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

갑돌이 2017. 12. 5. 12:52

(2017. 11. 29.  21:50.) 

이런 글은 자료도 좀 찾아보고 신중하게 써야 되는데
저는 지금 동네 애들이나 뜯는 통닭 뜯느라 비닐장갑 꼈다 벗었다 하면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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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생들은 개인사에 있어서는 나름 격동의 시절을 겪었었다고 본다.
비록 20대에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맞이하는 등 사회 외적으로는 화려한 시기처럼 보이지만 들여다 보면 탄압과 부정, 부패의 시기였다.
(웃기는건 그 당시에는 그게 최고로 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더한듯 하다.)

전 나라안에 시위대의 물결이 있었고 그 와중에 노태우의 6. 29선언을 이끌어 냈었다.
(대통 간선 → 직선)

당시 나는 군복무중(전경 아님)이었는데 매일 종일 폭동진압훈련만 했었고 항상 출동대기상태였었다.
(진압봉 휘두르며 "나가자, 나가자, 나가자 앗!")
제대해보니 재학생들의 피나는 투쟁 덕에 졸정제는 폐지되어 있었다.

그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한 노래가 있었는데 송창식의 "고래사냥"이었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가득 슬픔뿐이네. ♩♪♬
무엇을 할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
(모두가 돌아 앉았네 = 탄압, 부정부폐, 비리뿐이네...)

하지만 경제는 잘 돌아가는듯 했다.
1993. 김영삼이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했었고,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의 2만원짜리 우리사주가 주식시장에서는 88,000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1996. 12. 초.
당시 경제부처장관 임창열이가 "IMF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는 발표를 하였다.
(DAUM, NAVER에는 1997. 12. 초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1996. 12. 초로 기억한다.
첫 직장을 96. 1.에 이직하였는데, 그해 12월에 발표를 했었던 걸로 확실히 기억한다.
그리고, 1997. 12. 18. 대통령선거에서 여당이 패하고 야당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
IMF 간섭 발표와 동시에 대통령 선거를 치룬 기억이 없고, 김영삼이가 아무리 멍청하기로서니 선거직전에 IMF의 금융지원을 받겠는가??
따라서 내 기억인 1996. 12. 초가 맞을거라 본다.)

많은 사회 초년생들의 취업이 막히고, 많은 가장들이 실직하였다.
더불어 미혼여성들에게도 그 여파가 미쳤는데, 미혼 여성들 또한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할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결혼은 혼자 하는게 아니니...
당시 60년대 후반 (여성은 70년대 초반) 사회 초년생들에겐 엄청 불운의 시기였다고 본다.
IMF 간섭이 끝난때에는 이젠 취업년령에 걸려 취업이 어려웠을테니...

20대를 최류탄과 방패, 진압봉속에서 흘렸지만 후회스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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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게 있다.
왜 이땅에 갑자기 IMF가 찾아 왔을까??
외환보유고는 왜 갑자기 줄어들었을까??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촐싹대던 김영삼이가 당시기준 국민소득 2만달러의 "선진국 대열에 가입했다"는 성과를 내고싶어 환율을 1달러 : 800원대 원화의 고정환율로 묶어 둔게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이건 내 개인적으로 추측하는 김 영삼이의 생각이니 확인할 길 없다. 어떤 사람들은 국민소득 1만달러를 유지하고싶어 그랬으리라고 하는데, 나는 고작 1만달러로는 김영삼이는 만족하지 않았으리라 본다.)

당시 선진국 진입기준 소득 2만달러는 달러화로 평가되는데
800원 : 1달러 = x : 20,000
x = 1,600 만원이면 선진국이고,

1,100원 : 1달러 = x : 20,000
x = 2,200 만원이 되어야 선진국이 된다.

실제 원화가치는 1: 800 이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더 싼 1 : 1,100 ~ 1,200 수준이었는데 1 : 800 정도로 고정시켜 놨으니 수출이 될리도 없었을테고, 외화도 다 빠져 나갔을것...
(해외에서 1,200원 짜리를 1달러에 팔아야 되는데 800원 짜리를 1달러에 팔려고 했으니 팔리지도 않았을것...)
따라서 외환보유고가 줄어드는데도 정부는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않고 1 : 800원대의 고 원화 고정환율제를 고집스럽게 밀고 나간게 IMF의 가장 큰 원인이었을거라 본다.

이 글의 요지는??
그냥 년말이 다가오고 한살 더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하니 옛 생각이 나서...
1960년대생들의 청춘은 불쌍해 보일수도 있겠지만
투쟁이었고, 도전이었으며 결코 후회스럽지 않을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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