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18. 12. 13. 08:58



 

훅하고 저만치 가버릴 가을의 끝을 잡고 느릿느릿 온전히 나를 위해 걷고 싶었다. 어디로 떠나도 좋을 때지만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도 못하고 바삐 살아온 나를 위해서 떠난 길, 하동 진교면 백련리 도요지로 향했다.

 


하동 진교면 백련리 도요지는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취화선>의 촬영지였다.


남해고속도로 진교나들목을 나와 다시금 옛 남해고속도로로 방향을 틀어 하동 쪽으로 5분여 더 가면 조선왕조 마지막 천재화가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취화선>의 촬영지였던 사기아름마을이 나온다.

 

커다란 찻사발이 마을 입구에서 마치 장승처럼 서 있다. 사기는 푸른 하늘을 담았는지 마을 주위가 맑고 푸르다.

 


하동 진교면 백련리 도요지 사기아름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찻사발

 

해마다 7월 말이면 찻사발과 연꽃의 만남축제로 인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는 명성처럼 지난여름에 뜨겁게 피웠던 연꽃의 흔적을 마을 연밭들이 머금고 있다. 도자기 체험관 근처에 차를 세웠다.

 

숙성시킨 흙을 물레에 올려놓고 손으로 빚을 물레 체험실을 지나자 분청사기가 빙 둘러 전시된 공간이 나온다. 철화당초문자라편병을 비롯한 분청사기를 구경하며 가마로 걸음을 옮겼다. 활활 타오르는 가마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화가 장승업의 영화 <취화선>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하동 진교면 사기아름마을 도예 체험관 가마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며 무명도공추념비를 찾았다. 마을 안 새미골가마터에 세워둔 추모비를 여기로 옮긴 모양이다. 추모비는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 일본군들이 백련리에서 만든 도자기도 강탈했을 뿐 아니라 이곳의 도공들을 납치했다. 억울하게 죽은 무명 도공들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한 빗돌 앞에 잠시 고개를 숙여 넋을 달랬다.

 


하동 진교면 사기아름마을에 있는 무명도공추념비

 

추모비 옆에는 자유롭게 변신하는 로봇 같은 돌조각 형상에 작은 마당이 있다. 해바라기처럼 햇살에 샤워했다. 체험관을 나와 본격적으로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먼저 연밭이 지난여름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전깃줄 사이로 아직 저물지 못한 달 조각이 걸렸다. 마치 줄넘기를 하는 모양새다.

 


하동 진교면 사기아름마을에서 바라본 하늘에는 전깃줄 사이로 아직 저물지 못한 달 조각이 걸렸다. 마치 줄넘기를 하는 모양새다.

 

여느 동네 벽화가 아니라 자기로 빚어 모자이크처럼 하나하나 붙여 만든 봉황 타일이 폐가 담벼락에서 걸음을 세운다.

 


하동 진교면 사기아름마을 내 폐가에 자기로 빚어 모자이크처럼 하나하나 붙여 만든 봉황 타일이 폐가 담벼락에서 걸음을 세운다.

 

영화 <취화선>의 촬영지였던 새미골가마터는 문은 잠겨 있고 을씨년스럽게 찾는 이 없어 흉가로 변했다. 체험관 앞에 있던 무명도공추모비도 근처에 있었다. 이를 알려주는 안내판도 벗겨져 보기 흉하다.

 


하동 진교면 사기아름마을 영화 <취화선>의 촬영지였던 새미골가마터는 문은 잠겨 있고 을씨년스럽게 찾는 이 없어 흉가로 변했다.

 

글 벗겨진 안내판을 차근차근 읽으면 이곳의 옛 지명은 샘문골(새미골)을 일본말로는 이도(井戶)라고 부른다.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찻사발인 이도다완이 이곳 백련리 도요지에서 발견된 유물들과 비슷하다고 일러준다. 을씨년스런 가마터와 달리 마을 골목길 풍경은 넉넉하다.

 


하동 진교면 사기아름마을 골목

 

어느 집 담 너머로 한가득 심어진 황화코스모스가 넘치는 야생마라는 꽃말처럼 푸른 하늘을 내달린다. 하동요 전시관 옆집에는 담쟁이들이 사람 살지 않는 흔적을 뒤덮고 있다.

 


하동 진교면 사기아름마을 어느 집 담 너머로 한가득 심어진 황화코스모스가 넘치는 야생마라는 꽃말처럼 푸른 하늘을 내달린다.

 

마실 가듯 마을을 거니는데 저만치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알은체를 한다. 그 위로 까치들이 전깃불에 앉아 나를 위해 노래 한 가닥 들려준다.

 


하동 진교면 사기아름마을 내 빈 집을 담쟁이들이 사람 살지 않는 흔적을 뒤덮고 있다.

 

노래에 이끌려 한 걸음 더 다가서자 화들짝 놀라 날아오른다. 날렵한 몸매가 부럽다. 어디로 가서 내 왔다고 일러줄 참인지 궁금하다.

 


하동 진교면 사기아름마을 까치들이 전깃불에 앉아 나를 위해 노래 한 가닥 들려준다. 노래에 이끌려 한 걸음 더 다가서자 화들짝 놀라 날아오른다. 날렵한 몸매가 부럽다.

 

우리의 마음을 훔쳐 지나는 바람은 이마의 땀마저 시원하게 훑어간다. 여기는 시간마저 느릿느릿 흐른다. 가을이 농익어 간다.

 


 마실 가듯 느릿느릿 산책하기 좋은 하동 진교면 사기아름마을. 가을이 농익어 간다.




 


가서 살고싶네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