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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法 스님 2019. 12. 27. 10:47

고려 건국 태조왕건 충신 장군에 대한 시진 자료 이다.

신숭겸 장군, 평산 신씨 시조!

첫 이름 능산. 신라시대 서기 877년, 태어난 곳 전라도 곡성군 목사동면 구룡리에서 태어남.


* 같은 해 왕건은 877년(헌강왕 3년) 송악 출신 호족의 왕륭의 아들로 태어났서ᆢ궁예에서 세력을 키운다.

918년(경명왕 2년)에 고려를 건국한다. 943년(태조 26에)에 사망했다.

 

* 왕건과 능산의 사냥 일화로ᆢ하늘에 기러기떼를 화살로 맞추는 내기를하다가, 능산은 정확하게 기러기 떼 중 앞에서 세번째 기러기 왼쪽 날개를 맞추었고ᆢ감탄한 왕건은 신숭겸 이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사냥한 장소가 황해도 평산이라ᆢ지금의 평산 신씨 시조가 탄생한다.


신숭겸 장군은..전남 곡성 출신으로..

신장군은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의 건국에 큰 공을 세운 4태사(四太師 : 신숭겸, 복지겸, 홍유, 배현경)의 한 사람으로 고려의 개국 공신이다.

 

곡성 봉두산 태안사와 신숭겸 장군 목 무덤 이야기

* 사진 : 신숭겸장군(申崇謙將軍)의 영정(影幀)은 태안사에 모셔졌다.

 

신숭겸 장군 무덤.. 고려태사개국장절공(高麗太師開國壯節公)신숭겸장군(申崇謙將軍)의 묘를 지칭한다. 태안사 경내에서 뒷길로 오르면 스님들이 직접 재배하고 경작한 차밭과 야채밭 등.. 다양한 과실수 밭이 제법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이 고요한 산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고려태사개국장절공(高麗太師開國壯節公)신숭겸장군(申崇謙將軍)의 목 무덤이 있다.

    

 장절(壯節)이란? 후백제군과의 공산(公山팔공산) 동수대전투(桐藪大戰鬪)에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위왕대사(衛王代死)로 위기를 모면한 고려 태조 왕건 (高麗 太祖 王建)이 자신을 대신하여 장렬히 전사했다 해서 내린 시호이다.

 

왕건(王建)은 신숭겸의 사후(死後)에도 나라의 잔치가 있을 때마다 신숭겸이 없는 것을 슬퍼하며 짚으로 그의 형상을 만들어 관복을 입혀 앉히고 그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임금(태조왕건)을 대신해 목숨을 버린 신숭겸의 충성심과 희생정신은 이후에도 크게 존경을 받았다.


고려 성종 13(994)에 태사(太師)라는 높은 벼슬에 올려 졌고 역대 임금의 신주를 모신 태묘의 태조 사당에 공신으로 함께 모셔졌다.

또 예종 15(1120)에는 예종이 서경(지금의 평양)에 행차해 팔관회에서 신숭겸, 김낙 장군 이야기를 듣고 두 장군의 충성심에 감동받아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노래를 지어 그 넋을 기렸다. 이 노래는 신숭겸의 사적을 기록한 책인 장절공유사(壯節公遺事)에 실려 있다.

 

 


 

왕건(王建)은 신숭겸, 복지겸, 홍유, 배현경과 한 가족의 결의를 맺었다고 해서 이들의 성씨를 지닌 사람끼리는 결혼을 피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신숭겸장군은 고려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해 가고 있던 시기에 견훤(甄萱)이 이끌던 후백제(後百濟)와 맞붙은 공산동수대전투(公山桐藪大戰鬪)에서 견훤(甄萱)의 부대에게 포위를 당하는 상황에 이르자 왕건(王建)을 살려내기 위하여 자신이 대신 왕건(王建)의 복장을 갖춰 입고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바로 고육지계(苦肉之計)였던 것이다.

 

그 바람에 왕건(王建)은 살려낼 수 있었지만 그는 목이 잘리고 말았다. 후백제군(後百濟軍)과 공산동수대전투(公山桐藪大戰鬪)에서 왕을 피신시키고 왕을 대신해 싸우다가 패배한 신숭겸장군을 후백제군이 왕건(王建)의 수급(首級)인 줄 알고 꿰어갔다가 뒤늦게 왕건(王建)의 수급(首級)이 아닌 줄 알고 진()밖으로 던지자 신숭겸장군의 애마인 용마가 수급을 물고 고향과 인접한 태안사의 뒷산(신숭겸 장군이 어릴 적 무술을 연마했던 동리산(桐裏山) 현재 봉두산(鳳頭山)에 와서 3일간을 울다가 굶어 죽었다.

    

 

이를 발견한 태안사(泰安寺) 승려들이 필시 수급(首級)은 신숭겸 장군의 머리이고 말은 그의 애마인 것으로 믿고 장군 단에 말의 무덤과 신숭겸 장군의 무덤을 만들어 매년 316 신제와 제사를 지냈고,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사찰의 승려들에게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신숭겸장군이 애지중지 했던 용마는 신숭겸장군이 어려서 대황강(보성강 또는 석압강) 용소에서 목욕을 하다가 굴에서 나온 용마를 얻었다고 한다. 목 무덤은 고려 전형적인 석축으로 둘러싸인 형식이다. 제단 석에는 절의 표시가 새겨져있는데 이는 절에서 관리하였기 때문이다.

갑술년(서기 1934)에 태안사 승려와 유림, 본손이 날짜를 잡아 묘를 더 좋은 곳으로 이장하려고 지관을 불러 미명에 단소 봉분을 파묘하니 석함이 나오는 순간 청명하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소나기가 쏟아지고 뇌성벽력이 치므로 작업을 하던 인부가 혼비백산하여 도망하므로 봉분을 덮어 버리고 나니 날씨가 다시 맑아졌으며 그 후로도 단소를 더럽히는 자가 있을 때면 큰 구렁이가 나타나 혼내주었으며 또 벌초나 제향을 거르거나 소홀히 하면 귀촉도(歸蜀道:두견이)가 슬피 울며 고을에 흉년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 용산재 : 무덤은 신숭겸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단소(壇所)이고, 우측 비각안엔 두 기의 비석이 있어...

 

태안사는 고려 건국의 공신이었던 장절공 신숭겸 장군과도 엮인다. ‘장절(壯節)’은 자신을 대신해 장렬히 전사했다고 태조 왕건이 내려준 시호다.

 

장군의 태생지는 목사동면이고 보성강변에 자리한 용산재는 복원된 그의 생가도 있다. 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동상이 서 있다. 뒷산은 장군이 무예를 닦았다는 훈련 터이고 인근 죽곡면 화장산에는 장군이 갑옷을 숨겨두었다는 철갑바위가 있다. 삼태리에는 말을 매어놓았다는 계마석이 있다. 대황강에는 장군이 어렸을 때 목욕하며 놀았다는 용소가 있다. 태안사에서 내려와 목사동면으로 간다. 유봉마을을 거쳐 보성강변의 숲길을 따라 가면 풍광이 좋다. 


 



 

 

 

태안사는 전남 곡성군 위치 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산 화엄사의 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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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는 신라 말 중국 유학파 스님이 전파한 선종(참선 중심) 수행도량인 구산선문(九山禪門·전국 9곳의 선방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 능파각(凌波閣)...세속의 번뇌를 흐르는 물에 내버리고 불법 세계로 입문하는 통로인 능파각이다.

능파각을 건너서 만나는 태안사는 신라 말 중국 유학파 스님이 전파한 선종으로 참선 중심의 수행도량이었다.

전국 9곳의 선방 사찰 가운데 하나로 구산선문(九山禪門)으로 불렸다. 이런 연유로 1200년 동안 선방 수좌의 수행 터가 되었다.

 



동리산 태인사의 화려한 일주문 : 부처님을 향한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일주문으로 이어지는 길 또한 샛길 없는 일자로 되어있다.


태안사 일주문 주련..  

 

歷天劫而不古(역천겁이부고).. 천겁 세월이 지나도 옛 되지 않고


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 수 만년을 뻗쳐도 항상 지금이네


봉두산 : 지형도에는 봉두산이라 표기돼 있지만, 이 산 안에 깃든 태안사 일주문 현액에는 동리산(棟裏山) 태안사라 되어 있다. 산 이름이 언제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두 이름에 연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봉황이 서식하는 나무가 오동나무이고 태안사가 자리잡은 곳을 둘러싼 주변산세가 오동나무 줄기 속처럼 아늑해서 동리산이라 불렀으며 둘러싼 주변산세의 최고점을 봉황의 머리 즉 봉두산이라 불렀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태안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시절인 772년 법명이 알려지지 않은 신승(神僧) 셋이 절터를 잡고 대안사라 하면서 개산한 것으로 전한다. 하지만 태안사가 한국 불가를 크게 선양한 계기는 혜철선사가 847(문성왕 9) 이 절에 주석하면서 동리산문을 연 때부터였고 혜철선사는 이 절에 주석하면서 절 이름도 태안사로 바꾸었다.

 

선원이 들어선 오른쪽 계곡 안에는 신숭겸 장군을 제사하는 제단이 있다.그는 왕건을 도와 개국에 공을 세우고 후에 팔공산에서 후백제와 대접전을 벌일 때 궁지에 몰리자 왕건 대신 자신이 왕의 의복을 입고 싸우다 전사한 신숭겸 장군을 제사하는 제단이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 왕조가 그의 제사를 올리는 태안사를 크게 키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알 만하다. 왕건을 도와 개국에 공을 세운 그의 고향이 바로 봉두산 앞산인 바래봉아래 구룡마을이다. ...용산재 능산이 태어난 곳(아래 사진)


태안사로 가는 오솔길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되풀이되는 산길도 아닌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다.

이 길이 계곡을 따라 이어지고 소나무와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빼곡한 숲도 고즈넉하다.

숲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이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 같다.

 

반야교에서 만나는 십이지간 동물상이 앙증맞다.

만추의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도 다소곳하다.

계곡을 타고 스치는 바람소리도 호젓하다.

해탈교를 건너가며 발걸음을 뗄 때마다 얽히고설킨 세상사의 고달픔이 풀어지는 것 같다.

 

오솔길 끝자락에 능파각(凌波閣)은 세속에서의 일상을 털어내고 절집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계곡이 멋스럽다. 바위를 간질이며 흐르는 물도 깨끗하다.

군데군데 수북하게 쌓인 낙엽도 겨울의 낭만을 노래하고 있다.


정법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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