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2. 10. 22:25


 

 내 이름은 한번 말해서 얼른 알아듣는 사람이 별로없고,

요즈음도 두 세번을 묻고 나서야

여자 이름이 별로구나 하는 표정으로
김 OO씨요~~? 라고 되묻는다.

 아름답지는 못하더라도 남성스럽지만은 말았으면 좋을 법한 내 이름은

아버지의 고매한(?) 학식 덕분인데,
아버지는 여자의 이름도 항렬을 따라 지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금꽃가루가 넓게 퍼져있다는 좋은 뜻으로,

훌륭한 일을 하여 세상에 널리 그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라며

지어주신 것이다.(언제 그 이름에 걸맞는 그런 인물이 될런지?)
그런 이름표를 달고 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맞은 학예회.
우리 학년에서는 네 명의(남2.여2) 대표들이

무용을 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막이 오르고 6학년 언니들의
" 거치른 등성이 골짜기로 봄볕은 - - - "
라는 노래에 맞추어 등장하는 그애들은 영락없는 공주와 왕자였다.
그 때 우리들 대부분은 부모의 직업이 농부여서 때가 잘 타지않는
짙은 색깔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애들, 여자애들은 빨강치마에 흰블라우스

남자애들은 하의의 색깔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위에는 흰색 셔츠에 붉은 나비넥타이를 매었으니
구경하는 촌뜨기인 난 정신이 없을 수 밖에.


하긴 그 이전에 그애들이 우리학년의 대표로 뽑혔을 때

그들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이미 그애들은 공주와 왕자였다.
여자애 1 : 울던 아이도 순사 온다고 하면 울음을 그치던 그시절
그애의 아버지는 순사대장 지서장.
여자애 2 : 제복의 군인들은 우리들과는 뭔가다른 힘의 상징이었
는데, 그애의 아버지는 예비군 중대장.

                                              남자애 3 : 우리언니가 어릴적에
                                                             존경스러운 그분들은 화장실도 가지않는 줄
                                                             알았다는 선생님이 아버지.

                                               남자애 4   :  아버지 직업은 모르지만 세명의 아버지 직업만
                                                                보아도 그애의 아버지도 어떤 분인지 짐작이 간다.

그렇게 내 마음에 왕자로 남아있던 그애중 한명이 2학년이
되어서 내짝이 되었으니 그 황홀함이란,
게다가 그애는 내 이름을 그 예쁜 분홍이라 불러주었으니
난 마치 공주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언제나 의젓하고 통솔력있고 공부 잘했던 그애는 나에게 언제나 친절했고,

 언니 오빠들이 많았던 난 그애가 아직 배우지 못했던
고학년 노래를 그 알량한 솜씨로 가르쳐 주는 것을 자주했는데.
그애가 전학가기전 내가 가르쳐준 노래는
" 고^요한 아침햇빛 - - -"
으로 시작하는 도민의 노래였다.


그렇게 다정하게 지냈던 우리는 그 시대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랬듯이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고,
그날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찔끔거렸다.


그렇게 잘가라는 인사 한마디 못했던 나는 내 아들의
초등학교 2학년 때 짝이 전학 간다고해서 손수건을 준비해주었다.

*  그 때를 생각하며 내가 만들어본 사진이 작별이란 이름의 사진입니다  *


2002 . 8 . 6


아름답고 예쁜 어린시절의 추억담!
수십년이 지났을진데 생생하게도 기억하는 그 기억력....
150을 훌쩍 넘길듯~~
치매가 걸린 어른들이 어릴적 일을 가장 늦게까지기억하듯이
지능에 관계되지 않을걸요.
그 때가 다시 올 수 없으니 애써 기억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