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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nJ 2015. 7. 20. 19:59

2015. 5. 27 농민신문에 실린 GS&J 연구위원 이선철 감자꽃 스튜디오 대표의 글입니다.

 

 

마을이 문화다

 

 
GS&J 연구위원 이선철

 (감자꽃 스튜디오 대표)

 

 

  필자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 대학로 한복판에서 역동적인 청춘을 보내다 느닷없이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도 한 산골마을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귀농도 귀촌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서 단지 자연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대책 없는 강원도행을 결심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번 <사시사철>에서는 저의 농촌 정착기를 통해 농촌 마을에도 도시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낯선 문화공간이 충분히 녹아들 수 있고, 상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이주를 결심했을 당시를 떠올려보면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불과 기백만원의 돈과 오랜 과로로 지친 심신이 전부였습니다. 그야말로 집도 절도 땅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새 둥지를 틀 묘안으로 문득 ‘폐교’가 떠올랐습니다. 김덕수패 사물놀이 기획실장 시절 폐교를 활용해 사물놀이 학교와 전통악기 공방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던 터라 버려진 흉물이 오히려 기회의 공간으로 여겨진 것이죠.


 인터넷에서 전국을 찾아 헤매다 지금의 장소를 발견하고는 교육청으로부터 임차해 우선 교실 한 칸을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만 고치고 부지런히 건강을 추슬렀습니다. 그러던 중 함께 생활하던 동화작가가 슬그머니 본인의 신춘문예 당선을 알렸고 그 작품명이 <감자꽃>이어서 이를 기념하는 작은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마침 당시 강원도지사님이 현장을 방문하시고는 “이 공간을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한번 활용해 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서둘러 건축가와 함께 폐교의 새 단장을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폐교가 낡았다고 해도 마을 주민들의 모교이자 마을의 역사인 학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주민들의 상실감이 얼마나 클까 하는 마음에 학교의 원형은 그대로 살려 놓았습니다.


 그릇을 만들면 그 안에 담을 음식이 필요한 법이죠.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는 마음에서 마침 자문을 하고 있던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유치해 청소년들과 주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을 제공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을의 특산물을 활용해 축제를 만들고 여름이면 지역의 아이들을 위한 예술캠프를, 겨울이면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열심히 준비한 공연으로 송년회를 열고 조촐한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사례가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방문객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죠. 무슨 대단한 시설이나 이벤트가 있거나 큰 사업이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도통 외지인이 올 일이 없는 한적한 농촌 마을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 방문객이 먹고 자고 구매하는 것은 모두 마을 주민들의 업소를 이용하도록 연계하면서 예기치 않게(?) 지역 관광 활성화와 주민 소득 측면에도 다소 기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의 문화공간과 마을의 자원이 한데 어우러진 합작품이 탄생한 셈입니다.


 어느 학자는 문화를 ‘역사’와 ‘예술’ 그리고 ‘생활’로 구분하기도 했는데, 이들 요소 앞에 지역의 이름을 붙이면 지역에서 문화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문화는 돈 있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몸을 구성하는 피와 살이자 공기와 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작은 마을에도 나름의 역사가 있고 예술이 흐르며 이는 주민들의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마을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문화입니다. 그리고 바야흐로 농촌에서도 문화가 힘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이 힘을 어떻게 길러내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입니다.



 ●이선철 대표는 자우림·이적·노영심 등 유명가수의 음반을 발매한 음반사 사장이자 유명한 공연기획가였다. 30대 후반에 강원도 평창으로 이주해 복합문화예술공간인 ‘감자꽃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현재는 지역 문화기획자 겸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행사 기획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