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JEJU/기고문

민욱아빠 2015. 12. 18. 10:54

 

‘이 글은 낚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첫 젓가락으로 들어올리는 농어회 한 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두움이 정점을 찍는 깊은 밤 또는 새벽, 공기는 차갑고 바람은 꾸준하게 불어온다.  잠깐의 쪽잠으로 덥혀진 몸은 찬공기의 흐름에 온기를 빼앗기며 살짝 떨린다.  갯바위에 다가서면 이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어닥칠 것이다.  창고에서 자기 전 미리 채비해 놓은 농어대를 꺼낸다.  허리까지 오는 바지장화를 입고 갯바위 신발을 신은 뒤, 든든한 겨울점퍼를 입고 모자를 쓴다.  모자엔 헤드라이트를 끼우고 잘 작동하는지 확인한다.  어두운 갯바위에서 랜턴이나 헤드라이트는 목숨과도 같은 도구이다.  혹시나 잡히면 담아올 통에 손질할 때 사용할 데바칼 장갑등을 담고 차에 싣는다.  낚시가방엔 농어용 루어인 21g 미노우와 여분의 목줄, 클립 등의 필수 도구들을 미리 확인하고 농어대와 함께 차에 싣는다.  출발이다.

  차가 없어 한적한 어두운 밤의 도로를 달리며 심야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디제이의 목소리와 선곡들도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러나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는 차 안에서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 둔 포인트에 도착에 차문을 여는 순간 거센 바람이 차안으로 들이닥친다.  바닷가에서는 날 것 그대로 거침없는 바람을 피할 길이 없다.  그 바람에 파도도 거세어진다.  주변은 칠흙같이 어둡지만, 어둠을 그대로 몸에 밴 것 같은 검은 현무암 갯바위도 음산하지만, 파도는 거칠게 몸을 부딫힐수록 하얀 포말을 만들며 어둠속에서도 존재감을 발한다.  나는 모자에 달린 라이트 하나에 의존해서 거칠게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어둠과 포말의 존재들이 뒤섞인 저 가장자리에 서야만 한다.  그래야 오늘 내가 목표한 농어의 모습을 볼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잠시 어둠속의 포인트를 관망하며, 기대반 두려움 반으로 포인트에 접근하기로 한다.  트렁크에서 채비를 꺼낸다.  농어전용대에 농어전용 릴을 장착하고 1.5호 합사에 7호 목줄을 연결해놓은 채비는 21g 미노우까지 온전히 장착하니 거센 바람에 팽팽하게 당겨진 낚시줄에서 삐이이~~ 하며 소리를 낸다.  라이트를 켜고 몇 번 다녀봐서 익숙한 진입로를 찾아 포인트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갯바위 신발에 바지장화를 입었으니 바닥의 물 따위는 무시하고 걷는다.  바닥을 살피며 포인트의 채비를 던지기 좋은 자리에 오르자마자 라이트를 끈다.  농어는 불빛을 보는 순간 도망가기 때문이다.  바람은 여전히 정면으로 내 얼굴을 때리고 있고, 파도는 약간의 공포감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높게 일고 있었다.  발 바로 앞에서 부딫히며 어둠속에서도 보이는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부딫힌 파도의 일부는 살짝 내 몸을 때리기도 한다.  이 바람에 미노우가 제대로 날아가줄 것인가에 대한 걱정, 내가 원하는 위치로 미노우가 떨어져 줄 것인가의 걱정, 그리고 이 포인트에 농어가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앞에 보이는 불빛이라곤 저 멀리, 수평선 위의 갈칫배 불빛 몇개가 전부고 옆으로는 해안가 마을이나 도심불빛이 먼거리에서 보일 뿐이다.  일단 포인트에 위치했으니 여건이 어찌되었던 간에 던져보고나 가자는 마음으로 대를 휘두른다. 

  길다란 대를 바람을 마주하고 던지는 일이란 조금 버거운 일이다.  대가 버겁다기보다는 미노우가 날아가며 풀어내는 줄을 관리하는 일이 버겁다 하는 게 좀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맞바람 속으로 던진 미노우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떨어지면 수습할 일 때문에 번거롭기도 하다.  줄이 갯바위에 걸치거나 갈고리 형태의 바늘을 단 미노우가 얕은 바닥이나 갯바위에 걸리면 꺼내는 데 골치가 아프기 때문에 이에 대한 걱정이기도 하다.  바람을 마주하며 던지는 일은 멀리 던지기도 힘들지만, 원하는 포인트에 던져넣기도 무척 힘들어진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던지다보면, 맞바람 속에서의 루어낚시가 어느정도 익숙해진다.  익숙해짐은 처음의 버거움이나 부담을 덜어주기에, 낚시는 이때부터 수월해지고 가벼워진다.  여러번 대를 던져 열심히 릴을 감아 미노우에 움직임을 부여해보지만, 농어의 반응은 없다.  농어가 정말 없던지, 내가 미노우에 부여하는 움직임이 농어의 구미에 그닥 당기지 않던지 때문일 것이다.  일단 충분히 포인트 탐색을 했으니 다음 포인트로 이동하기로 한다. 

  농어낚시의 관건은 물이 들어오거나 나가는 시기의 어느 짧은 시기안에 되도록 많은 포인트를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로 물이 들어오는 만조시기에 맞추어 움직이게 되는데 물이 얼마나 들어오느냐에 따라 포인트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 시기에 농어가 들어올 만한 포인트 몇몇 군데를 돌며 열심히 공략해보는 것이다.  한자리에서 끈기있게 하는 낚시가 아니니 루어낚시는 어쩌면 운동이나 다름없는 활동이라 할 수도 있다.  라이트를 켜고 바닥을 살피며 진입로를 다시 밟아가며 차로 와서는 채비를 정리해 다시 트렁크에 넣는다.  운전석 문을 열고 자리에 앉는 순간, 바닷바람이 스며들어 부푼 바지장화에서 다시 바람이 빠져나간다.  체온에 적당히 덥혀진 공기는 시원하고 쾌적하다.  그 공기를 느끼며 차문을 닫고 긴장했던 몸을 큰 숨과 함께 풀어낸다.  목과 가슴으로는 거센 바닷바람에 식혀진 폐와 기관이 청량감을 느끼게 한다.  어두운 해안도로로 서둘러 차를 몰아 다음 포인트로 이동한다.  포인트는 저마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잘 정비된 방파제나 돌무더기 또는 바위 위가 되기도 하지만, 칠흑같이 어둡고 다가가기 무척 어려운 돌무더기나 발을 파도에 조금 담그고 해야 하는 곳도 있다.  주변에 불빛도 없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의 낚시는 무척 긴장된다.  그런 곳에서는 바로 옆 갯바위 위에 귀신이 앉아있다고 해도, 내 발 밑의 포말에서 갑자기 커다란 바다괴물이 나타나 나를 덥썩 물어간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분위기이다.  그런 생각은 순간 나를 움츠리고 겁을 먹게 하지만, 몇 년간의 낚시경험에서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다만, 어느 겨울에 너럭바위를 딛고 포인트로 진입하는데 옆의 모래둔덕에서 새벽마실을 나온 토끼 두마리를 만난 적은 있었다.  녀석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놀랐다는 듯 펄쩍 뛰더니만 다시 가만히 눈치를 보며 모래둔덕을 떠나기 싫어하는 눈치였었다.  그 외에도 새벽마실을 나온 바닷가 길고양이나 동네 강아지들을 만날 뿐이었다. 

  다시 채비를 정비하고 포인트에 접근하여 대를 던진다.  이제는 맞바람도 어두움도 이미 익숙해진 상태이다.  포인트 역시 몇 번 와 봤던 자리라 어둠속에서도 위치잡기가 수월하다.  여전히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미노우를 던져넣기는 어렵지만 엇비슷하게 자리해 넣을 수는 있다.  물도 충분히 들어와 수위도 만족스럽고 파도도 이정도면 괜찮다 싶다.  그렇다면 이제 농어를 만날 일만 남은 듯 한데, 그렇다고 농어가 쉽게 나와줄 것도 같지 않다.  분위기가 좋고 기대감이 고조된다면 한 자리에서 정성을 더해보는 것도 방법의 하나이다.  한마리 물어줄 것도 같은데 하며 열심히 미노우를 던져넣고 릴링으로 움직임을 만드는 순간 갑자기 ‘터억’하며 무언가 미노우를 챈다.  그러면서 릴이 ‘찌이이’ 울기 시작한다.  몸은 순간적으로 상체를 들고 허리를 뒤로 굽히며 대를 바짝 올린다.  바닥에 걸린건가 싶어 재빠르게 대의 느낌을 읽는 순간 대가 휘청휘청 움직인다.  릴은 계속 드랙을 거슬러 찌이이 소리를 더한다.  농어구나!!  드디어 농어가 내가 던진 미노우를 물어챈 것이다.  몸은 순간 긴장으로 가득해진다.  허리와 어깨와 손은 힘이 들어간다.  머리속은 순식간에 흥분으로 가득찬다.  그러나 흥분해서는 안된다.  긴장과 함께 신중해야한다.  대와 릴 조절을 잘못하면 농어는 바늘을 떼고 달아날 것이다.  농어는 내가 당기는 힘에 반대로 바다로 도망가려 하고, 나는 그런 농어의 반응을 이용하여 버티면서 농어의 힘을 뺀다.  드랙은 저항에 쉽게 반응하도록 조금은 풀어두어 농어가 도망가려하면 적당한 힘으로 줄이 풀어지도록 해두었고 사이사이 농어의 움직임이 약해지면 바로바로 릴을 감아 내 쪽으로 농어를 유도한다.  농어는 끝까지 저항한다.  물 위로 뛰어오르거나 물 속에서 차고 나가며 내 손에 자신의 몸이 닿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거칠게 힘을 쓸수록 빨리 지치기 마련이다.  수십미터를 차고 나가다가도 끌려오기를 반복하던 농어는 결국 지친다.  나와 몇 미터의 거리를 두고는 힘이 빠져 내가 릴을 감는 그대로 끌려나온다.  끌어올리기 좋은 자리를 보아 그곳으로 농어를 끌어 몸통을 물 가장자리까지 올리고 라이트를 켜고 확인한다.  지친 농어의 입에는 미노우에 달린 바늘이 제대로 걸려있고, 몸부림치는 사이 미노우의 다른 바늘들이 아가미나 옆지느러미 주변을 걸어버렸다.  농어가 힘을 다시 차리기 전에 갈고리로 주둥이를 걸어 얼른 바위 위로 올린다.  그렇게 농어를 뭍 위로 걸어낸다.  뭍 위에 올려진 농어는 지친 몸이지만 마지막 몸무림을 친다.  그 몸부림에서는 힘이 느껴진다.  괜히 바다의 폭군이 아니다.  주둥이에 걸린 바늘을 빼고 크기를 가늠할 만한 장비를 농어 옆에 둔 뒤에 인증사진을 찍어둔다.  그리고 꿰미에 꿰어 바닷물이 고인 웅덩이에 넣어둔다.  그렇게 농어 루어낚시의 온전한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다시 포인트를 향해 대를 던진다.  한 두마리 더 물어준다면 고맙다는 마음으로, 농어를 보았으니 더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낚시는 계속된다.  물때시간을 고려해 짧은 시간 안에 농어를 만나야한다는 조급함은 조금은 여유로 바뀐다.  물때가 바뀌고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농어낚시는 슬슬 마무리된다.  제주에 와서 시작한 수년간의 농어낚시는 주로 한 번 출조에 한 마리로 마무리되었다.  물론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출조가 더 많았다.  그리고, 내가 잡은 농어 중 가장 큰 것은 75cm였다.  참고로 제주에서 농어는 1월 초중순까지 날이 추워질수록 살이 들어 맛있고 크기가 클 수록 맛있다 한다.  한겨울 매서운 바닷바람 속에 잡은 1미터가 넘는 농어는 고생만큼 충분히 맛있을 것이다. 

  몇년 전 12월의 어느날은 그랬다.  충분히 큰 농어 한 마리를 어둠이 여전했던 새벽에 한 마리 걸어내고, 농어가 좀 더 있을거란 기대와 아쉬움에 낚시를 좀 더 하다보니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기운이 완연해진 때에 대를 접고, 잡아둔 농어의 피를 빼고 비늘을 벗기고 아가미와 내장을 갈라 미리 손질하여 집으로 향했다.  때마침 일요일인지라, 친하게 지내는 세 가족들에게 이른아침이긴 했지만 미리 단체문자를 보냈다.  농어를 잡았으니 같이 회와 매운탕을 즐기자고..  집에 들러 장비들을 정리한 뒤에 바로 모이기로 한 집에 가서 농어를 손질했다.  살이 두텁게 붙은 몸통을 뼈대 양 옆으로 데바칼을 넣어 회의 손실이 적도록 포를 잘 떠내고 내장을 감싸는 배 안살과 억센 가시를 발라낸 뒤 회칼로 껍질을 벗겨낸다.  포를 떠낸 몸통살 가운데로 흐르는 잔가시살을 다시 길게 잘라 제거한 뒤 횟감으로 완연하게 남은 살을 회칼로 결을 읽으며 조금은 두텁게 먹기좋은 크기로 떠낸다.  넓은 접시에 그렇게 손질한 회를 수북히 쌓고, 머리와 뼈와 껍질 등등의 남은 것들은 다시마와 무 육수를 만들어 매운탕을 준비한다.  회에 곁들일 초고추장과 생와사비를 넣은 회전용 일본간장을 준비하고 상에 올린다.  준비하는 동안 도착한 지인가족들은 일요일 아침부터 벌어지는 파티와 자연산 농어회에 대한 기대로 조금은 들떠있다.  아침이지만, 하얀 한라산 한 잔 역시 곁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글은 낚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첫 젓가락으로 들어올리는 농어회 한 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상 위에 모든 것들이 제대로 차려진 뒤 좋아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겨울아침의 마당풍경을 바라보며 젓가락을 든다.  잠깐의 수면 이후로 새벽부터 거센 바닷바람과 파도에 시달리고, 흥분과 몸놀림으로 피곤해진 내 몸은 조금 무겁다.  아랫눈자위로는 무언가 살짝 걸쳐진 듯 하고 눈은 조금 뻑뻑하지만 기분만큼은 하늘을 가벼이 날고 있다.  수북한 농어회 접시를 바라보며 투명한 소주잔에 하얀 한라산 한 잔을 가득 부어두고, 이제 막 자리에 앉아 이제야 몸이 좀 쉬겠구나 싶은 안도감이 사라지기 전에 제안하는 건배는 입안과 뱃속의 깔깔함을 걷어낸다.  뒤이어 젓가락으로 회 첫 한점 집어 생와사비가 잘 풀어진 간장에 살짝 찍은 뒤 입 안에 넣으면, 무언가를 다 이룬 것 같은, 또는 어릴적 오락실에서 한 스테이지를 마쳤을 때 나오는 ‘mission complete!’ 의 힘찬 단어가 마음 속에서 외쳐지는 기분이 든다.  바다의 겨울을 준비 중이었던 농어의 살에 배인 약간의 기름기와, 식감을 살짝 느끼게 하는 살의 탄탄함, 그리고 특유의 흙냄새는 농어가 주는 몫이고 내가 잡은 농어를 직접 손질하여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다같이 맛을 즐기는 건 내가 만들어낸 몫이다.  여기에 한라산 소주 몇 잔을 양념으로 각각의 몫들이 더해지고 어우러지면, 지금 이 자리는 더이상 완벽해질 수가 없다.  나에게 회란 그런 의미이고 특히 시즌을 맞은 농어회는 그 때만의 특별함을 더한다.  잘 차려나온다는 어느 횟집의 화려한 곁반찬상과 잘 손질되어 나온 다양한 회 보다도, 내 손으로 갓 잡아올린 횟감을 직접 손질하여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먹는 일이, 나에게는 회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수면부족과 피로와 보람과 즐거움과 맛이 한라산 한 잔을 곁들인 첫 젓가락의 농어회 한 점에 응축되어 있다.  그 응축된 무엇은, 어느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할 수 있는 자만이 만들어내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초겨울 이른 아침 나의 농어회는 세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유일한 회,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