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正法 스님 2010. 4. 6. 11:21

제십이 존중정교분(第十二 尊重正敎分)

 

제12분 바른 가르침을 존중함

 

復次須菩提 隨說是經 乃至四句偈等 當知 此處 一切世間天人阿修羅 皆應供養

부차수보리 수설시경 내지사구게등 당지 차저 일체세간천인아수라 개응공양

 

如佛塔廟 何況有人 盡能受持讀誦 須菩提 當知 是人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

여불탑묘 하황유인 진능수지독송 수보리 당지 시인 성취최상제일희유지법

 

若是經典所在之處 則爲有佛 若尊重弟子

약시경천소재지처 즉위유불 약존중제자

 

 

이 세상에는 온갖 가르침도 많고, 주의(主義) 주장(主張)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으로 존중되어야 할 바른 가르침이겠습니까. 자기가 가까이 하고 마음에 훈습(熏習)이 되어 익숙해졌다고 해서 반드시 바른 가르침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개인의 아집(我執)을 떠나,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다 존중되어질 바른 가르침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고, 또 반드시 바른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금강경』의 가르침입니다.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만유의 진정한 생명인 반야의 가르침이야말로 마땅히 존중되어야만 합니다. 이 반야바라밀법을 받아 지녀 독송하고 남에게 설해 주는 사람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최상의 진리 그 자체를 성취하였기에 부처님의 참된 제자가 되고 더 나아가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復次須菩提 隨說是經 乃至四句偈等 當知此處 一切世間天人阿修羅 皆應供養 如佛塔廟

부차수보리 수설시경 내지사구게등 당지차저 일체세간천인아수라 개응공양 여불탑묘

 

그리고 또 수보리야, 어디서나 이 경을 설하되 사구게 만이라도 설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곳은 일체 세간의 천상, 인간, 아수라 등이 공양하기를 부처님의 탑묘와 같이 할 것이거늘.『금강경』의 공덕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계속하여 철저하게 상(相)을 깨뜨려 왔습니다. 그러다 본 이 금강경 마저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는 금강경의 도리가 너무나 훌륭하니, 널리 금강경을 선양해야겠기에 이렇게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금강경을 내세우면 금강경이라는 상이 생기게 되어 금강경의 도리에는 맞지 않게 되지만 금강경을 내세우지 아니하면 금강경을 알릴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부정을 계속하다가도 곳곳에서 금강경이 훌륭하고, 금강경의 가르침이 훌륭하다. 고 이렇게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공덕이 있느냐 하면 이 금강경 전체나 사구게 만이라도 뜻을 바르게 설한다면 모든 사람과 모든 신들이 부처님의 탑묘에 공양을 올리는 것과 똑 같은 마음가짐으로 공양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초기 불교에는 불상을 만들어 모시지 않고 부처님의 전신 사리를 나누어 탑을 만들어 그 속에 사리를 안치하여 예배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유골을 모셨으니 묘가 되겠고 거기에 신앙적인 마음을 보태 아름답게 장식을 하였으니 탑묘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탑묘는 바로 부처님이 계시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꽃, 초, 향 등으로 공양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탑묘 라는 말에서도 부처님 열반 후에 경전이 결집된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스스로 자기의 묘를 말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何況有人 盡能受持讀誦 須菩提 當知是人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

하황유인 진능수지독송 수보리 당지시인 성취최상제일희유지법

 

어찌 하물며 어떤 사람이 능히 경을 다 수지하고 독송함이겠는가. 수보리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최상이며 제일인 희유한 법을 성취하리라. 사구게는『금강경』전체에 비하면 아주 적은 부분입니다. 사구게 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면 그 공덕이 부처님의 탑묘에 공양 올리는 마음가짐으로 여러 신들과 사람으로 부터 공양 받게 되는데 이 경 전체를 받아 지니고 외우는 그 공덕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최고로 높고 제일로 드물고도 기쁜 법을 성취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여 그 사람이 희유한 법을 성취하였겠습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바로 상(相)을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상의 그름만 벗겨내면 그 자리에서 바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사상(四相)의 구름이 벗겨진 곳에 부처의 찬란한 태양이 빛난다. 는 것입니다. 이처럼 금강경에서 부처되는 길은 아주 간단하고 정확합니다. 무슨 독특한 고행을 해야 한다든지 어떤 거룩한 실천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사상만 날려 버리면 바로 간단하게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금강경이 더욱 더 소중한 것입니다.

 

若是經典所在之處 則爲有佛 若尊重弟子

약시경천소재지처 즉위유불 약존중제자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에는 곧 부처님과 존중할 제자가 계심이 되느니라. 어떠한 도리가 한 민족에게는 맞고 다른 민족에게는 합당하지 않다면 참된 진리가 되지 못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도 한결같아야 합니다. 상(相)을 떠나보내면 그 즉시로 부처의 진실 자리를 본다는 투철한 가르침을 펴는 이 『금강경』은 참된 진리로, 영원한 진리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존중되어야 하는가 하면 부처님의 뛰어난 십대 제자들, 천 이백 오십 오인의 상수 스님들, 문수. 보현보살, 관세음. 지장보살처럼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바른 가르침은 바르게 존중될 수 있고 또 널리 전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발달된 과학 문명과 풍요로운 물질 속에서 편리함과 안락함을 그 어느 시대보다 풍족하게 누리고 있습니다. 높은 교육을 받고 평등한 인권 속에서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며 그래도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진실로는 행복한 것 같지 않습니다.

 

예의범절이 타락하여 인륜을 져버리는 사건들, 산업화로 인한 자연 파괴와 그로 인한 각종 공해문제, 꽉 짜여버린 사회 체제 안에서의 인간 상실감 등 그 어떤 불안감과 공허감, 무관심이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그 소이감에서 벗어나고자 나름대로 진리를 찾아 모색하기도 합니다. 그 때 신비한 정신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정신없이 빨려들게 됩니다. 아무런 분별없이 거기에 자기 인생의 온 가치를 매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기본 상식이 비슷하고 판단력이 대동소이한 면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에 현혹시키는 주의나 교설(敎說)에 빠지게 되면 그 어떤 바른 충고도 소용이 없게 됩니다. 얼마 전 사회적으로 큰 소동을 일으켰던 '휴거설'이나 새로운 가르침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 아래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 빠진 자기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주위의 가족들이 당하는 고통은 말 할 수없이 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이 전법(傳法)에 힘써야 하는 까닭은 '바른 가르침(正法)'을 널리 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와 인연 맺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바른 인연을 맺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금강경』의 바른 가르침을 받아 불교를 빙자한 삿된 가르침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렇게 밝고 환한 가르침이 있는데 얕은 방편에 치우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심전(心田)을 개발하고 그리하여 남에게 바른 가르침을 펴 그들도 정견(正見),정사(正思)를 갖추어 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그 어떤 가르침보다 지혜(智慧)를 강조합니다.

 

어떤 한 관점의 선악시비를 다지는 윤리적인 차원의 지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판단 기준을 떠나 있고 텅 비어 광명이 두루 비추이는 반야의 지혜를 말합니다.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깨달음을 낸 이 참되고 바른 『금강경』의 가르침은 마땅히 부처님이 계신 것과 같이, 또 존경받을만한 부처님의 제자가 게신 것처럼, 부처님의 탑묘처럼 영원토록 존중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