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불법과 동행을/卍-불교자료실

혜명(해인)스님 2019. 3. 16. 14:34


卍-삼법인(三法印),사법인(四法印)[3]일체개고(一切皆苦)-卍

      이것은 일체행고(一切行苦)라고도 하며, 모든 형상이 고(苦)로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고(苦)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와 더불어 삼유위상(三有爲相)[현상계에 있어서의 세 가지의 모습]으로서 불교의 기본적인 입장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제행무상(諸行無常)이나 제법무아(諸法無我)에 대해서는 불교이외의 일반사람이라도 이를 틀림없는 진실로서 인정할 것이지만, 일체개고(一切皆苦)에 대해서는 무상이나 무아처럼 무조건하고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고(苦)뿐 아니라 고(苦)도 있고, 락(樂)도 있으며, 고(苦)도 락(樂)도 아닌 상태도 많다.

      상식적으로 말한다면 의식주의 경제생활에 있어서 풍부하고 건강하며, 젊고, 희망이 가득한 사람은 행복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같은 경제 상태에 있고 같은 가정환경에 있는 경우라도 이를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남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비참한 환경에 있는 사람이라도 본인은 만족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결코 불행과 고통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또 고락(苦樂)은 사람에 따라 다르며 주관적인 감정에 속하는 것이므로 세상의 모든 것이 고(苦)라는, 「일체개고(一切皆苦)」에 관한 명제는 진실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론이 생길 것이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苦)란 무엇인가 하는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불교에서는 고(苦)에는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의 세 종류가 있다고 하였다.
      그중 첫 번째인 고고(苦苦)란 육체로 느끼는 감각적인 고(苦)이다.
      맞거나 꼬집히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하는 경우의 고(苦)가 그것이다.
      이것은 통각신경(痛覺神經)을 갖고 있는 존재라면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로 감수하는 객관적인 고(苦)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인 괴고(壞苦)란 상황이 파괴되고 쇠망하는 경우에 느껴지는 정신적인 고뇌이다.
      무상하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됨으로써 느끼는 고통도 괴고(壞苦)이다.「무상하기 때문에 고(苦)인 것이다.」라는 것도 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좋아질 경우에는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락(樂)이다」라는 명제도 성립되는 것이다. 정신적인 고뇌로서의 괴고(壞苦)는 상당히 주관적인 것이며 어떤 일에 대해 욕망이나 기대를 갖고 있는 경우에 그 욕망과 기대에 반대되는 상황이 생기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같은 환경에 있어도 사람에 따라 욕망이나 기대가 다르며, 동일인이라도 때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
      그러므로 같은 환경에 있어도 그것을 고통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고, 고통으로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

      동일인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감수성과 반응이 다른 것은 욕망과 기대의 유무강약(有無强弱) 때문이다. 거기에 정신적인 괴고(壞苦)의 주관성이 있다. 그리고 精神的인 욕망이나 기대는 주로 인간 특유의 것이며, 다른 동물에서는 그다지 볼 수 없다.

      실연자살을 하거나 생활고로 인해 일가자살을 하는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일이며, 다른 동물세계에서 볼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 경험하는 극렬한 고뇌는 주로 인간에게만 볼 수 있는 정신적인 고뇌이다.

      불교에서는 생(生), 노(老), 병(病), 사(死)등의 고를 들지만 이러한 고(苦)도 생(生), 노(老), 병(病), 사(死)라고 하는 육체적, 생리적인 고통보다도 오히려 생(生), 노(老), 병(病), 사(死)를 전제로 하는 정신적인 괴고(壞苦)를 지칭하는 것이 많은 편이다.

      예컨대 이전에는 폐결핵에 걸리면 불치, 난치로 여겨진 적이 있었으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오히려 결핵으로 쓰러진 경우의 자기의 장래라든가 가족의 생활을 생각하고 괴로워하는데서 생기는 고뇌가 그 병고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암에는 아픈 것과 아프지 낳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암이라는 선고를 받음으로써 낙담해 버리고 병상이 갑자기 악화하는 예가 있다.

      병은 기분에서 생긴다는 말이 있는 것도 병(病)의 고통이 다분히 기분에 의한 정신적인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병(病)뿐만 아니라 노(老)의 고통에 있어서도 늙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고통은 아니다.
      다만 눈이 어두워진다거나 귀가 멀어지며 신체가 자유로이 움직이지 않는 부자유에 의한 곤란은 있다고 하더라도 육체적인 노쇠가 특히 격렬한 고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노(老)가 고통이 되는 것은 노후의 일에 대한 경제적인 이유와 인간관계 등에 대한 우려가 고뇌의 커다란 원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죽음에 있어서도 사(死)라는 생리적인 사실은 일순간의 일이며, 이를 고통으로 삼을 것은 그리 없지만, 죽음에 의한 자기에 대한 사회의 평가라든가 가족의 곤궁을 생각하고 괴로워하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워 지거나 죽음을 괴로워하는 것이다.

      정사(情死)를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죽음은 오히려 구가(謳歌)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죽음에 대한 마음가짐의 여하에 따라 죽음이 고통스러운 것이 되기도 하고 또한 소망스럽고 즐거운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괴고(壞苦)라는 정신적 고통은 욕망이나 기대가 많고 심하면 심할수록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의 고뇌도 큰 것이다.

      그러나 욕망이나 기대는 마음가짐에 따른 것이며, 마음가짐을 바꾸기만 한다면 욕망이나 기대가 즉시 사라지는 동시에 그것을 얻지 못한 고뇌도 곧 해소되는 것이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잃어버린 것으로 오인하는 데서도 고통이 생기고 그것이 오인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고 알자마자 즉시 고통이 사라지는 수도 있다.

      이를테면 제삼자로부터 '지극히 사랑하는 상대자가 다른 이성과 친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 그 순간 상대방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자기가 버려졌다고 절망하여 고통을 느끼다가 뒤에 제삼자의 말이 사실무근한 허언(虛言)이었음을 안 순간 상대방에 대한 지금까지의 증오와 불신과 절망의 생각은 한꺼번에 사라져 안심과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

      종교란 고뇌를 바꾸어 안심과 행복을 얻게 하는 것이라 하거니와 종교가 다루는 고뇌에는 이 정신적인 괴고(壞苦)가 매우 많다 할 것이다.

      마음가짐을 바꾸게 하고 바른 세계관, 인생관을 가르치며, 그릇된 선입관을 제거시켜 줌으로써 정반대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지금까지 절망적이었던 세상이 희망이 가득한 밝은 세계로 변화하는 것이다.

      회심(回心)이라든가 종교심이 그것이며 마음의 눈을 바꾸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인 행고(行苦)란 행(行) 즉 현상세계 자체가 고(苦)라는 것이다.
      일체개고(一切皆苦)는 일체행고(一切行苦)라고도 하므로 이 문제는 이 세 번째인 행고(行苦)를 가리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일체의 현상계는 과연 모두가 고(苦)일까?
      여기에 문제가 있다.
      상식적으로 말한다면 현상계에 대해 우리는 고(苦)로 느끼는 일도 있지만, 락(樂)으로 느끼고 불고불락(不苦不樂)으로 느끼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현상계는 모두 고(苦)라 하는 것일까?
      이것은 불교뿐 아니라 인도 일반의 사고방식에 유래되는 것이다.
      여기서 행(行)이라든가 현상이라 말하는 것은 윤회계(輪廻界)에 있어서의 현상을 가리킨 것이며 업보에 의해 윤회되고 범부(凡夫)에 의해 관찰된 현상을 가리킨 것이다.

      따라서 행고(行苦)라든가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명제는 바르게 말한다면 「윤회(輪廻)전생(轉生)하는 범부에게는 일체의 현상은 고(苦)이다.」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인도적인 생각에 의하면 절대로 고뇌하지 않는 상태는 윤회를 벗어난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윤회(輪廻)전생(轉生)하는 범부(凡夫)사이에는 거기에 쾌락과 행복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절대적인 적정(寂靜)의 락(樂)은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범부(凡夫)에게 있어서는 현상세계는 고(苦)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一切皆苦」와 行苦에관한 사고방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 있어서 이 명제도 결코 그릇된 것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