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맛, HEIMAT who walks over Mountains

산이 없는 동네에 태어나서 백두대간까지 진출하여 사진찍고 산행기 쓰고 소설도 쓴다

산에서 마누라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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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소설 Mountain Novels

2020. 6. 19.

  코로나 사태에 몸과 마음이 다 움츠러듭니다. 움츠러 들었으니 펴질 날이 곧 오겠지요,

"한국산서회"의 연회지, "산서 제30호"(2010년 1월 발간)에 기고한 소설입니다.

 

  <마누라 죽이기>

   철수와 영희, 부부는 주차장에 차를 맡기고 서둘러서 산길로 들어섰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다섯 시간이나 걸려서 이곳 지리산 밑 중산리까지 서둘러서 왔는데 시간은 벌써 입산통제 시각인 오후 1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오늘 하룻밤을 묵을 로타리 대피소까지는 5km가 조금 넘는 거리로 그리 먼 길은 아니어서 어두워지기 전에 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한참 암을 견디고 있는 영희에게는 무리일 것이 틀림없다.

 

   탐방안내소 건물을 지나자 지리산 국립공원 안내도가 그려진 커다란 간판이 나와서 이를 흘깃 돌아본 뒤, 찻길을 버리고 숲으로 난 좀 더 좁아진 길로 들어섰다. 바닥에 돌이 깔린 길인데 숲속으로 난 길을 조금 따라가니 기둥 두 개 위에 아치를 걸친 나무로 된 문이 나오는데 아치의 중간에 ‘통천길’이라고 쓰인 나무판이 붙어 있다. 철수는 생각했다. ‘하늘로 통한다고?’ 그럴듯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두 사람의 기도가 하늘에 닿을 수 있다는 전조 같기도 했다. 두 사람의 기도는 단순하다. 이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보통의 건강한 사람에게는 큰 일이 아니지만 암 투병으로 약하디 약하게 변한 영희에게는 지리산 천왕봉까지의 산행은 무리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2년 전 암이 발병한 후 그녀의 꿈은 지리산에 한번 올라보는 것이었다. 남한에서 제일 높다는 한라산은 남편과 몇 년 전에 올라가 보았기에 이제 자기가 이승에서 오르고 싶은 마지막 산이 지리산이라고 했다.

 

   산을 좋아하는 그녀였지만 몸이 튼튼한 편은 아니었다. 한라산에 오를 그때는 건강한 몸이었지만 백록담 위 동봉까지 오를 때에도 남편에 의지해서 겨우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모든 짐을 남편에게 지우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느리게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그녀의 목표는 지리산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남편과 같이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덜컥 암에 걸리고 말았다. 암과 투병하면서 지리산 등정에 대한 갈망은 몸이 약해진 만큼 포기할 듯 했으나 웬일인지 그녀는 몸이 약해질수록 더욱 지리산에 대한 갈망이 생기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철수는 아내의 마지막 부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리산 등정을 그와 같이 쇠약해진 몸으로는 무리라고 적극 만류하였으나 아내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암의 완치를 아직 알 수 없는 상태였지만 결국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산행에 나서기로 했고 아직 추운 2월이지만 27일과 28일을 택하여 이틀간의 일정으로 같이 지리산을 오르기로 결정하였다.

 

   옛날 자기가 갔던 경험 중에서 시계반대 방향으로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해서 장터목을 거쳐 중산리로 원점회귀 했던 길을 생각해내고 다시 안내지도를 보니, 중산리에서 천왕봉까지는 5.4km이고, 거기서 장터목 대피소까지는 1.7km이고 다시 중산리로 내려오는 길이 5.3km이어서 총길이가 12.4km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길을 택하기로 했다.

탐방안내소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3.4km 지점의 로타리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2km를 가서 천왕봉에 오른 다음 장터목을 거쳐 탐방안내소로 오는 7km를 걸어 내려오면 될 것으로 파악되었다. .

 

   길은 숲속으로 계속되는데 물소리가 들리고 가끔씩 들려오는 새소리가 청아하다. 철수는 제법 큰 배낭을 지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간단한 먹을 것과 물, 접는 의자 하나와 옷을 넣었다. 겨울철인지라 끼어 입을 옷 몇 개를 넣느라 큰 배낭이 필요했지만 옷이 배낭 부피의 대부분을 차지해서 무게는 그렇게 무거운 것은 아니었다. 영희는 오른쪽 손에 스틱 하나를 들고 천천히 땅을 짚으며 그의 뒤를 힘들게 따르고 있다. 당연히 오늘의 목표는 2인이 숙박을 예약한 로타리 대피소이다.

 

   로타리 대피소까지의 산행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세 개로 나누어 소목표를 하나씩 도달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았다. 한꺼번에 최종 목적지까지 가기로 한다면 힘이 들고 지쳐서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세 개의 소목표는 칼바위와 망바위, 그리고 로타리 대피소이다. 탐방안내소에서 구한 지리산 안내지도에 따르면 안내소를 지난 후 1.3km 가면 칼바위가 나오고, 다시 거기서 1.1km를 가면 망바위가 나오며 마지막으로 1km를 더 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로타리 대피소가 나온다고 한다.

 

   철수는 예전에 했던 몇 번의 지리산 종주 때에 가본 길이기에 대강의 감을 잡을 수 있었으나 구체적인 수치에 집착하는 것은 동행인 아내가 있어 배려를 하며 걸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쉬었다 가요.” 영희가 숨을 헐떡이며 부탁한다.

 

  “그렇게 해요.” 산행을 시작한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가 힘들어 한다. 승용차에 가만히 앉아서 오면서도 멀미를 하느라 시달렸는데 걷기 시작하며 몸을 움직이어야 하니 힘이 더 들어 어려워하는 듯 했다.

 

  “자, 여기 앉으시오.”하며 철수는 배낭 속에서 접는 의자를 꺼내 펴서 길가에 세워 놓았다. 영희는 거기에 급히 주저앉는다.

 

  “고마워요, 얼마나 남았을까요?” 철수가 느끼기엔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영희가 초장부터 힘들어 하니 앞길이 걱정이 된다. 그러나 그는 자기 생각을 숨기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많이 왔소. 곧 칼바위가 나올 거요.”

 

  “그런데 박 여사 말예요. 돌아가셨지요. 그분도 이 길을 갔을까요? 지금 나처럼 힘들었을까요?”

 

  “그럴 거요. 아마 우리처럼 부부가 같이 이 길을 걸었을 거요. 그런데, 박여사 얘긴 왜 꺼내시오? 오래된 일인데.”

 

   10년도 더 전에 암으로 타계한 W시의 지인, 박 여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 부부는 철수의 직장 때문에 30년이나 W시에서 살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얼마 전부터 고향에서 가까운 서울로 상경해서 살고 있다. W시에서는 박 여사 부부를 포함하여 몇몇 다른 부부들과 함께 부부산악회를 만들어서 매주 주말이면 근처의 산으로 가곤 했다.

 

   영희보다 한두 살 나이가 많았던 박 여사는 언제나 솔선수범해서 단체를 위해 음식을 마련하거나 남자들이 음주를 했을 때 집까지 운전을 해주는 등 남을 위해 일하기를 즐기고, 일처리에도 사리분별이 정확하여 모두의 존경을 받았다. 게다가 인정이 많아서 남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고 도와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편은 어느 토목회사 사장으로 생활은 윤택한 편이었고 그 도시에선 소위 유지 급이라 할 정도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었는데 박 여사 남편이 술을 좋아하는 것이 철수와 닮은 데가 있어 두 부부가 자주 어울렸었다. 철수가 느끼기에 지금으로선 먼 옛날이야기인 것만 같다.

 

   ‘그랬었지. 박여사님! 좋은 분이었어.’ 박여사는 철수가 세상의 여성 중에 가장 존경하는 인사였다. 다른 여성에 대해서는 그 여성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는 그 여성에게 여사라는 존칭을 붙여주지 않았다. 오직 박 여사만이 그 존칭을 받을 만 하다고 지금까지도 그는 굳게 믿어오고 있어서 그녀를 부를 때면 언제나 여사라는 존칭을 성에다가 붙여서 부르곤 했다. 거기에는 물론 사연이 있었다.

 

   잠시 쉰 다음 두 사람은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길은 비교적 평탄했고 등산객들이 그들을 추월하여 빨리 사라져갔다. 삼각형의 뾰족한 바위가 나타났다. 첫 번째 소목표인 칼바위였다.

 

   “여기서 좀 쉬어 갑시다. 이제 삼분의 일 왔소.” 철수가 먼저 쉬자고 제의를 한다. 그리고 배낭 속에서 물병을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준다.

 

   “그래 쉬어가요. 박여사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당신만큼 힘들었을 거요. 그래도 잘 참으시더니 결국은…….” 박 여사의 결말은 죽음이었다.

 

   현대 의술에 의한 치료를 받고 있던 박 여사에게 남편인 정 사장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대체의학에도 관심을 가져서 부지런하게 산을 뒤져서 암에 잘 듣는다는 약초를 채취하여 부인이게 지성으로 달여 먹여서 한 동안 병에 차도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렸으나 결국은 그녀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부부는 한참을 말이 없이 묵묵히 각자의 상념 속에 잠겨서 쉰 다음 일어섰다. 이정목이 서있는 칼바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장터목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로타리 산장이다. 그들은 오른 쪽으로 가야 한다. 여기서부터 길은 가팔라진다. 영희는 점점 힘들어 하는데 길마저 가팔라지니 도무지 속도가 붙지 않는다. 철수는 아내의 왼손을 자기의 오른손으로 잡고 앞으로 끌기 시작한다. 아까보다는 속도가 더 붙었으나 다른 사람들의 등산속도에 비해선 너무 느린 속도이다. 그러나 이런 속도라도 계속 가면은 끝이 나리라고 생각하며 어두워지기까지 아직 시간여유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되었다.

 

   철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앞으로 끌면서도 상념에 잠겼다. 그녀와 함께 한 일생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들 관계의 시작은 산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선배가 소개해 준 그녀에게 그가 가장 먼저 제안한 것은 백운대로의 산행이었다. 그때도 2월이었다. 얼어붙은 길을 올라가 백운대를 앞두고 그녀가 살짝 미끄러지며 그가 서 있는 쪽으로 넘어지려는 찰라, 그가 그녀를 덥석 껴안고 정지시킨 것이 그날의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후 둘은 같이 산을 오르며 우정을 쌓다가 결국 그 우정이 사랑으로 발전하여 그가 제대한 후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는 W시에서 교편을 잡게 되고 은행원이었던 그녀도 직장을 접고 같이 W시로 내려가서 평범한 주부로서의 생활을 해나가게 되었다. 부지런한 그녀는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에도 틈틈이 뒷동산에 오르며 산행을 했고 산에서 들꽃과 난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맛보기도 했다. 주말이면 부부가 부부산악회와 함께 근처의 산에 오르거나 가끔은 타지방으로의 원정 산행에 나서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병 때문에 몸이 쇠약해져 산행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 마지막 소원으로 천왕봉으로의 산행을 내세웠고 무리일지 모르지만 남편을 졸라 결행을 하는 중이다.

 

   “이제 좀 쉬어야겠어요.” 오른 손에 매달려 오던 아내가 못 견디고 쉬자고 한다.

 

   “그렇게 합시다. 이제 많이 왔소.” 접이의자를 세워주며 그가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두 번째 소목표인 망바위에 도착할 것 같았다.

 

   “조금 춥네요. 옷 좀 하나 꺼내 주세요.” 그는 배낭 안에서 파카를 꺼내서 그녀에게 입혀준다. 그녀는 의자위에 앉아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잠깐 잠이 든 것 같았다. 규칙적이고 약간 높은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하릴없이 길섶 작은 바위 위에 앉아 다시 상념에 잠겼다.

 

   ‘그해 가을이었지. 박 여사께서 우릴 도와준 것이…….’ 둘째 애가 고3인 해였다. 학교 사람들 사이에도 골프 바람이 불어 철수도 아내와 함께 그물이 쳐진 옥외 골프연습장에 등록을 하고 열심히 골프 연습에 매진하였다. 연습장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남자들은 주로 2층을 이용하고 여자들은 1층에서 프로에게서 레슨을 받고 있었다. 연습장에 상주하며 초보자를 가르치는 프로라는 선생은 원래는 연습프로라고 불리는데 정식 프로 선수는 아니었고 초보자에게 레슨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의 호칭이었다.

 

   영희는 백 프로라는 젊은 사람에게서 배우고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서 배우는 한 무리의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여러 유형의 여자들이 있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같았다. 특히 어떤 여자는 화류계에 있다거나 어떤 여자는 캐디 출신인데 남의 남자를 빼앗아서 차지한 여자도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래서 철수가 관찰해 보니 일층에 옷차림이 화려하고 화장이 짙은 여자들이 몇몇 눈에 뜨였다.

 

   그중 김 아무개라는 여자가 특히 눈에 뜨였는데 호리호리한 몸매에 키가 컸는데 야한 옷차림에 짙은 화장을 하고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뒤에는 자주 그녀의 남편인지 애인인지 하는 늙수그레한 남자가 하나 서서 젊은 백 프로와 함께 그녀를 코치하고 있었다.

 

   철수부부가 그 주말에 부부산악회와 같이 등산을 한 후에 간 뒤풀이 자리에서 박 여사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김 아무개라는 여자는 본디 캐디 출신으로 건축업을 하는 조 사장을 골프장에서 만나 서로 눈이 맞은 뒤에 본부인을 내쫓고 조 사장의 두 번째 부인으로 행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 사장의 아들 상철 군이 서울의 유수한 대학에 들어갔는데 철수의 맏딸과 같은 과의 선배로서 재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이사를 갔지만 조 사장은 박 여사 정 사장 부부와 바로 이웃에 살았기에 예전에 조 사장이 본부인과 이혼하기 전에는 이웃으로 친하게 지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인을 갈아치운 뒤에는 조 사장이 이사를 갔고 서로 못 본척하며 지내는 서먹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조 사장의 일탈은 외지에서 온 철수네는 몰랐지만 W시의 원래 주민들에겐 대단한 가십거리였다고 한다. 원래 골프장에서 신사다운 매너와 후한 팁으로 인기가 있던 조 사장이 김 아무개라는 젊은 캐디를 만나서 불륜에 빠지게 되었고 조강지처와 아들을 버리게 되었으며, 버려진 모자는 아주 어렵게 살고 있다는 막장소설과 같은 스토리 구성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었다.

 

   조 사장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 같았다. 그에 대한 반격의 분풀이는 엉뚱하게도 철수 부부에게 가해졌다. 수능이 얼마 안 남은 어느 가을날 조 사장에게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거기 신 선생 댁입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누구십니까?”

 

   “나, 골프장에서 연습중인 김 아무개의 남편 조 사장입니다.”

 

   “그런데 웬 일이십니까?”

 

 

   “당신 부인이 우리 부인을 모욕했단 말이요. 내가 당신 부인에게서 사과를 꼭 받아야겠소,”

 

   “갑자기 무슨 말씀입니까? 이해가 안 되는데요. 저희 집사람이 그럴 리가 없는데요.”

 

   “똑똑히 들으시오. 우리 집사람이 캐디 출신이라고 당신 부인이 골프장에 소문을 냈단 말이오. 그리고 우리 부인은 인테리어를 공부한 사람으로 캐디가 아니란 말이오.”

 

“우리 집사람이 그렇게 소문을 냈을 리가 없습니다.”

 

   “여하튼 난 사과를 받으러 오늘 저녁에 신 선생 집으로 가겠소.”

 

   “안 됩니다. 지금 우리 집엔 고3이 있어서 시끄럽게 다투면 안 됩니다.”

 

   “좋소. 그렇다면 금성로타리 1층에 있는 금성다방 알지요? 거기로 6시까지 나오시오, 부인도 꼭 나오도록 하시오. 끊겠소.”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었다. 시중에 수소문 해 보면 철수의 전화번호나 집주소는 알 수 있었을 것이어서 전화는 걸어 올 수 있지만 도대체 갑자기 집으로 습격을 해서 사과를 받겠다는 심보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고약했다.

 

   철수가 조 사장에게서 그러한 전화를 받았다고 하니 영희도 깜짝 놀라며 저간의 사정을 알려 주었다. 골프연습장에서 김 아무개가 백 프로와 골프장 관리인을 어떻게 구어 삶았는지 또는 자주 연습장에 나오는 그녀의 남편을 믿는 것인지 그녀가 연습장에서 희고 제치는 꼴은 남들이 보기에 이주 가관이었다고 한다. 가장 좋은 자리를 늘 차지하는 것은 물론 백 프로를 오래 잡고 있어 다른 사람의 레슨시간을 잘라 먹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속으로 욕할 뿐 아무도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지는 못하고 뒤에서만 수군거리는 처지였다고 한다. 영희도 그녀와 마주치면 목례나 하는 사이로 그녀와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요 며칠 그녀가 영희를 보는 눈이 뭔가 불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고 한다.

 

   위기였다. 어떻게 이 난관을 빠져나가야 할까? 사과를 하고 마무리해야 할까? 그러나 소문을 퍼뜨렸다는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 하지도 않은 행위에 사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조 사장의 오해를 풀어주면 될까? 노력은 해 봐야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의도적으로 철수를 망신주기 위해 계획했다면? 소문을 냈다는 행위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철수 부부를 찍어 눌러서 사과를 하게 한 다음 사람들에게, “봐라. 교사 부부가 잘못을 시인하고 우리에게 사과했다.”라고 해서 분풀이를 하려는 게 그의 목적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6시가 되기 전에 철수 부부는 금성로타리의 금성다방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시에 도착했는데 저편에선 이미 와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김 아무개와 조 사장 둘만 나온 게 아니라 그 동안 김 아무개를 싸고돌던 백 프로도 당사자가 아님에도 버젓이 곁에 앉아 있었다. 3대 2로 수적으로도 이쪽이 밀리게 생겼다. 어색하게 자리에 앉자마자 백 프로가 조 사장 커플의 충견이나 된 듯 공격을 해 온다.

 

   “이번 일은 사모님이 백 프로 잘 못 했습니다. 이쪽 사모님께 사과하세요.” 기가 막혔다. 제3자인 지가 뭘 안다고 역성을 들며 나오는가? 영희도 지지 않는다.

 

   “내가 뭘 어쨌다는 거죠? 난 잘 못한 게 하나도 없어요, 소문은 연습장에 다 퍼져 있던 거구요. 내가 소문냈다고 누가 그래요?”

 

   “사모님이 뒤에서 사람들과 수군수군 하는 걸 이 사람과 백 프로가 직접 봤대요. 그리고 이 사람 캐디출신 아니에요. 인테리어를 전공한 양가집 규수란 말이오.” 조 사장이 옆에 앉아서 새파랗게 난 화를 참고 있는 김 아무개를 대신해서 공격해 온다. 이제 철수가 나설 차례 같았다.

 

   “여보시오. 사람 잡지 마시오. 이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니오. 우린 잘 못한 게 없으니 언감생심 사과는 바라지도 마시오.”

 

   “신 선생, 좋은 말 할 때 사과하도록 하시오. 부인 대신 당신이 사과하더라도 받아들이겠소.” 조 사장이 협박을 하면서 회유를 한다. 영희가 나섰다.

 

   “우린 둘 다 사과 못 해요.”

 

   이렇게 사과를 화제로 두고 하느니 못 하느니 싱갱이를 하고 있는데 다방의 출입문이 열렸다. 그러더니 생각지도 못 했던 박 여사가 다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잽싸게 다섯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 옆에 섰다.

 

   “상철이 아부지,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의외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조 사장은 살을 맞은 듯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서서 비틀비틀 문 쪽으로 걸어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김 아무개와 백 프로도 닭 쫓던 개처럼 망연자실하더니 조 사장을 따라 밖으로 사라졌다. 철수가 학교에 출근했던 사이에 영희가 고민 끝에 박 여사에게 조 사장의 협박 건을 알린 모양이었다.

 

   지리산의 2월은 아직 춥다. 퍼뜩 아내를 깨워야겠다는 생각이 철수에게 들었다.

 

   “여보, 일어나요.”

 

   “알았어요. 내가 오래 잤나 보아요. 길이 늦어져서 어째요?”

 

   “괜찮소.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이제부터 열심히 갑시다.”

 

   둘은 다시 손을 잡고 경사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곧 망바위에 도착할 터였다. 한참을 올라가니 드디어 검은 큰 바위 위에 작은 바위가 쪼개져서 얹혀있는 망바위에 도착했다. 이제 1km만 더 가면 최종 목적지이다. 잠시 쉬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다섯 시가 넘었다. 천왕봉의 큰 그림자에 가려서 이미 해가 지고 사방에서 어둠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어둡기 전에 대피소에 도착하려던 계획은 수정하고 여섯 시까지 가는 걸로 바꾸어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영희는 잘 걷지도 못 하고 그에게 매달리며 자주 길에 주저앉으려고 한다. 할 수 없었다. 업고서 가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철수는 배낭을 앞으로 메고 등 뒤에 그녀를 업었다. 항암치료로 소화가 잘 안 되어 음식섭취를 잘 못했기에 그녀의 몸은 50킬로가 채 못 되는 가벼운 체중이었으나 철수가 업고 가기에는 결코 가벼운 무게는 아니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낑낑거리며 그녀를 업고 가다가 십여 번 이상을 쉰 다음에야 로타리 산장의 불빛이 나타났다. 거기서부터는 영희도 걷기로 했다. 사람들이 자기가 남편 등에 업혀가는 걸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는 거였다. 산에 올라와서까지 병자로 보여서 동정을 받기는 싫다는 의견이었다.

 

   관리인은 그들에게 11번과 12번의 잠자리를 배정해 주었다. 8시에 소등한다고 하니 식사와 휴식을 할 시간이 조금은 있는 셈이었다. 라면 하나를 끓이고 햇반을 하나 넣어서 김치와 함께 둘이서 먹었다. 영희는 소화가 어려워 잘 먹지를 못 한다. 그래도 해발 1,300미터가 넘는 곳까지 올라와서 행복하다고 한다.

 

   둘은 식사 후 어둠에 싸인 바깥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그들이 겪은 산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영희는 무릎이 아파오고 체력이 달려서 높은 산은 포기하게 되어 집 근처의 낮은 산에 가는 것으로 만족하였으나 철수는 왕성하게 산에 다니면서 시중에서 유행하던 백 개의 명산 오르기나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고 지금은 고교 동문들과 낙동정맥을 한 달에 한 번씩 계속해서 가는 중이었다.

 

   다음 날 아침은 일찍 대피소를 떠나서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기로 계획하고 휴대폰의 알람을 오전 네 시에 맞춘 다음 두 사람은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 지쳐있던 영희는 곧 잠이 들었지만 이렇게 이른 시각에 잠을 자보지 않은 데에다가 불면증이 있는 철수는 쉽게 잠들 수 없어 이리 뒤채고 저리 뒤채며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이며 몇 시간을 지나서야 겨우 얕은 잠에 들 수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도록 까무룩 하게 잠이 들었다 싶었는데 진동으로 해 놓은 알람이 울렸다. 네 시다. 일어나야 했다. 주섬주섬 겉옷을 입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아침식사는 이따가 정상에서 어제 준비해온 빵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헤드랜턴을 머리에 쓰고 철수가 앞장을 서고 영희가 그 뒤를 따른다. 바람은 차고 공기는 건조했다.

 

   대피소를 떠나자 곧 나타나는 법계사 건물들은 랜턴 불빛을 좌우상하로 흔들며 비추어서 그 존재를 알아 볼 수가 있었지만 꼭두새벽인지라 일부러 그곳에 들를 필요는 없었다.

영희의 걸음은 얼마 못 가서 어제와 같이 느려졌다. 몸이 말을 안 들으니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한참을 가니 경사도가 낮고 돌이 적어서 걷기에 편한 길이 나왔다. 해가 뜨기 전에 정상에 가고 싶기에 서둘러야 했다. 철수는 보다 못 해 아내를 어제처럼 업어서 데려가려 했지만 그녀는 자력으로 가겠다며 한사코 응하지 않는다.

 

   둘은 손을 잡고 발을 맞추는 악전고투의 행진 끝에 큰 바위 위로 난 길과 나무 계단 길을 올라서 개선문에 도착하였다. 개선이라는 말이 산행의 성공이 곧 도래할 거라는 용기를 둘에게 주는 듯 하여 마음속에 큰 위안을 받았다. 이제 날이 희뿌윰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멀리 중첩된 산줄기들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는데 해가 뜨려는지 동쪽 먼 하늘이 불그레해졌다. 느린 걸음으로 다시 전진을 계속했다.

 

   스마트 폰의 앱에서 첵크해 보니 오늘 해 뜨는 시각은 7시 10분이라고 하니까 시간은 충분할 듯 했다. 남강의 발원지라는 천왕 샘을 만나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위로 향해 걷는데 가파른 나무 계단이 나타났다. 마지막 시련이었다. 이제 20분만 지나면 해가 올라올 시간이다. 철수는 등을 대고 아내에게 업히라고 한다. 영희도 할 수 없는지 이반에는 수긍을 하고 그의 등에 업혀서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은 하나가 아니고 두 개나 되었다. 그 두번째 계단도 둘이는 한 몸이 되어서 다 올라갈 수 있었다. 거기서부터는 돌밭으로 너덜길이다. 남편의 등에서 내린 영희는 남편의 손을 잡고 정상을 향해 기다시피하며 힘들게 언덕을 올라갔다. 드디어 정상이다. 둘은 바위 돌들을 발밑에 밟으며 정상석으로 다가갔다. 天王峰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진 기다랗고 위가 둥근 정상석을 어루만지며 둘은 눈물을 흘렸다. 정상에는 차가운 바람이 살짝 불고 있는데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철수는 가슴이 먹먹해져서 옆에 선 아내를 끌어안았다.

 

   “드디어 성공했어. 당신의 소원은 이루어졌어요!”

 

   “여보 고마워요. 나는 이제 더 이상 원이 없어요.” 영희가 달뜬 목소리로 그에게 마음을 전했다.

 

   “나도 고맙지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오늘 여기 와서 좋은 경치를 볼 수 있었겠소?”

 

   “다시 고마워요. 이런 풍경은 저 세상에서나 다시 볼 수 있겠지요?”

   “말도 안돼요. 당신은 오래 살 거요.” 철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해가 뜬다!” 누군가 정상에 이미 올라와 있던 산객 중 한 사람이 외쳤다. 가로로 길게 퍼진 옅은 구름 아래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둠을 밀어내고 동쪽 하늘을 태우며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철수는 흡사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 한 감흥을 맛보며 그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오래 서 있었다.

 

   그러다가 퍼뜩 집히는 게 있어 뒤로 아내가 서 있었던 쪽을 돌아보았다. 영희는 돌 위에 쓰러져서 모로 누워 있었다.

 

“여보, 여보.” 그는 아내의 몸을 흔들어 깨우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는 반응이 오지 않았다. 눈꺼풀을 올려 눈을 보니 초점이 나가고 온 몸에 맥이 풀려 있었다. 끌어안은 채 위로 들어 올리려 하자 그녀의 몸은 축 늘어지며 이미 어떤 경계를 지난 듯 했다.

‘여보, 잘 가요. 내가 당신을 하산시키리다.’ 철수는 속으로 아내의 명복을 빌었다.

 

그는 아내를 다시 등에 업었다. 그 위에 자기 파카를 덮고 거추장스러운 배낭은 길옆에 버렸다. 갈 길이 멀었다. 동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그 쪽에서 햇빛이 비쳐왔다.

 

“그래, 여기야. 이렇게 해서 완성하는 거야.” 자기의 무게에 아내의 무게가 더해져 꽤

무거운 몸이 된 철수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하나의 세계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세계는 정말로 있기나 한 걸까?” 그가 다시 중얼거렸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