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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보는 세상 2011. 7. 12. 21:16

 어제 제사 준비를 다 했으니

오늘은 제사 지내는 과정을 올립니다.

사당에서 출주(신주를 모시고 제청으로 나오는 것)를 하겠다고 고하는 제관들

 

 출주

 신주를 제청으로 모셔와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우리네 집에서 지내는 것과 흡사합니다.

초헌관(처음 잔을 올리는 사람)

아헌관(두 번째로 잔을 올리는 사람)

종헌관(마지막으로 잔을 올리는 사람)들이 잔을 올리고

뒤에서는 제관들이 절을 올린다.

제청으로 모셔왔던 신주는 제사가 끝나면 다시 사당으로 모신다.

 

이제 제사는 끝나고 집사는 향로를 쏟는다.

이로써 모든 제사는 끝나고, 제관들과 참제자들은 음복을 기다린다.

 

아직도 이렇게 옛날상에 음복(제사를 지낸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을 차리는 하회 충효당 종가.

 

  

 

밥은 제사상에 올랐던 나물을 한꺼번에 비빈 후 사람마다 한 그릇씩 퍼서 음복상에 올린다.

참기름을 놓으면 더 맛있겠지요.

 

충효당이라는 미수 허목 선생의 현판 아래서 음복을 하는 제관들

 

종송과 지파 종손들은 독상으로 음복상을 올리고 나머지 분들은 겸상으로 한다.

- 학봉종가에서-

 

 

집으로 가져가는 음복인 봉게(참여하지 못한 후손들의 몫인 음식)를 가지고 가는 제관.

서애 선생님 불천위 제사에는 봉게를 100여 개 준비한다.

 

모든 행사는 끝나고,

교통편이 좋은 요즈음엔  그 밤에 거의 모든 제관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모든 제관들과 참제자들이 떠나간 종가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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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내용에 머물다 갑니다.^^*
늘 방문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장맛비가 지루하기만 하지요?
그러나 힘차고 즐겁게 지내시길 빕니다.
늘 건강하시고요,~~
네,
비는 하루만 와도 지루한데
벌써 여러 날이 잖아요.
빨리 비 그치고 마음 놓고 외출했으면 합니다.
늘 평안하시길요.
음복으로 끝나는줄 알았는데 봉게라고 나눠먹는 후한 인심이 배어있는
고급 정보까지 올려 주시네요

아주 오래전 겨울에 향교에서 올리는 제사에 갔다가
1시간이 넘는 제사에 얼어 죽는줄 알았다는.....ㅎㅎㅎ

초헌관을 모시고 갔었거든요
초봄인데 날이 안풀려서 겨울보다 더 추웠다는

초헌관을 지내셨던 분은 얼마나 고생을 하셨던지
그 다음엔 향교 행사엔 어떤 핑계를 대든지 빠져 나가더라는
웃지못할 일화가 생각나네요
어릴 적 아버지가 문중 향사나 묘사에 가셨다가 돌아오실 때면
우리 남매는 저 봉게를 먼저 받을려고 달음박질을 하였지요.

향사에 초헌관으로 가실 정도면
그분의 명망이 짐작이 됩니다.

향사는 대체로 음력 2월과 8월에 지내기 때문에
2월에 지내는 향사에 참석하셨다면 좀 쌀쌀할 때이지요.
귀한 자료 입니다
저도 한국에 살때 종갓집 며느리로써
많은 제사를 지내 봤지만..
정말 어려워요.
복잡 하기도 하구요

옛날 생각이 납니다

오늘도 멋진 자료..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러셨군요.
수고 많으셨어요.
그 때, 많은 음식 만들었던 게
지금 음식 솜씨의 밑거름이 된 건 아닌가요?

캐롤님도 행복한 나날이시길요
종가집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래도록 이런 전통이 종가집만이라도 남아서 명맥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흑백으로 보니 더욱 귀해 보입니다.
옛날에는
경상북도 도지사 할래?
퇴계종가 종손 할래?
라고 물으면 퇴계종손을 한다고 말했다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종손의 위상이 대단했습니다만
지금은 그 위상이 많이 낮아졌지요.
이런 시대에
멀리서 바라보는 우리야 그랬으면 좋겠지만은
그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딱히 이랬으면 하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ㅎㅎ
이런 제사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는것이 가장 현명할까요..ㅎㅎ
현대를 살아가는 모습들과는 어울릴수 없는 모습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모습이겠지요...버릴수 없는...

많이 변질되어가는 요즘의 제사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모습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면 되겠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제사를 지내는 방법이 다양하듯이
종가도 그분들만의 방법으로 제사를 지낸다고요.
언젠가 저렇게 지내는 것이 버겁다고 생각되는 시점이 오면
그분들도 다른 방법을 모색하겠지요
점 점 사라져가는
우리네 제례모습

정성스레 조상을 모시는 모습을 보니
우리 고유의 정신문화가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렌..세상님
반갑습니다~~^*^
저도 그런 모습이 자랑스러워 찾아다니며 찍었습니다.
언제까지 저런 모습을 보게 될지는 모르지만요.
저도 무척 반갑습니다.
초헌, 아헌, 종헌. 그리고 술잔은 딱 세번만 올리는 것인가요.
젯상에 올렸던 나물로 밥을 비벼서 음복했다는 것도 참 새롭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예.
큰제사에는 그렇게 올리지요.
우리네 기제사에는 오는 제관에 따라 잔을 여러잔을 올리지만요.
저런 제사는 제례법에 따라 지내니까요.
거의가 그렇게 올리더라고요.
사진을 가만히 보면,,,남자분들도 많이 도왔던것 같아요~~음식준비도 남자분이 하시고,,,만드는 일만 여자들이 하더라구요~~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8월이 지나면 저도 제사 3번을 준비해야하거든요~~--;;
한상씩 따로 차리고,,,또 밥을 비벼서 음복했다는 사실도 처음 보고,,,아무튼 좋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은별님이 제사를 지낸다니 좀 의외입니다.
사진이라는 게 워낙 서구적인 예술이라 그런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예.
저렇게 차리는 상은 소임을 맡은 어른들만 받는 상이고
다른 제관들은 요즈음은 교잣상에 함께 먹지요.
제사ㅐ는 순서까지
참으로 대단한 기록입니다
이런 기록은 길이 남을 수 있게 잘 보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제사 예절을 배워 봅니다
좋은 사진 감사드리며
비 오는 오후 편안한 시간 되세요
격려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산마을님도 편안한 밤이시길요.
언젠가 티비에서 상세히 소개 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보면서 준비에 여념이 없는 종갓집 며늘님의
수고와 격식들은 보면서 많이 힘들겠구나 했었읍니다.
렌즈님의 블로그에서 이리 자세히 또 보게 되네요.
우리의 전통제례식에 귀한 장면들입니다.
이제 장마가 끝나길를 기다리는 마음이지요.ㅎㅎ..^^
이런 모습을 보신 적이 있군요.
멀리서 바라보면은 힘든 것만 보이지만
조금 더 가까이서 보면
종가에서 그분들의 위상도 대단하지요.
귀한 정보 감사 드리며 옮겨 갑니다
예.
한 번 들리겠습니다.
마지막사진 추억의 좋은 사진입니다
친정엔 일년에 12번의 제사가 있었어요. 결혼전 늘 부침개 부치고 그랬더랬죠.
아 제사 이거 보통 신경쓰이는게 아닌데.. 요즘은 완전 약식이지만..
그런 훈련이 지금의 그림님을 만들었는지도. .....
제사, 참 신경 쓰이지요.
간소하게 한다고해도
조율이시 .. .. 이런 격식을 갖춰야되니까요.
참 특별한 일인데
다들 관심이 없어 아쉽네요.
조상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모시던
그 시대의 좋은 풍습들은
이젠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남은 걸까요?
그러게요.
그나마 안동이 유교의 본고장이다보니
아직도 이런 모습들을 자주 만났 수 있지요.
더른 지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지요.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제 마음은
어떤 방법으로라도 그 전통 이어졌으면 합니다.
안동에서는 지금도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모습 ,,
소중하고 귀한 내용과 사진 잘 보았어요,
그런 모습 많이 남아있지요.
그나마 더디게 변화하는 곳이니까요.
여러 분야 정보에 다양하신 렌즈님따라 전통제사 지내는 과정도 알게됩니다.
시집가기전 친정은 기독교식 제사방법이였고, 시댁에서 제사지냄에 참여하였어도 완전한 전통제사법이 아니였어요.
음식장만과 참여함은 부모님께 순종하는 의미에서 참여했었기에 시어머님 돌아가신 후엔 자식방법대로 지내니까요.
다양한 관심사에 늘 감탄합니다.
한 때 저런 모습을 찾아 다닐 때 찍어둔 걸 지금 다시 올렸습니다.
저 때는 모든 게 자신만만했었는데 . ...
전 해린님의 감성에 늘 감탄하는 걸요.
고맙습니다.
정말 귀한 모습을 봅니다.
오랜만에 놀러오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어릴때 할베가 가져온 봉개, 자다가 얻어먹던생각이 나네요
할배의 사랑이 그립겠군요.
그 꿀맛같던 음식도요.
좋은 자료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모사도 보았지만 불천위는 아직 보지 못해서
궁금 하엿는데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그러셨군요.
제례의 예법은 비슷한데
산에서 지내는 것과 집에서 지내는 것의 차이지요.
불천위는 사당에서 신주를 모시고 나와 지내는 것이 다르고요.
문중에도 매년 삼월 보름날 올리는 향사가 있어 집례를 맡아보고 싶은데
문중인은 제례의 직분을 맡지 않는 관례로 말미암아
그저 말미에서 참석하는 것 만으로.....

저런 모습 언제까지 이어질지 우려되기도합니다.
언직님이 향사에 집례를요?
저는 막연하게 언직님이 여자일거란 생각을
왜 했는지요?

제 생각엔 어떤 방법으로든 저런 모습 계속 유지될 거라 믿습니다.
일부에서만이라도요.
안동의 명문종가들의 현재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