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맛, HEIMAT who walks over Mountains

산이 없는 동네에 태어나서 백두대간까지 진출하여 사진찍고 산행기 쓰고 소설도 쓴다

[스크랩] 060604 백두대간에서 나는 왕이로소이다 : (소설로 써 본 산행기) 왕의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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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소설 Mountain Novels

2006. 10. 12.

2006년 6월4일 아침 잠실벌,

 

왕과 그의 일행을 태운 버스는 오전 7시 잠실평야를 떠나 오늘 대간산행의 들머리인 한계령을 향한다. 수행대장 보스와 호위군사들, 그리고 왕은 오늘 광대출신 두 명의 남자를 데리고 산행에 나섰다. 오른 편엔 장생이 앉았고 왼쪽엔 공길이 앉아 있다. 두 사람의 뛰어난 줄타기 기술은 오늘같이 어려운 암릉구간에선 왕에게 큰 힘이 될 것이었다.


오늘 넘으려는 백두대간의 구간은 일반백성들에겐 금지되어 있는 곳이다. 왕이나 그 측근 신하들에게만 몰래 개방될 뿐이다. 왕이 눈감아주자 왕의 최측근인 BMW가 2006년 3월 26일에 자일을 들고 혼자서 이 구간의 암릉을 백성들 눈에 안 뜨이게 넘은 적도 있었다. 이 구간 산행은 바윗길이 험하여 사고의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도적이 출몰할 염려가 있어 왕이 몇 년 전부터 산행을 금지해 온 터였다.


그러나 고위층의 특권이던 백두대간놀이가 이미 일반백성에게도 너무나 재미있는 놀이로 알려졌을 뿐 아니라 고위층의 몰래 넘기를 본받아 금지구간을 몰래 넘으며 백두대간을 즐기는  백성들도 아주 많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었다. 이에 왕은 칙령을 내려 금지구간 침범자에게는 일금 50만원이라는 혹독한 벌금을 부과하여 이를 막으려 하였다. 그래서 왕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 것이 또한 사실이었다.


왕도 솔선해서 이 칙령을 지켜야 할 것이나 백두대간을 모두 종주하겠다는 그의 욕심과 위험한 구간이니 만큼 꼭 가보겠다는 호기심이 왕을 이리로 오게 한 것이었다. 또한 왕은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고 전해오는 왕권신수설을 믿기에 자주 법이나 규칙 위(上)에 서는 터였다. 몇 년 전부터 왕은 정사엔 뜻을 잃고 산만 찾아 헤매게 되었다.

 

전국의 100대 명산을 찾아 헤매는 중에 정사를 팽개쳐 두게 되니 하나하나 그의 실정이 쌓여가고 백성들 중에서 비판의 기운이 퍼져 가매 왕은 더욱 엇나가며 정사에 흥미를 잃고 놀이에만 능한 광대출신인 장생과 공길을 데리고 툭하면 산에 오르는 것이었다.


작년까지는 100명산 탐방을 끝내더니 10월이 되니 한 술 더 나아가서 백두대간 종주놀음에 빠지게 되었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는 흥미를 잃게 되고 신하들이 정사를 자기들 이익에 따라 좌지우지하게 되니 왕의 실정은 극에 달한 듯하였다. 왕은 이제 역모나 혁명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여느 때처럼 클린턴휴게소에서 20여분을 쉰 다음 버스는 제 갈 길로 달려간다. 인제읍을 거쳐 9시 16분 산행들머리에 도착하였다. 자일을 든 장생과 공길을 앞세우고 왕은 첫 번째 난구간인 바위절벽을 향한다. 왕의 경호규칙엔 호위군사들이 왕을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것이 원칙이나 오늘은 그들이 암릉을 타고 넘어 좇아오지 못할 터이므로 산행이 끝나는 단목령에서 대기토록 조치하였다.  


이번 구간의 산행은 왕에게는 아주 뜻 깊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지난 음력 정월 초파일(양력 2월 5일) 야음을 틈 타 이 구간을 돌파하려다가 강풍을 동반한 추위와 눈얼음 때문에 미수에 그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원도 설악의 한계령에서 큰산(JB산) 사이에는 아주 험한 산길이 있어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이 가장 겁을 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시샘많은 왕도 그 길을 넘어보고 싶은 것이 늘 꿈이었었다. 또한 그 길을 한겨울 가장 추운 날에 그것도 한밤중에 보란 듯이 넘어보는 것이 왕의 꿈이었다.


그래서 눈과 얼음에 덮힌 산을 올라 3개의 위험한 암벽을 넘어 중간산을 넘고 큰산 정상(1424.2m)에 왕의 노란색 깃발을 꽂고 단목령을 거쳐 조침령으로 내려오는 어려운 산행을 실행하다가 첫 번 째 암벽에서 돌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첫 번째 암벽에 장생이 밧줄을 걸고 왕을 재촉했지만 공길이 극력 왕의 안전을 위해 반대한지라 미수에 그친 터였다.


그간의 4개월 동안 왕은 언제나 이 구간을 넘는 생각에 다른 놀이는 시들하기만 하였다. 장녹수를 위해 백화점에 가 주거나, 청계천 3가에 있는 서울극장에서 왕의 남자라는 영화를 볼 때에도, 광대들과 인왕산에서 바위타기를 할 때에도, 장낙원에서 장생의 줄타기를 보거나, 하릴없이 만화책을 뒤적거릴 때에도 왕의 관심은 그저 백두대간 한계령 밑의 큰 산을 넘는 데에 두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 결전의 날이 왔고 날은 너무나 화창하고 신선하다. 눈이 시리도록 싱그러운 녹음이 맑은 대기 속에서 빛나고 이름 모를 산새들이 왕과 남자들을 반긴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쯤 지나자 지난번 눈보라에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렸던 암릉 밑에 도착하였다. 장생이 가볍게 몸을 날려 바위위로 올라가더니 금새 밧줄을 늘어뜨리고 왕이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왕은 힘들게 과체중의 거구를 움직여 겨우 바위위에 올라 섰다. 그 다음엔 바위를 엉금엉금 기어서 더 올라간다. 소나무를 잡고 첫 번 암릉의 가장 높은 곳에 서니 바위너머에 숨어있던 경치가 끝내준다. 기묘한 바위들이 왕의 눈을 즐겁게 하고 왕은 오늘 오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공길이 왕의 뒤를 좇아 가볍게 올라 온다.  지난번 3월 26일 BMW가 혼자서 통과한다기에 걱정했는데 오늘은 셋이서 가니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공길이 자일을 회수하여 장생에게 넘기고 셋은 두 번째 암릉으로 접근한다. 두 번째 암릉도 첫 번째와 같은 방법으로 무사히 통과하였다. 남은 것은 마지막 암릉이다. 이번엔 바위에서 내려서는 길이 위험했다. 몸이 가벼운 공길이 앞장서고 장생이 후미를 맡는다. 왕은 중간에서 밧줄을 잡고 내리막을 통과한다. 날이 더워서 장갑을 벗는 바람에 자일에 손바닥이 미끌어지며 화상을 입을 뻔했다.


산행시작후 1시간이 안되어 위험구간을 벗어났다. 자일을 서려서 배낭에 넣고 셋은 기분이 고조되어 콧노래를 부르며 1,156봉을 지나고 높이 1,236m의 중간산을 향하였다. 잠시 멈춰 쉬면서 장생이 배낭에서 수통을 꺼내어 왕에게 얼음물을 권한다. 뒤에 좇아오는 공길은 자루를 들고 있다. 자루속에는 무언가 들어 있어 제법 불룩하다. 이 산에 많은 산나물을 뜯었다고 한다. 참나물, 취나물, 곰취 등이란다. 눈썰미없는 왕에겐 보이지 않는 게 산나물이다.     

 

11시 48분 높이 1,236m의 중간산(일명 큰바위를 바라보는 산 : MDA산)에 도착한다. 여기서의 경치는 너무나 좋다. 셋은 사진도 찍을 겸 좀 쉬었다 가기로 한다. 이 산은 온통 뾰족뾰족한 바위들로 되어 있는데 바위위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귀때기청봉에서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설악의 서북능선이 북쪽으로 수려하게 나타나고 그 왼쪽으론 가리봉과 삼형제봉이 우뚝하다. 남쪽으론 오늘 오를 가장 높은 봉(1,424m)인 큰 산의 밋밋하고 커다란 자태가 신록의 활엽수를 표면 가득히 담고 있다. 가히 왕이 들어오던 금수강산이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할 만하다.


왕은 카메라를 꺼내 경치를 찍고 장생과 공길을 찍어준다. 장생은 바위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공길은 춤을 춘다. 왕은 옛날 노래를 부른답시고 죤덴버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청명한 초여름의 하늘아래 산봉우리들이 푸르게 빛나고 세상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드는데 산새들이 노래하는 이 평화로움, 그때 왕은 갑자기 공포를 느낀다. ‘그렇다. 이런 순간이 위험하다.’ 직감적으로 왕은 조만간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임을 느낀다. 모든 것이 너무나 평화롭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여유있게 초여름의 생명을 느끼며 큰산을 향하여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천미터가 넘는 고지대이기에 진달래와 철쭉이 이제야 피어 세사람을 반기어 준다. 12시 24분 드디어 큰산 정상에 도착했다. 한계령을 떠난지 3시간 8분 만에 9km를 걸어온 셈이었다.


이 때 높이가 1,424m라 적힌 정상석을 살펴보며 휴대폰을 받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던 장생이 왕에게 달려왔다.


장생 : 전하, 모반이라고 합니다.

 

왕    : 무엇이, 반역이라고? 수괴가 누군가?

 

장생 : 성희안과 박원종(중종반정의 주모자)인데 실행대장은 BMW라고 합니다. 그가 단목령에서 진군하여 큰산  바로 밑까지 왔다고 하옵니다. 호위군사들은 이미 무력화되었고 반군들이 이 산의 남쪽과  북쪽에서 저희를 포위하고 있다 하옵니다.

 

왕    : BMW가?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충직한 신하가 그럴 리가 없다. 그는 나의 어릴 적 친구이니라.

 

장생 : 대의 때문이라고 하옵니다. 전하의 실정과 BMW의 성실성에 모든 신하가 등을 돌렸다 하옵니다.  


셋은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한다. 왕은 인간에겐 기대하기 힘듦을 알고 마지막으로 산천초목에게 의지하려고 해 본다. 산을 좋아하는 왕다운 발상이었다.


왕    : 산천초목이야 우리를 돕겠지?

 

장생 : 대모산(山)이 BMW를 지지한답니다.  청계천(川)은 원래 한나라당입니다.

 

왕    : 풀(草)과 나무(木)들은 어찌 되었나?

 

장생 : 자운영과 들꽃도 대의를 따른답니다.

 

왕    : 그렇다면 머리허연 나뭇꾼은?

 

장생 : 다수결을 따른다 하옵니다.

 

왕    : 큰일났군. 그렇다면 힘을 합쳐 혈로를 찾아보자. 그런데 어디서 온 정보인가?

 

장생  : CIA에서 온 위성전화입니다.


 

이때 BMW가 군사들을 이끌고 큰산 정상을 포위한다.


BMW: 왕은 포박을 받으시오, 당신을 심판하는 정의의 칼을 피하지 마시오.

 

왕    : BMW! 미쳤소? 나는 당신의 왕이오. 하늘에서 받은 왕의 자리요. 또한 우리의 우정은 어찌 되는거요? 배신이란 당신의 사전에는 없지 않소? 지난번 혼자 한 산행은 오늘의 모반을 연습하기 위함이었소?

 

BMW: 다 맞는 말씀이오. 그러나 당신의 실정이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하였고 세상을 바르게 하라는 그분의 지엄한 명령을 받고 보니 백성의 안위와 복지라는 지고의 가치 앞에 우정이니 배신이니 하는 것은 너무나 하찮은 개인적인 기준일 뿐이오.

 

왕    : 정말 그분의 명령이오? 아니면 당신의 개인적 야심이오?

 

BMW: 난 정권엔 관심이 없소. 단지 지금의 잘못된 당신의 정치를 바로 잡고 진성대군(후일의 중종 임금)에게 정권을 넘겨주면 나의 역할은 끝날 것이오. 모든 신하들이 나를 따르고 있소. 빨리 항복하시오.

 

왕    :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이오?

 

BMW : 당신의 치세에 강남의 아파트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경제는 쪼그라들지 않았소? 젊은이들이 직장을 못 찾아 난리굿인데 왕이라는 자가 왕의 남자들과 어울려 허구헌 날 놀러 만 다닌다니 이게 잘 하는 일이오?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원성이 들리지도 않소? 미색을 탐한다는 소문도 있소.

 

왕    : 다 헛소문이오. 나를 어찌 할 작정이오?

 

BMW: 영생을 주겠소.

 

왕    : 허허. 영생이라. 거 참 좋은 표현이외다. 소원이 있소.

 

BMW : 말해 보시오. 나의 권한 내라면 들어드리리다.

 

왕    : 장생과 공길을 방면해 주시오. 그들은 죄가 없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그분께 기도할 시간을 주시오.

 

BMW: 장생은 죄인이요. 사형엔 안 처하겠으나 의금부로 압송하겠오. 공길은 당신을 사랑한 죄밖에 없으니 무죄이나 이젠 내꺼요. 내가 갖겠소.

 

왕    : 무지한 사람. 당신이 말한 정의가 겨우 그거요? (공길쪽을 보며)공길아 너를 지켜주지 못하는 날 용서해라.

 

(이 틈에 달아나려던 장생은 군사들에게 잡히고, 공길 기절한다.)



왕   : 그분께 기도할 시간을 좀 주시오.  곧 포박을 받으리다.


왕은 큰산 정상에 자리를 펴고 꿇어 앉아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를 올린다.


왕    : 오늘 당신께 간구하오니, 당신께서 허락하여 이 땅의 왕이 된 이 하이맛을 버리지 마옵소서. 제가 잘 못 한 것이라곤 좀 과하게 산을 탐했던 것 이외에는 없나이다. 진성대군을 꼬드겨 왕위에 앉히고 저들이 이 나라 정치를 농단하며 단물을 빨아 먹으려고 역모를 꾸몄습니다.

 

그분  : 하이맛아. 너에 대한 원성이 이미 하늘까지 닿았구나. 백두대간도 좋지만 정사도 돌보아야 하지 않았겠느냐? 내 너를 오늘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리라.

 

왕    : 너무하십니다. 그들은 백두대간의 낭만을 모르는 무리이옵니다. 무지한 그들 편을 드시는 겁니까?

 

그분  : 네가 뭐래도 나는 백성의 편이니라. 그리고 너는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 했느니라.

 

왕    : 권좌를 버리겠나이다. 그러니 저를 이 자리에서 들어 올려서 이 치욕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왔다. 그분은 하이맛을 큰산에서 하늘로 끌어 올리셨다. 산에선 유능했으나 정작 현실에선 산다니기나 좋아하고 돈버는데는 무능했던 것이 그의 큰 죄였으나 그의 영혼은 순수했다는 것을 그분께선 눈치채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왕과 신하가 산정에서 만난지 불과 10여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12시 40분, 혁명에 성공한 BMW와 군사들은 단목령을 향하여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도 산행하기엔 아주 좋은 초여름의 날씨였다. 군사들이 6.2km 떨어진 단목령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12분이었다.


70일 전인 지난 3월 26일 BMW의 단독 산행은 오늘(6월4일)의 혁명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서, 무언가 목표를 정하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그의 근성의 승리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울에서 강희안, 박원종 및 BMW 등이 옹립한 진성대군은 조선 11대 왕인 중종이 되었다. BMW는 약속대로 권력에는 머물지 않고 9정맥을 거닐며 힘든 산행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의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공길을 자기 것으로 못한 일 말이다.

 

공길은 잡혀가다가 단목령에서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서 목을 매었다고 한다. 그래서 붉은 피가 흐르는 목이라는 뜻의 ‘단목령’이라던가?

출처 : 송백산악회
글쓴이 : 하이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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