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일 기

민욱아빠 2017. 7. 9. 22:12

  아내와 아이가 말레이시아로 출발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짐을 챙겨 공항으로 데려다주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아빠와 기싸움 몸싸움으로 지치고 토라졌던 아들은, 장시간 아빠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때문인지 평소에 하지도 않던 뽀뽀를 해 주었다.  공항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차를 돌려 집으로 오니, 널찍한 실내가 유난히 고요하고 더 넓어보였다.  담담한 마음으로 주말 아침마다 해 왔던 글작업을 시작했다.

  한 달 반 남짓의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한다.  남들은 자유라며 조금 부러워했다.  솔직히 나도 주어진 당분간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어차피 평일은 하루 한나절을 병원에서 보내야 해서 그다지 자유로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아침을 챙기고 빨래를 하고 청소등의 살림을 할 생각을 하면 까마득한 것도 사실이다.  자유를 위해선, 내가 움직여 챙겨야 할 일들이 늘어난 것이다.  아내가 차려주었던 아침을 스스로 챙기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퇴근하면 바로 집안일에 매진해야만 한다.  먹는 것도 그렇다.  일단은 냉장고를 파먹고 텃밭의 것들을 거둬먹는 것을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디까지 가능하고 얼마나 지속될 지 알 수는 없다.  재료를 챙기고 요리를 하는 것도 노동인지라, 내 스스로 지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말레이시아에는 처남이 살고 있다.  얼마전 쿠알라룸푸르에서 조흐바루로 이사를 해서 이번엔 싱가폴과의 국경도시에서 머무를 것이다.  아이는 그곳에서 영어와, 가능하다면 중국어까지 배우며 처남네 조카들과 어울려 지낼 것이다.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이 아이에게 얼마나 유익한 시간이 될 지는 알 수 없다.  나 스스로는, 일 년에 한 번씩의 기러기 신세가 잘 하고 있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아이를 일 년에 한 번 일정기간을 여행도 아니고 유학도 아닌 애매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게 올해 3년째이다.  이전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계획이었다.  사고의 전환은 세월호 직후였다.  그 전에 나는, 아이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바른 생각과 성실함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자 했다.  그러나 세월호는, 나의 생각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았다.  위기에 빠진 국민을 구조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좌절과 실망이 나를 압도했다.  살아가야만 하는 나를 비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의 아이를 보면서 미안함과 불안이 빠르게 엄습했다.  세월호와 세월호 이후 세상의 모습에서, 어쩌면 이 사회는 이미 난파선이 되어버린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난파선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고 이민같은 탈출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답이 되지도 않았다.  그저 아이가 국경을 초월하여 자유로이 다니며 자신이 먹고 살 것을 스스로 챙길 수 있게 돕는게 최선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유로운 삶을 위한 도구 하나 챙겨주자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 도구로 언어를 먼저 생각한 것이다.  나름의 방법으로 챙기고는 있지만, 과연 이것이 아이를 위한 방법이며 생각을 실천하는 최선의 방법인지는 아직 확신이 없다. 

  아들은 아직 별다른 생각이 없이 하자는 대로만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 간다니 또래 조카들과 놀 생각에만 들떠 있었다.  아내는 혼자 지내야 하는 나를 걱정했고, 당분간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슬퍼했다.  나는 애써 담담해 했지만, 마음이 쉽지 않았다.  떨어져 한 달 반을 지내야 하는 시간은 어떤 의미를 만들 것인지, 불안과 확신의 부재 사이에서 혼란스런 생각만 가득해졌다.  주어진 자유대신, 무거운 생각 뿐이었다.  토요일 오전 내내 글작업을 하고 둘러보니 챙겨야 할 살림만 한 가득 보였다.  설거지를 하고, 아이가 사용하던 침구류부터 모두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마당에 나가보니 덥고 습한 가뭄에도 잡초들은 여지없이 자라 구석마다 무성한 모습이었다.  날은 무척 더웠지만 골갱이를 잡고 검질을 매기 시작했다.  버거웠다.  집에 사람이 있으면 찬물이라도 내 달라고 할 건데, 바짝 말라가는 입을 장갑벗고 신발벗고 안으로 들어가 내가 직접 챙겨 마셔야 했다.  모든 걸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을 첫 날부터 실감하고 경험하고 있었다. 

  저녁은 지인들을 불러 함께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아침엔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웹툰작가 동생가족이 방문했다.  연재를 마치고 다음 작품 전, 제주여행을 생각하고 이른아침 비행기로 내려온 것이었다.  집을 구경시켜주었고, 이제 막 두 살이 된 딸래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도 건넸다.  오전시간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함께 금능해변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온 뒤 늦은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다시 집안일을 시작했다.  세탁했던 아들방의 침구류를 모두 정리해넣고, 쌓인 빨래를 돌렸다.  텃밭에 들어가 고랑의 검질을 매었고, 반쯤 매다 지치기도 한데다 해지기 전에 물도 주어야 해서 호스를 잡고 텃밭과 마당 곳곳의 나무들에 물을 주었다.  확실히 날이 습하기만 하고 덥고 가물어서, 고추 몇몇이 누렇게 죽어가고 있었고 오이도 두 그루가 말라죽어버렸다.  답답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확인한 주말이었다.  내 마음도, 당분간 내가 감당할 현실도, 그리고 마른 땅에 내리지 않는 비도..  모두 쉽지 않았다.