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나의 책

민욱아빠 2017. 7. 3. 12:08


  가끔은 노동의 가치가 인류 역사 안에서 제대로 매겨졌던 시대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중세 계급사회에서는 노동의 산물이 상위계급으로 댓가없이 흘러갔다.  산업시대 이후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노동의 가치척도는 단순해졌지만 가치매김은 노동자의 삶을 참혹한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이후 노동의 가치는 생산과 분배의 문제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가치’라는 기준을 둔 투쟁의 시간이었다. 

  분배의 문제를 떠나 성장속도가 최고조일 때, 지구상의 여러나라에서는 자본가든 노동자든 거의 모두가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저성장시대가 되고 성장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체제를 도입하면서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노동에 대해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가치’라는 전제는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정말 노동을 통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가..  이것은 여러 가치체계의 대입과 원론적 접근으로 혼란스러운 산출을 내며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 되어버렸다. 

  이 책의 시대는 2000년 전후, 그러니까 신자유주의 체제가 무르익어가던 미국이다.  당시 하층계급 노동자의 입장으로 잠입해 그들의 시급으로 약 2년여를 살아보며, ‘당시의 최저시급으로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가’를 증명해보는 작업이었다.  혼자이고 차가 있는 입장에서 최저시급으로 살아 본 저자의 결과는, 가장 저렴한 숙소를 구해 간신히 주당 거주비를 내고, 가장 저렴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조금 남는 돈으로 기타 필요한 물품들을 대충 꾸릴 수 있는 수준의 벌이였다.  여기에, 아프거나 갑작스런 사고 등등을 위한 여비는 모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저자와 함께 일했던 노동자들의 처지는, 아이가 있어 친척들에 사정하여 맡기고 출근하거나, 동거인이나 남편이 있거나 하는 등의 더욱 열악한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최저시급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들은 노동으로 지쳤고, 감당할 수 없는 삶으로 짜증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바꿀 의지가 없었다.  저자가 청소용역업체에서 일할 때, 대저택으로 청소하러 가서 동료들에게 ‘저들이 너무 많이 가진 것 같지 않나?’고 물었을 때, 동료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언젠간 저렇게 살 수 있을 거란 희망과 자극이 되는걸요.’ 

  자본은 분배의 문제에 무능하다.  성장을 통한 부의 증식은 누군가의 통제로 분배를 동반해야 한다.  부는 증가하고 세상은 발전했지만, 그래서 삶은 산업혁명시대의 모습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노동의 가치는 여전히 인간다운 삶을 지킬 수 없는 수준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수준을 힘없는 하층계급으로 전가한다.  동시에, 자본은 노동자를 순치시킨다.  알 수 없는 오묘한 현상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저자는 다시금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며 더욱 악화되었다고 말한다. 

  최저임금, 최저시급으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지금 우리사회의 화두이다.  진료실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지쳐있다는 점이다.  그들 중에는 최저시급 언저리 수준의 보수를 받으며 장시간 노동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다.  가끔, 그런 처지가 부당하게 생각되지 않느냐 넌지시 던져보면,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다. ‘다들 그 정도 받고 그만큼 일해요.  당연한 거 아니예요?’  우리 사회의 현 최저시급, 최저임금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충분한지 부족한지 나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피곤이 온당한 노동가치와 보람 위에서 겪는 당연한 육체적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15년 전의 미국사회의 노동가치와 노동자들의 처지가 지금 우리사회의 노동가치와 노동자들의 처지와 비슷한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노동과 처지에 가지는 생각은 엇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느꼈던 그 허탈감에 깊이 공감한다.  반갑지 않은 공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