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맛, HEIMAT who walks over Mountains

산이 없는 동네에 태어나서 백두대간까지 진출하여 사진찍고 산행기 쓰고 소설도 쓴다

060115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 서부전선 이상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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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소설 Mountain Novels

2009. 4. 14.

닥터 지바고의 일기 둘째 날

2006년 1월 16일 

 

오늘은 아침 일찍 내 차인 2003년형 NF소나타를 몰고 평택항으로 향했다. 어젯밤 산행에서 돌아와서 저녁식사도 거른 채 여기저기 전화를 하더니 뜬눈으로 밤을 샌 뒤, 아침 일찍 평택으로 내려가 볼 일이 있다는 내게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하마부인은 눈치 채고 말았다. 하마부인의 집요한 심문은 계속된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 일을 저지를 사람의 결연한 눈빛으로 그 심문을 잠재운다. 우리집 강아지 ‘후치’도 서슬 퍼런 나의 의지를 눈치채곤 꼬리를 내린다.

 

오늘 장사는 하마부인이 적당히 알아서 하라고 했다. 나만이 몰래 하던 주방의 국물 만드는 비법도, 숨겨오던 비밀노트를 주방장에게 건네주고 말았다. 나만의 비법은 고양이뼈를 2% 부족하게 넣는 것이었다. 법적인 문제도 있어 도저히 공개할 수 없었지만 이젠 그런 것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승용차는 한가한 새벽길을 과속으로 달린다. 한남대교를 건너 과천을 지나 순환고속도로로 들어가 서쪽으로 향하면 곧 시인마뇽이 사는 산본을 지나고 서해안고속도로로 진입하여 120km의 속력으로 가는데 무언가 번쩍한다. 과속단속 카메라의 불빛인 것 같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과속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 내겐 라라를 만나는 것이 중요한 거지.)

 

서평택 나들목을 나가니 6시도 채 안되었다. 휴대전화로 시인마뇽을 깨운다.

 

‘아침부터 왜 이래. 잠도 못 자게. 어제 밤 2호차로 와서 잠 좀 자는데...’

 

‘나 오늘 러시아로 귀국한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사실은 나 러시아에 애인 있었어. 그 여인이 지금 평택에 와 있어서 내려가는 길이야. 같이 러시아로 도망 갈 거야.’

  

‘네가 러시아에 애인 있으면 난 달나라에 둘이나 있다.’

 

‘아직 잠이 안 깬 모양인데. 이렇구 저렇구는 내가 편지할 게.’

   

서해안 특유의 기분 나쁜 안개가 오늘도 유난히 짙게 끼었다. 출입국관리소의 외국인 수용소는 안개 속에서 더욱 괴기하게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수용소건물의 주재료인 철과 콘크리트가 주는 냉혹함이 오늘처럼 가슴에 닿아 온 적은 없었다. 그 차가움은 피난민인 내 가슴을 더욱 무겁게 짓누르는 듯 했다.

 

9시나 되어서야 면회신청을 할 수 있었다. 양식을 채워 넣으려면 시간이 걸렸다. 그녀의 주소, 생년월일, 러시아 주민등록번호(그런게 있다면), 관계 등을 정확하게 채우지 않았다고 하급직원에게서 핀잔과 함께 서류가 반려되었다. 나는 수용소장을 만나자고 떼를 썼다. 소란 중에 나는 소장실로 안내 받았다. 피난민의 인적사항을 도대체 누가 알 수 있어 자세히 적을 것이냐고 나는 항변하였다.

 

그는 다행히 그의 부친이 이북에서 내려와 피난민의 눈물을 아는 사람이어서 나의 처지를 듣더니 빈칸을 적당히 채우라고 한다, 나는 그녀와의 관계란에 애인이라고 적었다. 그랬더니 수용소장은 그런 말은 관계란에 쓸 수가 없단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친구라고 적었다. 배우자라고 적고 싶었지만 하마부인을 울릴 수는 없었다.

 

수용소장은 내게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주었다. 오늘 밤 7시 배로 그녀가 국외 추방된다고 한다. 다른 결정은 불가하고 나의 보증도 소용없단다. 그리고 면회시간은 30분인데 모든 준비가 다 끝나고 배가 떠나기 직전 오후 6시에나 면회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릴없이 나는 차를 몰고 바닷가로 나갔다. 내가 1970년대 방위근무를 하던 초소근처에 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핸드폰은 꺼둔 채 시간을 보내었다.

 

내가 귀화할 때 나는 이미 붉은군대에서 군의관 장교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그러나 귀화한 사람이 한국군에 근무하면 시민권이 빨리 나온다고 하기에 주저없이 군에 지원했었고 외국태생에게 정규군대는 비밀이 많아서 안 된다고 하기에 방위로 낙착이 되었고, 1년 반을 평택의 해안초소에서 늘 북쪽과 서쪽을 노려보며 근무했었다.

 

나는 힘을 내기 위해 점심을 억지로 먹고 이마트와 국민은행을 들렀다. 그녀에게 줄 베이글 빵 한 봉지, 파스퇴르우유 한 병, 바나나우유 하나를 샀다. 그리고 하마부인 몰래 비축했던 비자금을 국민은행 서평택지점에서 환전하여 3,290불을 봉투에 넣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 오후 5시반 쯤 나는 수용소 면회실로 갔다.

 

이미 시간은 오후 5시 45분이다. 하급 직원 말이 그녀가 면회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유는 우리 둘의 관계가 친구도 아니고 애인은 더욱 아닐 뿐더러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내게 돌아가는 편이 낫다고 은근히 종용한다.

 

나는 제지하는 직원을 밀치고 소장실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도 놀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커피를 권하면서 내 편이 되어 주었다.

 

‘하박사,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내가 더 알아 보겠소.’

 

그도 하박사 냉면집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는 듯 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라니, 냉면엔 사족을 못 쓰니...)

 

6시15분 소장의 간곡한 설득으로 그녀는 마침내 면회실로 왔다. 무척이나 쇠잔해진 그녀의 몸은 한 줌 밖에 안 될 것만 같았다. 병색이 완연했다. 한국인 호송인이 그를 부축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편 허리춤에는 날렵하게 빠진 신형 미제 권총이 삐죽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이럴 수가...라라!’

 

‘유리, 아니 독토르 지바고!’

 

야윈 그녀의 뺨에서도 내 뺨에서처럼 눈물이 흘러 내렸다.‘

 

‘유리! 살아계셨군요. 당신을 이렇게 보았으니 전 이제 죽어도 한이 없어요. 미안해요. 제 이 추한 모습을 보여드리기는 죽기보다 싫었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사랑에 미안이란 말은 없소. 난 당신을 여기서나마 만났으니 내 인생은 성공작이오!’

 

그녀는 허물어져 가는 건물처럼 겨우 지탱하고 서서 나를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고약한 녀석이 이미 우리 사이에 끼어들고 있음이 분명했다. 무슨 병인지 고치기 어려운 병마가 그녀를 덮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들은요? 부인은 미인이시죠.’

 

‘셋이나 되오. 동물원이라 놀리는 자들도 있소. 한 때는 미인이었다오. 당신처럼.’

 

‘고마워요. 지바고, 우리의 마지막 약속이 생각나요?’

 

‘그럼, 영원히 같이 하자고 했지. 이승에선 내가 약속을 못 지켰소.’

 

‘고마워요, 지바고. 약속을 기억해 줘서. 이젠 저승에서도 하마부인과 지내세요. 이제 저를 잊으세요. 저도 다 잊겠어요. 만나고 사랑하고 살고 병들고 죽고, 이런 헛된 수레바퀴를 멈추게 하고 싶어요. 전 그분께 그렇게 늘 기도해요.’

 

‘그럴 순 없소. 난 라라, 아니 내 가슴 속에 새겨진 라리사 표도로브나를 잊을 순 없소.’

 

‘나도 당신의 이름을 다 불러 보고 싶군요. 유리 안드레예비치, 그때 노보시비르스크에선 눈이 내렸었지요.’

 

‘아, 서부 시베리아! 맞았소. 지금 선자령에서 처럼 말이오. 지금 선자령의 눈은 백두대간의 생명을 다 감싸 안고 있다오.’

 

‘마지막 소원이 있어요.’

 

‘말해 보시오. 무엇인들 들어 주리다.’

 

‘저같은 하찮은 여인은 잊으시고 그분 말씀대로 그 나라와 의를 구하셔요.’

 

‘당신을 잊진 않을 거요. 아다시피 난 꿈만 꾸는 우유부단한 자요.’

 

‘꿈꾸는 자가 왕국을 차지하지요. 꿈이 당신의 가장 큰 장점이어요.’

(왕국이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인가? 내가 이제 이 나이에 무얼 차지할 수 있을까? 이 숙제는 시인마뇽에게 주어야 할까 보다.)

 

‘당신이 원한다면 계속 꿈을 꾸리다. 그러나...’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었으나 나는 대화를 더 계속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내 손을 꼭 쥐고 울기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쥐어주는 먹을 양식과 봉투속의 달러도 그녀는 한사코 사양하였다. 웬일인지 이제 필요가 없다고 극구 사양하는 것이었다.

 

오늘 밤 평택항을 떠난 배가 내일 오후 중국 엔타이항에 기항하면 기차편으로 그녀는 모스크바로 호송된다고 한다. 한국법의 위반을 러시아 측에서도 곱게 보지는 않는 것 같다. 엔타이부터는 주중국 러시아영사관에 신병이 인도될 것이었다. 침통한 면회는 끝났다. 내 마음 속에서는 무언가 중대한 결심이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

 

오후 7시 30분, 예정보다 30분이나 늦은 시각이다. 높이가 30미터나 되는 이만오천톤의 러시아 여객선 블라디미르II호는 선실에 켜둔 등불로 밝게 빛을 발하며 중국쪽을 향하여 꽁무니를 조금 빼더니 뱃머리를 180도 천천히 돌린다. 그녀는 3층 여객실의 외부 복도에 서서 힘없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읽을 마음도 안 날 만큼 나는 얼이 빠져 있었다. 그녀를 호송하는 출입국관리 두 사람이 그녀를 부축하는데 그들의 빳빳하게 다림질한 제복에서 황금빛 단추가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라라, 아니야. 그럴 수 없어. 난 이승이나 저승이나 당신과 함께 있을거야. 날 믿어줘. 내게 왕국같은 건 필요없어. 당신만이 내 천국이야.’

 

나의 절규는 서해바다 위로 메아리없이 퍼져 나갔고 배는 이미 어둠이 짙어져 가는 검은 바다 가운데로 오백미터 넘어나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꿈만 꾸던 우유부단한 내가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분에게 부탁해야지.’

 

이때 퇴근도 미룬 수용소장이 근심어린 얼굴로 다가왔다.

 

‘소장님, 커피는 고마웠어요. 그녀는 결핵인가요.’

 

‘하박사, 놀라지 마시오. 의사가 폐암이라 합디다. 3기라지요 오늘 저하고 술이나 한잔 하실까요. 저도 주말엔 서울로 올라가고 분당 하박사 냉면집도 가족하고 자주 간답니다.’

 

‘그녀는 담배를 안 피웁니다. 믿을 수 없어요.’

 

러다가 하마부인의 모친인 장모께서 50대 후반에 폐암으로 가신 것이 생각이 났다. 그분도 흡연자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게 달래 줄 거요. 한 가치 피워 보세요. 괜찮은 브랜듭니다. 견디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거요. 인생 뭐 심각할 거 있나요. 다 그렇게 사는거죠.’

 

달관한 그가 한글 이름이 ‘존재의 이유’라고 쓰인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매끄러운 행동으로 내손에 쥐어주며 중국제 일회용 가스라이터로 불을 붙여준다. 가스불이 고르지 못하고 춤을 추어 어렵게 불을 붙일 수 있었다. 담배에는 꼬부랑글씨로 ‘RAISON D'ETRE’라고 써 있었다. 영어는 아니고 러시아어도 아닌데 아마도 불어인 것 같았다.

 

(그래, 너를 불태우면 내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있다고? 내가 불태워주마.)

 

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못 보던 새로운 브랜드였다. 깊이 들이 마셔 본다. 2002년 봄 좀 더 오래 살겠다고 시인마뇽이랑 같이 담배를 끊은 지 4년만에 처음 피워보는 담배다. 담배 피우다 들키면 시인에게 벌금을 뜯길 거라는 생각도 나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 맛과 냄새가 낯설기만 하였고 그 낯선 만큼이나 내 존재의 이유는 알기 어려웠다.

 

존재의 이유는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듯이 아득했고 담배연기 만큼이나 흐리멍텅해졌다. 몇 모금 빨다가 불붙은 놈을 부두의 콘크리트 바닥에 던져 발로 비벼 끄고 말았다. 이제 존재이유를 짓밟아 버렸으니 내 존재의 이유가 없어진 셈이었다.

 

나는 하박사 냉면집 카운터 아래 금고에 하마부인 몰래 감추어 둔 1930년식 구식 소련제 리벌버를 떠올렸다. 어딘가로 가는 길을 그 무거운 구식 쇠뭉치는 내게 가르쳐줄 수 있을 터였다. 총알 한 방이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서울로 가기는 싫었다.

 

소장의 술 한잔 호의를 나는 완곡히 거절하였고 소장은 바로 떠났다. 관리들의 의례적인 초청임을 동대문 근처에서 오래 굴러다닌 내가 알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이제는 부두로 정든 사람들을 배웅 나왔던 사람들도 다 돌아가고 나 홀로 남게 되었다.

 

난 시인마뇽에게 핸드폰을 눌렀다.

  

‘여기 평택항이다. 한진해운 락카 49번이니까 잘 기억해 둬. 암호는 MK더블유오오다. 삼천달러하고 베이글 회수해라. 열쇠는 만호리 파주상회에다 맡긴다. 자동차 스페어키도 같이 맡긴다.’

 

‘또 무슨 귀신 볍씨 까먹는 얘기야. 나 같으면 열쇠 달나라에 맡겨 놓겠다. 이왕이면 암호는 BMW로 해라. 머리 나쁜 사람들 외우기 좋게...’

 

‘나, 시간이 없다. 끊는다.’

  

뒤이어 깜짝 놀라는 하마부인에게 전화를 건다.

 

‘이곳 서평택엔 이상없오. 잘 있으시오’

 

‘당신은 늘 동쪽 백두대간에서만 전화하셨지요. 근데 어디예요?’

 

‘농담이 아니오. 여긴 서부전선이오. 중요문서는 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오, ID는 ksmount, 비번은 pilgrim이오’

 

'뭐라구요. 잘 안들려요. 비번이 뭐예요?'

 

나는 전화를 접었다. 이 정도에서 더 이상의 설명도 접고 싶었다.

 

내 정신상태는 이미 혼란해져서 친밀한 이들에게도 최소한의 통보만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설명을 한다 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내 심정의 느낌과 거기서 얻어지는 내게는 너무나 자명한 결론을 다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힘이 내겐 이제 없다. 나의 이 결론을 그들도 이해하고 용서해 줄 거라고 미리 마음 속에서 떼를 써 본다.

 

(시인마뇽! 내가 만든 이 혼란은 자기가 수습해라. 그분이 주시는 왕국은 자기나 경영해라. 나는 이제 그분을 죽이러 갈 거다.)

 

나는 상표가 스미르노프인 보드카 뚜껑을 이빨로 비틀어 땄다. 이때 임플란트 하기 위해 만들어 끼운 인공이빨 하나가 '툭' 하고 부러진다. 기분 정말 더럽다. 이번엔 손으로 병뚜껑을 따서 벌컥 벌컥 몇 모금 마셨다. NF 소나타의 글러브 박스에 보관했던 것이었다. 40도나 되는 독주에 목이 타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지만 곧 그 맛이 전해 왔다. 그런데 평소처럼 독하진 않았다. 보드카를 물처럼 더 목안으로 부어 넣었다. 아까부터 출구를 찾아 꿈틀거리던 반역의 피가 내 가슴 속에서 무섭게 용솟음쳤다.

 

이제 그분을 죽이러 갈 차례다. 진정이었다. 평택항의 캄캄한 어둠 속에 그분은 비겁하게도 아직 안 나타나신다. 그분에게 여태껏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했던 그 많은 기도와 지루한 미사와 맛없는 밀떡. 하기 싫은 고해와 보속과 헌금. 내 잘못도 아니지만 약간의 흠이라면 한국에 와서 러시아 정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한 것 뿐. 그것도 냉전 한국에선 러시아 정교의 맥이 끊어졌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삼위일체 신들의 눈으로 보면 그게 그거 아닌가? 내가 속은 게 분명했다. 술기운이 금방 올라왔다.

 

(너 나와. 맞짱뜨자. 이게 뭐야. 날 이렇게 갖고 놀아도 되는 거야. 이제 나타났다간 봐라. 정말 죽일거야. 너 죽고 나죽자. 당신, 나한테 이렇게 해도 되는거야. 내 인생에 라라말고 뭐가 있어? 왜 라라를 빼앗아 가는 거야. 당장 그녀를 살려서 내 앞에 갖다 놓으란 말야.)

 

나는 반쯤 비운 보드카병을 힘껏 바닷속을 향해 던져 버렸다. 환경보호보다 중요한 게 복수였다. 그분과 맞짱 뜨자고 외치고 보드카병을 거칠게 바닷속으로 던져 버리자 짜릿한 전율과 함께 쾌감이 온몸에 흘렀다. 배반은 비겁하고 슬픈 것이기도 하지만 복수는 통쾌하고 어쩌면 순간적으론 유쾌한 것일 터였다. 하마부인과 말다툼하다가 냉면 메뉴판을 집어 던지는 자학적인 쾌감과는 차원이 다른 어떤 것, 몸 전체를 관통하는 짜릿함이었다.

 

그러나 그때 내 맘속에 섬광처럼 퍼뜩 집히는 게 있었다. 그때 그분이 나를 질투하고 있었다. 그때 라라에게 다가간 것 자체가 이미 내가 그분을 먼저 배반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내 인생에 주어진 질서를 넘어서서, 줄이 쳐진 목책을 넘어 너무나 밝은 빛 쪽으로 뛰어든 셈이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라라는 어쩜 내게 속한 것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의 기적일지도 모른다. 그 기적을 소유하려 했기에 어쩜 나는 일생동안 벌을 받는 것이리라. 내가 라라에게 다가간 것을 그분이 허락 안 했었다니....’

 

이런 생각 속에 나의 전의는 급격히 하락하였다. 그러나 그 분의 뜻일지라도 나는 라라를 포기할 수 없고 과거의 내 행동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라라가 나의 존재증명임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실이었다. 그만큼 나는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그분의 뜻을 알지도 못한 채 그 뜻을 거역했었던 내가 이제 와서 구차하게 그분을 만나 따져 보았자 운명은 그분도 돌려놓지 못할 터, 나는 이제 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려는 단계에 돌입하였다.

 

밤 8시반, 인적이 끊어진 평택항 방파제에는 이미 서해의 장엄한 낙조도 잔치의 파장처럼 다 지나가고 이제 캄캄한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은회색의 NF소나타는 주인이 올라타고 씽씽 몰아 주기만을 기다리는 듯이 어둠 속에 다소곳이 걱정스러운 듯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매정하게 그에게서 눈을 떼어서 서편 바닷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까 꼭두새벽의 물안개보다는 옅었지만 밤안개가 다시 너울거리고 있었다. 멀리 솟아있는 높이가 백팔십오미터나 된다는 한국 토목기술의 극치라는 서해대교의 현수선 쇠줄에 걸린 노란 불빛은 흐릿하고도 차갑게 얼어붙은 듯이 보였다. 종말을 이야기하기엔 더 없이 좋은 때와 장소였다.

 

‘그래 여기서 해야 돼, 이렇게 해서 완성하는 거야.’

 

나는 내가 방위근무 때 늘 보초를 서서 그 위치가 익숙한 콘크리트 참호 쪽을 어둠 속에서 눈으로 더듬어 보았다. 그쪽에서 뻗어 나간 물길이 좀 더 깊었던 것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그 딱딱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어둠 속에 도사리고 모습을 감추었으나 그 위치는 능히 가늠할 수 있었다.

 

배가 떠날 때 쯤이 만조였으니, 이제 서서히 물이 빠질 터, 서둘러야 했고 좀 더 깊은 바다가 내가 지향하는 목표였다. 나는 옷을 입은 채 경사진 갯펄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 갔다. 서해바다의 흙탕물이 캠브리지 상표 양복을 지나쳐 기능성 속옷까지 스며들고 있었고 살갗으로 만져졌다. 종래는 나를 삼킬 것이 분명했다. 물이 매우 찼다.

 

내가 자주 가던 백두대간에서 가까웠던 동해의 찬 물 못지않게 서해의 바닷물도 아주 차가웠다. 대모산이라는 산친구가 카페에 올린 글에서 이야기하던 영원의 시작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퍼뜩 섬광처럼 지나갔다.

 

 

[후기]

 

 

나의 삼위일체 신은 느긋하게 조금 늦게 왕림하셔서 현장조사를 하시곤 하늘로 텔레파시로 전보를 치셨다. 하늘에 가서 주방 한식부 냉면과에 배치된 나는 그 세분들께서 술마시고 조는 틈을 타서 전보내용을 몰래 훔쳐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적혔으되,

 

'2006년 1월 16일, 하이맛은 맛이 가서 내가 먼저 올려 보낸다. 물기 닦고 임플란트 해줘라. 그담엔 주방에 배치해서 허드렛일부터 시킬 것. 그리고 일지엔 이렇게만 써라. [서부전선 이상없다]고.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