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문화원이 전하는 중앙아시아 소식

실크로드와 고려인 소식, 현지뉴스, 고려인역사기행, 텐샨, 파미르 트래킹 정보

[고려인 동포 언론인 최 엘라 안드레예브나... 영면하소서~]

댓글 0

유라시아 고려인 이야기

2020. 7. 17.



  카자흐스탄의 대표적 동포 언론인이자 국영방송국 '카자흐스탄 -1'의 전설적 PD로 유명한 최 엘라 국장이 14일 운명했다. 
  공훈문화일군으로서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한국정부로 부터도 '인민친선'훈장과 수차례의 훈포장을 받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과 큰 업적을 남긴 분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바로 '고려사람'방송을 만들고 지킨 사람이다.
   "과거에 찍었던 영상테이프를 보존할 겨를이 없습니다. 녹화 테이프가 부족해서 이전 방송내용이 찍혀 있는 테이프를 재사용하거든요" 
  내가 국제협력단 파견교수로 알마티국립대학에 부임하여 인사차 만난 그녀로 부터 들은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지금도 당시의 첫 만남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의 혼란스럽던 시절이었던 1991년 2월 4일, 그녀는 국영 '카자흐스탄'방송국에서 <고려사람>이라는 방송을 처음으로 내보냈다.  90년대초 부터 시작된 카자흐스탄내 소수민족인 독일, 위구르 방송은 자기 민족의 문화, 전통에 대한 내용을 위주로 방송을 제작하였다. 다민족 국가인 카자흐스탄의 소수민족들 사이에서 독창적 문화 재생 열기가 일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 그 때에 엘라 안드레예브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을 위한 방송을 만들 것을 주창했고 고려인협회의 지원에 힘입어 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첫 방송은 우리의 전통명절인 '음력설'에 대한 것이었다. 이 방송이 나가자 고려인 동포사회에서의 반향은 컸다. 우리 민족의 전통과 관습을 보존하지는 움직임이 더욱 큰 물결로 일어났고 막 움트기 시작한 모국어 재생운동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다. 방송이 우리말로 제작되어 송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어려운 방송현실속에 '고려사람'이라는 방송을 유지시켜 나갔고 뉴미디어의 홍수속에 전통적인 방송에 대한 조직 축소 분위기가 일자 오히려 소수민족들의 방송을 통합하여 '메능 카자흐스탄'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08년도였다. 여러 민족들의 활동과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을 홍보하는 이 프로그램은 정부의 지지를 받아냈고 그녀 자신은 민족방송부의 책임프로듀서가 되어 고려인 동포소식을 좀 더 안정적으로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순전히 그녀의 뚝심의 결과였다. 
  
  가정에서는 자식 둘과 손자를 거느린 훌륭한 어머니이자 할머니였던 그녀는 1946년 8월 20일에 딸듸-꾸르간 시에서 태여났다. 다른 언론인들과는 달리 '비쉬켁 자동차도로대학'을 졸업하고 알마티의 <메데오> 댐 건설현장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딛였다.
  건설을 전공한 최 엘라는 당의 결정에 따라 알마아타시 깔리닌스끼구역 당위원회 TV 방송부에 파견됨으로써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 5년간은 당위원회 TV방송부의 행정업무를 보면서 기자에 대한 초보적 지식부터 배우고 서서히 경험을 축적해 나갔다. 타고난 근면성과 방송에 대한 열성은 곧 그녀를 그 분야의 전문가로 자라나게 했다. 카메라 앞에서는 직책의 높고 낮음이 없이 누구나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자기의 의사를 대담하게 표현하는 솔직한 기자였다. 
  그리고 디리에 깁스를 하고 움직이지 못하자 들것에 실려서 출근했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하루 24시간을 일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부고를 접한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알마티시 고려민족중앙회,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소속 모든 지역 분회들, 국립공화국아카데미야 고려극장, <고려일보>사는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했다. 

  당신과의 추억은 내 기억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영면하소서~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