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해찬솔 2020. 5. 29. 06:44

 

돌을 황금처럼 보고 온 의령 가례면 수성리 지석묘군

 

‘황금 보기를 돌 같이’ 여긴 최영 장군께 미안한 일입니다. 돌이 오히려 황금처럼 소중할 수 있습니다. 돌을 돌로 보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면 몇천 년의 시간 여행으로 떠날 수 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러 의령 가례면 수성리 고인돌을 찾았습니다.

가례면 소재지에서 자굴산 쪽으로 승용차로 5분 정도 가면 가례초등학교가 나옵니다. 초등학교 뒤편에 수성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나옵니다. 수성마을 표지석 한쪽 면에는 <수징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표지석 아래에는 마을 유래를 새긴 돌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 밀양 박씨가 입촌마을을 형성하여 가락골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퇴계 이황 선생이 처가(김해 허씨)인 이 마을에서 향유들과 어울려 시문 강론 하다 보니 마을 이름을 뜻도 있고 부르기 쉬운 수성(修誠)으로 고쳐 부른 게 오늘에 이른다고 합니다. 나이 많은 분들은 수징이일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마을 표지석을 지나면 들에 의령 수성리 지석묘군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오고 뒤로 큰 바위 3개가 띄엄띄엄 있습니다.

수성리 지석묘군은 4기의 고인돌 무덤으로 3기는 지금의 북쪽 들판에 20m 간격을 두고 있고 남쪽으로 1기가 더 있다고 합니다. 농경지 정리와 초등학교 건립하며 사라졌다고 합니다.

청동기 시대 지배층의 무덤이었던 곳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습니다. 고인돌

한쪽에는 한자로 글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넓적한 표면에 글을 새기기 좋은 까닭에 뭇사람들이 새긴 듯합니다.

넓적한 탁자 같은 고인돌 상석은 모두 자굴산 방향으로 삼각형 모양을 띠고 있습니다. 돌을 돌로 보지 않고 시간 여행을 하려면 상상이 지금부터 필요합니다. 인근 산 등에서 이 바위를 옮겨오려면 얼마나 많은 인력이 큰 바위에서 쪼개고 무리 지어 옮겼는지 지금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바위 위에 손을 올리고 슬며시 눈을 감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지휘자의 구령에 맞춰 어깨를 줄을 매고 바닥에 굴러가기 좋게 둥근 나뭇가지를 깔고 옮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덩달아 머리 위로 자글자글 익어가는 햇살이 내려와 따사롭게 비춥니다. 여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삼태바구>라고 합니다. 바위의 영험으로 천석지기 큰 부자와 인물도 많이 배출되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영험한 바위에서 부자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소원 하나 오가는 바람 편에 한점 올립니다. 덕분에 왠지 앞으로 더욱더 잘 될 듯한 예감에 기분이 상쾌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