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2. 10. 22:24



 이맘때쯤 시장을 가거나 마트를 가면 천도니 백도니 황도니 하는
각기 다른 이름들로 전시된 빛깔도 곱고 먹음직스러운
복숭아를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내 어릴적 먹어보았던

달콤 했지만 뒷끝이 씁쓰름했던 그 복숭아가 생각이 나곤한다.

산골에서 태어나 7년을 산과 하늘 좁은 들만 보며 살다,

학교에 간답시고 단발머리 조금 정리하고 백프로잠바 사입고

차가 다니는 도로변의 학교로 갔으니,

몇 달 동안은 옆도 돌아볼 정신이 없어선지

학교 옆에 구멍가게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7월 쯤 되어서야 그 가게를 기웃거리게 되었지.

그날도 오늘처럼 이렇게 무더운 날씨여서

딱히 뭘 사겠다는 생각도 없이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자니

나무상자 안의 발그레한 복숭아가 눈에 들어오는 거라.
우리 동네에서 늘 보아왔던 작고 살도 별로 없는 '까칠복상'이라고
불렀던 그것 보다 굵고 먹음직스러운 그걸 발견한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지,

 
마침 그날 네 호주머니엔

학교에 책값인가 뭔가를 내고 거슬러 받은

딱 그 복숭아 가격만큼의 돈이 있어서

 몇 번을 주머니 속에서 조몰락거리다가 결국은 사먹고 말았지.

그날 저녁
저녁을 먹고 난 후 아버지께서 내게 남은 돈을 어떻게 했냐고

물으셨을 때 나는 천연덕스럽게 잃어버렸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혜안이셨던 그분이 내 거짓말을 그냥 믿으셨을리 없었다.
난 그날 우리 형제들이 자라면서 거의 맞아보지 않았던
회초리를 많이도 맞았던 기억이 난다.

-- -- -- 살아오면서 정직해야하는데 내 마음이 흔들릴 때 그 때
그 복숭아를 떠올리곤 한다. -- -- --


 

2002. 7. 29

까칠복상도 좀 굵어지면 풀밭에 문질러
까칠한 털 벗겨내고 힘껏깨물다 이다칠까봐 조심스레 먹었던 기억이...
맞아요.
그렇게 털 벗겨내고 먹었지요.
언제 손이나 씻고 먹었나요.
그 까칠복상을 밀가로 묻혀 쪄서 먹었던 생각도 나네요.
거짓말...
난 많이 하면서 자랐습니다.
내 거짓말은 알아보기가 쉬웠죠.

너 오늘도 가게앞에서 기웃거렸지
옆집 효복이네 엄마가 그러시더라

그러면...반사적으로
ㅇ ㅏ~ㄴ ㅕ~요~~~!
하면서 낯빛이 파래지면서
그야말로 발광을 하다시피 했었지요.

뭐 특별히 나쁜 아이라거나
뭘 많이 잘못하고 살았던 아이는 아니었는데...

대인기피증이 있는 편이라
동무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
집에 돌아오면 방바닥에 엎드려서
누나들이 다 쓰고 뒷장이 조금 남은
노트를 누에치는 방에서 찾아내어
그림을 그리곤 했지요.

초등학고 2학년 1학기까지
동네 북이다시피 했네요.

님처럼 산골 외딴집에 형제들하고만
놀면서 크다보니...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여자들에게도 맞았지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5학년때...박 xx 선생님으로부터
굉장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성웅 이순신 장군에 대한 얘기를 수업시간에 듣고 난 후부터
무모하리만치 정직하게 되었는데...
그것 역시 복숭아인지 살구인지에 대한 일화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유년기때는 서리'라는 것이 하나의 미풍 양속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유년기때는 더 심했었나봐요.

하지만,
나무 한 그루로 목구멍을 연명하는 사람들에겐
그것이 한낱 미풍 양속일리가 없었겟지요.

친구들을 따라 살구인지 복숭아인지 서리를 하려고 따라갔던
소년 이순신...

결국 동네 아이들과 같이 서리를 하게 되었는데...
나무에서 너무 많이 과실이 없어진것을 알게된 주인이
의심이 가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다구치는데 모든 아이들이 부인만 할뿐
누구하나 실토하는 아이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때 소년 이순신이 '제가 그랬습니다. 죄를 달게 받겟습니다

매를 맞을 줄 알았던 소년 이순신은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으면서 오히려 복숭아를 더 먹어도 좋다면서
자루채 얻어왔다 하더군요.

이때 크게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제가 그랬습니다'가 생활화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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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짧막하지만,진솔한 유년기의 추억담이 이토록이나
길고도 길게 나의 유년기 추억을 끄집어내게 하네요.

제가 이상해 보일까봐 많이 줄였습니다.
원래 기본타가 빠르기때문에 텍스트양은 부담이 되지 않지만,
어쨋든 내 블로그에는 비공개로도 이만큼의 글이 나오질 않네요.

이상하게...
무한한 얘깃거리의 골격이 되어주는군요.

일상에서 느꼈던 발단으로 시작해서
언뜻 떠 오르는 유년기...
그리고 하나의 트라우마처럼 자리잡은 복숭아....


글의 형태를 완벽하게 갖춘 님의 문장력...
대단하네요.

다행히 이곳까지 따라와서 댓글을 확인할 사람이 많지 않을것이니
너무 무안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생각보다 성미가 급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라서요.

정말 좋은글 수 년만에...발견한 이 기쁨...
님은 잘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잇겠군요.

감사합니다.
좋은 양식의 글을 볼 수 잇게 해주서서.



어릴 적 거짓말은 눈 감고 아옹하는 식이라
어른들은 금방 알아보았지요.
그래서 야단도 많이 맞았지요.
특히 오빠나 남동생들은 그런 날이 무척이나 많았고요.

서리
요즈음같으면 큰일 날 일이지만
그 때는 그냥 눈 감아주는 어른들이 있어서
우리들의 유년은 어려운 중에도 풍요로웠지요.

블로그를 시작하고 제 옛날 이야기를 끄적거리던 시절
그 때의 이야기를 이렇게 찾아 읽어주시는 님이 너무 고맙지요.

얼마 전 님의 댓글을 따라 '상여 이야기'를 보던 중에
댓글을 단 용미댁이님이 벌써 세상을 떠났다는 게 가슴 아팠답니다.
용준이란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아들을 두고 일찍 하늘나라로 갔거든요.

제 살아 온 이야기들을
나이 80쯤에는 한 권 책으로 묶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이 블로그를 개설하라고 조언을 해 준 제 초등학교 친구도
정년에 맞춰 책을 낸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거든요.
정년을 몇 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거든요.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