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나의 책

민욱아빠 2017. 6. 26. 15:07


  술을 즐길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가끔 과음으로 다음날을 버겁게 넘기기도 하지만, 온 몸이 땀에 젖도록 운동 후에 냉장고에서 꺼내드는 500밀리 맥주 한 캔에 삶을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  모니터를 오랜 시간 붙들고 있거나 가만히 앉아 수행하는 작업에 싱글몰트 한두 잔 옆에 두고 즐길 수 있어 마음의 평안을 누린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몸이 술을 버거워함을 느끼니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내 옆에 가벼이 술 하나 둘 수 있어 아직은 감사한 시간이다.  


  술 한잔에 삶의 고민을 잘 담지 않는 것은 조금 아쉽다.  사실 술에 삶의 고민을 담지 않는 것이 좀 더 나은 술버릇일 수도 있다.  고민을 핑계로 술 안에 나를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내 삶이 치열하지 못한가 하는 돌아봄을 만든다.  술 한잔에 조금씩 고개를 들거나 자연스레 터져나올 마음 속 답답함이 알코올의 기운에도 통제되는 삶이란, 너무 나이브한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또는, 내 삶은 그런 대책없는 여유 안에서 부유해도 되는 그런 것인가 싶어진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면 어쩔 수 없이 몸서리치게 싫어진다.  나는 술 한잔에 방종과 자만을 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술을 즐겼지만, 술을 구체적으로 알려 하지는 않았다.  술 한잔, 한 병에 내 삶의 에피소드는 바닷가 모래알만큼 묻어 있지만, 내 에피소드를 머금고 내 안에서 분해되어 사라진 술의 정체는 잘 모른다.  한 때, 와인을 알아보겠다고 와인관련 서적을 잠깐 펼쳐 본 때는 있었다.  내용이 점점 오글거려서 중간에 덮어버리고 만 신의 물방울을 애독한 적도 있었다.  그것 말고는 술은 거의 모른다.  그저 나에게, 보해소주는 첫사랑에 차인 슬픔이고, 화이트소주는 텅 빈 주머니에 비굴할 수 밖에 없었던 학생시절의 분노이고, 먹다 남긴 둥근 꼬냑 한 병은 젊은 시절 깊은 산 오두막에서 지금의 아내와 함께 보았던 어둔 능선사이의 빼곡한 별빛이다.

  작가는 분명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사랑을 단지 ‘사랑한다’는 네 글자로 표현하기엔 너무 부족하다.  삶의 일정 부분을, 잘 발효시켜 뽑아낸 알코올에 담가 숙성시키는 그런 사람같다.  그리고, 술 한잔에 삶의 치열하고 깊었던 순간을 적절하고 진지하게 담아내었던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는 도수가 적당하게 높은 술 한두 잔 앞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다만, 도란도란한 이야기가 너무 길다.  톤이 단조로우니 긴 이야기가 살짝 지루하다.  이야기의 시선이 좁아서 더욱 그렇다.  도란도란하게 좀 더 빠져들 수 없어 그게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