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해찬솔 2020. 4. 7. 06:54

47일 오늘은 신문의 날, 언론인이라면 꼭 여길 찾아 읽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언론인 뿐 아니라 공무원과 공직에 나서는 이라면 목숨을 내걸고 직언한 남명 조식 선생의 을묘사직소를 꼭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을묘년에 사직하는 상소문(乙卯辭職疏)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에서 옮긴 <남명집>

 

선무랑 단성 현감에 새로 제수된 조식(曺植)은 진실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주상 전하께 소()를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선왕(先王,중종)께서는 신이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시고 처음에는 참봉(參奉)에 제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왕위를 이으신 뒤에, 주부(注簿)로 제수하신 것이 두 번이었는데, 지금 또 제수하여 현감으로 제수하시니 떨리고 두렵기가 언덕과 산을 짊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감히 황종(黃琮) 한 자쯤 되는 땅(임금이 있는 대궐)에 나아가서 하늘의 해와 같은 은혜와 사례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깊은 산과 커다란 못 어느 곳에 있는 것이든 재목을 버려두지 않고 그것을 가져다가 커다란 집을 짓는 일을 이룩하는 것은 훌륭한 목수가 하는 것이지 나무가 스스로 참여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전하께서 사람을 쓰시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시는 책임 때문입니다. 제가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니, 감히 그 큰 은혜를 저 혼자 누릴 수 없습니다만 머뭇거리며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뜻을 끝내 측석(側席,어진 사람이 임금에게 나아가는 자리) 아래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은 벼슬에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뜻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저의 나이는 예순에 가깝고 학문은 어두우며, 문장은 과거시험 끝자리에도 뽑힐 수 없고 행실은 물 뿌리고 비질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기에도 모자랍니다. 과거시험을 보기 10여 년 동안에, 세 번이나 떨어진 뒤 물러났으니, 애초부터 과거 공부를 일삼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과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런 사람은 성질 급하고 마음 좁은 평범한 백성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큰일을 할 만한 온전한 인재는 아닙니다. 하물며 그 사람 됨됨이가 선한가 선하지 아니한가는, 과거를 보려고 하느냐 과거를 보려고 하지 않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잘것없는 신이 이름을 도둑질하여 집사(執事, 추천 담당한 관원)에게 제가 훌륭한 인물이라고 잘못 판단하게 했고, 집사는 이름만 듣고서 전하께서 제가 훌륭한 인물이라고 잘못 판단하시도록 한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과연 신을 어떠한 사람이라 생각하십니까? ()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장에 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장에 능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도를 지닌 사람은 아니며, 도를 지닌 사람은 반드시 신처럼 이렇지는 않습니다. 신에 대해 다만 전하께서 아시지 못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재상도 또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알지 못하면서 등용하여 훗날 국가의 수치가 된다면, 어찌 죄가 보잘 것 없는 신에게만 있겠습니까? 헛된 이름을 바쳐 몸을 파느니, 알찬 곡식을 바쳐 벼슬을 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신이 차라리 신의 한 몸을 저버릴지언정 차마 전하는 저버릴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아가기 어려운 첫 번째 까닭입니다.



전하의 나라일이 이미 그릇되었고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은 이미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미 이반되었습니다. 비유하자면, 백 년 동안 벌레가 그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이미 말라버린 큰 나무가 있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어느 때에 닥쳐올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 지경에 이른 지가 오랩니다. 조정에 있는 사람 가운데 충성된 뜻 있는 신하와 일찍 일어나 밤늦도록 공부하는 선비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형세가 극도에 달하여 지탱할 수 없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손쓸 곳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낮은 벼슬아치는 아래에서 히히덕거리면서 주색만을 즐기고, 높은 벼슬아치는 위에서 어름어름하면서 오로지 재물만을 늘리며, 물고기의 배가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데도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궁궐 안의 신하는 후원하는 세력 심기를 용이 못에서 끌어들이는 듯하고 궁궐 밖의 신하는 백성 벗기기를 이리가 들판에서 날뛰듯 합니다. 그들은 가죽이 다 헤어지면 털도 붙어 있을 데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신은 이 때문에 은근히 걱정하고 깊게 생각하면서 낮에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한 것이 여러 차례이고, 크게 한탄하면서 아픈 마음을 억제하며 밤에 천장을 쳐다본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자전(慈殿,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께서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한 외로운 아드님이실 뿐이니, 천 가지 백 가지의 천재(天災)와 억만 갈래의 민심(民心)을 어떻게 감당해내며 무엇으로 수습하시겠습니까? 냇물이 마르고 곡식이 비처럼 내리니, 그 조짐이 무엇이겠습니까? 노랫가락이 구슬프고 입는 옷이 흰색이니, <나라가 어지러울> 형상이 이미 나타났습니다.

이런 때를 당해서는 비록 재주가 주공(周公)소공(召公)을 겸하고, 지위가 정승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또한 어떻게 손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한 보잘것없는 몸으로 초개와 같은 재주를 가진 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위로는 만에 하나도 위태로움을 붙들 수 없고, 아래로는 털끝만큼도 백성을 보호할 수 없으니, 전하의 신하 노릇하기가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조그만 헛된 이름을 팔아서 전하의 관직을 얻어 그 녹을 먹으면서도 그 녹에 맞는 일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신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이것이 나아가기 어려운 두 번째 까닭입니다.

또 제가 요즈음 보건대, 변방에 일이 생겨(을묘왜변) 여러 대부(大夫)들이 제 때에 밥도 먹지 못하지만, 신은 놀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20년 전에 터질 것인데, 전하의 신무(神武)하심에 힘입어서 지금에야 비로소 터진 것이지, 하룻저녁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조정에서 재물로 사람을 임용하니, 재물만 모이고 백성은 흩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장수의 자격에 합당한 사람은 없고 성에는 군졸이 없어서, 외적이 무인지경에 들어오듯 했으니 이것이 어찌 괴이한 일이겠습니까? 이번에도 대마도(對馬島) 왜노(倭奴)가 향도(向導)와 남몰래 짜고 만고에 끝없는 치욕스러운 짓을 하였건만, 왕의 신령한 위엄이 떨치지 못하여 마치 절하듯 했습니다. 이는 옛 신하를 대우하는 의리가 혹 주()나라 예법보다도 엄하면서 원수를 총애하는 은덕이 도리어 망한 송()나라보다 더한 경우(宋襄之仁)가 아니겠습니까? 세종께서 남쪽 오랑캐를 정벌하시고 성종께서 북벌하신 일을 보아도 어디에 오늘날과 같은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피부에 생긴 병에 지나지 않아서 가슴과 배의 통증이 되지는 못합니다. 가슴과 배의 통증이란 걸리고 막히어 위아래가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이니, 이곳은 공경대부(公卿大夫)가 목이 마르고 입술이 타들어가도록 열심히 일하지만, 수레는 달리고 사람은 달아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근위병(近衛兵)을 불러 모으고 나랏일을 정돈하는 것은 자질구레한 정치나 형벌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전하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방촌(方寸, 마음)의 사이에서 말이 땀을 흘리는 것처럼 노력하여, 만 마리의 소가 밭을 갈아야 하는 너른 땅에서 공을 거두는 그 기틀은 자기 자신에게 있을 뿐입니다. 유독 전하께서 종사하시는 일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풍류와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시는 바에 따라서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이 달려 있습니다.

진실로 어느 하루 깜짝 놀라 깨달아, 팔을 걷어붙이고 학문에 힘쓰시면 홀연히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도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도리 안에 온갖 선이 갖추어지게 되고, 온갖 덕화(德化)도 이로 말미암아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들어서 시행하면 나라를 다 잘 살게 할 수 있고, 백성을 화합하게 할 수 있으며, 위태로움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요약해서 간직하기만 해도, 마음이 거울처럼 비지 않음이 없으며, 저울처럼 고르지 않음이 없으며, 생각이 사특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眞定)이란 것도 다만 이 마음을 간직하는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니, 위로 하늘의 이치에 통하게 되는 데 있어서는 유교와 불교가 한가지입니다. 다만 사람의 일을 시행함에 있어서는 다리로 땅을 밟지 않으므로, 우리 유가에서는 본받지 않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불교를 좋아하시니, 그것을 학문하는 데로 옮기신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 유가의 일입니다. 이는 어렸을 때 집을 잃었던 아이가 자기 집을 찾아 부모, 친척, 형제, 친구를 만나보는 일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사람을 쓰는 것은 몸으로써 하고, 몸을 수양하는 것은 도로써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사람을 쓰는 데에 몸으로써 하신다면 유악(帷幄, 작전 짜는 곳) 안에 있는 사람은 사직을 보위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니, 아무 일도 모르는 보잘것없는 신 같은 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약 사람을 눈으로만 뽑으신다면 잠잘 때 이외에는 모두 속이고 저버리는 무리일 것이니, 이 경우에도 앞뒤가 막힌 보잘것없는 신 같은 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훗날 전하께서 왕천하(王天下)의 지경에 이르도록 덕화를 베푸신다면, 저는 마부의 끝자락에서 채찍을 잡고 그 마음과 힘을 다해서 신하의 직분을 다할 것이니, 어찌 임금을 섬길 날이 없겠습니까?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마음을 바로 하는 것으로써 백성을 새롭게 하는 요점으로 삼으시고, 몸을 수양하는 것으로써 사람을 쓰는 근본으로 삼으셔서, 왕도(王道)의 법을 세우십시오. 왕도의 법이 왕도의 법답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답게 되지 못합니다. 밝게 살피시길 엎드려 바라옵니다. 신은 떨리고 두려운 마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전하께 아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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