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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cholera)가 발생한 조선은 한반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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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삼한역사/사건

2011.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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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cholera)가 발생한 조선은 한반도가 아니었다.

 

글쓴이:한부울

콜레라(cholera)는 수인성 전염병이며,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이 일으킨다.

감염되면 설사와 탈수 증세를 보이는데 이것을 ‘호열자’(虎列刺)라고도 한다.

 

아시아에도 옛날부터 존재했었지만 세계적인 유행성 확산을 나타낸 것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라고 한다. 콜레라의 초기 발생지역은 인도의 갠지스 강 하류의 벵골에서 방글라데시에 걸친 지역으로 추정된다. 가장 오래된 콜레라의 기록은 기원전 300년경이고 그 다음은 7세기 중국(대륙조선)과 17세기 자바(JAVA)에서 콜레라로 추정되는 악성 역병의 기록이 있지만, 세계적인 대유행은 1817년에 시작되었다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돌림병이나 열병 등이 발병했음을 알 수 있는데 돌림병으로 나온 것을 다 적용한다면 콜레라 역시 조선에서 제일 먼저 발병했다고 해야 맞다.

이 해 캘커타에 생긴 유행성 콜레라는 아시아 전체로 확산되었으며, 아프리카에도 퍼져서 1823년까지 계속되었고 일부는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고 있다.

 

[클릭하면 원본]

 

 

                                                  [콜레라 세계 발생지역지도]

 

위 지도를 보면 특이하게 한반도만 쏙 빠져있다.

한마디로 청정지역이라는 뜻이다.

한반도에는 콜레라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분명하게 나오는 돌림병, 열병, 그리고 직접적으로 지칭을 한 호열자 등은 과연 무엇을 말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대륙조선이 있었던 곳인데 한반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콜레라는 1826년부터 1837년까지의 크게 유행하여 아시아,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에 확산된 전 세계적인 규모로 발전했다. 이후 1840년부터 1860년, 1863년, 1879년, 1896년, 1899년, 1923년 총 6 차례에 걸친 아시아형의 대유행이 있었으나 마침내 1884년 독일의 의사, 미생물학자인 하인리히 헤르만 로베르트 코흐(Heinrich Hermann Robert Koch, 1843-1910)에 의해 콜레라균이 발견되고 의학의 발전으로 방역체제가 강화됨과 동시에 아시아형 콜레라의 세계적 유행은 진정되었다 하고 있다.

 

그렇다면 먼저 세계적으로 유행한 콜레라 발생년도 1860, 1863, 1879, 1896, 1899, 1923를 따라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해 보기로 하자.

 

1860년(조선왕조실록)

1860

철종 11년

6월

근래 도하에 여기(沴氣, 해로운 기운)가 크게 치열하여 사망이 심히 많아 별여제를 행하다.

1861

철종 11년

7월

도하 악질이 더욱 성행하여, 금년 가을에 실시하려는 소학 초시(初試)를 명년 봄으로 물리다. 요즘 악질 돌림병이 더욱 치열하므로 별여제를 지내다.


 

1879년(조선왕조실록)

1879

고종 16년

6월

앞서 진질(疹疾: 호열자병)이 일본으로부터 부산에 전파되다.

1879

고종 16년

7월

진질(疹疾: 호열자병)이 서울 안팎에 유행하여 사망 환자가 많으므로 별도로 점쳐서 날을 잡지 않고 별여제를 설행하다.


 

위 기록을 보면 분명 1879년 6월에 진질 호열자병이 일본으로부터 부산에 전파되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세계 콜레라 발생지도에 한반도가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1896년(조선왕조실록)

1895

고종 32년

3월

청일전쟁 중 만주(滿洲)의 콜레라가 우리나라에서도 대유행하다.

1895

고종 32년

6월

서울과 지방에 질병이 크게 돌다. 호열자병 소독규칙과 소독집행 규칙을 공포하다. 인천에 호열자 사망자가 40명에 이르다. 의주(義州)에 호열자 사망자가 40명에 달하다. 처음부터 누계하면 4,883명이다. 평양에도 환자 1,346명중 501명이 사망하다. 괴질(怪疾)이 치열하게 성행하다.

1895

고종 32년

7월

서울에 호열자(虎列刺: 콜레라) 환자 234명 중 사망자가 11명이다.

1895

고종 32년

10월

함흥부의 안변, 영흥, 함흥 등 8읍에 악질이 돌아 6월 이후부터 사망자가 2,722명에 이르다.


 

청일전쟁 1895년에 만주도 콜레라가 유행했지만 우리나라 한반도 조선에서도 대유행했다고 한다.

도대체 한반도가 아니고 조선은 어디란 말인가?

 

위 세계발생년도 다는 아니라고 하지만 거의 조선왕조실록 기록과 딱 맞추고 있다.

이것은 역으로 이야기 하면 조선은 세계를 포괄한 것이 된다.

하지만 아시아 남부지역에서는 콜레라가 여전히 남아서 유행이 반복되었고, 중국에서는 근세기 1909년, 1919년, 1932년에 대유행이 있었으며, 인도에서는 1950년대까지 모두 만 명 단위의 사망자를 낼 정도였다 하고 있다.

한어자료 콜레라 세계 발생일지인데 아래와 같다. 

 

한어자료 콜레라 대규모 8차 [史上大流行]

(1)霍亂疫區首次爆发(1816年–1826年)首先被控制在印度次大陆,在孟加拉(Bengal)大规模爆发。到1820年,传播遍(걸쳐)及印度。在被消灭前,它甚至传播到了(소멸되기전...가장심했다)中国里海(카스피해, 裏海)

(2)二次爆发(1829年–1851年)在1832年年蔓延欧洲(구주까지 펼쳐졌다)、伦敦(London),同年又蔓延安大略(Ontario)加拿大(Canada)纽约(뉴욕),在1834年又发展到北美太平洋海岸

(3)第三次爆发(1852年–1860年)主要影响了俄罗斯(러시아),造成了超过百万人的死亡。并且造成柴可夫斯基(차이콥스키)他母亲的死亡。

(4)第四次爆发(1863年–1875年)传播到了大部分欧洲非洲区域

(5)1866年在北美爆发。

(6)1892年,霍乱污染德国(독일)汉堡自来(함부르크)水,以致8606人死亡。

(7)第七次爆发(1899年–1923年)由于公共衛生的进步,只对欧洲造成很小的影响。但俄罗斯被再次严重影响。

(8)第八次爆发被称作 El Tor(독일의사-엘토르) after the strain,发生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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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발생 순서대로 하나하나 풀어보면

 

(1차)1816年–1826年에는印度次大陆(又稱南亚次大陆或印巴次大陆)大体位于北纬8-37度,东经61-97度

세계적인 대유행은 1817년에 시작된다. 이 해 인도 캘커타에 생긴 유행성 콜레라는 아시아 전체로 확산되었으며, 아프리카에도 퍼져서 1823년까지 계속되었다.

일부는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발생지역을 보면 인도지각판-플레이트(plate)인 인도를 포함한 파키스탄의 동쪽, 방글라데시, 네팔과 부탄, 인도양 대륙지각에 위치한 스리랑카의 섬, 몰디브 섬에 발생하였고 그리고 뱅갈만(孟加拉, Bengal)에 대규모 발생했다.

1820년에는 인도를 거쳐 중국과 리해(裏海, 카스피해)가 가장 심각했다.

 

 

 

1821

순조 21년

8월

평양성 내외에 지난달 그믐께 홀연히 괴질 돌림병이 돌아 토사 관격하여 경각에 죽다. 10일 동안 천(千)여 가구지의 약이 효과가 없고, 구제하는 기술이 없다. 기도를 행하여도 잠드는 기미가 없고, 점점 각읍과 동리로 퍼지다. 이 질병(疾病)을 만난자는 먼저 반드시 통주(洞注, 설사가 멎지 않는 병)하며 이어 궐역(厥逆: 찬 기운이 머릿골을 범하여 머리와 이가 아픈증세)의 기운이 다리로부터 배안으로 침입하여 경각의 사이에 살아 남는자 10명 중 한두 명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 서쪽 변방에서 시작하여 도하 각 도의 집집에 전염하는 것이 불이 번지는 것과 같고 치료의 방법이 없다. 재상 이상 사망이 10여 명, 일반서민은 십만여명에 이르다. 그 중 평안도가 더욱 심하다. 대개 중국(中國)동북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 하다. 도하, 괴질, 돌림병이 평안, 황해양도에서 더욱 치열하므로 전염병 제사 및 위안제를 지내다.

평안부에는 전염병 제단을, 모란봉과 대동강(大洞江)에서는 양재제(穰災祭)를 설행하다.

돌림병이 심히 괴이하므로 경범 죄수를 석방하다.

돌림병으로 산해관 이남으로 바다를 연한 지역의 수천리 사이의 인민이 손상하였는데, 병(病)의 근원에 대해서는 남만의 백련교를 배운자가 천하를 돌아다니며 물을 긷는 우물과 오이밭에 독약(毒藥)을 살포하므로 생긴 것이라 한다. 이 오이를 먹거나 우물물을 마신자가 대개 죽게 되었다. 월초에 중국 란주부(府)로부터 여러 명을 나포하여 조사하였다. 이제나머지 무리를 체포토록 하다. 괴질 돌림병이 잠들지 않고 날로 심하다. 산천 양재제를 별도 날을 잡지 않고 설치 시행하다.

1822

순조 22년

4월

성내 외에 잡병(雜病)에 걸린 유민(流民)이 길에 쓰러져 죽은 시체가 즐비하다. 진휼청(賑恤廳:조선시대 물가조절과 기민구제를 담당하였던 관청)으로 하여금 병자를 일일이 점검하고, 막사를 설치하여 양식을 급여하다. 사망자는 성 밖으로 운반하여 즉시 매장케 하다.

1822

순조 22년

7월

호남에 돌림병이 치열하므로 별여제를 성행하다.

1822

순조 22년

8월

함경도에 돌림병 사망자가 이미 10,500여 명에 이르렀다.

관동에 별여제를 설행하다.

1822

순조 22년

10월

제주도에 진기(疹氣)가 치열히 성행하여 인명의 손실이 수천에 달하므로 위안제를 지내다.


 

이 콜레라란 병에 걸리면 먼저 반드시 통주(洞注, 설사가 멎지 않는 병)하였으며 이어 궐역(厥逆: 찬 기운이 머릿골을 범하여 머리와 이가 아픈 증세)의 기운이 다리로부터 배안으로 침입하여 경각의 사이에 살아 남는자 10명 중 한두 명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리고 위 조선왕조실록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병(病)의 근원인데 불교에서 기원한 민간종교 남만의 백련교(白蓮敎 1796-1804:백련교난)를 배운자가 천하를 돌아다니며 물을 긷는 우물과 오이 밭에 독약(毒藥)을 살포하므로 생긴 것이라 하였다.

이 남만(南蠻)이라 함은 바로 인도 지방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조선왕조실록 기록과 맞추어보면 1816년경부터 인도를 포함한 파키스탄의 동쪽, 방글라데시, 네팔과 부탄, 스리랑카의 섬, 몰디브 섬, 뱅갈 만까지 아시아 콜레라가 전염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조선에서는

1812년 순조 12년 4월에 해서 지방에 전염병이 치열하므로 별여제를 도내 중앙읍에 설치하고 행하다 하였고 도하(都下) 돌림병이 점점 만연하다 하였으며

1812년 순조 12년 9월에는 홍경래(1771-1812)민란 즉 관서병란(兵亂)과 더불어 기근과 전염병이 계속되어 백성들의 사망이 많은지라 신구환곡(新舊還穀)을 탕감하다 하였다.

이것은 위 인도지역에서 발생한 사건과 동일한 기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영어자료에 나타난 콜레라 세계지도에 한반도가 빠져있다는 것은 한반도에는 발병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 재차 강조되어 조선은 그곳에 없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괴질, 돌림병이 평안, 황해양도에서 더욱 치열했다 하니 인도 북방지역 중앙아시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1822년 기록을 보면 성내 외에 잡병(雜病)에 걸린 유민(流民)이 길에 쓰러져 죽은 시체가 즐비하다. 사망자는 성 밖으로 운반하여 즉시 매장케 하다 하였다.

한어자료를 보면 1820년에는 인도를 거쳐 중국과 리해(裏海, 카스피해)가 가장 심각했다고 나온다.

때문에 위에서 카스피해와 중국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거나 또는 카스피해와 중국이 같은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1821순조 21년 8월, 1822순조 22년 4월, 7월, 8월, 10월 기록을 보면 콜레라가 조선에서 분명 발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영어자료에서 한반도는 일단 콜레라가 발생되지 않았던 지역이라고 지도에 표시하고 제외하였으니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1821년, 1822년, 콜레라 기록은 분명히 카스피해 근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1821년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처음 서쪽 변방에서 시작하여...”란 문장에서

중국은 대륙조선 중앙정부를 지칭한다고 하였으니 이 콜레라는 카스피해를 중심으로 발생되어 그 동쪽 지역에 대륙조선 중앙정부인 중국 즉 조선까지 퍼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평안도가 더욱 심하고 대개 중국(中國)동북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 하였으니 이것은 인도북쪽지방이 바로 조선 중국의 동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도하 각 도의 집집에 전염하는 것이 불이 번지는 것과 같고 치료의 방법이 없다. 재상 이상 사망이 10여 명, 일반서민은 십만여명에 이르다. 그 중 평안도가 더욱 심하다. 대개 중국(中國)동북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 하다란 기록을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또한 1822년 제주도에 진기(疹氣)가 치열히 성행하여 인명의 손실이 수천에 달하므로 위안제를 지내다는 바로 인도북방지역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본다.

 

(2차)1829年–1851年에는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1826년부터 1837년까지의 크게 유행하여 아시아,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에 확산된 전 세계적인 규모였다.

유럽런던(London), 파리(Paris), 그리고 동년에 온타리오(캐나다 남부의 주;Toronto)까지 퍼졌으며 카나다(加拿大, Canada)와 뉴욕(纽约)까지 전염되고 1834에는 북미(北美)의 태평양연안(太平洋海岸) 오하이오(Ohio), Illinois, the Great Plains, and Missouri 발생되었다.

 

(3차)1852年–1860年인데 주로 영향을 받은 곳은 러시아(俄罗斯)이고 1,000,0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차이코프스키와 그의 어머니가 사망하였다.

 

1859

철종 10년

9월

근래 괴진(乖疹)이 더욱 치열하여 사망이 많으므로 전염병 제사를 행하다.

1860

철종 11년

6월

근래 도하에 여기(沴氣, 해로운 기운)가 크게 치열하여 사망이 심히 많아 별여제를 행하다.

1860

철종 11년

7월

도하 악질이 더욱 성행하여, 금년 가을에 실시하려는 소학 초시(初試)를 명년 봄으로 물리다. 요즘 악질 돌림병이 더욱 치열하므로 별여제를 지내다.


 

우리는 여기서 냉정하고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단 한반도는 콜레라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에서 기록한 콜레라는 어딘가인가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위 한어자료를 보면 1852年–1860年까지 러시아(俄罗斯)에서 전염병 콜레라가 일어 1,000,0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음을 당했으며 이때 차이코프스키와 그의 어머니가 사망하였다는 기록이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은 이때를 정확하게 맞춘 1859년, 1860년 2년 동안의 콜레라 발생기록은 한반도가 아니면 과연 어딘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분명 한반도는 청정지역이라고 지도에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이 콜레라가 같은 시간에 발생한 지역을 따져 들어가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 기록한 사건지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곳이 바로 아라사라고 하는 러시아의 콜레라 발생상황이란 이야기다.

어떻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콜레라 발생이 러시아란 말인가?

러시아는 바로 대륙조선이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참으로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4차)제4차폭발은 1863年–1875年에 발생했는데 대부분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에 전염이 되었다.

(5차)1866年에는 북미에 발생했고

 

(6차)1884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에 의해 콜레라균이 발견되고 의학의 발전으로, 방역 체제가 강화됨과 동시에 아시아형 콜레라의 세계적 유행은 진정되었으나

1892年에 콜레라가 독일(德国)에 발생되어 함부르크강(汉堡自来水)이 오염되어 8,606명이 사망했다.

 

1886

고종 23년

8월

서울에 콜레라가 창궐하다

1890

고종 27년

10월

부산에 콜레라가 유행하여 상설 피병사(避病舍)를 설치하다.

인천에도 콜레라가 적게나마 유행하다.


 

1892년에 콜레라가 독일에서 발생되어 함부르크강을 오염시켰다는 것인데 어찌하여 같은시기에 서울과 부산, 그리고 인천에 콜레가가 발생하였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었는가 하는 말이다.

 

(7차)1899年–1923年에는 7차가 발생되었는데 유럽에는 방역 체제가 강화되어 작은 영향이었지만 러시아(俄罗斯)는 재차 심각하게 영향을 받게 되었다.

 

cholera(1816-1910)

 

Egypt

1902

 

콜레라


 

대한제국

1902

고종 39년

8월

삼화항에 괴질 사망자가 많다. 부산항에 호열자(虎列刺: 콜레라의 음역, 괴질)가 크게 치열하다.

1902

고종 39년

9월

한성 내외 지방에 간혹 호열자(虎列刺: 콜레라, 괴질)가 있으므로, 창의문 밖에 피병원(避病院)을 설치하다.

1902

고종 39년

10월

황성신문에 호열자의 역사 및 예방법이 소개되었는데, 동양은 인도로부터 중국을 경유,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고 하다. 경시청에서 호열자 예방 주의서를 반포하다.


 

위에 보면 이집트에서 1902년 콜레라가 발생되었다고 세계 자료에서 나온다.

놀라운 사실은 바로 대한제국 1902년 8월에 삼화항에 괴질 사망자가 많고 부산항에 호열자가 크게 치열하다 하였으며 9월에는 한성 내외지방에서 호열자가 있다고 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황성신문에 호열자의 역사와 예방법이 소개하면서 호열자 예방 주의서를 반포하였다고 하고 있다.

도대체 대한제국이 이집트와 연결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8차)콜레라 제8차 폭발은 엘토르 타입의 콜레라는 1906년 시나이 반도의 엘 토르(El Tor)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아시아 남부 지역에서는 콜레라가 여전히 남아서 유행이 반복되었고, 중국에서는 1909년, 1919년, 1932년에 대유행이 있으며, 인도에서는 1950년대까지 모두 만 명 단위의 사망자를 낼 정도였다.

 

1909년 중국에서 일어난 콜레라

1909

순종 3년

7월

금년 1월부터 5월까지 각 도에서 발생한 전염병자 4,161명 중 사망자는 888명이다. 두창병자 3,796명 중 사망 803명, 장질부사 병자 263명 중 사망 55명, 적리(赤痢:이질)병자 46명 중 사망 9명, 디프테리아병자 28명 중 6명 사망, 성홍열 환자 15명 중 사망 9명, 발진티푸스 환자 3명 중 1명 사망, 호열자 환자 15명 중 9명 사망하다. 이 당시 위생국 조사에 의하면 한인(韓人) 의사 2,659명, 약제사 143명, 산파 33명, 간호부 33명, 약종업자 3,265명, 매춘부 1,480명(일본인 2,830명, 구미인 십수명) 등이다.

1909

순종 3년

9월

호열자가 유행하다. 호열자(虎列刺: 콜레라, 괴질) 예방을 위해 한성(漢城)에 방역본부 설치하다.


 

마지막으로 어쨌던 이러한 기록을 맞추어 보면 영어자료가 말한 것처럼 애초부터 한반도에는 콜레라(호열자)가 발생하지 않았던 청정지역이었으니 1909년(순종3년) 7월과 9월에 콜레라 기록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이란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때문에 조선이 중국이라고 하는 것이며 대륙조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륙조선의 중앙정부가 있었던 곳을 중국이라고 한 것이다.

 

이상에서 밝혀본 것처럼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콜레라가 발생한 지역을 확인하여 보았다.

예상대로 놀라운 사실이 또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러시아가 조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카스피해와 인도 북방이 대륙조선의 영역이라는 사실과 중국이었다는 사실이다.

확인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의문은 과연 콜레라 지도를 보면 중국대륙과 열도가 콜레라 발생지역인데 유독 한반도만 청정지역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한반도에 사람이 살지 않았을까?

아니면 지도가 잘못된 것일까?

서양의 자료라면 일단 뭇 사람이 근대사를 믿는 것처럼 믿어야 한다.

어떻게 왕래가 있었을 중국대륙과 열도에 콜레라가 발생하였는데도 한반도만 청정지역이 될 수 있을까?

상식을 초월하는 이야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 분명 호열자, 또는 콜레라라고 확실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조선은 한반도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일본 역시 지금의 열도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있었다면 실제 콜레라가 발생한 남아시아지역 어디라고 해야 맞다.

또 하나는 조선이 바로 중국대륙에 있어야 맞다.

바로 중국이 조선이라는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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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cholera 발생상황(1816-1910)

Death toll

Region

Years

Name

Species

>>100,000

Asia, Europe

1816–1826

first

cholera pandemic

콜레라

>>100,000

Asia, Europe,

North America

1829–1851

second

cholera pandemic

콜레라

 

Egypt

1831

 

콜레라

 

England, France

1832

London, Paris

콜레라

 

North

America

1832

New York City,

Montreal other cities

콜레라

 

United States

1833

Columbus, Ohio

콜레라

 

United States

1834

New York City

콜레라

 

Egypt

1848

 

콜레라

 

North America

1848–1849

 

콜레라

 

United States

1851

Illinois, the Great Plains

, and Missouri

콜레라

1,000,000

Russia

1852–1860

third cholera pandemic

콜레라

616

England

1854

Broad Street

cholera outbreak

콜레라

 

Middle East

1863–1879

fourth cholera pandemic

콜레라

 

Egypt

1865

 

콜레라

 

Russia, Germany

1866–1867

 

콜레라

 

Egypt

1881

 

콜레라

>>9,000

India, Germany

1881–1896

fifth cholera pandemic

콜레라

>>800,000

Europe,

Asia, Africa

1899–1923

sixth cholera pandemic

콜레라

 

Egypt

1902

 

콜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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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발생한 콜레라 발병일지

 

1788

정조 12년

9월

호서지방에서 돌림병이 돌다. 영남지방도 그러하다. 탐라에 전염병으로 백성이 많이죽다. 질병으로 인해 농사와 어업을 못하는 자는 세금을 감해 주다.

1789

정조 13년

5월

해서, 영남지방에 유행병이 많다.

1790

정조 14년

3월

평안도 삼등 등 읍에 전염병이 치열하다.

1790

정조 14년

4월

북도에 전염병이 치열하여 환자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라, 향과 축문을 보내 제를 지내다.

1791

정조 15년

5월

해서 지방에 큰 질병이 돌다. 금위신번 해서군(海西軍)은 귀향시켜 농사일을 돌보게 하다. 평안도에 전염병이 치열하므로 유배(流配) 죄인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다.

1792

정조 16년

2월

재령인 김경화가 가난한 자와 전염병에 걸린 자를 거의 천여 명이나 구한 공이 있어 상(賞)을 내리다.

1793

정조 17년

4월

호서, 영남에 전염병이 치열하므로 전염병 제사를 지내다.

1793

정조 17년

5월

죄수 중 질병에 걸린 자에게 약을 나눠주고 구료하다.

1793

정조 17년

6월

호서, 호남, 영남에서 전염병으로 사망한 자가 많다.

1808

순조 8년

7월

호서에 전염병이 더욱 심하므로 19읍에 비변랑을 보내 각 읍민들을 위무하다.

1812

순조 12년

4월

해서지방에 전염병이 치열하므로 별여제를 도내 중앙읍에 설치하고 행하다. 도하 돌림병이 점점 만연하다.

1812

순조 12년

9월

홍경래(洪景來)관서병란(兵亂)에 기근과 전염병이 계속되어 백성들의 사망이 많은지라 신구환곡(新舊還穀)을 탕감하다.


 

1821

순조 21년

8월

평양성 내외에 지난달 그믐께 홀연히 괴질 돌림병이 돌아 토사 관격하여 경각에 죽다. 10일 동안 천(千)여 가구지의 약이 효과가 없고, 구제하는 기술이 없다. 기도를 행하여도 잠드는 기미가 없고, 점점 각읍과 동리로 퍼지다. 이 질병(疾病)을 만난자는 먼저 반드시 통주(洞注, 설사가 멎지 않는 병)하며 이어 궐역(厥逆: 찬 기운이 머릿골을 범하여 머리와 이가 아픈증세)의 기운이 다리로부터 배안으로 침입하여 경각의 사이에 살아 남는자 10명 중 한두 명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 서쪽 변방에서 시작하여 도하 각 도의 집집에 전염하는 것이 불이 번지는 것과 같고 치료의 방법이 없다. 재상 이상 사망이 10여 명, 일반서민은 십만여명에 이르다. 그 중 평안도가 더욱 심하다. 대개 중국(中國)동북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 하다. 도하, 괴질, 돌림병이 평안, 황해양도에서 더욱 치열하므로 전염병 제사 및 위안제를 지내다.

평안부에는 전염병 제단을, 모란봉과 대동강(大洞江)에서는 양재제(穰災祭)를 설행하다.

돌림병이 심히 괴이하므로 경범 죄수를 석방하다.

돌림병으로 산해관 이남으로 바다를 연한 지역의 수천리 사이의 인민이 손상하였는데, 병(病)의 근원에 대해서는 남만의 백련교를 배운자가 천하를 돌아다니며 물을 긷는 우물과 오이밭에 독약(毒藥)을 살포하므로 생긴 것이라 한다. 이 오이를 먹거나 우물물을 마신자가 대개 죽게 되었다. 월초에 중국 란주부(府)로부터 여러 명을 나포하여 조사하였다. 이제나머지 무리를 체포토록 하다. 괴질 돌림병이 잠들지 않고 날로 심하다. 산천 양재제를 별도 날을 잡지 않고 설치 시행하다.

1822

순조 22년

4월

성내 외에 잡병(雜病)에 걸린 유민(流民)이 길에 쓰러져 죽은 시체가 즐비하다. 진휼청(賑恤廳:조선시대 물가조절과 기민구제를 담당하였던 관청)으로 하여금 병자를 일일이 점검하고, 막사를 설치하여 양식을 급여하다. 사망자는 성 밖으로 운반하여 즉시 매장케 하다.

1822

순조 22년

7월

호남에 돌림병이 치열하므로 별여제를 성행하다.

1822

순조 22년

8월

함경도에 돌림병 사망자가 이미 10,500여 명에 이르렀다.

관동에 별여제를 설행하다.

1822

순조 22년

10월

제주도에 진기(疹氣)가 치열히 성행하여 인명의 손실이 수천에 달하므로 위안제를 지내다.

1833

순조 33년

5월

한성부 내에 돌림병이 성행하므로 각 부의 관리로 하여금 무의탁자 중병든 자는 성 밖으로 내보내 활인서와 혜민서로 하여금 구료케 하다. 전염병으로 도로에 쓰러져 죽은 시체 1,005구가 어지럽게 쌓였으므로 수습하여 매장하다.

1834

순조 34년

5월

도하 전염병이 아직까지 잠들지 않으므로 별여제를 별도의 날을 잡지 않고 설행케 하다.

1859

철종 10년

9월

근래 괴진(乖疹)이 더욱 치열하여 사망이 많으므로 전염병 제사를 행하다.

1860

철종 11년

6월

근래 도하에 여기(沴氣, 해로운 기운)가 크게 치열하여 사망이 심히 많아 별여제를 행하다.

1861

철종 11년

7월

도하 악질이 더욱 성행하여, 금년 가을에 실시하려는 소학 초시(初試)를 명년 봄으로 물리다. 요즘 악질 돌림병이 더욱 치열하므로 별여제를 지내다.

1879

고종 16년

6월

앞서 진질(疹疾: 호열자병)이 일본으로부터 부산에 전파되다.

1879

고종 16년

7월

진질(疹疾: 호열자병)이 서울 안팎에 유행하여 사망 환자가 많으므로 별도로 점쳐서 날을 잡지 않고 별여제를 설행하다.

1880

고종 17년

 

지석영(池錫永)이 일본 수신사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가서 외무대신의 소개로 우두법(牛痘法)을 일본 우두종계소 의사 국지강암(菊池康庵)에게 학습하다.

1886

고종 23년

8월

서울에 콜레라가 창궐하다

1890

고종 27년

10월

부산에 콜레라가 유행하여 상설 피병사(避病舍)를 설치하다.

인천에도 콜레라가 적게나마 유행하다.

1893

고종 30년

지석영이 교동에 우두(牛痘) 보영당을 설립하고, 어린이들에게 종두법을 실시하다.

1895

고종 32년

3월

청일전쟁 중 만주(滿洲)의 콜레라가 우리나라에서도 대유행하다.

1895

고종 32년

6월

서울과 지방에 질병이 크게 돌다. 호열자병 소독규칙과 소독집행 규칙을 공포하다. 인천에 호열자 사망자가 40명에 이르다. 의주(義州)에 호열자 사망자가 40명에 달하다. 처음부터 누계하면 4,883명이다. 평양에도 환자 1,346명중 501명이 사망하다. 괴질(怪疾)이 치열하게 성행하다.

1895

고종 32년

7월

서울에 호열자(虎列刺: 콜레라) 환자 234명 중 사망자가 11명이다.

1895

고종 32년

10월

함흥부의 안변, 영흥, 함흥 등 8읍에 악질이 돌아 6월 이후부터 사망자가 2,722명에 이르다.

대한제국

1902

고종 39년

8월

삼화항에 괴질 사망자가 많다. 부산항에 호열자(虎列刺: 콜레라의 음역, 괴질)가 크게 치열하다.

1902

고종 39년

9월

한성 내외 지방에 간혹 호열자(虎列刺: 콜레라, 괴질)가 있으므로, 창의문 밖에 피병원(避病院)을 설치하다.

1902

고종 39년

10월

황성신문에 호열자의 역사 및 예방법이 소개되었는데, 동양은 인도로부터 중국을 경유,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고 하다. 경시청에서 호열자 예방 주의서를 반포하다.

1908

순종 3년

5월

한성부와 각 관찰도의 금년 전염병 환자수 2.267명 중 431명이 죽다.

1909

순종 3년

7월

금년 1월부터 5월까지 각 도에서 발생한 전염병자 4,161명 중 사망자는 888명이다. 두창병자 3,796명 중 사망 803명, 장질부사 병자 263명 중 사망 55명, 적리(赤痢:이질)병자 46명 중 사망 9명, 디프테리아병자 28명 중 6명 사망, 성홍열 환자 15명 중 사망 9명, 발진티푸스 환자 3명 중 1명 사망, 호열자 환자 15명 중 9명 사망하다. 이 당시 위생국 조사에 의하면 한인(韓人) 의사 2,659명, 약제사 143명, 산파 33명, 간호부 33명, 약종업자 3,265명, 매춘부 1,480명(일본인 2,830명, 구미인 십수명) 등이다.

1909

순종 3년

9월

호열자가 유행하다. 호열자(虎列刺: 콜레라, 괴질) 예방을 위해 한성(漢城)에 방역본부 설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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