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여신 '마고할망'

유기농 채소와 동양란을 가꾸며 살아 가는 마고 할망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제 3부 아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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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30.


삼태기로 물을 퍼 담는다.

 

 

아이는 말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아니 시간의 영속선 속으로 달팽이처럼 느리게 가는 길 위에 흔적만을 남기며 걷고 있었다. ‘저 아이가 자폐아는 아닐까?’ 생각될 만큼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허공을 응시하는 때가 많았으나 부지런히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생각들로 아이를 쳐다볼 겨를이 없었다. 뭐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쯤으로 여기고 지나쳤을 것이다. 가만히 그 아이를 들여다보면 선방에 앉아 도를 닦고 있던 선승처럼 한 생각 크게 일어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고 외치며 한 바탕 크게 웃을지도 모를 것 같았다.

아니, 어떤 사람 눈에는 저거 보지도 듣지도 말도 하지 못하는 바보는 아닐까 의심 한번 해 봄직도 할 것이다. 그래도 그 아이는 노래를 불렀고 산으로 들로 쏘다니기도 하고, 조금 더 자라서는 밭고랑에 앉아서 생각에 잠기거나, 산속에 들어가 머루를 따 먹고, 산딸기를 따 먹고, 정금을 따먹으며 쉼 없이 갈퀴로 솔잎을 긁어모으면서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다.

 

특별한 내면세계가 있으며 스스로 빛을 내는 인디고 아이는 아니었던 듯싶다. 전생을 기억하며 하나의 인격체로서 생각이 완전하게 여물어 천재성을 나타내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고,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이승과 저승을 잇는 그런 중간계에 사는 아이는 아니었을까? 아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아이를 논둑에 내려놓고 피를 뽑다가 아이가 걱정되어 돌아보니 없어졌더란다. 수렁에 빠졌는지, 작은 샘에 빠졌는지, 지나가던 사람이 예쁘다고 데려갔는지 걱정이 되어 찾았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는 논두렁을 베개 삼아 베고 누워 두 발은 물속에 담근 채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신선인가 천사인가 아이 얼굴은 평온했고 미풍에 가느다란 속눈썹만 파르라니 떨리는데 세상을 초월한 듯 흔들림 없는 작은 아이에게는 거머리도 피해갔다.

 

다섯 살쯤 된 아이는 높다란 저수지 둑을 힘들게 오르고 내려서 어른들이 일하는 저수지 건너편 저수지와 논을 가로 막고 서있는 제법 넓은 둑으로 갔다. 그 둑엔 할머니가 괭이로 파서 콩을 심고 호박을 기르면서 씨앗을 뿌리지 못한 수렁이 있었다. 높은 둑 위 수렁 한가운데서는 진흙이 물과 함께 퐁퐁 솟아오르고 거기에 발을 잘못 들여놓은 귀뚜라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내기가 끝난 뒤 무논엔 심고 남은 모가 한 줌 남아있었다. 어른들이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줄에 맞춰 일제히 허리를 구부렸다 펴면 진흙 물속에 푸른 모가 한가득 꽂힌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곳에 새로운 싹이 솟아나니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없는 가운데 있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사라지는 일이 논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는 그래서 진흙 수렁에 삼태기로 물을 담아다가 논을 만들어 모를 심기 시작했다. 없는 가운데 있는 것을 찾아서, 삼태기는 물을 가둬둘 수 없는 물건이다. 아이는 아이가 가둘 수 있는 만큼의 물만 건져냈다. 물이 줄줄 흘러내려도 내버려 둔 채. 어른들은 너무도 진지하게 삼태기로 물을 퍼 올리는 아이를 말릴 수도 없었다. 아이에겐 그것이 최선이었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기쁨이었다. 진흙 수렁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고 마르지 않은 그 수렁에 몇 가닥 모가 자라고 열매를 맺었다가 사라졌다.

아이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걸 바라보았고, 그 세계는 아이가 하는 손놀림 끝에서 만들어졌으며, 그 세계가 영그는 것을 보았고 늦가을 어딘가로 사라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거기엔 진흙 수렁만 있을 뿐.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을까?

어른이 된 후 그 길 끝에서 찾아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땅에 딱 붙어서 멀리서는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작은 아이는 어느 날 혼자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섰는데 그 길 끝엔 엄마와 할머니가 있었다. 아이 걸음으로는 족히 한 시간은 걸렸을 거리를 밭두렁을 여럿 지나고, 다박솔 숲 샛길을 아장아장 걸어서, 언덕 위에 올라설 때까지 어른들은 나그네 같은 꼬마 아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후로도 아이는 늘 혼자서 저벅저벅 막대기 하나를 들고서 길을 나서곤 했다. 관목 솔숲은 붉은 맨살과 허연 뿌리를 드러내며 바다를 향해 무심결에 날마다 무너져 내려 산이반도 양쪽 끝에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선을 만들었다. 소나무를 품었던 붉은 황토는 바다에 이르러 모래펄이 되었다가 수 없이 밀려드는 파도에 잘게 부서진 채 썰물을 따라 진흙 갯벌이 되어 만을 채우고, 큰 바다 어미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올라와서 그 보드라운 산란지에 황홀하게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다 죽어가는 천국이 되었다. 황토는 그렇게 그 작은 바다에 자신을 던져 넣고 가이아의 여신처럼 검붉은 초록 플랑크톤을 키우고, 빼곡히 황금 조개를 토해 놓고, 등 굽은 보리새우가 유영하며 뒹구는 모래톱이 되어 주고, 새끼 물고기가 춤을 추며 뛰놀게 하였다가 작고 앙증맞은 아이의 손가락에 걸리는 날 장난감이 되어 주고, 운수 좋지 않은 날은 도요새랑 갈매기들의 주린 배를 채워줬다. 황토는 자기를 허물어 바다의 어머니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바다로 흘러들지 못한 황토는 바다를 그리워하며 크고 작은 골짜기를 만들어서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서는 아이에게 땅 위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황토가 무너져 내린 그 골짜기엔 초록 소나무를 닮은 초록뱀이 살고 있었다. 검은 머루를 따 먹다가 초록뱀을 만나 흠칫 놀란 아이가 다른 골짜기로 도망치자 초록뱀이 말을 건넸다.

아이야, 내가 무섭니?”

갑자기 길고 꼬불꼬불한 것이 쓱 미끄러져 가니까 놀랬지.”

그랬구나. 사람들은 나를 보면 달아나더라. 너도 그런 줄 알았다. 나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나를 무섭다고 도망갔다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는 돌멩이나 나뭇가지로 나를 마구 때리며 죽이려 해. 사람들이 나를 잘 못 건드리다 내가 밟히면 나는 깨물고 달아나. 나를 귀한 약재로 쓴다고 잡아가는 사람들 손을 칭칭 감아서 혼을 내주기도 하지.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거든. 그래서 나는 골짜기에 숨어서 이슬을 먹고, 거미를 먹고 아주 작은 청개구리를 먹어. 내가 청개구리를 먹고 청개구리처럼 초록색이 되어서 이렇게 맹감 덩굴 속에 숨어있으면 사람들은 나를 찾지 못해.”

나는 네가 무섭지가 않아. 그런데 너는 왜 살아있는 것들을 먹어? 네가 먹는 것들은 네 친구가 아니야?”

네가 밥을 먹는 것처럼 그것들이 내 밥이니까 먹는 거야. 내가 살 수 있을 만큼만 잡아먹어. 나는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 때부터 여기 이 작은 골짜기에서 살았어. 추운 겨울이 오면 청개구리들도 땅속에 구멍을 파고 잠이 들지, 그러면 나도 잠을 자. 겨울 내내 굴속에서. 사람들은 창고에 곡식을 저장해 두고 겨울에도 잠을 자지 않고 자꾸자꾸 먹더라. 욕심 많은 사람들이 저장해 둘 곡식이 없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좋을 것인데, 나중에 자기가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고 빌려줘. 그런 사람들은 힘이 있어. 우리도 물론 힘이 센 뱀이 약한 뱀을 잡아먹는다고는 하는데 내가 사는 이 골짜기엔 없어. 모두가 자기가 사는 데에만 살고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지는 않아. 네 머릿속에는 내가 아직 무섭다는 생각이 없으니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어. 우리는 이렇게 해서 끈을 맺는 거야. 앞으로 너는 나를 만나면 그냥 초록색 기다란 친구로 알게 될 것이고, 네가 먹고 싶은 새콤달콤한 머루를 얼마든지 따 먹을 수가 있을 거야.”

아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스르륵 미끄러져 가는 초록뱀이 무섭지 않았다. 양지바른 골짜기에는 억새꽃이 해풍에 춤을 추고, 붉게 물든 담쟁이덩굴은 허리가 굽은 오래된 소나무를 감고 하늘을 그리워한다. 아이가 수없이 오르내리며 놀던 그 골짜기 응달진 그늘에선 낙엽이 쌓여 황국이 피고, 아름다운 구절초가 향기를 뿜고, 한줄기 가느다란 꽃대 끝에 흰 도라지꽃이 매달려서 건너편 양지에 핀 보랏빛 도라지꽃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해송이 바닷바람을 못 이겨 구불구불 자라다가 너른 품을 내어주고 지천으로 정금을 길러내어 과자 구경 한 번 못해본 아이의 주전부리 열매를 한주먹씩 내어주었다. 골짜기는 먼 바다를 그리워하며 새로운 골짜기를 만들어 내고 실개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는데, 바닷물 속을 나온 떠돌이 붉은 풀게는 골짜기 샘물이 솟아 나오는 작은 언덕에 구멍을 내어 집을 짓고 살면서 더듬이를 내어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다가는 작은 아이가 다가가면 구멍으로 쏙 달아난다. 여름날의 오후는 황토 숲이 무너져 내린 언덕 아래에 그늘이 지고 아이는 달콤한 낮잠을 잔다. 어느새 밀물은 발아래까지 하얀 물거품으로 다가와 바다 저 끝 흰 구름 흘러가다 잠시 머무르는 흑석산에 오르라고, 봉우리가 우뚝우뚝 높이 솟아 있는 월출산엔 전설이 기다리고 있다고, 서쪽 끝 먼 바다엔 회색빛 작은 도시를 품고 노적 봉우리를 이고 있는 유달산이 노래한다고, 저 너머 영매산으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따라 가보라고 속삭이며 바다 호수를 펼쳐놓고 잠을 깨운다.

 

반도의 처음 시작은 해발 200미터쯤 되는 주성산이 있다. 아이들은 그곳으로 소풍하러 가고 보물찾기를 하면서 꿈을 키워냈다. 황토로 다져놓고 듬성듬성 굵은 자갈돌을 깔아 놓은 신작로엔 오지의 승합 버스가 올망졸망한 짐 꾸러미를 이고 지고 둘러맨 시골 농부들을 태우고 반도 끝 선창까지 구불구불 덜커덩덜커덩 길 양쪽으로 쭉 늘어선 소나무 터널을 가로질러 하루에 서~너 차례 달리다가 비가 내린 뒤 움푹 파인 물웅덩이에 멈춰서는 날엔 목포로 가는 여객선을 놓치기도 한다. 상공리 부둣가에서 저 멀리 야속하게 떠나버린 여객선을 불러 세우지도 못한 도시로 가는 유학생들은 다시 읍내로 떠나는 버스에 올라, 한 달을 버티고 살아낼 용돈을 반쯤 덜어내어 우슬재를 넘고 옥천을 지나고 독천을 지나 삼학도를 바라보며 용당리 선착장에서 철선을 타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자취방으로 터덜터덜 걸어서 간다. 신작로 양옆엔 바다까지 넓게 펼쳐진 다박솔 숲이 듬성듬성 마을을 품고, 논밭을 일궈내며 고라니를 길러내고 산토끼를 길러내고 산비둘기랑 어치도 키우고 있었다. 그 숲에 들어가면 까투리는 새끼들을 데리고 억새 사이로 숨고, 제법 큰 소나무 가지에 솔잎이 쌓인 곳엔 맷새가 둥지를 틀고, 부지런한 종다리는 하늘 높이 올랐다가 맹감나무 덩굴 속에 꼭꼭 새끼를 숨겨두고 길러내고 있었다. 휘파람새가 휘리릭 노래하고 꾀꼬리랑 뻐꾸기가 화답을 하면 다박솔 그늘 밑엔 노란 꾀꼬리버섯이 기지개를 피고, 숲 가장자리엔 양지꽃 할미꽃 별꽃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나있다. 꾀꼬리버섯을 한 바구니 따놓고 솔잎을 긁어모으던 소녀는 보랏빛 잔대꽃을 찾아서 흙을 파내고 한 뿌리를 캐어 흙 묻은 바지에 쓱쓱 문질러서 달짝지근한 허연 살을 질겅질겅 씹어 먹는다. 그 솔숲엔 새들이 노래하고 꽃들이 지천이었다. 기름 잔등을 넘어가면 커다란 소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데 그 숲에는 낮에도 도깨비가 나올 것 같이 으스스하고 컴컴해서 숲속에 커다란 저수지가 숨은 비밀을 모른다. 검푸른 저수지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해마다 어린 사내아이들이 멱을 감다 빠져 죽고, 얼음을 지치다 얼음 속으로 사라지는데 아이들을 찾지 못한 어미들은 혼이라도 건져내자고 큰굿을 한다. 그 저수지 저편 숲 끝자락엔 무당인지, 보살인지 아름다운 여인이 살고 있었다. 젊어서는 기생을 했다는데, 삭발하고 어두컴컴한 숲에 들어앉아 죄를 닦겠다는 그 여인은 무슨 업보가 남았는지 어쩌다 한 번씩 신작로를 낭창낭창 걸어가고 있었다. 숲속 끝 오두막에 모셔둔 미륵부처를 만나자고 아름다운 여인을 따라서 아이도 하늘하늘 그 길을 걸어서 갔다.

비가 오고 나면 황톳길은 붉은 진흙탕으로 변했고 내를 이뤘지만, 빗물은 바다를 그리워하며 남쪽 끝으로 흘러가서 남쪽 바다가 되고, 북쪽 끝으로 흘러 들어가서 북쪽 바다가 되었다. 북쪽 바다엔 배가 한 척뿐이었다. 갯벌을 뒤지다가 기다랗고 발이 다닥다닥 징그럽게 붙어있는 갯지렁이 마주하면 깜짝 놀라 손에 묻은 개흙을 던져 버리고 겅중겅중 딴 대로 도망치던 아이들은 언젠가부터 그 갯벌에 이상한 갈고리를 들고 나타난 영암 사람들을 만났다. 바다 건너 사포 것들이 자기네 앞바다를 다 뒤엎고 낙지를 씨가 마르게 잡아내더니 배를 타고 와서 갯벌을 헤집어 갯지렁이를 파내고 낙지를 다 잡아가도 산이면 사람들은 나무라지 않았다. 그러나 갯지렁이가 부지런히 갯벌 속에 길을 내고 산소를 들여보내 줘야 하건만, 갯농부 갯지렁이를 다 잡아가니 갯벌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꼬막이 사라졌고 낙지가 잡히지 않았다. 한 척 작은 배는 봄이면 모찌며 숭어를 동네 사람 먹을 만큼만 잡아내고, 가을이면 기름진 전어를 잡아다가 솔가지 태운 숯불에 석쇠를 올려놓고 온 동네 구수하게 냄새를 피웠는데, 그 작은 배가 아무리 노를 젓고 그물을 놓아도 걸려든 고기가 없고, 칠게도 사라져 주낙을 놓아 낙지를 잡을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앞마을 뒷마을 작은 땅에 소를 부려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곡식이 익으면 농부가 지게로 져 나르며 욕심 없이 살았는데, 어느 날 굉음을 내는 불도저가 신작로를 넓히더니 전봇대가 세워지고 전깃불이 들어왔다. 작은 아이들이 펄럭이다 수 없이 꺼트린 등잔불은 밤새도록 켜두고 아무리 뛰고 날아도 꺼지지 않는 백열등이 되고, 형광등이 되어 천장에 매달리고, 급할 땐 전보를 치러 십 리를 걸어 우체국까지 뛰어가던 사람들은 전화기를 들고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자식들과 말을 주고받았다. 불도저가 신작로를 넓히고 소나무 숲을 다 없앤 뒤 끝없이 펼쳐진 황토밭에는 너른 평야가 들어서고, 청보리 물결이 춤추던 언덕이 사라진 자리에 매화꽃 숲이 생기고, 여름에도 잘 자라는 고랭지 배추밭에 배추가 실하게 자라면 쉴 새 없이 트럭이 도시로 실어 날랐다.

숲이 사라지고, 숲속 친구들도 모두 사라진 다음엔 또, 해안선이 사라지고 갯벌이 사라졌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나고, 자라고, 새끼를 기르며 바닷물이 들어오고 흙이 쌓이기 시작했던 태고 이래로 반복되던 삶은 어디로 다 흘러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