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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2012. 2. 22. 20:24

 

 

     ■시조

 

 

              귀천(歸天)을 위하여

 

                                         이원식

 

              비 개인 저 하늘보다

              가벼울 수 있을까

 

              닿을 듯 날아가는

              가릉빈가* 노래소리

 

              쪼아 문 하늘의 살점

              새장 속에 쌓여간다

 

 

              *가릉빈가(迦陵頻伽): 불경에 나타나는, 깃이 아름답고 소리가 고운 상상의 새.

 

 

 

                                   -시집『누렁이 마음』중에서

 

 

 

 

 ■시작노트

 횡단보도에서 건널목 신호등을 기다리다 들려오는 새소리에 뒤돌아보니 노점상 새장 속 새 한 마리.

 그 새가 되어 그려 본 이 시조는 내게 또 다른 큰 의미가 있다.

 2006년, 약 6개월정도 퇴고를 하여 지은 이 시조는, 그해 9월 견지동 어느 음식점에서 백수(白水) 정완영

 선생님께 「하늘로 흐르는 강-종군위안부 할머니를 생각하며」 라는 작품과 함께 보여드리고 평을 받은

 작품이다.

 백수 선생님께서는 이 작품「귀천(歸天)을 위하여」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셨고,「하늘로 흐르는 강-

 종군위안부 할머니를 생각하며」는 종장(終章) 부분을 좀 수정하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시조단의 큰 어른에게서 직접 듣는 작품평과 격려는 다시 신인으로 당선된 것만큼 기뻤으며, 그해 12월

『나래시조 40년사』기념집에 신작으로 발표, 2007년 첫시집『누렁이 마음』에 수록하였다.♣

 

 

     백수(白水) 정완영 선생님(왼쪽), 이원식 시인(오른쪽)

 

 

 ■참고

 백수(白水) 정완영(1919.11.11~ ). 경북 금릉 출생.

 국제신보('60), 서울신문('60), 조선일보('62), 현대문학('62), 동아일보('67) 등 당선 및 천료.

 시집『채춘보』('69) 외 12권, 산문집 6권, 이론서 2권, 시조전집 1권.

 한국문학상, 가람문학상, 중앙일보시조대상, 육당문학상, 만해시문학상, 육사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은관문화훈장.

 교과서에 「조국(祖國)」, 「분이네 살구나무」, 「부자상(父子像) 」등 수록.

 

 

출처 : 이원식의 문학 블로그
글쓴이 : 이원식 원글보기
메모 :
창조적인 일을 함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 알랑 -

주말인 토요일이죠(?)
봄과 함께 (즐)겁고
행복하게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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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2011. 6. 14. 13:15

 

1) 불교 수행의 뜻

  

우주의 근본 원리, 또는 인간의 생사와 같은 문제를 해명해 주는 것을 ‘종교 사상’이라 부르고, 그에 입각한 실천 행동을 ‘종교 수행’이라 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각각 해(解, 이론)와 행(行, 실천)이라는 말로 부른다.
  

불교에서 기본적 종교사상에 해당되는 것은 앞에서 살펴 본 연기론이라 할 수 있다. 연기론은 인간에게 생사의 괴로움이 있게 된 근본 원인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론에 의하면 인간의 생사(生老病死) 등의 괴로움은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 즉 자기 마음 속의 무명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무지의 타파打破를 통해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 있어서의 실천 수행의 목표는 무명을 타파한 세계, 즉 열반涅槃에 있고, 그 방법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무명 번뇌를 없애는 자력적(自力的:제3자에 의지함이 없이 스스로 닦아감)인 성격을 띠게 된다.
  

연기사상에 입각한 불교의 실천수행은 신神을 중심으로 한 종교의 실천수행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신 중심적 종교의 활동은 주로 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과 기도와 제사 등이 주축이 되고 신의 구제를 통해서만이 비로소 종교적 목적이 달성된다. 그러나 불교의 자력적 수행에는 염불·발원·선정禪定 등이 중심이 되고 궁극적 깨달음에 이르러 그 목적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교의 초기 경전에는 사념처四念處, 사정단四正斷, 사신족四神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 이상 37조도품助道品 등을 포함한 실천적 가르침이 무수하게 설해져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열 가지 업業의 가르침(十業說)’과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의 가르침은 생사의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없애가는 대표적 수행의 길이다.

 

2) 열 가지 업의 가르침

 

(1) 업의 뜻

  

고대 인도에서는 브라만(梵, Brahman)이란 창조신이 있어 우주와 인생을 창조하였다 하였으며, 현대에도 창조주나 조물주와 같은 절대적 신神을 인정하는 사상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나 자신의 과보에 대한 책임을 나 자신 아닌 다른 어떤 존재에게 묻거나 전가시키지 않는다.
  

자신의 현재 과보果報에 대한 원인은 자신이 과거에 지은 바 ‘업(業, karma)’때문이라는 것이다. 업이란 조작造作, 행동, 행위의 뜻으로 중생들의 몸과 입과 뜻(身·口·意)으로 짓는 모든 행위 행동에 따라 나타나는 힘을 말한다.
  

인간의 의지적 작용이 원인이 되어 대상의 필연적 반응이 결과로서 따르기 때문에 주체적 인간과 객체적 대상 사이에는 인과의 법칙이 존재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그런 의지적 작용을 ‘업’이라고 부르고, 이에 대한 대상의 필연적 반응을 ‘보(報, vipa-ka)’라고 부른다. 불교의 열가지 업의 가르침은 바로 이러한 인과율因果律에 입각한 실천 윤리라고 말할 수 있다.
  

업과 보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으므로 동일성同一性을 띠게 될 것은 물론이다. 즉 업인業因이 선善이면 과보果報도 선, 악惡이면 과보도 악의 성질을 띠게 된다는 말이다. 이를 업 자체가 다음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세력勢力’이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부처님은 ‘선업善業에는 즐거운 보(善報)가 따르고 악업에는 괴로운 보(惡報)가 따른다.’고 설하신다. 우리가 흔히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하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를 갖는 것이다.
  

또한 업에는 그 세력의 강·약에 따라 결과(果報)가 발생하는 시기가 정해지는데, 금생에 지은 업에 의해 그 과보를 현세에서 받는 ‘순현업順現業’과 다음 생(次生)에 과보를 받는 ‘순생업順生業’과 내생來生이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의 3가지가 있다. 그러므로 선업을 많이 짓는 사람이 지금 당장 그 과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악업을 짓는 이가 그 과보가 곧 발생하지 않는다고 인과의 도리를 믿지 않아서는 안된다.

  

불교의 업설業說은 이렇게 삼세업보설三世業報說로 전개되므로, 사후 내세에 가서 받을 업보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소위 ‘육도윤회설六道輪廻說’은 바로 이런 뜻에서 나온 가르침이다. 육도의 도(道, gati)는 ‘취趣’라고도 번역하는데 ‘가는 곳’을 가리킨다. 그 가는 곳으로서 천상天上·인간人間·아수라阿修羅·축생畜生·아귀餓鬼·지옥地獄의 여섯 갈래의 세계를 육도라고 한다. 이 육도 가운데 앞의 셋을 선업에 대한 선취(善趣, 善道)라 하고, 뒤의 셋을 악업에 대한 악취(惡趣, 惡道)라고 한다.
  

이러한 육도는 반드시 죽은 다음에 가는 그러한 세계만은 아니다. 오히려 살아 생전에 먼저 그러한 세계를 스스로 경험할 수 있다고도 하였으니, 북송 때 법안종의 제3조祖였던 연수延壽스님은 육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이 악업을 짓고 그것을 뉘우치고 고칠 줄 모를 때 그것은 바로 지옥의 생존 양식이며, 한 없는 이기적 욕심에 사로잡힐 때 그것은 아귀의 생존 양식이다.
  

마땅히 인간으로서 가야할 길, 행하여야 할 일을 모를 때, 그것은 축생의 생존양식이며, 마음 속에 치미는 분노와 끓어오르는 질투의 노예가 될 때 그것은 수라의 생존양식이며, 최소한 오계(五戒:不殺生, 不偸盜, 不邪淫, 不妄語, 不飮酒)의 생활을 할 때 그것은 인간의 생존 양식이며, 십선업十善業을 끊임없이 행하는 생활을 하는, 그것이 바로 천상의 생존 양식이라 하였다.”
  

물론 이것은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본 것이지만 우리의 마음가짐의 방향을 제시하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2) 열 가지 업

 

우리가 즐거움과 행복을 바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땅히 선업善業을 행하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까지 우리는 선업보다는 악업을 익혀 왔음이 사실이다. 행복하게 살 기를 바라면서도 불행을 가져오는 악업을 일삼아 왔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더구나 괴로운 상황에서는 선보다 악을 행하기가 더 쉬워 일단 악에 빠지면 끝없는 악의 순환이 있게 된다.(三惡道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인간의 이러한 무지를 타파하는 실천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은 먼저 악업부터 설명하고 계시니, 악업에는 몸으로 짓는 세 가지와 입(言語)으로 짓는 네 가지와, 뜻(意志)으로 짓는 세 가지가 있다 하였다.

몸으로 짓는 악업에는 생명을 죽이는 것(斷生命, 殺生),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不與取, 偸盜), 옳지 못한 성행위(欲邪行, 邪淫)의 세가지가 있으며, 입으로 짓는 악업에는 남을 속이는 허망한 말(虛言狂語, 妄語), 서로 이간시키는 말(雜間語, 兩舌), 남을 성나게 하는 말(鹿惡語, 惡口) 진실이 아닌 것을 교묘하게 꾸며대는 말(雜穢語, 綺語)의 네 가지가 있으며, 뜻으로 짓는 악업에는 분수에 넘치는 욕심(貪慾)과 스스로 성내거나 남을 해치는 마음(瞋   )과 인과의 도리를 모르는 무지한 생각(邪見, 痴)의 세 가지가 있어 10악업十惡業을 형성한다. 이러한 열가지 악업에 반대되는 몸과 입과 뜻의 10가지 행위를 10선업十善業이라 한다.

 

(3) ‘업의 가르침’의 참 뜻

  

불교의 업설業說에 의할 때, 인간의 현실상황은 그가 짓고 있는 업에 대한 보報의 총화總和가 힘에 따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은 동시에 그 자신의 새로운 업이 작용해야 할 바탕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하겠다. 눈앞에 불행이 닥쳤다면, 책임은 오로지 자기에게 있는 것이지 남이나 운명 또는 신神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타개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자기 힘이며, 남이나 운명 또는 신의 힘이 아니라는 것이 뚜렷해진다. 불교의 업설은 흔히 숙명론宿命論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불교의 업설은 결코 숙명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의 업보다는 현실을 타개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현재의 인간 의지意志와 그 노력에 크나큰 비중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업사상은 강력한 현실 극복의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사실 업보의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확실하게 이해한 사람은 악업을 지을 엄두도 못낼 것이다. 따라서 업설은 건전한 사회를 건설하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3) 사성제 (네 가지 거룩한 진리)

  

연기의 법칙은 이론으로 끝나지 않고 해탈과 열반에 도달할 수 있는 실천사상으로 전개시켜 나간 첫 단계가 사성제의 진리이다. 사성제는 불교의 교리와 수행을 집약한 가장 체계적인 가르침으로 12연기의 교리조직이 유전연기流轉緣起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사성제는 특히 환멸연기還滅緣起를 상세히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제(諦, Satya)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진실, 사실(事實, fact), 진리truth 등을 가리키는데 쓰이는 말이며, 동시에 엄숙한 단언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성제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라는 말이다. 즉 고苦·집集·멸滅·도道의 네가지를 설하여 이것을 신성한 종교적 진리로 삼고 있는 데서 사성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치 의사가 병을 치료함에 있어 먼저 병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원인을 알아낸 다음, 건강한 상태의 정상적인 표준을 알아서 거기에 맞는 치료 방법을 강구하듯이, ‘고苦쭻집集쭻멸滅’을 알고 멸에 이르는 바른 길(八正道)을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1) 고성제의 뜻

  

우리 인생의 현실은 고苦라는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이미 삼법인의 교설에서 설명하였다. 이 고제苦諦에 대해 경전은 8가지 괴로움(八苦)을 들고 있다.
  

‘어떤 것이 고성제인가? 생生하고, 늙고, 병들어, 죽고, 미운 것과 만나고(怨憎會),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고(愛別離),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求不得)것은 괴로움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오취온(五取蘊, 나라고 取着된 몸과 마음)은 괴로움이다.’ <중아함경 권7 분별성제경分別聖諦經>
  

불교에서 ‘괴롭다’라고 말할 때, 그것이 인생에서의 행복을 전면 부정한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일반적으로 물질적·정신적인 여러 행태의 행복을 인정하였다. 그러한 행복을 인정하고 찬양한 후, 그것들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쉽다’라고 하였다. 즉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롭다는 속성을 가진 의미에서의 괴로움인 것이다.

 

(2) 집성제의 뜻

  

괴로움의 집(苦集)이라는 성제는 위에서 말한 괴로움이 어떻게 해서 발생하게 되는가의 이유를 밝혀주고 있다. 집(集, Samudaya)이라는 술어는 원래 ‘결합하여Sam- 일어난다udaya’는 뜻으로 한자의 뜻대로 ‘모은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집기集起’라고 하면 뜻이 더 잘 통할 것이다. 이는 괴로움은 연기緣起한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가리킨 것이다.
  

경에서는 집성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그것(集)은 재생再生의 원인이 되는 갈애渴愛로서 격렬한 탐욕貪慾에 묶여 있으며, 여기저기 새로운 기쁨을 찾아 나선다. (喜貪) 다시 말해서 그것은 욕애(欲愛: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망) 유애(有愛:존재 그 자체와 형성에 대한 갈망) 무유애(無有愛: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등이다.’  <잡아함경 권5>

 

(3) 멸성제의 뜻

  

괴로움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는 집제集諦와 정확하게 반대되는 개념이다. 고의 원인이 애愛·탐貪 등의 집기集起라면 멸제는 그것을 없애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괴로움 또는 고苦의 지속에서 해탈하고 벗어나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생사生死의 괴로움이 무명에서 연기한 것이라면 무명의 멸진滅盡을 통해 우리는 그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가 있을 것이다. 괴로움의 멸滅이라는 성제는 우리에게 이 명백한 사실을 깨우쳐주고, 동시에 괴로움이 사라진 그러한 종교적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지를 원적圓寂, 혹은 열반(涅槃, nirva-na)이라고 하여,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고 생사를 초월하여 불생불멸의 진리를 체득한 경지를 말한 것이다.

 

(4) 도성제의 뜻

  

괴로움의 멸滅에 이르는 길(道)이라는 도성제는 위에서 제시된 멸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즉 고의 멸진에 이르는 구체적인 실천항목인 것이다. 종교의 생명은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데 있다는 말이 있다. 걸어간다는 것은 곧 실천 수행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성제의 구체적인 실천항목으로서는 ‘성스러운 팔지八支의 길’이라 불리우는 팔정도八正道가 있다.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의 여덟가지 실천 사항을 가리킨다. 하나하나의 뜻을 알아 보면 다음과 같다.

①정견(正見, Samyak-dr.s.t.i)
   바르게 본다는 뜻으로 ‘바른 견해’를 말한다. 즉 사제四諦, 십이연기, 삼법인의 진리를 바로 보는 것을 가리
   킨다. 이러한 진리의 통찰과 함께 참된 깨달음으로 우주와 인생에 대한 바른 사고 방식을 수립하는 것이다.
②정사유(正思惟, Samyak-Sam.kalpa)
   ‘바르게 사유한다. 바르게 마음 먹는다’는 뜻으로 ‘생각할 바’와 ‘생각 안할 바’를 바르게 잘 분간하는 것이다.
   ‘바른 생각’을 말한다.
③정어(正語, Samyak-Va-c)
   ‘진실되고 올바른 언어생활’을 말한다. 즉 거짓말, 꾸며대는 말, 서로 이간시키는 말, 남을 성나게 하는 말
   등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바른 견해’의 적극적 실천이다.
④정업(正業, Samyak-karma-anta)
   ‘올바른 몸가짐’‘바른 신체적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살생, 도적질,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바른 견해’의 적극적 실천인 것이다.
⑤ 정명(正命, Samyak-a-jiva)
   ‘올바른 생활 수단’을 말하는 것으로 바른 견해에 입각한 전체적인 생활에 있어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곧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衣食住를 구하는 것으로 남과 나를 다같이 이롭게 하는
   바른 직업을 갖는 것도 그 뜻의 하나이다.
⑥정정진(正精進, Samyak-vya-ya-ma)
   ‘올바른 생활을 구현하기 위한 힘찬 노력’으로 줄기차게 노력하여 물러섬이 없이 마음을 닦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바로 불자의 구도 자세라 할 수 있다.
⑦정념(正念, Samyak-Smr.ti)
   ‘바르게 기억하는 것’인데 생각할 바에 따라 잊지 않는 것이다. 참된 진리를 항상 명심하고 기억하여 다른
    잡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사유와 함께 내면적인 마음의 기초를 확고하게 다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 마음 속에 정견正見이 가득 차고 항상 하도록 하는 것이다.
⑧정정(正定, Samyak-Sama-dhi)
   ‘바르게 집중集中’한다는 말로서,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인데 삼매(三昧, Sama-dhi)라는 음역어音譯語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행법이다. 이는 정념이 더욱 깊어진 상태로서, 정념의 성취로 몸과 마음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지극히 잘 조화되고 통일된 마음에 온갖 번뇌와 어지러운 대상이 모두 쉬게 되면서
    마치 가을 하늘에 지혜의 달이 뚜렷이 빛나는 경지를 뜻한다.

이상이 대개 경전에서 볼 수 있는 팔정도의 설명인데, 괴로움을 없애는 데(苦滅) 이러한 팔정도를 수행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연기설에서 연기한 것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생사의 괴로움도 연기한 것이므로 실체가 없을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무명無明 망념妄念에서 연기한 괴로움은 현실적으로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集諦).
괴로움이 이렇게 현실적으로 있으므로 그것을 없애지 않으면 안되며 (滅諦),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진리를 똑바로 응시하고(正見), 그에 입각해서 새로운 종교적 생활을 영위하면서(正思惟∼正念)마음을 진리와 하나가 되게끔 집중하는(正定) 팔정도의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4) 해탈의 세계-열반의 뜻

  

수행을 통해 도달한 궁극적 경지를 불교에서는 해탈이나 열반이라는 말로 부른다. 해탈(解脫, Vimoksa, vimukti)은 구속(結縛)이나 막힘(障碍)으로부터 벗어난 해방·자유 등을 의미하고, 열반(涅槃, nirva-na)은 ‘불어 끈다(吹滅)’는 뜻으로 번뇌의 뜨거운 불길이 꺼진 고요한 상태를 가리킨다. 또한 열반이란 소위 삼독심三毒心이라고 하는 탐貪·진瞋·치痴가 영원히 끊어진 상태로 생사의 구속을 벗어난 해탈의 경계이다.
  

해탈에는 혜해탈慧解脫과 심해탈心解脫의 두 가지가 있다. 혜해탈(慧解脫, praj뻕-Vimukti)은 오온(五蘊:自我의 구성 요소)이나 12연기의 도리를 깊이 연구하여, 그러한 것들에 실체가 본래 없다는 것을 앎으로써 지적知的으로 해탈하는 것을 뜻하며, 연기한 것이 무아無我라는 것을 직관하여 아는(正見)것 만으로는 마음의 번뇌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으므로 정정正定을 통해 마음에서 그것을 완전히 없앨 때 심해탈(心解脫, ceto-uimukti)이 얻어지는 것이다. 열반은 이러한 두가지 해탈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모든 악이 없어지면 일체는 선善이 되고 모든 삿됨(邪)을 깨뜨리면 일체는 정正이 된다. 무상하고 괴롭고 무아였던 일체는 탐·진·치 삼독의 뿌리가 뽑히고 무명無明의 구름이 걷히는 순간, 곧 바로 상常·락樂·아我의 일체로 전환되는 것이다. 열반은 바로 이러한 세계관의 전개, 생명의 약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출처 : 행복한 삶의 방식
글쓴이 : 아름다운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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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2011. 5. 26. 09:25

高王經(觀世音菩薩求生經)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南無 觀世音菩薩 南無佛 南無法 南無僧


불국유연 불법상인 상락아정 유연불법

佛國有緣 佛法相因 常樂我淨 有緣佛法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시대신주

南無 摩訶般若婆羅蜜 是大神呪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시대명주

南無 摩訶般若婆羅蜜 是大明呪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시무상주

南無 摩訶般若婆羅蜜 是無上呪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시무등등주

南無 摩訶般若婆羅蜜 是無等等呪


나무 정광비밀불 법장불

南無 淨光秘密佛 法藏佛


사자후신족유왕불 불고수미등왕불

獅子吼神足幽王佛 佛告須彌燈王佛


법호불 금강장사자유희불 보승불

法護佛 金剛藏獅子遊戱佛 寶勝佛


신통불 약사유리광불 보광공덕산왕불

神通佛 藥師琉璃光佛 普光功德山王佛


선주공덕보왕불 과거칠불

善住功德寶王佛 過去七佛


미래현겁천불 천오백불 만오천불

未來賢劫千佛 千五百佛 萬五千佛


오백화승불 백억금강장불 정광불

五百化勝佛 百億金剛藏佛 定光佛


육방육불명호

六方六佛名號


동방보광월전묘음존왕불 남방수근화왕불

東方寶光月殿妙音尊王佛 南方樹根化王佛


서방조왕신통염화왕불 북방월전청정불

西方조王神通焰花王佛 北方月殿淸淨佛


상방무수정진보수불 하방선적월음왕불

上方無數精進寶首佛 下方善寂月音王佛


무량제불 다보불 석가모니불

無量諸佛 多寶佛 釋迦牟尼佛


미륵불 아촉불 아미타불

彌勒佛 阿촉佛 阿彌陀佛


중앙일체중생 재불토계중자 범왕제석

中央一切衆生 在佛土界中者 梵王帝釋


행주어지상 급재허공중

行住於地上 及在虛空中


자우어일체중생 각령안온휴식

慈憂於一切衆生 各令安穩休息


주야수지신심 상구송차경

晝夜受指信心 常求誦此經


능멸생사고 소복어독해

能滅生死苦 消伏於毒害


나무 대명관세음 관명관세음 고명관세음

南無 大明觀世音 觀明觀世音 高明觀世音


개명관세음 약왕보살 약상보살 문수보살

開明觀世音 藥王菩薩 藥上菩薩 文殊菩薩


보현보살 허공장보살 지장보살

普賢菩薩 虛空藏菩薩 地藏菩薩


청량산일만보살 보광여래화승보살

淸涼山一萬菩薩 普光如來化勝菩薩


염념송차경 칠불세존 즉설주왈

念念誦此經 七佛世尊 卽說呪曰


이바이바제 구하구하제 다라니제 니하라제

비리니제 마하가제 진령갈제 사바하(3번) 


시방관세음 일체제보살

十方觀世音 一切諸菩薩


서원구중생 칭명실해탈

誓願救衆生 稱名悉解脫


약유박복자 은근위해설

若有薄福者 慇懃爲解說


단시유인연 독송구불철

但是有因緣 讀誦口不輟


송경만천편 염념심불절

誦經萬千遍 念念心不絶


화염불능상 도병입최절

火焰不能傷 刀兵入摧折


에로생환희 사자변성활

恚怒生歡喜 死者變成活


막언차시허 제불불망설

莫言此是虛 諸佛不妄說




고왕경(高王經)


관세음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미묘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부처님이 제자에게 귀의합니다.

부처님과 인(因)이 있고, 부처님과 연(緣)이 있어

불법 만나 항상 괴로움 없는 즐거움에서 나의 본성 맑아지이다.

마하반야바라밀에 귀의합니다.

大神呪인 마하반야바라밀에 귀의합니다.

大明呪인 마하반야바라밀에 귀의합니다.

위없는 주문인 마하반야바라밀에 귀의합니다.

어디에도 견줄 바 없는 주문이옵니다.

정광비밀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법장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사자후신족유왕불께 귀의합니다. 불고수미등왕불께 귀의합니다.

법호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금강장사자유희불께 귀의합니다.

보승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신통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약사유리광여래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보광공덕산왕불께 귀의합니다.

선주공덕보왕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과거칠불(過去七佛) 미래현겁천불(未來賢劫千佛) 천오백불(千五百佛)

만오천불(萬五千佛) 오백화승불(五百花勝佛)

억금강장불(百億金剛藏佛) 정광불(定光佛)

여섯 방향 여섯 부처님 명호

동방보광월전묘음존왕불(東方寶光月殿妙音尊王佛) 

남방수근화왕불(南方樹根花王佛) 

서방조왕신통염화왕불(西方조王神通焰花王佛) 

북방월전청정불(北方月殿淸淨佛) 

상방무수정진보수불(上方無數精進寶首佛) 

하방선적월음왕불(下方善寂月音王佛) 

무량제불(無量諸佛) 다보불 (多寶佛)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미륵불(彌勒佛) 아촉불(阿?佛) 아미타불(阿彌陀佛)

부처님 땅에 있는 모든 중생들

범천왕 제석천 지상에 살고 허공 중에 있는 일체중생을

사랑으로 근심하시어 각각의 령으로 편안하게 하시고

낮과 밤으로 받아지녀 믿는 마음으로 이 경을 항상 구하여 외우면

능히 생사의 고통을 멸하고 독의 해침을 받지 않는다.

나무대명관세음(南無大明觀世音) 관명관세음(觀明觀世音) 고명관세음(高明觀世音) 개명관세음(開明觀世音) 약왕보살(藥王菩薩) 약상보살(藥上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 청량산일만보살(淸凉山一萬菩薩) 보광여래화승보살(普光如來化勝菩薩)

생각 생각마다 이 경 외움이 끊어지지 않으면

일곱 분의 부처님께서

즉시 주문을 설하신다.

이바이바제 구하구하제 다라니제 니하라제 비리니제 마하갈제 진령갈제 사바하(3번)

열방향의 관세음보살과 모든 보살님께서

중생을 구하시기를 서원하시어 이름을 부르면 모두 해탈케 하신다.

만약 복이 엷은 자가 있으면 드러나지 않게 해탈케 하신다.

단 인연이 있어 읽고 외움에 입에서 끊어지지 않으며 경을 외움이 만천편이요. 생각 생각 마음에 끊어짐이 없으면

불이 능히 상하게 하지 못하고, 무기가 꺽이며

삶에는 기쁨이 넘치며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난다.

이 말에는 허언이 없으며 모든 부처님은 망령된 말을 하지 않는다.

출처 : 가로수가 있는 산책길
글쓴이 : 일체유심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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