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불법과 동행을/卍-불교자료실

혜명(해인)스님 2019. 3. 12. 17:37


卍-삼명(三明)과 육통(六通)-卍

      삼명(三明)이란
      아라한과를 성취한 성자에게 갖추어진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세 가지에 대해 밝게 아는 것인데, 즉 천안명, 숙명명, 누진명을 말합니다.

      또 육통은 여섯 가지 신통력을 말하는 것으로 삼명에 세 가지를 더 추가한 것을 말합니다.
      삼명이 세계를 보는 세계관이나 또는 지혜의 눈이라는 측면이 강한 반면 육통(六通) 어떤 불가사의한 능력, 부처님이나 아라한에게 갖추어진 자유자재한 권능이라는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 항목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삼명(三明)]

      1. 천안명(天眼明)
      거리의 멀고 가깝고에 상관없이 일체 세간(世間)의 모든 고락(苦樂)의 모습(相)과 가지가지의 유형(有形)과 색(色)에 대해 밝게 아는 것을 말합니다.

      천안명은 단순히 거리상으로 멀리 있는 것을 보는 생리적 능력이라기보다 차라리 세계관에 가까운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일체 중생이 무명(無明)으로 인해 고통에 쌓여 있음을 여실하게 보는 것입니다.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道)를 비롯해서 육도(六道)의 온갖 중생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아는 것이 천안명 입니다.

      지옥에 떨어지고, 아귀에 빠지고 축생에 떨어지는 육도윤회는 모두 인과윤회의 법칙에 따라 이뤄지는 것입니다. 결국 천안명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인과의 올바른 법칙을 이해하고 있음을 말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천안명은 고해(苦海)에서 허덕이는 중생의 전현실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모두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을 말합니다. 중생에게는 그런 눈이 없습니다. 세상은 행복하다거나 물질에 집착하거나 부질없는 것에 가치를 두고 언제나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그 전도된 눈으로 인해 육도의 수레바퀴 속에서 끊임없이 윤회하며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삶을 다룬 본생경에 보면 부처님께서는 성도하시던 날 새벽에 천안명을 얻어서 모든 중생이 고통 속에 쌓여 있음을 여실히 보시는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 숙명명(宿命明)
      지나간 과거생의 모든 일들을 자유 자재로 아는 지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전생(前生)의 일을 아는 신통력입니다.
      과거 여러 생에 걸친 우리의 전생을 숙세(宿世)라고 합니다.
      즉 숙명통은 겹겹이 쌓인 우리 과거 전생의 일을 밝게 보아서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들을 다 아는 지혜를 말합니다.

      역시 본생경에 보면 부처님은 사람들의 전생을 보시고 너는 전생에 어떠어떠했던 누구인데 어떠어떠한 일 때문에 지금 그 과보를 받는다는 형식의 설법을 하시는데 그처럼 전생 일을 환히 아는 것을 숙명명이라고 합니다.

      결국 이 숙명명은 연기(緣起)의 법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라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을 여실히 아는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숙세의 업연은 모두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니까요.

      3. 누진명(漏盡明)
      누진명은 이생에서 모든 종류의 고통을 밝게 알아서 인간의 모든 번뇌를 끊는 지혜를 말합니다.
      앞에 나열했던 천안명을 통해서 육도 중생의 전현실적인 삶을 관조한 다음 숙명명을 통해서 숙세의 모든 인과관계를 꿰뚫어 보게 되면 오늘의 자기 존재를 모두 알게 됩니다.

      즉 인간존재의 연기적 인과관계를 모두 알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그 이유를 알게 되며, 존재를 둘러싼 고(苦)의 원인을 환하게 꿰뚫어 보게 됩니다.

      그렇게 원인과 결과를 잘 알기 때문에 모든 번뇌를 다 끊을 수 있습니다.
      본생경에 보면 부처님은 천안명을 얻어 중생들의 고통을 꿰뚫어 보신 다음 다시 숙명통을 통해 모든 생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밝게 보시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진명을 얻어서 모든 번뇌를 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육통(六通)]
      삼명(三明)에 세 가지를 더 보탠 것이 육통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삼명이 세계관으로써의 지혜를 말한다면 육통은 부처님에게 갖추어진 하나의 권능, 즉 자유자재한 능력이라는 측면이 강합니다.
      그래서 육통에 대해서는 그런 측면으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1. 천안통(天眼通)
      보통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체 세간의 멀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모든 고락의 모양과 가지가지의 유형과 색을 밝히 내다볼 수 있는 자유 자재한 신통력을 말합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능히 볼 수 있는 부처님의 능력이지요.
      이는 곧 바로 중생을 향한 자비의 힘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무명으로 고통 받는 중생이 어느 곳에 있든 부처님은 능히 그 모습을 보시고 해탈의 가르침을 주시는 능력으로 이해하면 되겠지요.

      즉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시는데 필요한 권능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 천안통에서 나온 말이나 개념이 우리 주변에 참 많습니다.
      통신회사 중에 천리안(千里眼)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불교의 이 천안통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안통의 올바른 이해는 앞의 천안명의 설명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2. 천이통(天耳通)
      보통 인간의 귀로는 듣지 못할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세간 일체의 좋고 나쁜 말, 멀고 가까운 말, 또 사람이나 사람 아닌 것들의 소리까지 모든 소리를 듣고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자재한 능력을 말합니다.

      중생이 어디서 무슨 소리로 하던 불·보살님은 어디서든 들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동통신회사에서 이 개념을 쓴다면 천리안처럼 이미지에 걸맞은 상표가 되겠지요. 옛날에 외화 중에 "소머즈"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그 소머즈가 이 천이통 같은 능력이 있었죠.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천이통이란 단지 멀리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차원의 것이라기보다는 고통 받는 모든 중생들의 아픔을, 발원하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천이통은 단순히 멀리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이해한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매일매일 수많은 소리와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많은 소리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심지어 가까이 있는 사람이 하는 소리는 충분히 들을 수 있지만 우리들은 마음의 장벽이 가려 놓여 그 소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화가 단절되고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천이통에서 단순히 멀리 있는 소리를 듣는다는 그 자체 보다 남의 말을 겸허한 자세로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야 말로 참된 천이통을 얻는 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3. 타심통(他心通)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유자재하게 아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요즘 말로 한다면 독심술(讀心術)같은 신통력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타심통을 처음으로 보여주신 때는 룸비니 동산에서 5비구들을 만났을 때입니다.

      다섯 비구들은 부처님이 가까이 오셔도 일어서서 경배하지 말자고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막상 그들에게 다가서자 그들은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발 씻을 물을 가져오는 등 성자를 맞이하는 예를 다했습니다.

      부처님은
      "그대들은 나를 아는 체도 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시죠.
      그들의 마음을 다 이미 알고 계셨음을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타심통은 또 유심히 봐야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선종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법을 전하는 중요한 방법이 됩니다.
      부처님이 꽃을 드니 가섭이 그 뜻을 알고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미소(粘花微笑) 같은 것도 결국 타심통이라는 연결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타심통 역시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 차원에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의도로 그 같은 행동을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호의든 악의든 말입니다.
      우리들은 그 상대방의 행위 속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 채 외면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 자세가 이렇다면 타심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먼저 남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아량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숙명통(宿命通)
      모든 생명이 지나온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보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전생의 일을 볼 수 있는 신통력인데 앞에서 설명한 숙명명의 설명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 숙명통은 신통력의 크고 작음에 따라 과거 1세의 일만 알기도 하고 , 2세 또는 3세 더 나아가 천만세를 아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4. 신족통(神足通)
      다른 말로 여의통(如意通)이라고 합니다.
      이 신통력은 크고 작은 몸을 나타내서 자기 생각대로 자유자재하게 날아다니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중국 무협소설에 나오는 축지법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요즘 어린이 프로그램 지오 레인저에 나오는 공간이동과 같은 개념이겠지요.

      5. 누진통(漏盡通)
      누진통은 모든 종류의 고통을 밝게 알아서 인간의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있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연기의 인과관계를 모두 알게 되는 신통력을 말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앞의 누진명을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