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JEJU/Essay

민욱아빠 2017. 6. 24. 12:11

  녹동항엔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차 선적과 승선권을 발권하고 시간이 많이 남아 소록도로 이어지는 다리로 차를 몰았다.  다리 위에서 북쪽을 바라보았다.  아래로는 내가 타게 될 거대하고 낡은 배가 보였고, 멀리 복잡다단한 산들의 능선이 이른아침 눈부시게 퍼지는 햇살을 뒤로 검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육지에 적을 두고 보는 마지막 반도의 풍경이었다.

  차 선적을 마치고 오른 3등칸 객실의 티비에서는 제주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도새기와 독새기의 차이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여행객이었으면 잠깐의 흥미를 가지고 방송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섬 안에 삶을 부리러 가는 길이었다.  삶을 위해 섬으로 향하는 입장에서, 도새기와 독새기의 차이는 조금 무겁게 나의 일상이자 현실이 될 것이기에 흥미롭지만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다.  왜 제주로 내려가는지, 하필 다른 곳도 아닌 제주인지..  어떤 이는 의사의 입장에서 제주를 내려가는 것이 혹시 남들과는 다른, 거창하거나 소박한 의미를 가지는 건지 물었다.  아무 이유가 없었다.  제주는 단지, 돌리면 쏘세요! 해서 던진 화살이 날아가 박힌 삼각과녁이었다.  물론 순전한 운으로 선택된 곳은 아니다.  서울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수련을 하던 시절, 수련이 마무리되면 나는 되도록 빨리 지방으로 내려가겠다 다짐했었다.  아내 역시 나의 생각에 동조했다.  전임의 수련 기간이 끝나가던 무렵, 문득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나와 아내는 일자리가 있는 지방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최종 선택한 곳은 동해 바닷가 도시와 제주였다.  나와 아내는 일하게 될 병원과 살게 될 도시 풍경을 먼저 둘러보았다.  아내는 살림을 하기엔 아무래도 제주가 나을 것 같다 했다.  아내의 결정에 나도 크게 불만은 없었기에, 우리는 제주로 내려가기로 결론을 내렸다.

  아내는 제주에 발을 디뎌 본 적이 없었다.  제주행을 결정한 후, 우리가 살게 될 아파트를 둘러보겠다고 홀로 비행기를 타고 내려 온 것이 아내의 첫 여정이었다.  나 역시 제주를 잘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과 대학시절 스킨스쿠버 동아리에서 왔던 문섬 다이빙, 그리고 친한 대학동기 둘과 7박 8일의 어설픈 무전여행을 했던 것이 전부였다.  연고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아는 것이라곤 15년도 더 된 과거 속 여행자의 파편이 된 기억들과 검은 현무암 돌하르방 뿐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시간은 오래오래 흘러 이제는 막연해진 그 섬이, 갑자기 우리의 삶을 부려놓을 땅이 되려 하고 있었다. 

  크고 낡은 배는 더디게 나아갔다.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는 객실에는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마냥 웃고 떠들거나,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잠을 청하기에도, 가만히 앉아있기에도 어딘가 불편했다.  출발부터 흐렸던 하늘에서는 바다 한복판에서 부슬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옆으로 보이는 파도는 이따금씩 객실 창으로 포말을 뿌려댔다.  소금결정 빽빽하게 눌러붙은 포말의 오래되고 하얀 자국들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섬의 한 풍경일 것이다.  누가 일부러 가라 해서 가는 것이 아닌 자발의 여정이건만, 마음은 끝까지 묵직했다. 

  정오를 한참 넘기고 배가 슬슬 고파질 무렵, 곧 제주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렀다.  객실에서 화물칸으로 내려가는 길의 외부복도는 파도와 부슬비에 미끌거렸다.  습기로 끈적한 난간을 잠시 붙잡고 바라본 제주는 흐린 회색이었다.  7년전 1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일요일 낮, 겨울의 한복판에서 이 정도 흐린 하늘이라면 눈이 내릴 법도 한데, 점점 다가오는 저 섬에는 단 한번도 눈이 내린 적 없었다는 듯 부슬비만 추적거리고 있었다.  부슬비를 맞은 제주의 풍경은 한라산이 아닌 아파트와 나직한 건물의 언덕이었다.  그리고 나는, 차를 몰아 배에서 나와 젖어있는 회색건물들의 언덕 안으로 천천히 비집으며 들어 갔다.

  근무할 병원은 제주항에서 아주 가까웠다.  항에서 나오자마자 병원에 들러 당분간 지낼 숙소를 둘러본 다음 다시 시내로 나왔다.  배가 고팠다.  어디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관공서 부근에 식당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도로 이정표에 쓰인 도청방향으로 무조건 차를 몰았다.  아마, 내가 여행객이었으면 중문이나 한림이라는 글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차를 몰았을 것이다.  부슬비 내리는 일요일 낮의 시내는 한산했다.  그리고 이정표대로 찾은 도청 부근의 식당들은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결국 노형오거리의 프렌차이즈 까페에 들어가 커피와 간단한 빵으로 제주에서의 첫 끼니를 해결했다.  까페 안의 사람들은 일요일 낮의 여유를 한껏 즐기고 있었고, 그것은 서울에 있을 때와 별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까페 창가에 홀로 앉아, 앞으로 내가 수많은 발걸음을 남길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배고픔은 조금 사라졌고, 마음도 약간은 가벼워지는 듯 했다.  나는 그렇게 제주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까페에서 나와 꾸준하게 내리는 부슬비 속으로 차를 몰았다.  한림이나 중문 이정표를 따라서가 아니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시내 큰 도로들을 막연하게 돌아다녔다.   

민욱아빠의 제주행에 한다리 걸친 나도 7년 정도 지나니 제주도가 조금씩 보이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