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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닥스 2014. 2. 22. 07:41

이번 95주년 3.1절의 '3.1혁명' 심포지엄에 계기로 제가 예전에 언론에 기고했던 '3.1절은 독립절이다' 글을 찾다가 발견한 컬럼입니다.

제가 이 주장을 한 것은 2009년(3.1절 90주년)인데 그보다 15전인 1994년(75주년)에 이런 주장을 하신 분이 계시군요. 

반가운 마음에 옮겨놓습니다.  (출처 : http://www.kinds.or.kr/ )

 

참고로 글을 쓰신 김학은 교수님은 1996년에 역시 경향신문에 다시 같은 글을 기고하셨더군요.

밑에 같이 옮겨 놓습니다.

 

 

3·1절을 「독립절」로/김학은 연세대교수 경제학(정동칼럼)

[경향신문]|1994-02-22|05면 |국제·외신 |컬럼,논단 |2228자

 

며칠 있으면 삼일절이다. 삼일절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자극받아 일어난 정치적 사건이라 하지만 대중매체가 전혀 발달되지 않은 당시 사정에 비추어 이 명분은 지도층에 국한되었고 대부분의 백성들은 이를 모른 채 10여년에 걸친 일본의 경제적 수탈에 항거한 경제적 사건이라고 보인다. 1919년을 고비로 소작쟁의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많은 경제학자들은 1919년을 한국자본주의사에 있어서 중요한 해로 생각하고 있다.미국은 1776년 7월4일 독립을 선포했지만 헌법이 채택되고 정부가 수립된 것은 1789년이다. 우리가 1919년 3월1일 독립을 선포하고 1948년 정부가 수립된 것과 그 과정이 흡사하다. 미국은 13년동안 독립을 위해 영국과 싸웠고 우리는 29년 동안 독립을 위해 일본과 싸웠다. 미국의 독립전쟁에는 프랑스·독일·러시아 등이 가담했다. 특히 프랑스의 도움은 미국독립에 절대적이었다. 처칠은 미국독립전쟁을 가리켜 최초의 세계대전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독립을 위해 중국·미국 등 열강의 힘을 빌렸다.


비교독립사의 입장에서 보면 독립한 나라치고 남의 힘을 빌리지 않은 나라가 없다. 어느 피지배민족이 힘이 있어 독자적으로 독립전쟁에서 단독으로 승리하겠는가. 그러한 힘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남에게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우리 혼자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음을 자조하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옳지 못한 태도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 나라는 오스트리아와 한번도 싸운 적이 없이 순전히 마사리크의 외교로 윌슨대통령의 도움을 얻어 독립한 나라다.


우리의 독립군은 워싱턴의 군대에 비하면 훌륭한 전공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마사리크의 군대에 비하면 적과 훌륭히 싸웠고 아일랜드의 저항 못지 않은 저항도 했다. 모든 것을 비교해볼 때 우리의 독립이 미국의 독립에 비해 손색이 없는데 미국은 7월4일을 독립절로 기념하는데 대해 우리는 아직도 3월1일의 성격을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삼일절은 이름부터 이상하다. 우리의 4대 국경일 가운데 10월3일은 개천절, 8월15일은 광복절, 7월17일은 제헌절로 명명한 고유의 이름이 있는데 3월1일만은 그냥 날짜이름으로 부르는 채 고유의 이름이 없다. 흔히 삼일운동기념일 정도로 홀대하는데 새마을운동도 아닌데 삼일「운동」이라니 푸대접치고 너무하다. 또 독립「운동」사 라고 부르는 역사 역시 운동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독립운동사라고 부르는 것을 다른 나라는 독립사라고 부른다. 이러한 와중에 독립운동군이 아니라 독립군이라고 부른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임시정부가 남의 나라에 있었다고 우리의 독립사를 폄하하는 태도도 옳지 않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임시정부는 런던에 있었고 미국은 아예 임시정부도 없었다. 상해임시정부가 사분오열된 것을 당파싸움의 고질로 보고 이 때문에 힘이 약화되었다고 탄식하는 사람도 있는데 아일랜드나 체코슬로바키아의 임시정부도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두 나라의 임시대통령 모두 외국에서 활동했으며 부인도 외국여자였다. 더욱이 아일랜드 임시대통령 드 바레라의 아버지는 스페인 사람이었다.


우리가 보통 미국독립선언서라고 부르는 문서에는 독립이라는 말이 없이 그냥 13주의 선언이라고만 되어 있다. 아일랜드독립지사 몇사람은 1916년 부활절에 더블린의 한 복판에서 선언서를 읽고 체포되어 드 바레라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교수형을 당했다. 그 선언서를 읽어보면 독립후의 국가정체에 대해 언급이 없다. 체코슬로바키아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독립전쟁의 승리이후 13주는 뿔뿔이 흩어졌다. 몇년후에 단일정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연방정부를 세웠으므로 독립선언서에 국가의 정체에 대해 생각을 피력할 여유도 없었다.
우리의 독립선언서는 이러한 점에서 다른 나라의 그것보다 훌륭하다.


이처럼 모든 나라의 독립사를 보면 공통점이 없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은 모든 독립국가들이 독립을 선포한 날과 실제 독립한 날이 틀리는데 독립을 선포한 날을 독립절로 기념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지배 나라가 피지배민족이 독립을 선포했다고 그 순간 독립을 시켜주겠는가.
독립을 선언하고 그를 위해 자력으로 싸우다 힘이 부치면 남의 힘도 빌려 싸우고 그러다 세계대세에 부응하는 운명을 타면 독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독립을 쟁취한 날보다 독립을 선포한 날을 독립절로 기념하는 것은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빼앗긴 강토가 실제로 회복된 것보다 그 모체가 되는 독립정신이 살아 있음을 선포한 사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삼일절은 독립절이다.

 

3·1절을 「독립절」로/김학은 연세대교수·경제학(정동칼럼)
[경향신문]|1996-03-05|05면 |정치·해설 |컬럼,논단 |2280자

 

금년 3월1일은 77주년 3·1절이다. 금년의 삼일절이 더욱 우리 가슴에 불을 댕긴 것은 근자의 일본의 망언 때문이리라. 독도망언에서 일본의 망언은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아니 지금까지의 모든 망언은 독도망언을 위한 서곡에 불과하다.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두 나라 사이의 불행한 시나리오의 시작이 될 것인가. 이같은 방자와 망발 가운데 우리가 삼일절을 맞이하였으니 잊고 싶은 과거가 다시 살아나 가슴에 불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리라.

 

○일본의 끝없는 도발

그러나 삼일절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토로하는 날인가. 아니면 삼일만세운동을 기념하는 날인가. 미완성의 독립선언인가. 그렇지 않다. 필자는 2년전 오늘 정동칼럼에 삼일절은 우리에게 「독립절」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에는 일본이 얌전하여서인지 강호제현의 가르침이 없었다. 필자는 오늘 일본의 이같은 적반하장을 듣고서 극일이 들끓는 가운데 똑같은 주장을 하려고 한다.
명치유신 이후로 일본은 경거망동으로 동양 3국을 유린하고 방자하게 태평양전쟁으로 세계를 어지럽혔다. 연합국으로부터 원자탄 세례를 맞고 무조건 항복한후 50년동안 본심을 죽이고 근신하는가 싶더니 드디어 우리에게 다시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혹자는 이같은 망발을 우리에 대한 시험이라 하지만 우리는 일찍부터 그 속셈을 알고 있었기에 새삼스러울 것 없다. 이것은 100여년전에도 그랬듯이 세계에 대한 그들의 도전의 전주곡에 불과하다.

일부 사람들은 분노를 토로하고 일부 사람들은 결의를 다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가상한 일이로되 얼마나 갈 것인가. 며칠 되지 않아서 벌써 잊어가고 있지 않은가. 실력을 준비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이 또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에 우리는 독립정신을 형체화하는 일이 화급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우선 삼일절을 독립절로 명명할 것을 요구한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4대 국경일 가운데 이름이 없는 국경일은 삼일절 뿐이다. 7·17절은 제헌절로, 8·15절은 광복절로, 10·3절은 개천절로 부름에도 불구하고 삼일절만은 고유의 이름 없이 천대받고 있음은 이 날이 우리에게 과연 무슨 날인지를 모르는 징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삼일절이 고유의 이름이 없는 한 3월1일은 우리에게 미완의 독립선언일로 밖에 남아있지 못한다.

세계 여러나라의 독립사를 비교해보면 독립을 선포한 날을 독립절로 기념하고 있다. 독립을 선포하고 그리고 긴 독립전쟁을 거친 후에 실제로 독립을 하는 것이 여러 나라 독립의 공통이다.

여러 나라의 독립투쟁에서 이것만이 유일한 공통점이다. 그리고 독립을 쟁취하는 방법은 나라마다 다르다. 그런데 여러 나라에는 독립절이 있는데도 우리에게는 독립절이 없다.

혹자는 우리는 단군 이래로 독립국가이기 때문에 특별히 독립한 날이 필요없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1919년 3월1일 천지를 흔든 독립만세 소리는 무엇이었으며, 그 소리 아래 우리의 선열은 무엇때문에 피를 흘렸으며, 중국과 러시아 영토에서 또 구미에서 독립투쟁하던 우리의 지도자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단 말인가, 또 상해임시정부는 과연 무엇이던가.

이 모든 열정과 분노와 열망의 목적은 대한 독립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시작이 독립선언이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1919년 3월1일이 우리의 독립절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미국은 1776년 7월4일 독립을 선포하고 오랫동안 영국과 싸우고 1789년 헌법을 만들어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독립을 선포한 날을 독립절로 기념하고 있지 않은가. 이같은 예는 수없이 많다. 아일랜드가 그렇고 체코슬로바키아가 그렇고 헝가리가 그러하며 남미의 여러 나라가 그러하다.

○상징성을 깨달아야

독립을 선포한 날을 독립절로 기념하는 까닭은 실제로 독립한 날보다는 독립의 결의를 다진 날을 더 소중히 생각한 때문이 아닐까. 독립의 필요성을 깨달은 날이 더 소중하고, 빼앗긴 강토를 실제로 회복한 것보다 그 씨앗이 되는 독립정신이 살아있음을 만천하에 선포한 사실을 더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사정이 이러할진대 우리는 아직도 독립선언의 중요성을 소중히 생각하는 깨달음이 부족하여 삼일절에 독립절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이같은 독립선언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깨닫는 머리가 부족하다면 독도를 어떻게 지키겠으며 독도를 지키지 못하면 우리의 땅을 어떻게 지키겠는가. 들끓는 가슴만 갖고는 지키지 못한다.

우리의 독립결의의 총화인 삼일절의 참뜻을 다시 확인하고 독립절로 명명해야 한다. 이것이 독도를 지키는 결의의 출발점이며 종착점이다. 이것이 독립을 형체화하는 시작이며 결의를 확인하는 총체이다. 미완의 독립선언을 완성하는 길이다. 삼일절은 독립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