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맛, HEIMAT who walks over Mountains

산이 없는 동네에 태어나서 백두대간까지 진출하여 사진찍고 산행기 쓰고 소설도 쓴다

회상의 백두대간 Baekdu Trails in Retrosp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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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백두대간 New Baekdu Trails

2010. 12. 25.

대체, 산에는 왜 가는 것인가?

 

거기에는 좀 더 맑고 정리되어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이 있지 않을까? 하고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 나의 몸부림이라면 과장일까? 세속의 일들은 내 마음대로 못 하지만 산행만은 나의 계획대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자기의 통제 정도가 어느 만큼이냐에 따라 직업과 취미의 경계가 생기리라. 직업의 경우 거의 남이 정해놓은 룰을 따른다면 취미는 자기가 기획하고 자기가 실행하면 그만이라는 자유가 주어진다. 그래서 나는 산에 가게 되었고 그 산길은 백두대간 종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나의 산행기란 무엇인가?

 

산행후 산에 대한 기억은 조용히 추억의 한 장으로 마음 속에 곱게 묻어두어도 문제는 없을 터. 그러나 산행을 반추하며 여기에 살을 붙이고 피가 돌게 하여 하나의 글로 정리하는 산행기는 나의 자존심이자 살아있음의 증거이다.(표현이 좀 과했나?) 존재증명이라고나 할까? 글을 쓰는 것은 하늘이 나에게 내린 형벌이자 축복이다. 다른 여러 가지를 접으며 쓸 시간을 내는 것이 형벌이라면 써가며 고칠 때에 동원되는 온갖 상상력이 주는 즐거움과 다 써놓고 느끼는 성취감이 축복이라 하겠다.

 

 

지난 몇 년간에 걸쳐 등산을 계속해서 마루금 밟기 산행을 끝냈던 백두대간 종주산행을 회상하여 정리해 보려는 시점에 섰다. 3년 7개월에 걸쳐 단속적으로 행해졌고 2009년 5월 23일 태백산구간에서 끝난 나의 백두대간 완주는 나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고 종주하는 동안의 세월과 이야기들을 그냥 묻어두기에는 너무나도 아깝다.

 

 

이제 와서 회상한다 하면 그 근거는 틈틈이 써 놓았던 산행기들과 찍어 놓았던 사진들이다. 내가 산행할 때에는 디지털카메라가 나와 함께 있었기에 산행 후 사진을 보며 산행을 다시 음미할 수 있었고 사진들이 알려주는 원자료(Meta Data)에 의해 사진이 찍힌 시각을 언제나 확인할 수 있었다.

 

 

백두대간을 시작할 때에 나는 S산악회의 버스를 타고 단체로 산행을 하게 되었는데 이 산악회는 백두대간에 갈 때에는 버스를 2대나 3대를 대절하여 갈만큼 산꾼들에게 인기가 있는 산악회였다. 물론 산에 갈 때에는 교통편 때문에 단체로 이동하지만 산들머리부터의 산행은 각자의 책임에 의해서 행해지는 어쩌면 고독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S산악회는 인터넷 포탈 사이트인 ‘다음’에 카페를 개설하고 회원들의 산행기를 싣고 있었는데, 산악회와 함께 실제 산행을 한 사람은 카페에 가입하여 남이 쓴 산행기를 읽거나 자신의 글을 쓸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다음’의 S산악회 카페에 가입하고 보니 친구인 우명길군을 비롯하여 여러사람들이 그곳에 글과 사진을 이용하여 산행기를 올리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매우 충실하고 본받을 만할 뿐 아니라 매우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카페의 글이나 사진들이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고 나도 거기에 동참하리라고 생각하였고 자연스럽게 산행기를 작성하여 그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물론 그전부터 많은 산꾼들이 산행기를 올리고 있는 한국의 산하(http://www.koreasanha.net)라는 사이트가 있어 나도 여러 번 글을 올리기도 하고 다른 분들의 산행기를 참고하기도 하였었다. 내가 산행기를 쓰게 된 것은 인터넷시대에 태어난 ‘한국의 산하’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전에는 내가 글을 써보았자 읽어 줄 사람이 없으니 자신이 읽고 보관하기 위한 글이 될 뿐인지라 산행기를 쓰는 것이 별로 내키지가 않았었다.

 

 

그러다가 인터넷시대를 만나 산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생면부지의 산객들이 ‘한국의 산하’에 산행기를 써서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보고 나는 꽤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순간 내가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실천을 못하고 있던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솟아나는 것과 동시에 이미지에 대한 나의 갈증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에는 나도 산에 가게 되면 가능한 사진기로 경치를 찍고 가끔 산행기를 써서 컴퓨터에 저장해 두기도 하였다. 물론 ‘한국의 산하’에 고정 출입하며 산행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실제 산행에도 써먹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S산악회의 카페에 가입하게 되니 산행후 몇일 지나면 바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산행기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 글들은 바로 전에 내가 함께 참가했던 산행에 대한 글들이었기에 내게 더욱 흥미를 불러 일으켜 주곤 했다. 그런데 하나 특기할 사항은 이곳 산악회의 카페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모두 닉네임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는 사실이었다. 인터넷시대의 풍속도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쓰는 사람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익명성을 보장하고 산행이 사회생활과는 엄연히 독립된 하나의 행위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 것 같았다.

 

 

친구인 우명길군은 BMW라는 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나중에 시인마뇽으로 개칭) 나도 카페에 글을 쓰려면 닉네임을 하나 붙이지 않으면 안 되게끔 되어, 독일어로 고향을 뜻하는 하이맛(Heimat)이란 이름을 급히 정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2005년 11월경부터는 S산악회의 다음카페에 '하이맛'이란 이름으로 글을 써서 올리게 되었고,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져서 지낼 수 있었다. 따라서 산행의 재미도 쏠쏠했지만 글 쓰는 재미도 그에 못지않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백두대간과 그에 부수된 산행기와 산행사진을 통하여 나는 많이 변하게 되었고 잡문일지라도 좀 더 많은 글을 쓰고 사진기를 손에서 놓지 않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돌아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글쓰기는 내 인생에 있어 하나의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가해도 될 것 같다. 나는 2006년 7월 20일경에는 포털 사이트 ‘다음’에 나의 블로그를 개설하고 나의 글들을 여기(지금의 블로그)에다 올리고 정돈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글은 인터넷에 힘입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행후 글을 쓴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우선 내가 갔던 주요지점들을 사진이나 기억으로 다시 확인하고 도착시각이나 출발시각을 적어야 하며 그때 무슨 느낌을 가졌었는지 순차적으로 적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우선 다른 바쁜 일에 매달리다 보면 산행과 산행기 작성 사이에는 시간이 경과하게 되고 산행시의 길이나 사건에 대한 디테일이 가물가물하게 되기가 십상이다. 또한 사진을 찍었더라도 그 사진이 어디서 찍은 것인지 모른다면 산행기를 쓰는데 큰 도움이 안 되는 수도 있다.

 

 

물론 산행기를 쓸 때 시각이나 지점에 대한 정보를 생략하고 대범하게 그날의 경치나 사건에 대해 감상을 늘어놓는 수필처럼 써서 부담을 적게 가지며 산행기를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산행기라는 글은 실용적인 목적도 가지고 있어서, 어느 정도 과학적으로 써져서 자기가 먼저 간 곳을 후에 산행기를 읽고 갈 사람이 읽는다면 산행에 어느 정도는 도움을 줄 정보들이 들어가야만 할 것 같다. 따라서 대부분의 산행기 작가들은 산행시작점에서의 출발시각, 주요지점에의 도착시각, 산행종료지점에의 도착시각 등과 아울러 그날의 날씨, 길의 생김새나 안전성, 경치에 대한 감상 등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작가마다 특색 있는 감상이나 사건들을 기록하여 한편의 읽을 만한 산행기가 탄생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들이는 시간은 짧으면 몇시간에서 길면 몇일까지 걸릴 수도 있는 매우 지난한 작업이다. 나의 경우는 작성에 6-7시간은 좋이 걸리는 산행기들이 많았기에 모든 백두대간 산행을 산행기로 남기지는 못하였다.

 

 

이 시점에 와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백두대간을 종주함에 있어 완료일자를 정하지도 않았었고 산행방법이나 산행순서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은 것처럼 교과서처럼 완벽한 구성이나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고 하여 나의 지나간 행위를 후회하지는 않기로 했다. 사진은 거의 다 가지고 있지만 산행기의 경우 붓이 가는대로 가능할 때에만 글을 써내려갔었고 남한의 백두대간 전체를 한번 훑어 본 것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하였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들어 내가 백두대간 전체를 망라하는 통일체를 한번 만들어 볼 수는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 놓은 흔적들을 첵크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제법 여러 개의 소구간 산행기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블로그에 들어가 백두대간산행기 메뉴에서 내가 써놓은 산행기를 찾아보니 백두대간 전체 약 60개 구간을 포괄하기에는 그 수가 태반에도 미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게 준비해 놓은 산행기는 다 없지만 이미 찍어놓은 사진들이 있기에 빠진 구간들에 대해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보충해서 더 씀으로써 백두대간이라는 것을 하나로 엮어서 블로그에 차례로 정리한다면 나의 백두대간은 다시 정연하게 통일된 하나의 실체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사진들을 다시 검토하며 나머지 구간들에 대한 산행기 작성에 착수하였다. 따라서 글의 완성도랄까 농도로 말한다면 이미 써놓은 글들은 어느 정도 짙은 농도를 가지고 있다면 나중에 써넣은 글들은 그 농도가 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옅은 농도의 글일지라도 도수가 낮은 맥주처럼 취하게는 하지 않지만 술을 마시는 효과는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시중에 발표된 많은 백두대간 산행기들이 지리적인 순서에서나 시간적인 순서에 있어서 정연한 질서를 가지고 기술되고 있는 것에 반해 이 산행기는 2005년 10월 2일 청옥산 위 고적대구간에서 시작하여 2009년 5월 23일 태백산구간에서 대간종주를 마칠 때까지 약 3년 7개월에 걸친 60개의 소구간 산행을 시간의 순서를 따라 정리한 것이다. 다른 책들이 주로 지리적 순서를 따른 것에는 반하는 구성이다.

 

 

내가 백두대간을 약 60회에 걸쳐 백두대간의 소구간들을 전부 종주한 것은 맞으나 지리산부터 설악산까지 이어지는 소구간들을 차례차례로 밟은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대간의 약 60개 소구간을 순서에는 전혀 관계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종주한 것이 나의 대간종주 스타일이었다. 만약 나의 산행기를 지리산부터 설악산까지 지리적으로 인접한 구간들을 따라 순차적으로 정리한다면 시간적으로는 전혀 일관성이 없을 것이기에, 하나의 질서를 주기 위해 시간적 정렬을 택하게 되었다.

 

 

물론, 다른 저자들이 택하는 것처럼 지리산에서 시작하여 설악산까지 순차대로 정리할 수도 있었으나 3년 7개월에 걸친 내 산행방식이나 문제의식의 변화를-그런 변화가 있었다면- 보여주기 위해서는 시계열적 순서가 나을 것 같이 생각되어 그렇게 한 것 뿐이다. 지리적인 순서에 따라 읽고 싶은 독자를 위해서는 마지막에 나의 대간운행표를 작성하여 지리적 순서를 제시하고 각 구간들에 언제 갔었는지를 제시하고 그 구간들의 번호를 명기하였다. 구간의 번호에 따라 읽으면 남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지리적인 순서가 되는 셈이다.

 

 

다음으로 소위 구간산행에 있어 상행과 하행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소구간 종주시 보통은 남에서 북으로만 종주를 해 나가거나(상행으로 규정) 북에서 남으로만 종주하여(하행) 종주의 일관성을 갖추는데 반해 나의 종주는 남에서 북으로 하는 산행을 위주로 하였으나, 사정상 북에서 남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통계 필요) 대개 안내산악회의 사정에 따라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었는데 교통과 산행후의 휴식장소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다. 태백산구간처럼 혼자나 소그룹으로 산행할 경우에도 북에서 남으로 종주할 때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접근하고 탈출하는 교통편 때문이었다.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나의 백두대간 종주는 약 3년 반에 걸쳐 백두대간의 미답구간들을 순서에 관계없이 밟아가는 느슨한 행로였다.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주로 주말에는 서울에 가게 되었고 서울에서 틈틈이 안내산악회의 종주산행을 주로 이용하고 가끔은 홀로 대간산행을 하기도 하였다. 나를 백두대간으로 안내한 산악회는 송파의 S산악회였는데 매 달 2주와 4주째 일요일에 정기적으로 백두대간 종주산행을 해나가고 있어서 어떤 소구간에서도 백두대간종주를 시작할 수가 있었고 2년 반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산행에 참가하면 원래 시작한 소구간 직전에서 전체 종주를 끝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안내산악회를 의지하여 종주하는 것은 나와 같이 직장에 매여 있는 보통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론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매달 2번 정해진 일요일에 대간산행을 해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백두대간 종주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피치 못할 일이 생기게 되면 그날 가야할 소구간의 종주는 뒤로 밀리게 되고 개인적으로 보완하거나 S산악회 이외의 다른 안내산악회를 찾아서 가야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안내산악회의 구간순서는 지리적으로 정리되었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우선 봄과 가을의 산불방지기간에 백두대간의 여러 소구간이 입산금지 되기 때문에 그때에는 입산이 가능한 소구간을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끔은 태풍이나 강설 등의 악천후로 인해 국립공원의 경우 입산이 통제되기도 하는데 이때 그곳으로 산행을 떠났는데 중간에 산행불가라는 정보가 입수되면 도중에 다른 구간으로 산행지를 바꿀 수 밖에 없는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백두대간을 정리하는 이유에 대해서 몇 가지 밝히고 넘어가야겠다. 첫째 이유는 나의 지나간 시간을 정리하고 싶어서이다. 나의 존재증명이라고나 할까? 환갑이 넘은 요즈음 나의 인생도 이제 서서히 정리해야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 듯 솟구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동안 산행에 투자한 시간이 아까웠지만 나름대로 건강을 지켜주고 보람도 맛 볼 수 있었던 것이 백두대간 종주였기에 가장 먼저 정리해서 갈무리하고 싶은 대상이 된 것이다. 또한 백두대간 종주는 나에게 많은 상상력을 주고 즐겁게 인생을 사는 데 큰 보탬을 주었기 때문에 그때를 회상하며 글을 써가는 시간이 내게는 아주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블로그에 글쓰기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가져왔던 글쓰기에 대한 나의 동경을 마음껏 채워보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내게 있어 그 동안의 인생에는 쓴 것도 많고 달콤한 것도 많고 아쉬운 것도 많았다. 그러나 내게는 이 모든 것들이 소중한 경험이었고 귀중한 추억들이었기에 인생에서 내가 체험하고 느꼈던 일들을 맘껏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게으름과 주변 여건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서는 안되겠다는 각오가 생겼고, 지나간 생활을 회상헤 보니 백두대간에 대해서는 미진하지만 이미 써놓은 글들과 간직하고 있는 사진들이 있기에 나의 글쓰기 소재로서 충분할 것처럼 생각되었기에 우선, 백두대간 산행기를 써 봄으로서 나의 내면적 욕구에 답하고 글쓰기에 대한 나의 바램을 실험해 보기로 하였다.

 

 

다음으로는 독자를 위한 것이다. 나도 이제 나이가 환갑이 넘어섰고 돌이켜 보니 이제 인생의 마지막 고개에 올라와서 앞으로 펼쳐진 내리막길을 내려다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얼마 있으면 직장도 정리하겠지만 이 나이가 정리할 시점이 되어간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다 보니 무척 쓸쓸해진다. 외롭기도 하다. 누군가 내 생각에 공감하고 벗이 되어 줄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감히 책을 펴내기로 했다. 내가 겪었던 그리고 느꼈던 감정들을 써서 벗들에게 헌정하기로 했다. 이 책의 독자는 꼭 백두대간을 종주하려는 사람들 뿐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내가 써 놓은 글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독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쓸쓸함을 같이 느끼고 나의 체험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맛 볼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에 이 글을 쓰며 기쁨을 맛본다.

 

(그후 전체 글은 대강 완성해 놓았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책으로 만드는 일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