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의 역사ノ/•─치우天子ノ

•─맑은무인™ 2011. 7. 19. 15:48

우리나라에서 둑제를 지낸 기록은 여러 곳에 나오지만 특히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속에 3번의 둑제 기록이 나온다.

  성호사설의 이익이나 고 조자용 박사는 둑제라는 것 자체가 둑기("대형 군기")에 대해, 또는 둑사(纛祀)에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데, 둑기나 둑사가 치우를 상징하고 모시는 사당이라는 조자용 박사의 연구와 연결시킨다면 결국 치우에 대한 제사가 되므로 매우 중요하다.

  그 기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분석이 있으나 김순규(치우학회 총무)의 간단한 분석자료를 소개하고자 한다. 깊은 연구는 다음 월간 한배달에 게재할 예정이다.


                           <이순신의 둑제에 관하여>

  <역사사전>과 <국어사전>에 보이는 '둑'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大駕의 앞 또는 軍中에서 大將 앞에 세우는 旗의 일종. 큰 三枝槍에 붉은 삭모를 많이 달았으며, 행진할 때에 말을 탄 장교가 받들고, 군사 두 사람이나 혹은 네 사람이 벌이줄을 잡고 다녔다.」

 

1. 둑제를 올리는 시기 문제 
  둑제를 올리는 시기문제에 있어 혹자는 이를 24절기에 맞추어 설명(박선식의 경우 경칩과 상강일에 둑제를 올린다고 하여 둑제와 절기를 연결시키려 한다. 그런데 박선식은 이순신장군이 올린 독제의 절기를 선정함에 있어 착오를 범했다. 즉 경칩일은 맞으나, 상강일인 10월 23일과 24일에 둑제를 올린 적은 없다.)하고 있으나, <난중일기>에 의한다면 절기와는 큰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난중일기>에 나온 기록을 보고, 이를 세세하게 따져 보자.

① 癸巳(1593)年 2月 初4日 : 경칩날이라 둑제를 지냈다.
② 甲午(1594)年 9月 初8日 : 장흥부사로 獻官을 삼고, 홍양현감으로 典祀를 삼아 초아흐레 둑제를 지내기 위해 入齋시켰다.
③ 乙未(1595)年 9月 20日 : 새벽 2시에 둑제를 지냈다.


  사람들이 둑제와 절기를 연결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가장 큰 오류의 시발은 "경칩날이라 둑제를 지냈다."는 바로 ①번의 기록 때문인 것으로 유추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난중일기>에서 보이는 둑제 관련기사 3개 중 나머지 두 개인 갑오년과 을미년의 둑제 시기가 절기, 즉 절기가 지닌 뜻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데 있다. 갑오년의 둑제 시기는 흰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이고, 을미년의 둑제시기는 백로가 한참 지나 내일 모레이면 밤과 낮의 길이가 같으며 추수의 계절이 시작된다는 의미의 추분(9월 23일)이 되는 시기인 것이다. 또한 갑오년과 을미년의 경칩시기에 둑제를 지냈다는 기록도 없다는 점이 둑제와 절기와의 상관관계를 더욱 멀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절기를 떠나서 생각한다면 어떤 시기에 둑제를 지냈을까, 그리고 세 개의 기록에서 공통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하고 다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새벽 2시'라는 기사에 힌트를 얻어 '제사'의 기본인 '하늘'과 이를 연결시켜 "우리의 별자리"를 탐구해 보았고, 도서관에서 장시간을 보낸 결과 상당히 만족할만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우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별자리가 아닌 우리의 별자리를 알아야 했고, 둑제를 올리는 시기에 어떤 별자리, 다시 말해 전쟁과 관련되는 어떤 별자리가 뜨지는 않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도서관에 꽂힌 많은 책들 중에서 우리의 별자리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조근태가 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별자리>(현암사, 2001)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 그의 연구에 맞추어 세 개의 기록이 등장한 시기에 하늘에는 어떤 별자리가 있었고, 과연 둑제가 절기보다는 별자리와 더욱 큰 관련이 있나를 알아보자. 아래 【 】안에 있는 글은 조근태의 본문을 요약 기술한 것이다. 

① 癸巳(1593)年 2月 初4日 :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되면 머리 꼭대기에 삼태성이 떠 있다. 태미원에 속한 별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별자리는 삼태성이다. 삼태성은 우리 겨레가 매우 아껴 온 별자리 가운데 하나이다. 삼태성을 虛精, 曲生. 六淳이라고도 하여 사람을 낳고 기르고 지켜주는 神將이라고 여겼다. 놀라운 것은 고구려 사람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는 사실이다. 즙안에 있는 고구려 씨름 무덤 속에는 별자리가 그려 있다. 별을 그리고, 그 별을 선으로 이어서 별자리를 나타냈다. 우리 조상은 삼태성을 북두칠성 못지 않게 아꼈고, 겨레를 구할 영웅을 태어나게 하고, 그를 지켜주는 별자리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조선시대  고소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주인공이 하늘에서 죄를 짓고 땅 위 세상으로 유배되어 내려올 때면 장수감으로 태어나서 나라를 구할 운명임을 암시하기 위하여 가슴에 삼태성이 또렷이 박혀 있다고 표현하곤 하였다. 머리 위에 높이 떠있는 삼태성을 찾아 장수감을 내려주기를 빌어 보자.】

② 甲午(1594)年 9月 初8日 와 ③ 乙未(1595)年 9月 20日 : ②와 ③의 기록의 날짜가 초팔일과 스무날이라는 12일간이나 되는 차이가 나는 사실도 천문학적으로 살피면 이해가 쉽게 된다. 즉 이 날들의 천문 별자리는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늘의 별자리에 대한 제사에는 하등 차이가 없다는 것이기에 무려 십이일간이나 차이가 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은하수가 흐르는 북쪽 하늘로 눈걸음을 옮겨 보자. 가을철의 큰 네모를 이루는 실수와 벽수를 볼 수 있고, 북쪽 별을 이어서 동쪽으로 눈걸음을 옮기면 규수를 만나며, 조금 더 가면 天大將軍 별자리에 닿는다. 천대장군이란 이름에 걸맞게 별자리 모양이 활을 닮았는데, 가운데 있는 가장 밝은 별이 대장군이고, 나머지 별은 병사다. 대장군은 하늘나라 모든 군대를 지휘하니 그만큼 큰 별자리이다. 옆에 있는 軍南門星은 대장군이 출전할 때 드나드는 남쪽 성문이다.】

  이제 남은 일은 전쟁의 경과와 둑제를 올리는 시기와는 무슨 관련이 있나를 생각해 보는 점이다. 


2. 전쟁의 경과와 둑제를 올리는 시기상의 문제

  가. 계사년 2월 초4일 전후의 전쟁 경과
    - 1592년 5월 4일 ~ 5월 9일 제1차 출전(6일간)
    - 5월 29일 ~ 6월 10일 제2차 출전(12일간)
    - 7월 6일 ~ 7월 13일 제3차 출전(8일간)
    -  8월 24일 ~ 9월 2일 제4차 출전(8일간)
    - 약 5개월 이상의 공백
    - 1593년 2월 초4일 둑제
    -           2월 6일 ~ 4월 3일 제5차 출전(한달 이상)
                5월 7일 제6차 출전

  나. 갑오년 9월 초8일 전후의 전쟁 경과
    - 1594년 3월 4일 ~ 5일 : 당항포해전
    - 9개월 이상의 공백기
    - 1594년 9월 8일 둑제
                9월 29일 ~ 10월 8일 장문포수륙합공전

  다. 을미년 9월 20일 전후의 전쟁 경과
    - 1595년은 전쟁의 소강상태로 전투없이 9월 20일에 둑제만을 지냄.
    
  라. 결론 
    이상 가, 나, 다 항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우선 둑제를 올리는 목적은 박선식이가 한 말 처럼 상무풍속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전투에 임하기 전 사기를 올리기 위한 군 의례로 보인다.
  다시 말해 언제든지 전쟁을 잊지않고 있는다는 상무정신이 아니라 곧 있을 전투에서의 군 전쟁심리를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둑제를 올리는 시기가 상당한 기간 5개월에서 9개월의 소강상태를 지난 시기에 올려지고, 이어 얼마되지 않아 전투가 발생되는 것으로 보아 이순신 장군은 전쟁의 흐름을 보고 전황을 파악한 뒤 이제 얼마 되지 않아 전투가 발생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서면 둑제를 올려 天軍임을 과시한 뒤 전투로 돌입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쟁이 이어지지 않은 경우라도 곧 전쟁이 있을 것 같은 판단이 설 때 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http://cafe.daum.net/CHIWOO/4zm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