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일 기

민욱아빠 2020. 5. 10. 21:45

  종종 마음을 돌아보면, 나는 본래 이기적인 인간은 아닌가 하는 깊은 의심을 한다.  배려따위는 없는, 철저히 내 자신 위주로 시간과 공간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아닌가 생각한다.  다행하게도, 벌어지는 현상에 밀려오는 짜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표정과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 주변사람들의 감정을 건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스스로, 나는 인간 본능의 하나인 성악에 좀 더 가까운 존재는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코로나19로 사람들은 거의 존버에 가까운 답답한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 와중에 병원은 수익이 줄 지언정 조금 여유로워야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여유를 느끼지 못한다.  속은 좀 더 시끄럽고 몸은 좀 더 버겁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일상의 연속이고, 익숙한 반복은 나에게 약간이라도 여유를 선사할 것 같은데, 나는 요즘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한다.  긴장과 침잠 속에서 흐르는 일상이 예고없이 갑작스레 변해버렸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갑작스럽게 일상이 변하거나 계획한 흐름이 예고없이 틀어지는 일인데, 이번 주가 그런 일에 휘말린 시간이었다.  덕분에 나는, 흐트러진 감정과 짜증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써야만 했다.  모를 일이다.  예민한 주변인들은 이미 느꼈는지 모른다.  나를 다스리는 것은 그간 노력하고 훈련해 온 감정과 표정의 조절과,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직업 외적 활동들이다.  


  애써 조절 중인 감정에 덧붙여 생각해보자면, 나는 책임자로서 적합한 사람인가를 살피게 된다.  나는 지금 지분을 넣은 병원 책임자 중 한 사람이다.  나 혼자만의 짜증과 이기심을 표출하기엔 짊어진 짐들이 이미 많다.  그리고, 내 감정은 너무 무책임한 존재이다.  나는 애써 억누르고, 꾸준하고 진득하게 ‘존버’해야 한다.  그것이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가장 합당한 방법이다.  동시에, 나는 어째서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가 생각해본다.  나는 일상이 너무 빽빽하게 채워진 삶을 살고 있어 그런지도 모른다.  예기치 못한 변화에 생각했던 일상이 틀어지면, 그것을 참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  느슨해질 필요가 있는 것일까?  그래야 할 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아직은 내 삶을 가득 채우고, 하고 싶은 것, 쌓고 싶은 것들을 좀 더 경험하고 깊이를 만들고 싶다.  버거움이 더 이상 나에게 기력을 허용하지 않을 때 하나씩 버리더라도, 나는 일상을 채워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  그것은 나의 직업적 활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직업과 직업 외 일상은 동등한 무게와 가치를 가진다.  동등한 가치의 균일하고 조밀한 분포가 얼어버린 호수의 얼음이 깨지듯 균열이 생길 때,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생긴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층계짓지 못하는,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의 아둔함일 것이다.  


  어린이날을 맞이해서, 어린이들은 아니지만 조카들에게 용돈을 조금씩 보냈다.  다들 감사하다며 받았는데, 어버이날, 조카 하나가 감사하다며 음료쿠폰을 보내왔다.  조카는 나에게 ‘아빠보다도 더 잘 챙겨주시는 마음에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빠보다도’라는 말에 나의 어린 시절이 아프게 떠올랐고, 조카녀석의 쉽지 않을 지금의 마음이 느껴져 더욱 아파왔다.  심리적 안정과 위안을 가지지 못한 채 자라야만 하는 사춘기 아이들의 불안은 일생동안 일정크기의 상처로 마음에 자리할 것이다.  그 문자와 선물에 한동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티없이 마냥 행복한 삶의 시간도 문제지만, 적절하지 못한 생채기를 내며 보내야 하는 성장의 시간도 문제이다.  위안 정도나 되어 줄 수 있는 내 존재가 조카녀석들에게 다행이길 바란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기도만이 전부인 나의 답답함이, 작은 희망이라도 될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만들기를 바랄 뿐이다.  녀석을 위해 차분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잘 버텨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