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JEJU/Essay

민욱아빠 2017. 7. 8. 11:31

  지방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증폭했던 때가 있었다.  가을 어느날 동해안 여행 중 속초 시내에서 보았던 풍경 때문이었다.  기울어가는 오후의 시내 대로가 앞으로 쭉 뻗어 있었고, 멀리 소실점 옆으로 울산바위와 백두대간의 능선이 검고 짙게 이어지고 있었다.  문득, 나는 어째서 저런 풍경을 바라보며 살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자괴감 비슷한 감정이 올라왔었다.

  병원 숙소에서 제주에서의 첫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샤워를 하고 나오니 조금 빛바랜 네모난 창틀 안으로 한라산의 능선이 선명했다.  날은 개었지만 아직 흐렸던 월요일의 아침이었다.  흐린 구름을 배경으로 검고 선명한 한라산의 모습은 창틀과 더불어 시간이 배인 액자속 그림같았고 그것은 그대로 나에게 선물이 되었다.  속초에서의 강렬했던 풍경이 떠올랐다.  아, 나도 이제는 원하던 풍경을 곁에 두고 바라보며 살게 되는구나.  행복했다.

  인계받은 환자들을 회진하러 둘러본 병동에서는 바다가 보였다.  나직하고 낡은듯한 도심 위로, 멀리 배들이 다니는 너른 바다와 그 옆으로 사라봉이 있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것이지만, 회색빛 무표정의 건조함만이 창밖을 채우던 곳을 벗어나 남으로는 한라산이 보이고 북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그런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나는 누군가의 로망이자 나의 로망이기도 한 무언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건 새로웠다.  환자들의 말 부터가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사투리가 약간 섞이기도 한 육지말을 쓰고 있었지만, 제주어의 억양은 어찌할 수 없었다.  제주어는 끝이 잘리는 느낌과 강한 억양 때문에 하대받는 기분으로 듣는 사람이 언짢을 수 있다.  그런 부분은 적응의 문제였다.  큰 문제는 제주어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었다.  특히 중산간 시골마을에서 오신 노인들의 제주어는 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외래간호사를 제주출신으로 배치해서 진료과정 중간에서 통역의 역할을 하게끔 하는 것이 제주의 병원들의 특징이었다. 

  점심시간이 한 시간 반 정도 주어진다는 것도 새로웠다.  한 시간 반이라니, 다른 뭔가를 해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첫 날의 점심은 새로운 동료가 왔다고 진료부 대부분의 의사들이 함께 외출하여 점심식사를 했다.  나를 차에 태우고 약 20여분을 달려 오르막길을 오르니, 강원도 어디라고 해도 좋을 한적하고 나직한 숲속 어딘가의 식당에 들어섰다.  병원자리는 복잡한 구도심 안쪽에 있었는데, 잠깐 차를 달려 이런 한적한 숲 속을 볼 수 있다니 풍경의 급격한 달라짐도 생소했다.  내가 이제까지 있던 곳과는 정말 다른 어딘가로 오긴 왔구나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외래 진료를 마치고 나는 특별한 일이 없음을 확인하고 숙소에서 나와 걷기 시작했다.  병원 주변을 구경하고 싶어서였다.  순대국밥의 감흥이 아직도 짙게 남은 동문시장으로 내려가 시장을 구경하고 나오니 도로 맞은편으로 불빛이 밝은 거리가 보이길래 들어섰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거리는 칠성통이라 불리며 과거 제주의 최대 번화가였던 길이었다.  옷가게만 그득한 그 길을 걸어 끝까지 가보니 바다가 보였다.  소금기에 침식되어 조금은 낡아보이는 풍경의 광장에 들어섰고, 광장 끝의 난간은 간이 방파제 역할을 하면서 바다를 바로 접하고 있었다.  바람은 불었지만 아주 차갑다고 하기엔 남쪽섬의 공기는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공기의 부드러움보다 한기의 매서움을 더 느끼며 섬 사람의 하나가 되겠지..  파도는 자잘하게 일렁이며 시선 아래의 방파제 구조물에 부딫히며 포말을 만들고 있었다.  착륙하는 비행기가 가깝게 배를 깔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내가 비행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주변의 사람들은 그런 광경은 아주 익숙한 듯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방파제를 따라 걸었다.  눈 앞에는 횟집간판들의 불빛이 옹기종기 모여 휘황한 빛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고, 그 아래 수족관에는 육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갖가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어랭이라 불리는 용치놀래기, 방어, 부시리..  정말 저런 것들이 잡히는 것일까 싶게 거대한 크기의 물고기들이 들어 있었고, 덩치가 넓은 광어들은 자리가 좁아 두세겹으로 포개어 바닥에 누워있었다.  걸음을 좀 더 옮겨 도로변으로 나오니 어둠이 급격히 찾아왔다.  어둑한 거리로 사람보다는 차들이 많이 다녔고, 구한말에 제주로 표류했다는 거대한 중국목선이 어둠 속에 앉은 모습을 곁눈으로 구경했다.  항구와 산지천이 만나는 동네의 어둠은 새벽의 부산함을 준비하는 듯 고요했다.  어두워도 피부빛이 거칠고 거뭇함을 알 수 있는 남자들 몇이 흰눈동자를 굴려가며 지나갔다.  가로등 몇 개 없는 산지천변의 어둠 속을 걸어 병원쪽으로 올라가니 ‘놀다가라’고 나직히 손짓하는 중년의 여인들이 보였다.  어둠과 허름함과 그 안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여인의 목소리와 손짓..  나에게 주어진 새로움은 호기로움만이 아니었다.  나의 새로움은 어딘가에서 익숙했던 또는 사람사는 곳이라면 평범하게 마주할 그런 것에도 속해 있는 것임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며 덤덤해질 나의 기분들은 호기심의 무뎌짐과 함께, 자연스러운 것들에의 이제껏 그러했던 익숙함이었다.  남쪽 섬 역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나는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산지천의 복개구간에 들어서니 동문시장 입구가 보였고, 버스와 차들이 그 앞으로 부산하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이틀째 그 곳을 세 번정도 거쳤다고 벌써부터 익숙해진 기분이었다.  건널목을 건너 시장 안으로 들어가 기억이 나지 않는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아까 보았던 어둠이었다.  불꺼진 상점들과 어둠안에서 미끄러지는 헤드라이트 불빛들을 옆으로 하고 겨울바람을 느끼는데, 춥진 않고 스산했다.  무언가를 더 해볼까 어딘가를 가 볼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혼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맥주 두어 캔을 사들고 숙소에 들어섰다.  불켜기 전, 아침에 보았던 빛바랜 창틀 안으로 한라산은 사라지고 언덕배기 동네의 나직한 불빛들이 점점이 모여서 박혀있었다.  불을 켜서, 나도 그 점들의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