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5. 7. 18. 11:10

    생명을 살리는 반핵

    - 내부피폭과의 투쟁,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히다 슌타로, 오쿠보 겐이치 저/박찬호 역,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5

     

    ‘살아간다’는 것이 인권인 것입니다. (...) ‘산다’, ‘끝끝내 살아간다’는 것이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싸우지도 않고 자신을 그런 식으로 폄하하는 사고에 계속 찌들어 살면, 자신의 생명 자체도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 결국, 자기 생명을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대우하는 것에서 인권의식이 시작되지 않겠습니까?


    반핵와 인권, 생명존중, 의사란 직업의식 등등이 내 입에서 서걱서걱 발음되고 있었다. 여러 한계들에 지난 세월을 후회하고 스스로를 무시하고 있었던 나에게 반가운 힘이 되어준 히다 선생님을 2013년 함춘회관에서 처음 뵈었다. 초고령 피폭자로, 또한 의사로 평생을 반핵, 반전 운동으로 살아오신 인생내력만으로도 가까이 뵙고 싶던 분이셨다. 하지만, 당시 선생님의 강연은 정말 단순했다. 보이지 않는 내부 피폭을 강조하셨다. 또 하루하루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자고, 아침밥을 정성스럽게 먹고, 음식은 꼭꼭 씹어서 천천히 삼키고, 폭음, 폭식을 피하시오. 피폭자의 수명은 그렇게 길게 이어질 수 있었다고 담담히 말씀하셨다. 그 명료한 메시지와 함께 맑고 진지했던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번에 나온 선생님의 책 ‘생명을 살리는 반핵’은 다시 한 번 선생님을 깊게 바라보게 한 것 같다. 특히 의사로서의 소명, 그 바탕의 생명존중의 의식을 겸허하게 부끄럽게 받아들였다. 1945년 8월 6일 원폭투하의 그 아침, 히로시마 외곽의 시골에서 심장발작이 난 아이를 새벽부터 왕진하여 돌보던 중이셨다. 히로시마 육군 병원으로 돌아오며 만난 불타고 짓이겨진 신음하는 사람들의 군상,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이 맥없이 죽어가는 수 많은 사람들 곁에서 스물 여덟의 젊은 군의관은 이 분노를 새겨서 끝까지 살아남아 원자력의 폭력성을 알리고 피폭자의 삶을 돌보겠노라 다짐한다.

     

    눈에 보이는 화상이나 직접적인 물리적 중상으로 사망하는 사람들 외에, 당시 히로시마에 없었다가 후에 가족들을 찾으러 히로시마에 들렀던 사람들이 속속 40도가 넘는 고열과 함께, 자주빛 반점. 온몸의 점막과 내부 장기의 출혈, 모근의 박피를 보이며 죽어갈 때, 이것이 원폭과 관련이 있는 증상인지 고심하다가 결국 내부피폭의 결과임을 알게 된다. 미국이나, 미군정의 눈치를 봐야했던 일본 정부가 문제를 축소, 은폐하기 위해 집요하게 탄압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유엔과 세계 반핵운동에 결합해 내부피폭의 중요성과 위중함을 알려간다.

     

    또한 깨끗한 원전이라 선전하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방출되고 있는 원자력에 피폭되는 사람들의 고통을 드러내려 했고, 결국 반핵 운동은 핵무기 반대 뿐만 아니라 원전 폐기 운동까지 하나로 묶어가야 함을 역설했다. 핵 앞에 안전 지대란 없다. 핵 억제 논리, 즉 적국의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평상시 원전을 가동시키는데 드는 에너지와 핵 물질의 이동 시 수송관을 통한 노출과 그에 의한 피폭을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피폭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내부 피폭과 그로 인한 만성 피로증인 ‘부라부라 병’의 기전이 아직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분명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원폭 피해자와 2세들은 엄청난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다.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은 한 생명도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으며 이 지구상에 유일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소중히 대우하는 것이다. 거기엔 물론 나 자신도 포함된다. 선생님의 인생은 어떤 큰 관념적 당위성 보다 사람으로서 삶에 대한 진지함과 애통해함과 고통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로 여기에 이르렀다. 그런 선생님의 육성, ‘끝끝내 살아’가는 사람의 자아존중과 이웃을 향한 사랑 앞에서 스스로의 부끄러움으로 탄식한다. 싸우지도 않고 자신을 폄하하지 말 것이며 인권의 시작은 그러한 자기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대우하는 것이라 하시는 말씀에 위로를 받는다.

     

    반핵이란 커다란 운동의 흐름이라 하지만, 결국 변화는 나의 실천에서 나올 것이다. ‘소리를 내야 하는 쪽에서 벽을 만들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호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괴물이 되어간다. 생명 존중의 아름다운 세상이란 바로 오늘 내가 내 몸의 건강을 돌보고, 소중히 여기고, 싸울 것을 싸워 갈 때 그 걸음만큼 다가오는 것이라고 공명한다. 오늘 오후 그 공명으로 동료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다. 밥도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고 어두워지면 되도록 일찍 자려고 한다. 그렇게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 한결같은 걸음으로 오래 가고 싶다. 좋은 독서를 하게 해 주신 역자 박찬호 선생님과 건강미디어협동조합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