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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운거사 2012. 10. 6. 07:15

2010.12.1집을 지을 소나무는 운반되어 왔다.

대형트럭 2대분 대형 대들보5개(굵기 1자2치에 길이 18자), 기둥 1자에 길이 9자 16개, 도리 굵기 8치에 길이 14자 25개 ,문틀제작을 위한 원목 32개(1자굴기에 9자15개.6자 17개),서까래 4치 200개등 어마한 량에 껍질을 벗길 일이 걱정이어서 언젠가 제재소에서 포크레인으로 껍질을 벗기는 것을 본 경험이 있어서

나무정리를 하던 중장비하는 아저씨에게 벗겨보라고 하였더니 나무만 버리고 말아서 고민을 하였다.

그러던중 사돈되는 친구가 손으로 하자는 것이다. 나무껍질을 벗기는 칼을 구입하고 벗기는데 재미가 있었다.

큰 나무를 운반하는데는 소위 체인브럭이라고 부르는 것을 엄우섭 회장님이 집에서 가지고 와서 도와주고

나무를 굴리는데는 50미리 파이프를 헤머로 한쪽을 두들겨서 사용하니 그만이었다.

내집을 짓는다는 기분으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전원주택을 짓고사는 이웃분들에게 소음을 많이 주었다.

그러나 모두들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해해 주었고 가끔 구경와서 나무만지는 것에 혀를 내둘러 격려와 감사의 표시도 해주었다.

심지어는 자기집에 있는 간식도 가지고 와서 건네주면서 담소도 하고 돌아가는 아름다운 미덕에 늘 감사하고 했다.

 

기둥과 도리,대들보 문틀용 나무에 대한 껍질 벗기기가 끝나고

본격적인 서까래 깍기가 시작되었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사꾸리대패를 이용하여서 먼저 4치 굴기로 동그란 모양을 낸 그림을 그린후 방향을 잡고

초벌겸 껍질을 벗기고 쌓아 두는데 서까래가 4치라고는 하나 서까래 끝부분이 4치여서 어떤 것은 밑동부분은 6치가 넘는것도 있어서

혼자서는 엄두도 못내고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옮기기도 하였다.

서까래 초벌을 다하고 비닐 하우스에 옮기고 나서 원두막을 지을 50여개는 세워서 말렸다.

껍질을 벗은 나무의 마르는 속도는 겨우내라고 하여도 하루가 다르게 가벼워 졌다.

 

껍질을 젓은 기둥과 대들보등은 그냥 눈비를 맞으면서 말리고 운반이 쉬운 서까래은 하우스안에서 말리는데

출근전 새벽 5시전에 일어나서 현장을 한번 둘러 보고 컨테이너 안에서 난로에 불지펴놓고 훈훈한 가운데

마시는 커피는 그 어떤 맛과도 비길수 없는 달콤함이 배여 있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관계로 아내는 맥주와 소주등을 상자째로 사다놓고 주말에 일을 도와주러 오는 친구들에게 나 대신 권하기 일쑤였다.

 

동그란 흙집을 3채나 지어본 경험과 그것을 보안온 친구들이 손수 살 집을 짓는다고 하니 과연 어떤 집을 짓는지 궁금해서

주말이면 일을 도와주는 친구들4-5명보다 구경꾼이 많을때는 20여명이 되기도 하였다.

그 많은 구경꾼도 때론 굵은 나무를 옮기거나 힘든것을 할때 구경하다 도와주기도 하고

구경오면서 사오는 새참과 음료수로 인하여 음료수 빈병과 캔을 쓰레기 모으는곳에 수십자루 갔다 버리기도 하였다.

당시 매주말이면 일을 도와주는 고향친구이자 조카들끼리 결혼하여 사돈지간이 된 병화, 두번째 흙집을 지어준 엄우섭회장, 손재주가 않은 친구 추기영,

가끔씩 참석하는 홍필립등 고정맴버이다 싶을 정도로 주말에 한번은 모여서 일을 하였다.

특히 엄우섭회장은 자신이 레카차를 직접몰고와서 무거운 것을 몲길때 운반하는등 눈물겨울 정도로 많이 도와주었다.

일을 하면서 사돈되는 병화와 사사건건 시비아닌 시비를 걸어가면서 웃음을 자아내어 힘든일이 재미있게 하였다.

 

매번 하는 고정이야기는 "에이 C! PAL! 언놈이 이런 집을 짓노!, 왜 이리 좋은 집을 짓노"하기도 하고

"내집을 조그만한것은 지어주고 자기집 지을 때는 큰집짓게 한다"는 소리를 질러 힘든것을 스스로 해소하기도 하였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서 춘삼월이 왔다. 대지가 기지개를 켤 즈음에 집을 짓기 보다 먼저 할 일이

도편수와 일을 도와주는 친구들이 쉴 공간 원두막 짓기 작업을 해야 하였다.

나무를 구할때 봉화의 강석조 사장이 원두막지으라고 기등을 4개 구해주어서 그걸로 원두막을 먼저 지을 요량으로 기초까지 만들어 두었다.

원두막 지을 준비를 하던 도중에 2011년 정초에 쓰러지신 어머님이 병원생활 한달을 조금 넘기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섣달 그믐날 막내아들 집 짓는곳에 장조카가 모시고 와서 보시곤 그렇게 좋아 하셨는데..

집 짓는 모습을 다 보시지도 못하시고 하늘 나라로 가셨다.

평생 농사일로 5남매를 키우시다가 늙으막에 아버님을 20여년전에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홀로 계시다가 우리곁을 떠나셨다.

그리운 우리 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