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불법과 동행을/卍-불교자료실

혜명(해인)스님 2019. 3. 15. 18:00


卍-삼법인(三法印),사법인(四法印)[4]열반적정(涅槃寂靜)-卍

      서양의 불교학자와 인도학자 중에도 불교가 제행무상(諸行無常) 혹은 일체개고(一切皆苦)와 같이 절대적, 염세적임을 강조하고 또 뒤에 말하는 사제(四諦)의 가르침에 있어서도 고제(苦諦)을 최초에 두고 생(生), 노(老), 병(病), 사(死)등의 고(苦)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는 비관적인 염세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종교는 인간의 고뇌를 없애 주는 것이다.
      사회에 불행과 불안과 고뇌가 없다면 사람들은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며 종교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종교, 신앙이 요구되는 곳에는 반드시 고뇌와 불안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고뇌와 불안의 비관적 상태가 사람들에게 종교심을 일으키게 하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욕망이나 기대와 같은 이상의식(理想意識)이 있어 그 이상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고뇌를 해소하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의 출발점에서 죄악과 더러움과 어리석음 등, 이상에 반대되는 현실의 괴로움이 반드시 존재한다.

      크리스트교에서 원죄(原罪)를 설하고 불교(佛敎)에서도 악인정기(惡人正機)를 설하는 것이 그것이다. 원시불교(原始佛敎)는 현실의 고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고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결코 비관적인 염세주의는 아니다.
      고(苦)는 출발점이지만 최후에는 정락(淨樂)의 열반에 도달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 이상을 말한 것이 「열반적정(涅槃寂靜)」의 명제이다

      불교(佛敎)를 염세주의라 하여 비난하는 사람은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보지 않는 사람이다.
      범부(凡夫)로서의 일체의 그릇된 생각과 그릇된 생활태도에서 벗어나, 바른 세계관 인생관에 입각하여 이상적인 생활 태도를 자연적으로 취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이 보리(菩提)이고 열반의 경지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輪廻의 미혹한 생태를 지적으로 벗어나서 모든 생활에 고뇌가 없는 적정안은(寂靜安穩)의 정복(淨福)의 생태가 되는 것이다. 열반이란 그 말의 뜻에는 「불어서 끄는 것」또는 「조림(稠林)이 없는 것」등으로 설명되는데 그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등 일체의 번뇌(煩惱)(이상생활을 방해하는 것)가 사라지고 멸제(滅除)된 상태를 가리킨다.

      또는 번뇌의 조림(稠林)이 전혀 없어진 생태를 말한다.
      불교 이전의 인도 철학에서는 열반을 불사(不死)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불교에서도 「불사(不死)」란 말이 자주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生死輪廻를 초월하여 열반의 상태에 도달한 것을 말한다.

      객관적(客觀的)으로 죽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죽음으로서 겁내지 않고 생사를 문제시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그것은 고락(苦樂)과 생사를 초월한 것이며 그와 같은 세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깨침을 얻은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와 같은 깨달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모든 세계가 편안한 부처님의 국토가 되는 것이며. 깨달은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마침내 주위의 環境도 이상(理想)의 國土로 이룩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佛敎의 이상(理想)인 것이다.
      이상으로 사법인(四法印)에 관한 설명을 마쳤거니와, 이 법인은 모든 佛敎學說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며, 십이연기(十二緣起), 사제(四諦)등의 가르침은 모두 四法印의 기초에 입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