염없이 바라보다 노트를 폈다.

  

  연구소에 대한 ‘시베리아 구상’은 어설프지만 마무리되어 갔다. 연구소 이름은 여러가지 뜻을 함축하여 GS&J로 하고, 여행 떠나기 전 면담했던 여자 직원을 웹마스터로 채용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컴퓨터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주켄사람들」을 읽으며 '열정이 사람을 바꾸고 성과를 결정한다'는데 공감하였기 때문이었다. ‘철저한 탐구와 최고의 신뢰’를 기치로 내걸고 농업문제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연구 범위를 넓혀 가리라. 순수한 연구소를 지향하여 토론회, 세미나, 교육보다는 연구 보고서를 내는 데 중점을 두자. 중견 학자와 현장 전문가를 연결하는 연구네트워크의 허브가 되어 최소의 인력으로 최고의 연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자. 시작은 조용히 하고 실적을 쌓으면서 서서히 나가자. 연구의 객관성을 지키고 중요한 쟁점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발표하여 관계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연구소로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자. 처음 상당 기간 사재를 털어 넣자. 신뢰가 쌓이면 엔젤도 나타나고 고객도 나타나리라.

 

  예의 항공사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서울행 비행기로 향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국제선까지 가는 길은 꾀나 멀고 어두웠다. 그리고 몇 번의 시큐리티 체크 끝에 겨우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비행기의 입구 문턱이 너덜너덜하고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 있을 만큼 낡은 비행기였다. 비행기 내부도 그 엉성함이란! 옛날 시골 버스에 올라탄 기분이 이랬을까? 10여개의 비즈니스석에는 우리와 또 한 사람이 있을 뿐인데 비즈니스고 뭐고 할 계제가 아니었다. ‘이것 참 큰일이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내에게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잡았다. 불안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비행기 문이 닫히고 엔진소리가 높아지며 출발하려하는 순간, 엔진 소리가 급격히 낮아진다. 다시 비행기 문이 열리자 작업복을 입은 엔지니어들이 올라와 조종실로 가는 것이 보였고, 안내 방송은 10분 정도 지연되어 출발할 것이라고 한다. 무슨 일이지? 아내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20여분 쯤 지났을까, 엔지니어들이 내려가고 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요란해졌다. 이제 출발하는구나, 하는 순간 다시 엔진 소리가 잦아드는 것이 아닌가. 엔지니어들이 올라오고 뭐라고 떠드는데, 이건 정말 옛날 시골 버스가 고장 나서 본네트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풍경 그대로였다. 아내는 눈을 감고 아무 말도 없다가 가끔 눈을 뜨고 어두운 창밖을 내다본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기다리고 있겠지. 그러나 사실 이제 비행기가 뜬다고 해도 더 걱정이었다. 이런 비행기가 서울까지 제대로 갈 수 있을까? 차라리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 밤늦은 시간,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이 시베리아의 한가운데서 내린들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에라 모르겠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왜 이런 비행기를 선택한 것일까?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후회가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2시간 가까이 흐르고 우리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버렸을 즈음 비행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드디어 이륙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당탕 소리가 나며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어이쿠, 비행기가 부서지는 건가! 정말 간이 콩알 만해지는 것 같았다. 아내와 나는 겁에 질려 마주 보았다. 겨우 비행기가 고도를 잡자 승무원이 와서 통로에 떨어진 조명등 겉 뚜껑을 들어 보였다. 무어라고 해야 하는지. 탱큐? 스빠씨버? 우리는 시선을 피했다.

 

  이 비행기가 제대로 갈 수 있을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문제를 미리 발견해서 잘 정비했기 때문에 도리어 더 안전할 것이라며 나도 믿지 않는 이야기로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나 나도 안 믿는 것을 남이 믿게 할 수 있으랴. 나중에 아내는 비행기가 추락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 보았다고 이야기 했다. 나도 서울을 떠날 때 아이들에게 몇 자 적어 놓고 온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행기는 안전 고도를 잡고 유유히 시베리아 벌판 위를 날았다. 우리가 기차로 달려온 길을 거슬러 가고 있는 것이겠지. 나는 위스키 한잔을 시켜 마시고 아내는 담요를 두장 겹쳐서 덮고 잠을 청한다. 창 밖 멀리 지평선에는 붉은 빛이 보이고 시베리아 대륙은 시커먼 모습으로 깔려 있었다. 가끔 불빛이 보이는 것은 마을이고 회색으로 구불거리는 선은 조그만 강인 것 같았다. 넓게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호수나 늪이리라. 나는 위스키를 연거푸 서너 잔 마셨고 아내는 꼼짝 않고 의자에 기대 있다.

 

  이런 긴 여행은 인생 같다.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고, 즐거운 일이 있는가하면 걱정거리도 생긴다. 후회스런 일도 많고. 무엇을 했는지 모르게 시간이 가고 지나고 보면 아쉬움도 많고. 좀 더 준비를 잘 할걸 하는 생각이 나지만 막상 열심히 준비한 것은 쓸모없어지고. 그런 가운데 아내가 있어 위안이 되고.

 

  그런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땅이 온통 눈과 얼음으로 덮인 것처럼 보였다. 이상하다. 지금 눈이 덮였다면 시베리아의 북쪽인데, 서울행 비행기가 왜 시베리아 북쪽으로 왔지?

도대체 이 비행기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GSnJ/GSnJ 새소식

GSnJ 2006. 10. 19. 15:29

   

GS&J가 제시한 대안, 논란 가열


 GS&J의 창립 1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움이 지난 10월 10일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한국 농업·농촌에 미래가 있는가?”란 주제로 개최되어 모두 5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 협상대안과 대타협 제안

 이 날 심포지움에서 이정환 이사장은 한미FTA, 쌀 관세화, DDA 등 농산물 시장개방에 대한 농업인의 불안감을 제거하기 위해 정부는 이제까지의 구조개선 중심 농정에서 현재 수준의 농업 총소득을 직접지불 방식으로 보장하는 소득안정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필요한 재정은 앞으로의 협상타결 조건에 따라 다르나 2009년에 1조 7천억원에서 2017년에는 4조원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러한 보장을 전제로 농업인이 2017년까지 2조 4천억원 정도의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3만불 소득 시대에 상응하는 농가소득이 달성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서진교 박사는 미국산 사료용 옥수수와 대두 등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고, 동시에 현재 UR에서 양허한 수준을 훨씬 초과하여 운용하고 있는 저율관세수입물량(TRQ)을 축소하면 미국의 수출액이 당장 3~4억 달러 증가할 것이므로 이를 조건으로 우리의 민감품목에 대해서는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 내는 전략을 제안하였다.


    


□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의길 제시

 농업·농촌에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구체적 대안으로서 먼저 황의식 박사는 이제까지 일단 생산한 후 파는 것을 생각하던 방식에서 소비자의 필요와 욕구를 먼저 발견하고, 그에 맞는 상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전환하여 소비자의 가치를 높이면 농산물에서도 대중적인 신상품과 신시장이 얼마든지 창출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어서 강신겸 박사는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말해 왔으나 이제는 그것을 상품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농촌의 모든 것을 문화화 하는 전략을 수립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끝으로 김영생 박사는 국제경쟁은 물론 소비자의 고급화된 욕구를 현재의 개별 농가가 만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농업생산과 유통을 담당하는 새로운 기업적 조직이 필요하고 이 조직은 유능한 CEO를 중심으로 계열화, 분업화, 외주화 등 내부적 경영혁신을 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등록비 내고 온 청중으로 대성황

 이 날 심포지움은 등록비를 받고 사전 등록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음에도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각지에서 연 25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고, 대부분이 심포지움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 참여 열기를 반영하였다. 박해상 농림부 차관, 한덕수 한미 FTA지원위원장, 고건 전총리도 발표를 경청하였고, 강춘성 농업기술자협회장, 목찬균 새농민회장 등 농업계 지도자들도 끝까지 토론을 경청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 농업계의 쟁점으로 부상, 토론 이어갈 예정

 이 날 심포지움에서 제시된 주장에 대해 언론은 매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정환 이사장의 대타협 제안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낙관적 전망에 기초한 위험한 주장이라는 비판적 의견이 제시되면서 앞으로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GS&J는 홈페이지에 발표논문은 물론 토론 및 언론 보도내용을 게시하였으며, 앞으로 발표자의 반론, 일반 독자의 질문과 비평을 계속 게시하여 토론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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